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구제의 뜻부터 시작해볼까요. '보세'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구제'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구제의 정의를 말씀드린다면 다른 사람이 '버린' 옷을 헌옷수거함 같은 루트를 통해 습득해서 그 중 상품가치가 있는 걸 판매하는 형태를 구제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구제샵', '구제 옷가게' 등의 이름으로 옷을 팔고 있다면 이런 류의 옷을 판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구제는 중고와 다르고 빈티지와도 다릅니다. 구제샵에서 팔리는 헌 옷들은 보통 일본이나 미국에서 많이 들어오고 국내나 유럽에서 가져오는 것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끔 구제 옷을 사보면 속주머니에 죽은자의, 아니 옛 주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비타민이랑 일본인 이름표가 나온 적이 있었네요. 이런 게 꺼림칙하시다면 구제 옷 구입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구제 옷을 구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구입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저는 오프라인에서는 거의 안 사요. 서울에는 광장시장이나 황학동 시장 등이 구제 옷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광장시장 구제상가는 웬만한 내공이 아니면 탈탈 털려서 나오는 던전이고 좀 어리버리한 티 내면 호객행위, 바가지도 살짝.. 있죠. 동묘 앞 시장은 가판으로 파는 옷들이 엄청 싸긴 한데 가보면 살만한거는 전혀 없습니다. 할아버지들 즐겨 오시는 골동품 시장 분위기에요. 입어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온라인에 비해 크게 좋은 점도 모르겠고요.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습니다.
구제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그렇다고 또 엄청 저렴하지는 않습니다.)과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을 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요즘 나오는 스카쟌이나 그 전의 아노락, MA-1 등 한 아이템이 유행하면 여기저기서 아주 그것만 죽어라 찍어내는데 그런 게 질리신 분들이라면 50년대 60년대 유행하던 옷들도 살 수 있는 루트가 바로 구제샵입니다. 생각해보면 스카쟌, 아노락, MA-1 모두 지금의 유행과 상관 없이 구제샵에서는 꾸준히 팔리던 아이템들이기도 하죠. 구제로 산 옷이 나중에 유행을 타면 남들보다 먼저 입고다녔다는 자부심과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워크웨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웬만한 워크웨어 브랜드들의 비싼 가격 때문에 구제를 애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구제 사이트에서 옷을 살 때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팁이 되겠죠.
1. 흰 옷은 사지 않습니다.
흰 옷은 아무리 잘 입고 잘 관리해도 때가 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때면 그나마 괜찮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흔적이 묻은 옷을 사는 건 꺼림칙하겠죠.
2. 티셔츠는 사지 않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면티셔츠는 입으면 늘어나는 소모품입니다. 봄, 여름철에 이너로 입어서 땀을 흡수하는 옷이기도 하고요. 이런 옷을 구제로 사는 건 좀 .. 여러 모로 부적합하다 생각합니다.
3. 브랜드를 봅니다.
구제 사이트에 많이 올라오는 브랜드를 몇 개 알면 적절한 가격이 대강 보입니다. 새옷이면 큰 차이 없을지 몰라도 구제는 누가 입다 버린 옷이기 때문에 좋은 브랜드 옷이 아무래도 상태도 더 좋겟죠. 문제는 가품인데, 구제 사이트 들어가보면 가품을 팔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전 봐도 진품인지 가품인지 모르겠습니다. 믿고 사는 거죠.
4. 치수를 정확히 확인합니다.
구제 사이트에서 구매 계획이 있다면 좀 번거롭더라도 줄자를 가지고 현재 가지고 있는 옷의 사이즈를 측정한 후 사려는 옷의 사이즈와 비교하고 나서 구입합니다. 대부분의 구제 사이트는 모델이 없이 옷 사진만 있고, 사이즈 미스 때문에 반품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 대략적으로 S M L을 표기하기 보다는 정확한 숫자로 치수를 표기하기 때문에 치수 확인이 중요합니다.
5. 세일 기간을 이용합니다.
시즌 오프나 연말 세일을 이용하면 50%에서 70%가 넘는 엄청난 할인율로 판매되는 옷들을 살 수 있습니다. 대신 그때까지 기다리다보면 마음에 드는 옷을 살 확률은 좀 줄어들겠죠.
6. 충동구매하지 않습니다.
아직 구제의 매력에 빠지지 않은 분들에게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팁이겠지만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안 사면 언제라도 품절될 수 있고 품절되면 다시 구하기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엄청난 충동이 오거든요. 스스로 절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삽니다.
여기까지 간단한 팁들을 적어봤고요. 사이트도 몇 개 소개해드릴게요.
검색 사이트에 '구제'를 찾아보면 여러 사이트가 뜹니다. 네이버를 예로 들면 파워링크에 목록이 쭉 떠요. 여기서 다 들어가서 보셔도 되지만, 사이트 이름 옆에 몇 퍼센트 할인이라고 적어둔 사이트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이트 위주로 들어가서 살만한 게 있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트들 중 하나를 다시 검색하면 다시 파워링크로 또 다른 사이트들이 떠요. 시간만 많다면 이런 식으로 많은 사이트를 돌아볼 수 있고요.
문제는 이런 사이트들 돌아다니다 보면 퀄리티가.. 말만 옷이지 옷같은 걸레들을 파는 데가 좀 있어요.
이 외에도 제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사이트들입니다.
제가 여기에 소개하는 사이트들 중에서 가장 가격대가 높습니다. 생각보다 비싸지만 새제품을 생각하면 싸긴 하죠.
아직 구매한 적은 없지만 올라온 상품들을 볼 때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업데이트가 자주 되는 거 같지는 않은데 상품은 좋습니다.
솔직히 나만 알고 싶은 사이트 같은 거였는데 여기 쓸까 말까 하다가 씁니다. 사장님이 친절하시고 옷 셀렉하는 감도 좋으십니다. 가격도 괜찮고요.
스타일 별로, 브랜드 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세일할 때 사봤고 지금도 세일 중인데 무난하다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함정도 좀 있는데 잘 고르시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옷 살 수 있을 거에요.
웹사이트 디자인도 깔끔하지만 옷도 정말 구제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좋아요. 구제 쇼핑하려고 여기저기 중구난방인 구제 사이트들 보다가 여기 들어가면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랄까요. 사실 구제라기 보다는 중고 옷을 사는 느낌입니다. 가격은 약간 높습니다.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는 되는데 소량이라 괜찮은 건 품절이 빨리 됩니다.
다른 사이트들은 그냥 사진과 가격만 올라와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옷 설명이 정말 잘 되어있습니다. 다만 여기도 제가 보기에는 함정이 좀 있습니다.
아직 여기서 구매한 적은 없습니다. 근데 사진만 봐도 정말 깔끔하게 정리해서 판다는 느낌이 들어서 즐겨찾기 추가해놓고 항상 보고 있습니다. 여기도 업데이트가 잘 안 되네요.
제가 가장 최근에 구매한 사이트입니다. 지금 70% 할인판매중이라서 괜찮은 옷이 다 빠졌는데 할인 전 가격도 많이 높지 않고 옷도 좋아서 들어가볼만한 사이트입니다.
이 사이트들은 즐겨찾기 추가해놓고 그냥 심심하면 보고 있어요.
가격이 너무 비싼 사이트는 제외했고 정말 저만알고 싶은 사이트 두 개는 일부러 안 적었어요. 무한도전 데프콘 짤이 딱 제 마음입니다 ㅋㅋ 안 그래도 워낙 품절이 빨리 되는지라... 파워링크타고 직접 찾는 재미도 한번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