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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wedlock_1862
    작성자 : 철전열함
    추천 : 21
    조회수 : 2087
    IP : 175.201.***.150
    댓글 : 25개
    등록시간 : 2016/05/18 21:47:58
    http://todayhumor.com/?wedlock_1862 모바일
    나보다 먼저 장가간 동생놈의 주말보내기.
    -주말에 뭐함?
    -토요일 오전에만 출근. 왜?
    -두부(조카 태명) 안보고싶나?
    -조카만 보고 싶다. 너 놈 말고. 보러가도되냐? 내가 조카땜에 담배를 끊었어.
    -아니아니. 내가 형집으로 갈께. 하루 자고 가도 되지?
    -제수씨도 오겠네. 청소 좀 해야겠다.
    -그럴필요까지없다. 나랑 두부만 간다. 그리 알라. 



    나와 동생은 나이가 두자리대 되면서 싸운 적도 없는 그런 형제지간이다.
    서로 생활이 엇갈리고나서부터는 어지간하면 연락도 잘 안하고 지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게, 성격은 좀 판이하게 다른 우리 형제의 몇 안되는 공통점이라
    용건이 있지 않는 이상은 뜬금없이 문득 형이 생각났어. 오늘 니 생각이 좀 나더라. 같은 짓은 절대 안한다.
    ...요즘은 내가 밤마다 술먹고 동생놈에게 우리 조카님 어찌 지내시는지 안부를 여쭙고,
    동생놈은 기저귀와 분유를 조공할것을 요구하며 사진을 한장씩 보내준다...도둑놈...








    작년 이 맘때쯤에 뜬금포로
    "나는 아빠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데, 형은 삼촌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라며 속도위반소식을 알리고
    상투틀면 어른이제 주머니 손빼고 짝다리 풀어, 축의금 잘 챙겨놔라.라며 내 어이를 좌우스트레이트로 날리고 식장에 들어간 이놈이
    저번 봄 갑자기 주말에 내 집에 조카님을 모시고 오겠노라며 연락을 했다.




    예정일보다 3주나 일찍 태어나 온 집안사람들의 심장을 콩딱거리게 만든 조카님인지라(지금은 건강하기 그지없음)
    야야. 요새 미세먼지개쩔어. 조카님 건강에 안좋아. 어딜 나와. 내가 분유기저귀딸랑이속옷 양손 가득 사갈테니까 나오지마.
    조카님을 위해서라면 이틀에 세끼만 먹고 살수도 있어. 라는데 기어이 오신댄다.

    조카 차멀미할건데. 우리 조카 입맛에 맞게 피자통닭탕슉...아...아직 이유식도 안하지.라며 우왕좌왕하다가,
    응??? 제수씨는 왜 안오지??? 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내가 제수씨를 처음 만난건 회사사람들과 갔던 야구장이었다.
    동생도 데이트왔다가 매점가려다가 우연히 날 본게다.

    풋. 인사해라. 내 여자친구다. 풋. 꼬라지...ㅋㅋㅋㅋㅋㅋㅋㅋ
    뭬야???...처...처음 뵙겠습니다. 이 놈 형입니다.

    나는 그때 회사사람들과 넥타이는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양복바지는 한쪽만 걷어놓고 맥주병나발을 불며 아저씨응원을 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처음 보게된 제수씨는 당혹해하며 재밌게노세요.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고,
    나와 회사사람들은 술이 다 깰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복장을 정갈히하고 야구경기를 관람했다.

    어찌 이런 참한 처자가 이 성격베베꼬인 놈이랑...이라며 안타까웠지만,
    뭐 엄마아빠는 벌써 여러번 봤다더라.




