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롤 압뷁-----
11. 20 07:00 위장진지
이 한욱 소좌는 적의 포탄세례에 귀가 멍해졌다. 야산의 능선 3 km에
걸친 위장진지 곳곳에 적의 파멸적인 포격이 가해진 것이다. 특히 전선
후방 멀리로부터 날아오는 중국 정밀기계수출입공사의 305밀리 M-1B와
WS-1 다연장로켓탄의 위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어서, 긴 방어선에 분산배
치되어 있는 인민군들이 저항한번 제대로 못한 채 쓰러져갔다.배치받은
구형 T-62 전차 9대 중에서 겨우 4대만 남았다.나머지 장갑차들은 엄폐
호에 숨어 있었다.장갑집단군 소속 중국군 포병연대의 83형 152밀리 자
주곡사포도 이 파티에 참가했다.
이 소좌가 대대용 무전기를 쳐다 보았다. 적의 포격이 시작되자 마자
전화선이 끊겼기때문에 무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본 진지의 위치가 탄
로날까봐 대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자신의 중대를 위장진지에 미
끼로 배치하고 수신만 하는 대대장이 혐오스러져서 무전기에 대고 감자
바위를 먹였다.거짓 후퇴를 하여 적의 본대를 유인, 포위섬멸한다는 고
전적인 작전은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미끼가 되는 부대장의 심정은 죽
을 맛이었다. 그리고 적이 유인된다는 보장도 없으며, 포위해도 섬멸된
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 소좌가 보기에도 적은 너무 많았다.
중국군이 전방 2 km까지 접근해오자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
다. 인민군이 발사한 대전차 HEAT탄(성형작약탄)은 전차 포탑의 반응장
갑에 명중하자마자 반응장갑이 터지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인민군의
구식 T-62전차가 발사한 철갑(APFSDS)탄도 중국 전차의 장갑을 뚫지 못
하고 튕겨져나갔다. 피탄경시를 중요시한 달걀 형태의 러시아제 전차가
그렇듯이 전차포와 대전차포는 정면에 정확히 명중하지 않으면 중국 장
갑집단군이 자랑하는 T-90전차의 장갑을 뚫기 어려웠다. 게다가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반응장갑 때문에 대전차미사일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 소좌
가 소이탄 발사를 명령했다.각 장갑차의 12.7밀리 기총과 구경이 더 작
은 기관총에서 발사되는 소이탄이 대낮의 하늘을 더욱 밝게 밝혔다. 중
국 전차에 소이탄이 맞자 전차 앞부분의 반응장갑이 터져나갔다.소이탄
은 8000도의 고열로 전차의 장갑을 뚫는 성형작약탄에는 훨씬 못미치만
상당한 정도의 고열을 내어 능동반응장갑의 폭발을 유도해냈다. T-90의
적외선 재머도 이들의 뺄 수 없는 공격목표였다. 각 전차의 레이저경보
장치도 철저히 부쉈다. 저격여단답게 보병들의 사격은 정확했다.
어느 정도 사격한 후 전차와 장갑차를 서서히 후퇴 시켰다. 후퇴하는
인민군을 본 중국군의 전진속도가 빨라졌다. 이를 본 이 소좌가 보병들
전원을 장갑차와 보병전투차에 탑승시키고 재빨리 후퇴해갔다.
중국군의 전차부대는 단숨에 인민군 위장진지를 짓밟고 넘어 넓은 들
로 나왔다. 그동안 산간지역의 좁은 도로만 달려서 스트레스가 쌓인듯
중국군 전차들은 최고속도로 벌판을 질주해갔다. 후퇴하는 인민군 보병
전투차들에 포화를 퍼부으면서, 이제 중국 장갑집단군은 전차부대의 최
대 강점인 기동전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전차사단 뒤로는 기계화사단
들이 따르고 있었다. 인민군은 후퇴하면서도 중국 전차들의 능동반응장
갑과 조준기 등을 악착같이 파괴하고 있었다.
