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불충분한 조치이니 한국 정부는 수입금지를 해제해야." (일본 대표단)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일본에 있으니 따지지 말고 좀 더 관리의무에 주의를 다해야." (중국 대표단)
일본이 한국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문제시할 것으로 주목됐던 세계무역기구(WTO) 산하 위원회에서 한·일 간 공방은 일단 한국의 판정승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 및 전문가들은 일본이 수산물 수입규제와 관련, 향후 공세 수위를 낮추고 사태를 관망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 1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산하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SPS)위원회에서 일본은 지난 9월 9일 한국 정부가 취한 후쿠시마현 등 8개 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금지조치(임시특별조치)를 거론하며 "수입금지의 전제조건으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고 명시한 WTO SPS협정 2조2항에 맞지 않은 조치로 수입금지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조치는 일본 측의 원전사고 관리 부족으로 인한 오염수 누출과 국민 건강과 식품안전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내린 것으로, 이는 WTO SPS협정 5조7항에 따라 취한 잠정조치"라고 반박했다.
SPS회의 성격 자체가 통상분야에 대한 기술적·전문적인 논의의 장이라곤 하지만 이날 회의는 수산물 수입금지조치로 수세에 몰린 일본과 안전성을 내세운 한국 간 WTO분쟁 전초전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일본은 수산물 수입금지조치를 내린 중국·러시아 등 총 43개국 중 한국만 집중 공격할 것으로 파악됐다.
양측은 수입금지의 근거로 각각 5조2항과 5조7항을 제시했다. 일본 측이 제시한 5조2항에선 수입금지조치를 내리려면 충분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한국이 제시한 5조7항에선 과학적 증거를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잠정적인 수입금지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WTO 판례를 보면 과학적 증거가 충분치 못한 사전적 예방조치에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문제가 국제 통상분야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만큼 우리로서도 충분히 방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렇게 양측 간 5조2항과 5조7항 간 공방이 오고가는 것을 보다 못한 중국이 공개적으로 한국을 거들어 힘을 실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한국보다 앞서 후쿠시마현 등 10개 현의 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
중국 대표단은 일본을 향해 "수산물 수입금지의 원인은 일본 측이 원자력발전소 관리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으니 이 조치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좀 더 철저히 관리해 달라"는 취지로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반적으로 일본으로선 문제는 제기했지만 중국까지 가세해 큰 소득 없이 물러난 것으로 파악된다. 이날 공방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도 잠잠한 상태다. 한 외교소식통은 "현재 분위기로선 일본이 WTO에 제소를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법률적으로 승소가 불확실한 데다 국제적으로 공론화할수록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우려만 짙어진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