    이제 백일 지난 조카님이 장거리외출을 하는데 엄마인 제수씨가 동행을 안한다?
    가정불화? 이혼? 위자료? 사랑과전쟁? 몇대몇? 양육권? 가정법원? 등등 결혼안한 나와 상관없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오가고, 
    동생놈에게 야야. 제수씨는 왜 안와???라고 연락했지만, 수업 들어간듯 답장이 없었다....;;;;;;

    오마니한테 물어보면 기절하실지도 모르니 주말에 동생을 만나 일단 사정을 듣기로 했다.




    "어떠십니까. 퇴근하고 낮술 달리시죠?"
    "닥쳐. 지금 동생놈이 이혼남되게 생겼는데 술이 문제야!!! 먼저 나갈테니까 마무리 좀 해놔!!! 씨유먼데이!!!"
    나한테 걸려들어 낮술에 맛에 빠져버린 최대리가 점심에 저번에 봐둔 국밥집에서 한잔 꺽자고 하는걸 넌씨눈!!!!이라고 일갈하고 집으로 내달렸다.
    평소에도 막히던 길, 마음이 급하니까 또 더럽게 막힌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아파트 정문 경비실에서 경비아저씨랑 음료수마시면서 기다린다.
    어제 근처사는 친구 두 놈 불러서 밥한번 사주고 청소를 해치웠다.
    운전중일까봐 전화안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자니 저기 동생차가 보인다.

    "아. 저기오네. 아저씨. 저차요. XX X에 XXXX번. 내일까지 방문이요."
    "누구길래 여까지 와서 기다리고 그런대. 부모님차는 아니구만?"
    "동생입니다."
    "형이 정성이네. 이거 차량 앞유리 쪽에 부착하라고 해요."

    이 쉐키. 당장가서 제수씨한테 무조건 니가 잘못했다 빌어.라는 대사를 준비하며 주차장에 막 주차하는 동생에게로 뛰어간다.
    "야임마!!! 가서 무조건 제수씨한테 임마!!!! 어? 제수씨???"
    뜻밖에 운전석에서 내리는건 제수씨였고, 뒷좌석창문이 열리며 동생이 한심스럽게 오늘은 또 무슨 컨셉의 쌩쑈냐???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랑 두부는 신경쓰지말고 잘 놀다와. 
    아주버님, 두부가 신세 좀 지게되네요. 
    아...아닙니다.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댕겨오세요.

    그렇게 제수씨는 동생차를 끌고 아파트를 나갔다.
    오늘 내일 조카님쓸 애기용품들과 온갖 음식과 반찬들, 그리고 두 부자를 남겨놓고.




    저번에 봤을때는 막 울어재끼더니 
    오늘은 백일잔치때보고 오랜만에 보는 큰아빠를 보고 빵긋빵긋 웃어주고 손까지 흔들어준다.
    심쿵하여 어버버버버버~하고 있자니, 
    역시 내 아들. 호구를 알아보는군. 이라며 기저귀 갈 줄 알지??? 두부 좀 봐라. 라며 침대에 가서 벌러덩 눞는다.

    "야. 기상. 뭐냐? 벌써 합의한거냐?"
    "합의? 뭔?"

    태연하다못해 또 뭔 개소리야라며 나를 보는 동생눈빛에 내가 또 뭔 착각을 거하게 했나 싶다.
    그래도 나름 차근차근 지난 한 주간 했던 걱정들을 털어놓았다.

    뭐야 왜 이래???라던 동생 눈빛이,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꼭 연륜이 생기고 그러지는 않구나.하는 눈빛으로 바뀐다.




    "형 혹시 이혼할까봐 결혼안하냐?"
    "이혼걱정하면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냐?"
    "근데 왜 잘 살고 있는 우리 부부 이혼하네마네 그러냐?"
    "제수씨는 안오는데 너랑 두부는 온다니까 이거 부부사이에 뭔 일 있나 싶었지."
    "걱정도 팔자다-_-"




    동생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초산인데 조산까지 겹쳐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 제수씨는 결국 복직을 포기하고 당분간 건강회복과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다.

