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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두려워할 대상은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홍수나 화재 또는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업신여기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는데 어째서 그러한가?
이미 이루어진 것을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고, 늘 보아 오던 것에 익숙하여 그냥 순순하게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항민(恒民)이다. 이러한 항민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모질게 착취당하여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집안의 수입과 땅에서 산출되는 것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이바지하느라, 혀를 차고 탄식하면서 윗사람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원민(怨民)이다. 이러한 원민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세상을 흘겨보다가 혹시 그 때에 어떤 큰일이라도 일어나면 자기의 소원을 실행해 보려는 사람들은 호민(豪民)이다. 이 호민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다. 호민이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편을 이용할 만한때를 노리다가 팔을 떨치며 밭두렁 위에서 한번 소리를 지르게 되면, 원민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서도 소리를 지르고, 항민도 또한 제 살 길을 찾느라 호미, 고무레, 창, 창자루를 가지고 쫓아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과 오광 때문이었고,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황건적 때문이었다. 당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와 황소가 그 틈을 타고 일어났는데, 마침내 백성과 나라를 망하게 한 뒤에야 그쳤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백성들에게 모질게 굴면서 저만 잘 살려고 한 죄의 대가이며, 호민들이 그러한 틈을 잘 이용한 것이다.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였지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서 계곡같이 커다란 욕심을 부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진나라, 한나라 이후의 화란은 당연한 결과였지,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중국과는 다르다. 땅이 비좁고 험하여 사람도 적고, 백성 또한 나약하고 게으르며 잘아서, 뛰어난 절개나 넓고 큰 기상이 없다. 그런 까닭에 평상시에 위대한 인물이나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나와서 세상에 쓰여지는 일도 없었지만, 난리를 당해도 또한 호민이나 사나운 병졸들이 반란을 일으켜 앞장서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던 적도 없었으니 그 또한 다행이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고려 때와는 같지 않다. 고려 때에는 백성들에게 조세를 부과함에 한계가 있었고,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에서 나오는 이익도 백성들과 함께 했었다. 장사할 사람에게 그 길을 열어 주고,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 또 수입을 잘 헤아려 지출을 하였기 여분의 저축이 있어 갑작스럽게 커다란 병화나 상사(喪事)가 있어도 조세를 추가로 징수하지는 않았다. 그러고도 그 말기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삼공할 정도였다.
우리 조정은 그렇지 아니하여 구구한 백성이면서도 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범절을 중국과 대등하게 하고 있었는데, 백성들이 내는 조세가 다섯 푼이라면 조정에 돌아오는 이익은 겨우 몇 푼이고 그 나머지는 간사한 자들에게 어지럽게 흩어져 버린다. 또 관청에서는 여분의 저축이 없어 일만 있으면 한 해에도 두 번씩이나 조세를 부과하는데, 지방의 수령들은 그것을 빙자하여 칼질하듯 가혹하게 거두어들이는 것 또한 끝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백성들의 시름과 원망은 고려 말보다 더 심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윗사람들이 태평스레 두려워할 줄 모르고, 우리 나라에는 호민이 없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견훤이나 궁예 같은 자가 나와서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근심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가서 따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증하겠는가? 기주·양주에서와 같은 천지를 뒤엎는 변란은 발을 구부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만한 형세를 명확하게 알아서 시위와 바퀴를 고친다면, 오히려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400년 전 허균의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는? 저 역시 원민(怨民)에 지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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