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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과사무실입니바.
이번 년도 졸업을 하는 학생들 모두에게 좋은 내일이 다가오길 바라며 공지 사항 몇 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문자는 그렇게 끝났다.
다른 공지사항은 주소와 함께 링크로 대체되어 있었다. 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자로 모든 내용을 다 보냈다면 나는 읽는 것이 더 힘겨웠을 것이다. 지금 나에겐 두 문장의 해석이 한계였다. 입니바. 첫 문장의 오타는 쉽게 알아보았지만, 문장을 해석하는 것은 힘겨웠다. ‘이번 년도’와 ‘졸업을 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이번’과 ‘년도’는 왜 함께 쓰이는지. 나는 그런 식이었다. 글을 읽는 것이 힘겹게 되었다. 버튼을 눌러 화면을 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검은 화면에 나의 눈이 비친다. 색은 없었지만, 색이 없어서 더욱 나의 눈이었다. 잠시 젖혔던 휴대전화의 덮개를 덮는다. 그리고는 주머니 속 깊이,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으로.
지금은 졸업 시즌이라고 불리는 기간이다. 그것은 뭔가 애매하고 지칭하기 어려운 기간이었다. 졸업 기간. 졸업 시간. 졸업 당일은 그냥 졸업식이라 칭할 수 있지만, 졸업을 준비하는 기간은 뭐라고 불러야할까. 그다지 적당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고, 그나마 졸업 시즌이라는 애매한 단어만이 그 애매한 기간을 지칭하는 듯 했다. 졸업 시즌은 봄으로 접어드는 겨울의 끝자락, 2월이었다. 아직 꽃봉오리와 동물들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절기만큼은 경칩을 지나쳤다. 불치의 병마도 쫓아낼 듯 봄은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은 공기가 차갑고, 햇살이 그 차가움을 모두 중화시키진 못했지만, 모두들 벌써 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차가운 바람은 질투의 감정을 드러낸다. 방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주머니 속의 손끝이 시렸다. 장갑이 문득 그리웠다. 기숙사에 장갑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사용하던 장갑이 지금 기숙사에도 있었던가. 확신은 없었다. 돌아가서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손을 조금 더 깊이 넣는다. 그에 따라 나의 자세는 좀 더 웅크려졌다. 매고 있는 무거운 가방을 다시금 가볍게 들쳐 업는다.
스산스러운 바람 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내는 바람은 나무를 스쳐서 내 머리칼을 홀리고 있었다. 온 머리가 흩날린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늘 싫어했다. 흩날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누르면서, 한편으로는 옷에 달린 모자를 잡고 깊게 눌러 쓴다. 시야가 조금 가린다. 조금 가린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걷는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주섬주섬 꺼낸다. 선이 꼬여있었다. 언제나 주머니에 넣을 때는 가지런히 3번 정도 접어서 넣지만, 꺼낼 때의 이어폰은 언제나 꼬여있었다. 한 번에 쉽게 풀 수 없을 정도로. 언제나. 나는 천천히 그것을 푼다. 의식하지 않는 새에
걸음이 느려지다
어느 샌가 멈춰있었다. 바람 따라 선은 흔들렸고, 이어폰은 잘 풀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용한 이어폰이었다. 처음에는 새하얀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하얗긴 하지만,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더러움이 묻어있었다. 그런 더러움을 가만히 살펴본다. 사람의 때를 탄 듯한 약간 누렇게 변한 모습. 오래된 흰 속옷 같았다. 그것이 새삼스럽게 거슬렸고, 다음에는 그런 티가 나지 않는 검은색으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이미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 것 같았다. 길을 걸을 때, 음악 없이 걷게 되었을 때 어색하다고 느낄 정도로. 지금 나의 이어폰은 귓속까지 들어가는 형태이다. 소리는 퍼지지도 않고, 외부는 차단된다. 온전히 혼자만의 음악이 되고, 세상이 된다.
아직 기차 시간은 넉넉했다. 7시 23분 기차. 지금은 6시 10분. 지금과 같은 퇴근 시간에 낭패를 본 경험이 있는지라, 일부러 넉넉한 시간을 잡았고, 더불어 지하철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지하철 사용으로 걸리는 시간을 넉넉하게 고려하더라도 시간은 많이 남았기에 잠시 매점으로 향한다. 역 근처의 먹거리들은 가격이 지나쳤고, 교내 매점에 비해 종류도 적었다. 학교 정문으로 향하던 발길을 조금 틀어서 교내 매점이 있는 학생회관으로 향한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 우연히 졸업식을 하는 대강당 건물을 보았다. 거대한 회색 건물은 무미건조함이라는 단어를 건축으로 승화시킨 형태였다. 평소라면 더욱 무미건조함을 자랑하고 있을 건물이었지만, 플래카드 하나가 그런 느낌을 조금이나마 중화시키고 있었다.
