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의사를 싫어하는 이유
뉴욕에서 바라본 세상 2007/12/14 23:35
최근에 2살이 되어가는 우리 아들 때문에 소아과에서 청구서를 받았습니다. 간단한 예방접종과 기초 피검사(혈중 납 함량등)을 받았는데 약 100만원 정도의 액수가 청구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이 아니고 미국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직장 의료보험이 있어서 본인부담금이 전혀 없습니다만 병원 측의 실수로 가끔 이런 잘못된 청구서가 날아오기도 합니다. 문득 드는 생각은 의료비가 이렇게 비싼데도 미국은 어떻게 의사-환자관계가 잘 유지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때로 기본적인 진료비 3000원이 넘게 나오는 경우 이유야 어쨌거나 진료비가 비싸다는 환자들의 항의를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미국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는 어떻게 돈 문제와 유리되어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의사인 제가 한국 환자들이 한국 의사들을 싫어하는 이유를 대려고 해도 비록 사실이건 아니건 과장되었건 있는 그대로건 셀 수 없이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습니다. 일단 의사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버는 것 같아서 싫고, 의사들이 세금을 포탈한다는 것도 들어봤고, 의사들이 소위 부당청구를 한다고 언론에서 나오고, 종합 병원에 가면 3시간대기에 3분 진료요, 의사들이 너무 불친절하고, 잘난 척하고, 대학병원은 특진비로 수입 챙기고, 의료사고 내고도 보상도 안 해주고, 원정 출산하는 사람도 의사고, 성매매 업소에서 적발되는 사람도 의사고, 원조교제하는 사람도 의사고, 게다가 가끔 자기 밥통 때문에 파업도 하니 세상에 보기 싫은 것이 의사지요.
물론 의사들이 존경받고 칭찬받을 이유도 아마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일단 의사라는 검색어로 신문기사 검색해보시면 의학정보에 관련된 것을 빼면 90%는 나쁜 이야기 일색일겁니다. 인터넷에서 여기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대부분 의사라는 직업군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대부분이고 옹호해주는 목소리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미국 와서 의사하면서 한국에서 의사했던 경험과 비교하면 환자나 일반인들의 의사라는 직업군에 대한 인식은 언론에 공개되는 신뢰도 조사나 존경받는 직업 순위에 의사라는 직업은 꼭 상위에 들어가는 것 부터 개개인을 만나서 이야기해보아도 아주 호의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과속해서 경찰에게 걸려도 교통티켓을 안 받으려면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의사라고 밝히라고 합니다.(미국인 변호사가 그러라고 시키더군요.) 왜 한국인과 미국인의 인식이 이렇게 다를까요.
오늘은 그중에서 딱 한 가지 보험제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합니다. 얼마 전에 가톨릭대 부속 성모병원에서 고가의 항암제를 사용하면서 보험 공단 측에 부당청구를 했다고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부당청구란 말의 정의가 과연 무엇이냐가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말 차체의 어감은 ‘돈을 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데 부당하게 돈을 달라고 한것’ 정도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언어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슨 돈입니까. 병원에서는 어떤 이유로건 보험공단의 내부기준에 어긋나는 치료를 시행했고 그래서 돈을 줄 수 없는데 달라고 했거나 받아갔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몇 년 전에 자신이 직접 환자로써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던 한 의과 대학 교수님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본 기억이 납니다. 내용인즉 얼마 전에 보험공단에서 편지를 받았는데 자신이 병원에서 치료받은 내용 중 보험공단의 감사 중 병원 측이 부당하게 치료비를 청구한 항목이 발견되어 병원에서 청구한 내용이 환수되었으며 환자에게도 일부 본인부담금을 돌려준다는 내용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작은 돈(아마 1-2만원이었던 것 같습니다.)이지만 돌려 줄 테니 연락을 달라 라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의료보험공단이 이 환자가 의사인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지만 알아도 이런 조치는 달라질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병원에서 환자 치료하는 내용을 아는 의사입장에서 보니 교수님 자신이 치료를 받은 내용은 의학적으로 아주 합당한 것이었고(비록 보험공단의 내부 심사기준을 어겼더라도) 자신이 비용을 지불한 것은 정당하다고 느꼈는데 병원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환자를 치료해주고 돈도 잃고 환자 신뢰도 잃게 되는 모양새가 되어 기분이 착잡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제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소위 ‘라뽀’라는 의학용어로 불리는 좋은 의사-환자관계가 실제적으로 환자의 병세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는 환자에게 강요한다고 생기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위에서 예로 든 이런 편지를 받는 것은 돈을 떠나서 더 중요한 의사-환자 관계를 깨는 아주 좋은 방법일겁니다. 그럼 의사-환자 관계를 깬 범인이 ‘부당청구’를 한 병원이냐 아니면 정당한 치료를 한 병원을 ‘부당청구’라는 죄를 뒤집어씌운 보험공단이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한국적인 현실에서 사람들은 병원이라는 기업형 집단과 의사라는 직업군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결국은 의사 잘못이냐 병원 잘못이냐 하는 이야기도 되겠습니다.