    며느리사랑은 테레비에 나와도 될 정도인 우리 부모님인지라 
    "내 카드"로 가물치도 고와주시고 부기빠지라고 호박즙도 내려주시고 
    (기다리는동안 두분이서 참 비싼 식사도 하시고는...다 문자뜹니다ㅠ.ㅠ),
    아니다. 그냥 너 써라.라며 그렇게 들고간 "내 카드"를 제수씨에게 덜컥 주고 내려가셨었다.
    (주말에 동생이 돌려주러 왔다감. 마침 차에 기름없는데 지갑을 두고와서 썻다면서...ㅂㄷㅂㄷ)

    3주 일찍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실려들어갔던 조카님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뚠뚠해지는데,
    안그래도 여자들의 선망체중이라는 4X키로였던 제수씨는 더 살이 빠지셨다.

    어느날, 퇴근해서 조카님 인수인계받고 있자니 텔레비전을 보던 제수씨가
    "좋겠다. 친구들이랑 여행도 가고."라며 중얼거리더란다. 꽃보다 청춘 재방송이었단다.

    아. 내색은 안해도 하루종일 집 아니면 병원만 오고가며 육아스트레스가 쌓였구나.
    거기다 주말에는 시댁에서 친정에서 올라와대니 마음의 여유가 없겠구나. 싶더랜다.

    그래서 제수씨 절친들에게 연락해서 주말에 상경할테니 데리고 1박2일로 놀러다녀와달라고 부탁했다한다.
    마침 또 결혼하는 친구가 있어서 언제보자말자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1박 2일로 춘천다녀오기로 했다한다.

    상식적으로 친정에 애맡기는게 맞겠지만, 
    농사준비로 바쁘시고 사위가 애보고 앉아있는것도 좀 그래서 패스.
    시댁으로 가자니 시댁에 애맡겨두고 놀러가는건 며느리입장에서 눈치보여서 패스.
    그렇다고 형부가 처제원룸가는건 더욱 아니니 패스.

    그런데 마침 웬 주정뱅이놈이 밤마다 우리 조카님 안녕하신가. 사진 한장만 보내줍쇼.라며 사생팬짓을 하고
    6살때부터 사촌동생들 기저귀갈아주고 분유타주고 업어주고 재워주고 하는 30년 가까운 육아경력 보육자인지라 
    의외로 믿을만 하다하여 이번 주말 우리집에 오는걸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서로 하는 일에 길게 설명하지않는 우리 형제인지라,
    조카랑 간다. 제수씨는 안가니까 준비 빡씨게 하지마라. 이상 통신 끝.
    이래버리니 지난 며칠동안 나의 풍부한 상상력은 사랑과 전쟁을 넘어 아마겟돈까지 찍고 있었다.



    "애엄마는 뭐 기계냐 하루종일 애만 보게. 그래서 하루 정도 바람 좀 쐬고오라 했다."
    "아. 그래서 제수씨가 나 좋아하는 걸로 음식준비해주셨구나..."
    "아니 형 생각해서가 아니라, 거기 펜션가서 먹을거 준비하다가 남아서."
    "내 감동 물어내. 이 새끼야."




    보나마나 술이나 빨며 보냈을 주말이었지만 
    재주라고는 이제 겨우 혼자 몸뒤집는것 뿐인데, 
    그거 보고 좋아죽는 큰아빠가 가엽고딱해 열심히 뒤집어주시는 조카님덕에 모처럼 흡족하게 보냈다.



    두부 잘 있어요???라고 제수씨가 5분 간격으로 까똟보낼때마다
    ㅇㅇ. 형이 안아주고 있어.
    ㅇㅇ. 형이 놀아주고 있어.
    ㅇㅇ. 형이 분유타맥였어.
    ㅇㅇ. 형이 똥기저귀치우고 씻기고 있어.
    ㅇㅇ. 형이 재우다가 지가 먼저 자고 있어.
    라고 대답했다가, 애는 아빠가 봐야죠!!!라며 혼났다고 한다. 꼬숩다.