졸업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졸업식장으로 쓰일 대강당이라 그런지 가장 큰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사람 여럿이 설치에 공을 들였을 것 같은 거대한 느낌. 거대했으나 위압감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기분은 어쩐지 나빠진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광대 하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우스꽝스럽게 변장을 한 커다란 광대 하나. 광대를 보고 웃을 수는 있겠지만, 그 뿐이었다. 광대는 그렇다.
졸업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거대한 9미터짜리 플래카드는 디자인 실수인지 흰 여백이 많아 텅 빈 느낌이었다. 나는 이내 시선을 돌려 길을 바라본다. 횡단보도 너머의 화단, 길고양이 두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주말의 학교는 사람보다 길고양이가 많아서 그 자체로 유령도시 같은 분위기였다. 사람이라고는 없는, 마치 혼자 남겨진 분위기, 동물들만이 남아있는 유령과 함께하는 도시. 그리고 그것은 혼자인 게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혼자 다녀도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 곳. 이 학교가 좋은 단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학생회관은 고요했다. 1층의 은행들과 피자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유리문을 여는 순간, 강한 소리와 함께 바람이 휙 밀려들어간다. 그런 바람에 쓰던 모자가 벗겨진다. 정리를 하지 않아서 여전히 긴 머리는 맞바람에 휘날린다. 시린 바람 소리가 줄면서 동시에 바람의 세기도 줄어들었다. 건물 안에서 모자를 다시 쓰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다시금 모자로 머리를 덮는다. 발걸음 소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크게 울린다. 조용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동기의 얼굴이 보였다. 가볍게 손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천천히 걸어서 매점 안으로 들어간다. 매점에 들어가서 음료수 하나와 삼각김밥을 샀다. 길거리에서 먹고 싶진 않았기에 가방에 넣었다. 차가운 바람의 바깥으로 나는 다시 향한다. 모자는 더 깊게 눌렀다. 이어폰도 다시금. 바람이 들지 않도록.
교내의 택시 승강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의 수업이 끝난 금요일 오후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이 많아서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사람들만큼 택시들은 빠르게 충원되었다. 택시 승강장의 벤치에는 앉아있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오른쪽 끝에 앉는다. 당연하다는 듯이 팔을 벤치 받침대에 올렸다가 손에 닿는 물컹한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손에는 점액이 조금 묻어있었고, 돌린 시선의 끝에는 달팽이가 있었다. 달팽이. 그것도 집을 가지지 않은 민달팽이였다. 식용도 아니고 애완용 달팽이도 아니었지만, 크기는 컸다. 어릴 적에 몇 번 봤던 자연의 달팽이가 이렇게 컸는지 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달팽이 자체를 직접 본 것도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집 없이 혼자 그것은 그렇게 있었다. 무거운 짐을 가지지도 않았고, 민달팽이는 그렇게 혼자였다. 차가운 바람 아래서 나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을 집어 든다. 자리에서 일어나 벤치 뒤쪽의 잔디 위에 올려두고 나는 돌아왔다. 점액질은 손에 남아있었다. 집 없는 그 생물은 연약했고, 고요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긴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 그것을 도와줬는가. 손의 끈적이는 그것이 나의 머릿속도 끈적하게 만들었는지 생각은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둔다.
택시 순서는 금방 돌아왔다. 사람이 많았지만, 대부분 서너명이 함께 택시를 타는 경우가 많았고, 혼자 타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가방을 먼저 밀어 넣고 택시에 앉는다.
“월평역으로 가주세요.”
목적지만을 간단하게 말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는데, 택시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한쪽이라도 끼워서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보일까 고민하다가 관둔다.
“집에 가는 거에요?”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이었는데, 목소리는 의외로 젊으신 느낌이었다. 높은 톤. 충청 사투리가 표준어와 뒤섞인 익숙하지 않은 말투. 나는 적당히 답한다.
“아, 예.”
나에겐 처음 만난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취미는 없었고, 자연스레 기사님의 한도 끝도 없는 세상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되었다. 불편한 공간이었다. 이야기는 끝날 기미가 없었기에 휴대전화로 재생하던 음악을 종료한다. 적당한 맞장구만 덧없이 읊었다. 스스로도 그런 태도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 들린다.
“집은 어디고?”
“전남 순천입니다.”
“전라도 사람인가보네?”
“아뇨, 어릴 땐 경상도에서도 살았습니다.”
시덥잖은 출신지 이야기. 대답을 강요받았다. 그 뒤의 이야기는 기사님이 남도를 여행할 때 겪은 일에 대한 누가 봐도 과장 섞인 무용담이었다. 전라도의 어느 지역에서는 새참을 얻어먹으며 농촌을 몇 달 동안 전전했다는 둥의 흥미조차도 발생하지 않는 이야기. 그런 재미도 없고 들을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흘려듣는다.
“그러면 몇 학년인가?”