1999. 11. 20 07:15 대전차대대 주진지
드넓은 평야에 수백대의 전차와 그보다 많은 수의 장갑차들이 질주하
는 모습은 대전차진지의 인민군들 눈에도 장관이었다. 대전차 진지에서
는 이들의 술래잡기가 옆쪽으로 보였다.중국군의 전차들은 전차포로 인
민군을 쏘기보다는 위협해서 세우려는 기세였다.아니면 인민군의 주 진
지까지 인민군을 총발받이로 몰아 공격하려는 의도인지도 몰랐다. 진지
에서 망원경으로 이들의 경주를 지켜보던 배 중좌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국군 12사단의 김 중령에게 눈짓을 보내자 김중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몇 대 남지도 않은 인민군의 T-62전차들이 제 2진지에 도착하
여 엄폐호에 숨고 115밀리 활강포로 사격을 시작하자 미리 그곳에 대기
하고 있던 또다른 중대가 사격을 시작했다. 배 중좌가 치켜들었던 손을
아래로 힘껏 내렸다.
"1번 눌러!"
배 중좌의 일성이 터져나왔다. 대대장 옆에 대기한 폭파조가 1번 스
위치를 누르자 벌판을 달리던 중국군 전차 수 십 대가 갑자기 땅속으로
꺼져들어갔다.
1번 스위치는 어제 들판 수 십 군데에 중장비를 동원하여 넓고 깊게
땅을 파고 위장해서 만든, 대전차호의 위를 덮은 강철판의 지지대를 붕
괴시키는 기폭장치였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래가 텅빈 강철판을 통과
할 때 적 전차에서 느끼는 소리와 진동을 같게 하는 것이었는데 공병대
는 1미터 두께의 흙을 철판 위에 쌓아 부족하나마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작업을 마치자 배 중좌는 12사단 공병대와 교도대원들에게 후퇴를 종용
해서 지금은 김 중령과 폭파조만 남아 있었다.
수십대의 전차가 땅속으로 사라지자 뒤따르던 전차들과 보병전투차들
이 놀라 급정거를 했다. 급정거를 했으나 미쳐 서지 못한 전차와 보병
전투차 몇 대도 관성의 힘에 의해 빨려들어가듯 대전차호에 빠져들어갔
다. 땅속으로 꺼져들어간 전차들은 5미터나 되는 깊은 함정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2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생존하는 전차는 20세
기 말이 되도록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전차 승무원들이 파괴된 전차
의 유독성 가스를 피해 기어나왔으나 함정을 기어나오자마자 후퇴한 인
민군들이 발사한 기관총 세례에 몰살당했다.
"포격 개시! 발사! 2번 눌러!"
중국군 전차부대가 정지한 것을 확인한 배 중좌의 명령이 연이어 터
져나왔다. 먼저 한국군으로부터 인도받은 K-200 보병전투차의 파생형인
박격포차에서 원격레이더로 자동조준되는 107밀리 중박격포를 수 십 발
연속 발사했다. 전차들은 박격포 포탄을 무시했지만, 이 포탄은 의외로
대전차용 성형작약탄이었다. 중국 전차의 포탑이나 차체 위에 명중하자
고온의 액체화한 금속이 전차 윗부분의 얇은 장갑을 뚫고 들어가 순식
간에 전차 내부를 불태웠다. 레이더로 조준되는 박격포탄은 이것이 과
연 미사일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정확하게 중국 전차들을 노렸다.
후방에서는 포병중대가 MLRS와 한국군 155밀리 M109A2 자주포를 통해
SADARM(Sense and Destroy Armor)을 발사했다.발사 후 이중모드로 밀리
미터파나 적외선 탐지기로 표적을 탐지하고 표적 상부에 명중하는 무게
11.7kg의 SADRAM은 155밀리 포탄에 2발, MLRS로켓탄에 6발씩 운반되어
중국군 전차 상공에서 분리되어 전차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대전차대
대를 지원하기 위해 임시로 배속된 다른 포병중대는 북한 고유의 자주
포인 170밀리 곡산형 자주포로 중국 기계화사단의 보병전투차들을 노렸
다.
K-200의 또다른 파생형인 20 밀리 대공 발칸포차가 전차들을 향해 불
을 뿜었고, 구식 러시아제 BRDM에서는 새거(Sagger) 대전차 미사일이나
신형인 AT-7 SAXHORN 대전차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다.능동장갑이 없
고 장갑이 얇은 전차의 옆 부분이나, 있더라도 이미 후퇴하던 이 소좌
중대의 소이기관총탄 사격에 능동장갑이 파괴된 전차들은 미사일의 관
통을 막지 못했다.