    그리고 다음 날, 제수씨가 곧 도착한다. 연락이 와 짐챙기고 조카챙겨 내려갔다.
    24시간동안 큰아빠품에 완전 적응된 조카님이 
    제수씨한테 혼날까봐 지가 안고있는 척 연기하려는 못된 아빠품으로 가는걸 거부하며 울어대서, 동생은 난감해했다.

    그런데 엄마보자마자 나한테서 떨어지려고 막 울어댔다. 으아아아앙.




    "새애기가 그러는데 니 동생이 애정표현이런거 절대 안한다드라."
    우리 어머니가 꽤나 걱정하며 나한테 그랬었다. 저러다 이혼당한다면서-_-ㅋ

    사실 무뚝뚝하기를 우리 아부지 닮아 나도 퍽 걱정했는데,
    간난애기 내가 (사실상 형이) 볼께 1박 2일 바람이라도 쐬고 와라. 라고 보내는거 보면 이 놈은 진성 츤데레다.

    그러고보니 동생은 차문을 열어주고 제수씨가 내려줄때 손까지 잡아주고 문틀에 머리찧을까봐 다른 손으로는 문틀을 잡는다.
    저건...경호원들이 VIP들 차에 타고내릴때 하는 그건데...;;;;
    내 차에 타고내릴때 어디 니 놈 차 문짝은 얼마나 제대로 붙어있나보자!!!며 쾅쾅 닫아대던 놈의 놀라운 변화.
    그리고 다른 사촌여동생들이나 주위에 아는 여자한테는 씨도 안보였을 세심한 배려-_-

    저게 30년 넘게 알고 지낸 내 친동생놈이 맞는지 생간을 씹어먹고 둔갑한 구미호새낀지 모르겄다.




    그리고 이번 주말. 
    제3차 조카님의 큰아빠집 방문이 있을 예정이다.

    여행 한 번 다녀오고 눈에 띄게 기운을 차리길래, 
    이것봐라??? 면서 저번 달에 한번 더 보냈더니 더욱 건강해지길래,
    한국사람은 삼세번이라고 제수씨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이번에는 강릉바다를 보러 가신댄다.
    다음에는 육아에서 해방되어 1박2일의 여행이 출산한 산모에게 미치는 임상학적데이타를 얻기 위해 보내겠다고 한다.

    이 실험은 조카님이 더 커서 엄마아빠랑 여행다녀도 될만큼 클때까지 가능한한 1달에 한번 진행할 예정이란다.

    "두부가 큰아빠보러갈까? 그러면 막 웃어요."라고 제수씨가 알려줬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님을봐야 뽕을 딸텐데...ㅠ.ㅠ)

    그런 주제에 나이만 2살 더 많다고, 
    속도위반으로 결혼하는 동생과 나이차가 훨씬 많이 나는 제수씨를 나이빨로 내려다보며 걱정했었다.
    특히 암만봐도 아내에게 신경안쓰는 무심한 가장이 될 것 같던 동생이라 더 그랬는데...기우였다.

    처음에나 조카를 손에서 안놓으려는 (독거노인) 형을 배려해서 맡긴거지,
    저번에 왔을때는 지가 재우고 맥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다 했다.
    나이차나는 사촌동생들에게 보이던 다정한 그 모습이고, 
    어릴때 우리와 잘 놀아주시던...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우리 아버지 모습이었다.
    (물론 친손주와, 사실상 손주뻘 나이인 조카들에게는 영락없는 바보할배.)




    내 평생 이놈에게 배울 교훈따윈 없다 여겼지만...
    어느새 아빠노릇 제대로 하고 있는 동생을 보며,

    엄마한테 뭐라 말하고 혼자살다가나...하던 나의 결혼관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철전열함의 꼬릿말입니다
    동생놈 결혼생활이야기라 결혼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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