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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동양사에 대해 무지한 서양 학자들이 고구려인과 일본인이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러한 주장들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526∼536년 무렵 중국 양나라를 방문한 외국 사신들을 그린 그림인 양직공도(梁職貢圖)에 그려진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왜국(일본) 사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왜국 사신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왼쪽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왜국 사신입니다.
고구려와 백제 사신은 옷차림이 대부분 비슷하여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사신의 경우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머리카락을 아래로 길게 느려뜨렸고 옷차림도 약간 다르기 때문에 두 나라와는 약간 다른 계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맨 오른쪽의 왜국 사신은 옷차림이 앞의 세 나라와 너무나 다릅니다.
입고 있는 옷차림도 옷이 아니라 거의 천을 몸에 걸친 모습입니다.
이런 풍습을 가리켜 고대 동양사에서는 관두의(貫頭衣)라고 부르는데, 옷에 바느질을 하지 않고 몸에 걸쳐 대충 묶는 방식으로 고대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 지역의 옷차림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대 일본은 동남아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입니다. 이는 고대 일본의 선주민이 동남아에서 배를 타고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진은 서기 4~6세기에 만들어진 고대 일본의 토기로, 역시 저 위 양직공도에 그려진 왜국 사신처럼 관두의의 차림을 하고 있는 무사의 모습입니다.
아울러 위의 토기는 일본에서 발견된 유물인데, 서기 4~6세기에 만들어진 토기들로 고대 일본 열도의 집을 나타낸 것입니다.
저렇게 높은 층이 달린 집은 원래 동남아에서 지어진 것들인데, 동남아의 덥고 습기가 많고 벌레들이 들끓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즉, 일본인의 뿌리는 동남아 계열의 해양민족이라고 봐야 옳습니다.
만약 일본인 즉 왜인이 고구려인과 같은 민족이라면 최소한 백제 사신 정도로 옷차림이 고구려 사신과 비슷해야 하는데, 위의 양직공도에 그려진 왜국 사신의 옷차림은 고구려 사신과 달라도 너무나 다르죠.
그렇다면 간혹 제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서양 학자들이 고구려어와 고대 일본어가 같다고 주장하는 배경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것은 서기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일본으로 달아난 고구려 유민들이 일본인들과 뒤섞여 살면서 일본어에 고구려어의 어휘가 몇 개 들어갔다고 해석해야 옳을 것입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timur122556/4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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