3대의 독일제 전차파괴차 판저예거(Panzer jager, KW)는 깊숙한 참호
속에 숨어 20미터 길이의 미사일플랫폼만 내놓고 연속사격을 하는 모습
이 공사장의 굴삭기를 연상케했다. 또한 21세기형 전차라고 불리는 미
국 TCM사의 무포탑전차는 포신만 위로 내밀고 피탄면적을 최소로 한 채
105밀리 자동장전 속사포로 중국군 전차를 연속 파괴했다.이 전차는 연
전에 한국지형 테스트용으로 미국에서 왔다가 사격통제장치의 불량문제
로 개발 자체가 연기되었는데 이를 한국정부가 싸게 사 들인 것이었다.
개발당시에 이 전차는 대용연구차량(SRV)라고 불린 적이 있었다.
각종 장갑차량과 사륜구동차에서는 밀란과 드래곤 미사일을 발사했으
며 보병들도 대전차무기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보병들은 휴대형인 90밀
리 무반동총과 3.5인치 대전차 로켓포, LAW, 심지어 유효 사거리가 115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M-31 대전차 고폭총류탄까지 총동원하여 전차
와 장갑차량들을 공격했다.
특히 대공발칸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대공포는 특성상 초구속도가 높
아 전차 파괴에도 큰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전선
과 아프리카 전선에서 대공포들이 대전차포로 자주 활용된 사실로써도
그 효용을 알 수 있다. 발칸포의 대전차공격은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이 즐겨 썼던 수법이다.
보병과 동시에 주진지 뒤쪽에서 무장헬기 4대가 떠올라 미사일을 발
사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MD500D의 대전차 개량형인 이 헬기들은 미사
일 발사 즉시 언덕 뒤에 숨어, 로터 아래 마스트에 장착한 조준장치로
미사일을 유도했다. 80년대 말에 북한이 밀수입한 이 미국제 헬기는 절
반이 대전차용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미사일 4발을 쏜 후에는 즉시
진지 뒤에 착륙해서 미사일을 재보급받고 다시 이륙했다.
중국군 전차부대의 전진을 막는 강력한 저항에 놀란 중국군 전차들이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의 언덕 위에 보이는 것
이라고는 판저예거의 미사일플랫폼과 무포탑전차에 탑재된 작은 면적의
전차포뿐이었다. 보병들은 모두 잠망경을 통해 미사일을 유도하거나 사
격 즉시 몸을 숨겼고, 대공발칸포는 3중의 견고한 콘크리트 토치카에서
사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토치카는 지연신관을 가진 미사일만이 파
괴할 수 있었다.
중국 전차들이 일제히 언덕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으나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니 또 어떠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
라 선뜻 인민군들이 숨어 있는 언덕으로 전진하지도 못했다. 계속 숨어
서 쏘는 인민군들의 미사일에 못견디게 된 중국군이 후퇴를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야 중국군 포병
들의 포격이 시작되었으나 횡으로 전개한 포병의 위치에서 볼 때는 종
적으로 길게 연결된 인민군 진지에 대한 포격은 별 의미가 없었다. 단
지 본대의 후퇴를 위한 엄호사격에 불과했다. 후퇴하는 전차들이 속도
를 높였고 이들을 각종 포화와 미사일이 따랐다.또 다시 땅이 무너지고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빠졌으나 이들은 미사일이 더 무서웠다.
그러나 후퇴하는 전차들을 기다리는 것은 대전차 지뢰였다. 전진해올
때는 작동하지 않게 인민군들이 기폭장치를 해제했다가 스위치를 누르
자 기폭장치가 작동하여 대전차지뢰의 효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또 다
시 많은 수의 중국 전차와 보병전투차들이 파괴되었다.
후퇴하면 지뢰탐지기에 드러나지 않는 플라스틱 대전차지뢰, 가만히
정지해있자니 각종 포화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었고 전진하다가는 또 어
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꼼짝 못하게 된 중국군 지휘부는 헬
기부대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중국 장갑집단군 사령은 헬기가 올 때까
지의 짧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전차가
SADARM의 우박을 맞고 폭발했다. 레이저경보장치는 사령의 전차가 미사
일에 포착되었다는 경고를 발했다. 집단군 사령은 급해졌다.자존심까지
내팽개친 구원요청 독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령은 지상에서의 마지
막 비명을 질렀다.
"소수이지만 강력한 적의 저항이다. 제발 빨리 와!"