길던 무용담 끝에 학년 이야기가 나왔다. 나의 대답을 원한다는 듯이 차는 잠시 신호등에 정지한다. 빨간 불. 정지, 정지.
“4학년입니다. 이제 졸업생이에요.”
“그러면 취업 준비 하실라고?”
결국 원하지 않는 질문이 나왔다. 취업. 취업 이야기.
“아니요...대학원 지원했습니다.”
택시 기사님의 표정이 살짝 바뀐다. 택시 안은 조용해진다. 늘 상 이런 식이었다. 대학원을 간다고? 그 좋은 대학 나왔으면 취업을 빨리 해야지! 취업준비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요새 누가 공부한다고 대학원 진학을 한데? 내가 들은 이야기는 똑같았다. 반복되었다. 그들에겐 한마디로 끝났지만, 나에겐 언제나 동일한 무의미의 반복이었다. 공부를 조금이나마 더 하고 싶어서 선택한 대학원 진학 준비는 언제나 어른들의 반대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손 벌리면서 살려고 하냐며 나에게 압박 아닌 압박을 주었다. 언제나 나를 도와준다며 무언으로 일관한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변했다. 나는 인정을 여전히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고요해진다. 학교에서 집으로 내려갈 때마다, 나는 더더욱 입을 닫고 조용해졌다. 견디기 힘든 침묵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견디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이 시끄러운 침묵 속에서 나는 옹졸한 생각 밖에 하지 못한다. 월평역까지 다다르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원하고 있었고, 그냥 내려달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힘겹게 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불편함을 제공하는 택시기사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의도하신 것은 아니었겠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었을 때 돌을 던진 사람에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개구리가 돌을 탓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을 원망할 권리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되는 지점에서 그냥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택시기사님도 아무 말 없이 내려주었다. 4200원입니다. 짤그락 거리는 잔돈을 손에 받고 문을 닫았다. 바람이 파고든다.
사실 나는 더 이상 어른들의 걱정에 아무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분명 나의 꿈과 비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나는 대학원에 합격하지 못했
기 때문이다. 기억해내면 기분이 좋아질리 없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니 속이 쓰렸다.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이내 멈춘다. 나는 생각조차 고요해진다. 이제 보란 듯이 내 말이 맞았다면서 취업준비를 이야기할 친척 어른들의 얼굴이 스믈스믈 기어오른다. 생각 너머의 폭력은 스스로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생각은 끊긴다. 그들은 그것이 한국인의 정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나의 부모님은 그것에 동의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나의 의사는 없었다. 물론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걸으면서 꺼놓았던 핸드폰의 음악을 켜고자 이어폰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허전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천천히 걷는다. 그 와중에도 이어폰을 찾을 수는 없었다. 착각이겠지 싶어 있을 법한 주머니를 모두 뒤졌지만 이어폰은 잡히지 않았다. 당황은 담담하게 찾아왔다. 택시 안에 두고 내렸음이 분명했다. 월평역 계단 중간에서 나는 걸음을 멈춘다. 당황은 그제야 온전히 나의 감정이 되었다. 탔던 택시의 번호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더불어 분명 내가 탔던 것은 회사 택시도 아닌 개인 택시였다. 유실물을 되찾을 방법은 거의 없었다. 단념과 동시에 발걸음은 다시 아래로 향한다. 아래로 향한다. 귀가 허전했지만, 도리는 없었고, 귀에 들리지 않는 음악을 머릿속으로 대신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느낌을 반복한다. 하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멜로디는 몇 개 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멜로디의 일정 부분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곡의 전체 멜로디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분명 음악을 좋아하고 하루 종일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주 들었던
멜로디는 이어지지
않았다. 글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나의 병과 같아보였다. 동일 증상일까, 아니면 단순한 신경과민일까. 어느 쪽을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어느 쪽이든 의미는 없었기에.
기계 매표소에서 표를 간단히 얻는다. 동그란 플라스틱 표가 가벼운 소리와 함께 떨어지고, 나는 그것을 들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퇴근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결코 많은 편이 아니었고, 밝지 않은 내부 조명은 그런 분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었다. 별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다행히도 지하철은 별로 기다릴 틈도 없이 도착했고, 지하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철컹거리는 철의 음성이 귀를 뒤덮는다. 나의 귀는 언제나 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그건 언제나 이어폰을 통한 음악이었다. 어색하다면 어색했다. 사람들은 한결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한 손과 눈으로는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어깨는 좁아 보이고, 고개는 푹 숙인채로, 사람들은 그렇게 있었다. 만약 몇 백 년 뒤에도 휴대전화가 필수품이라면, 인간은 어깨가 좁아지고 거북이목을 가지게 되는 기괴한 진화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쓸데없는 망상 이후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었던 것 같다. 20분이나 걸리는 오룡역은 체감하는 것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천천히 걷는다. 6시 55분. 오룡역에서 서대전역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뜬금없이
제 현실을 대비해서 써봤네요.
...이걸 왜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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