그럼 보험공단의 심사기준에 어긋난 치료를 병원 측은 도대체 왜 했냐는 것입니다. 첫째는 기준에 어긋나는 것을 몰라서 그랬다. 둘째는 알면서도 워낙 부도덕한 집단이기 때문에 돈을 더 벌기 위해 그랬다. 셋째는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이렇게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대개의 일반인들의 정서는 두 번째지요. 그런데 의사들에게 물어보세요. 대부분 세 번째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저는 의사들의 입장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말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곳 미국에서 조차 의사들에게 보험회사 측의 보험료 지급기준은 원성이 자자합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정말 공통적인 것은 보험사측의 심사 기준은 의학적인 견해를 기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예산을 기초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편도선염에는 항생제를 1주 이상 쓸 수 없고 항생제를 쓰는 경우는 보험회사에서 의사에게 청구액수를 지불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고 해보지요. 이 규정은 보험회사에서 의사들에게 항생제 치료를 2주나 3주를 허용하면 예산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생각하고 1주일로 정한 것이지 의학적으로 1주 만 치료하면 모든 편도선염이 낫는다는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환자 치료에 의학적 견해보다 보험사의 예산절감이 상위에 있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겁니다. 이 보험사의 내부기준에 어긋나면 바로 부당청구가 되는 겁니다.
물론 의사가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보험공단 입장에서는 부당할지 모르지만 치료의 수혜자인 환자는 부당하다고 생각해주면 안될 것 같은데 이번 성모병원 백혈병 부당청구 사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환자도 역시 보험공단 못지않게 병원 측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들로서는 치료해주고 비난 받는 것이니 정말 환자를 진료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럼 미국의 시스템은 도대체 뭐가 다르기에 의사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보험사의 기준에 맞춰서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을까요. 혹시 존 큐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덴젤 워싱턴이라는 대 배우가 주연을 해서 영화를 보진 않았어도 제목정도는 들어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병원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이지만 결국은 미국정부 혹은 이 부당한 의료보험 회사에 일개 개인이 맞서 싸우는 내용입니다. 의학적 결정을 의사가 의학적인 판단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결국은 보험의 문제라는 것을 미국인들은 알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백혈병 환우회가 성모병원에게 맞서 싸우지만 미국에서는 환자와 의사가 보험회사에 맞서 싸웁니다. 의사는 이 싸움에서 환자와 한편이지 환자의 적이 아닙니다.
미국에 음모이론이 있는데요. 미국 정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좌지우지한다는 이 3대 세력에 관한 겁니다. 이 3대 세력은 바로 방위산업체, 석유 재벌 그리고 의료보험회사라고 합니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농담 속에 숨은 뜻은 미국인들은 의료보험 회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개인의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존큐같은 영화를 봐도 이해가 가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병원을 점거하고 싸우니까 아마 병원을 상대로 싸운다고 이해하기가 쉽지만요.
그 이유를 알기위해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판단되는 치료를 모두 제공하고 나중에 보험공단에 이러 이러한 치료를 했으니 보험금을 지급해달라고 청구를 하고 청구된 금액이 심사과정을 통해서 자체 기준에 맞춰 삭감을 당하고 나머지가 지급이 됩니다. 그래서 의사는 치료 잘해주고 손해 봤다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성모병원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나중에라도 소위 부당청구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한꺼번에 다시 돈을 물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매도당하고 환자들도 부당하게 치료하고 받은 돈을 돌려 달라고 시위를 하게 됩니다. 돈도 잃고 환자 신뢰도 잃는 거죠.
미국에서는 무슨 비싼 약을 쓰려고 한다면 의사가 약을 시작하기 전에 보험회사에 질의를 먼저 합니다. 그리고 보험회사에서 투약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그제야 약을 씁니다. 보험회사의 승인이 없으면 환자 본인부담으로 쓰는 것 외에는 약을 투여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의 뇌리에는 의사는 나를 위해 이 치료제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보험회사가 반대해서 내가 치료를 못 받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은 이런 어려운 경우에 필요할까봐 그 비싼 보험료를 꼬박꼬박 냈건만 정작 필요할 때는 온갖 이유를 들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그건 사실이기도 하구요. 즉 의사와 환자가 함께 보험회사를 대상으로 싸우는 구조입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된 환자가 자신의 이익의 옹호자인 의사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도 의학적으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온갖 구실을 찾아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가 보험적용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이 의사의 이익에도 부합하니까요.
혹자는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기업인 미국의 보험회사와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한국의 의료보험 공단을 같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 옳으냐 하고 이야기 하겠지만 둘 다 보험지출의 절감이 목표이기에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의 의사들이 매도당하는 데에는 물론 금전적인 이유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고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한국 의사들 변명하지 말고 반성하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하지만 보험 공단과의 싸움에서 조차 환자들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환자들과도 싸워야 하는 한국의사들의 현실이 이 먼 미국 땅에서 조차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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