제 13 장갑집단군의 사령인 창 밍윈 소장은 중국내전때 남경군 고 중
장의 휘하에서 장갑사단장을 했던 인물이었다.북경을 공략할 때는 좌익
을 맡아 북경군구의 방어진을 돌파하여 가장 먼저 북경 외곽에 도착하
는 명예를 안았는데, 이로 인해 그는 대망의 별을 달게 되었다. 조선정
벌은 그에게 있어서 또다른 기회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줄은 상상
도 못했다.
전차에 충격이 가해졌다. 포탑 오른쪽에 동전만한 작은 구멍이 생기
더니 그곳에서 열파가 쏟아져 들어와 포탑 안을 휘감았다.창 소장의 뇌
리에 가족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막내딸이 떠올랐다. 사기꾼같은 미
국놈 마이클. 백인과 결혼한 유색인종 신부의 비참함을 자주 들어서 말
렸으나 막내는 막무가내였다. 딸과의 전화연락이 끊긴지 1년이 넘었다.
제발 행복하기를...
3분이 안되어 약 30대의 러시아제 Mi-24 하인드 공격헬기가 대기하고
있던 산 뒤로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대전차 대대에 배
속된 인민군 고사포 소대에서 SA-16 GIMLET 휴대형 대공미사일을 발사
하여 10여대를 격추시키자 중국군 헬기들은 겁을 먹고 즉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가버렸다.공격헬기들을 뒤따라온 중국군 공중기동여단은 강력한
대공부대의 존재를 연락받고 공격헬기들을 뒤따라 도망갔다. 공격헬기
가 당하는 판에 자체 장갑이 빈약한 수송헬기들의 공격은 의미가 없었
다. 공격헬기들의 활약을 잔뜩 기대하던 중국 전차탑승원들이 망연자실
했다.
전진할 수도, 후퇴하기도 어려워 망설이던 장갑사단장은 가만히 있자
니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하여 지뢰에 의한 피해를 감수하고 후퇴를 명
령했다. 짧은 시간에 150여 대의 전차와 더 많은 수의 보병전투차를 잃
은 중국 장갑집단군은 조금 전에 점령했던 인민군의 위장진지 뒤로 후
퇴했다. 후퇴하면서도 인민군의 미사일공격과 지뢰에 의한 피해는 늘어
갔다. 지뢰에 의해 전차궤도가 절단되어 꼼짝할 수 없게된 전차의 승무
원들이 전차를 뛰쳐 나왔지만, 이들이 다른 전차에 올라타기도 전에 인
민군의 기관포가 작렬하여 이들을 휩쓸었다.
제 2진지에서는 이 한욱 소좌가 중국군의 포화에 의해 잃은 왼쪽팔을
오른손으로 들고 계속 사격하라고 외쳤다.피투성이가 된 중대장은 방어
진 위에 우뚝 서서 그 팔을 지휘봉처럼 흔들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의
무병이 그를 참호로 끌어들이는 순간 근처에서 20여발의 로켓탄이 작렬
했다. 잠시후 먼지와 연기가 걷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1999. 11. 20 07:25 위장진지
직격포화를 피해 숨어들어간 인민군의 위장진지, 그곳에는 계속 전진
해온 보급부대와 기계화부대의 후속부대, 그리고 후퇴해온 전차와 보병
전투차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이 언덕 그늘을 벗어나는 즉시 인민군의
미사일이 날아오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가장 바깥쪽의 전차
또 한 대가 인민군의 헬기에서 발사된 대전차미사일에 파괴되었다. 이
모습을 본 바깥쪽 전차들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단장이 이를 부
득부득 갈면서 설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장진지는 또다른 재앙의 서곡이었다. 능선의 뒤쪽, 위장
진지에서 보면 전면, 2미터 깊이의 땅 속에 대형 유조탱크 3개와 LPG가
스 탱크 2개가 숨겨져 있었다. 지상에 위장되어 있는 수십개의 가스 노
즐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공기보다 1.5배 무거운 액화 프로판가스를 공
기중에 스프링쿨러처럼 빙빙 돌며 뿜어냈다. 다른 수 십 개의 파이프에
서 배관이 터지자 휘발유가 사방에 분수처럼 쏟아졌다.
이것을 본 중국군 전차 부대원들은 공포에 질려버렸다.사방 수백미터
에 걸친 휘발유와 가스의 벌판, 이곳이 자기들의 무덤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전차도 장갑차도 휘발유에 흥건히 젖었고 프로판가스 냄새가
천지에 진동했다.전차병들이 즉시 시동을 끄고 전차에서 내려 북쪽으로
줄달음질 쳤다.이들의 뒤를 보병전투차를 버린 기계화보병들이 따라 뛰
었다.
"발사!"
배 중좌의 짤막한 명령에 자주 박격포차에서 단 한발의 중박격포탄을
발사했다. 국군 12사단의 공병감 김 중령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어제
하루종일 중장비를 동원하여 유조탱크와 LPG탱크를 매설하고 대전차 참
호를 파느라고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쓸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죽어간
전우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러나 오늘 죽을 중국군들이 불쌍해서 견
딜 수 없었다.
중국 전투기 편대의 짧은 교대시간을 이용해 대전차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공군의 부 영철 소령은 자신의 애기인 A-10 썬더볼트II 공격
기를 몰아 급히 전장 상공에 도착했다. 부 소령은 지상을 보곤 깜짝 놀
랐다. 컴퓨터에 입력된 지도상에 있는 벌판에는 수백대의 중국군 전차
와 장갑차들이 파괴된채 불타고 있었고, 그너머 능선 북쪽에는 지금 아
수라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벌판에서 파괴된 숫자보다 더 많은 중국군 전차와 장갑차들이 뒤집힌
채 화염에 휩싸여 차례로 폭발하고 있었다. 불타는 보병전투차와 사륜
구동차에서 뛰쳐나온 중국군들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땅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불길이 한순간에 사람을 재로 바
꾸어 놓았다. 부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렇게
처참한 전장은 그로서도 처음 보았다. 수많은 전사를 읽고 전쟁영화를
보았으나 이런 장면은 상상도 못했었다.
"3시방향에 적 차량부대!"
부기장의 외침에 문득 정신을 차려 기수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뒤따
라 오던 2대의 공격기와, 호위 겸 지원공격을 위해 동행한 F-4E 팬텀 4
기도 같은 방향으로 선회했다. 눈앞에서 부대가 전멸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대기하고 있던 중국군 포병연대와 후속 보급부대는 하늘로부터
또다른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공격기들이 30밀리 어벤저를 쏘며 집속폭탄을 투하했다. 다양한 구경
의 장갑자주포와 단거리용인 83형 122밀리 40연장로켓포를 탑재한 트럭
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대공자주포가 이제야 하늘을 향해 불
을 뿜어댔으나 1초도 쏘기 전에 팬텀기에 당했다. 자주포가 필사적으로
언덕 너머로 도망가려했으나 A-10의 어벤저포에 10여 발을 관통당하자
불을 뿜으며 폭발했다.팬텀의 집속폭탄은 수많은 자폭탄으로 나뉘어 수
송트럭 대열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연속 폭발했다. 공격기들이 서너 차
례 공격과 선회를 반복하자 지상에는 더 이상 움직이는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중국군의 제 13 합성장갑집단군은 궤멸당했다.
11. 20 07:50 개성, 통일참모본부
"급전입니다. 대전차대대가 적의 장갑집단군을 전멸시켰습니다!"
젊은 통신장교가 통일참모본부 종합상황실로 급히 뛰어들어와 보고하
자 상황판을 보며 분주하게 토의하고 하급부대에 명령을 내리던 참모들
의 입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어렵게 유지하던 방어선이 장갑집단군에
뚫려 전군 후퇴라는 뼈아픈 작업을 수행 중이었는데,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한 시간 전 서해에서 중국 상륙함대를 전멸시켰다는 소식을 듣
고 들떠있던 참모들에게는 경사가 겹친 듯한 기쁜 표정들이었다. 이제
반격하여 적을 몰아내고 잃었던 땅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이들의
눈빛에 나타났다.
"좀 더 자세히, 어떻게 겨우 1개대대가 집단군을 섬멸했나?"
오랜만의 쾌거에 국군의 양 석민 중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통신장교
를 채근했다.이 종식 차수는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그럴줄 알았다는 표
정을 짓고 있었다.아니, 그로서도 기대 이상의 전과였다. 대규모 적 기
갑부대에 대한 방어전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저격여단 대전차대대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긴 했지만 믿기지 않았다.
국군 출신 참모들은 기쁘지만 믿기 어렵다는 표정들을, 인민군 장성
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랑스럽게 그동안 축 쳐졌던 어깨를 활짝 폈다.모
두들 통신장교가 전통문을 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전차호, 각종 대전차미사일, 대전차 지뢰, 그리고 특이하게도...,
초대형 지하유류탱크와 LPG 가스탱크를 이용했습니다. 아군 지상공격기
에서 촬영한 화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대전차대대의 보고는 암호문으로
적 격퇴, 부대 위치를 전진시킨다, 보급요망,이라는 짤막한 것뿐이었습
니다. 전과보고는 공격기들의 촬영에 의한 것입니다."
통신장교는 국군과 인민군의 묘한 경쟁관계를 의식하여 인민군 대전
차대대의 보고가 국군의 확인에 의한 객관적인 전과라는 것을 확인시키
며 영상장치를 작동시켰다.
화면에는 벌판에서 파괴된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들, 대전차호에 빠져
연기가 새나오는 전차들,그리고 인민군 위장진지의 북쪽에서 불타고 있
는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잠시 후 화면이 급히 오른쪽으로 돌
아가더니 중국군의 포병연대를 비추고, 공격기들이 무차별 공격하는 장
면이 보였다. 잠시 후에는 중국군 포병대가 있던 곳이 파괴된 차량들의
잔해로 바뀌었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위장진지 전면에 아직도 불에 타
고 있는 전차와 장갑차들, 그리고 그 너머 벌판에 파괴된 전차들을 비
추었다. 그리고 북쪽의 산에는 추락하여 불에 타고 있는 중국군의 공격
헬기 잔해들이 보였다.
"공격기의 부 영철 소령이 촬영한 자료를 컴퓨터로 검색해보니, 이번
전투의 전과는 적 전차 파괴 273대, 장갑차와 보병전투차 526대,그리고
자주포와 트럭 등이 310대입니다만, 촬영되지 않은 전과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그들의 전과는 중국군 최정예 장갑집단군인 신예 T-90
전차부대를 상대로 올렸다는 것입니다."
통신장교가 해설까지 해가며 컴퓨터용지에 쓰인 내용을 읽었다.
"엄청나군요. 전쟁 시작 이래 지상전에서의 최대의 전과입니다. 저격
여단 대전차대대라... 우리쪽도 그런 부대를 만들고 싶군요. 물론 야간
전대대와 같은 저격여단의 다른 부대도 말입니다."
양 중장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인민군 장성들의 어깨가 한껏 치켜
올려졌다. 숫적으로 우세한 중국군 장갑집단군에 공격기와 기갑사단으
로 맞서기를 주장하던 국군 참모들은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진작에 인
민군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리 대전차대대를 투입했더라면 전황
이 이렇게 파국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투기들을 빼내 상공을 엄호해준 공군의 이 호
석 중장께 감사하오.그리고 포병사령관 김 은수 소장은 정말 노고가 많
았소. 그리고 안주방어선에서 패배한 부대의 명예는 이번 12사단 공병
대의 활약으로 회복되었다고 봅니다."
이 차수는 국군의 지원부대들을 차례로 격려하였다. 이들의 지원 없
이는 대전차대대의 전과는 불가능했다는 평가를 이 차수가 함으로써 국
군 장성들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종식 차수가 근엄한 목소리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
을 이었다. "반격을 할 때요. 모든 작전은 반격을 염두에 두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하시오. 특히 강서군으로 향한 놈들은 전열이 정비되는 대로
곧 공격하시오. 그리고 함경도쪽의 후퇴는 보류하시오. 반격이요!"
"예! 차수님."
국군이건 인민군이건 가리지 않고 이 차수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았
다. 중국군의 최강 합성장갑집단군에 대해 단 1개 대대의 소규모이지만
전문화된 부대를 배치하고, 특히 후방에 대공 미사일부대와 공군 요격
기 부대를 집중배치해 압도적인 중국군의 항공우세에 대항해 일부지역
이지만 제한적인 항공우세를 달성하여 대전차 대대에 대한 공중엄호를
철저히하여 대부대가 밀집한 것으로 중국군 지휘부가 오판하게끔 한 이
차수의 전술에 무궁한 찬사를 마음속으로 보냈다. 이제 전술이 아닌 전
략차원에서도 이 차수의 능력이 발휘되길 바랐다.
-김경진 , 데프콘:한중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