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많은것을 남겨 두고 몸하나 이끌고 군에 입대했다.
입대후 일주일동안은 가입교 기간이다.
갖가지 행정처리를 하고 체력검사, 신체검사를 한후 금요일에 탈락자를,
혹은 집에가고 싶어하는자를 집으로 돌려 보낸다.
임시로 쓸 내무실에 나를 포함한 약 25명정도가 앉아있다.
머릿속 뒤편에서 느끼지 못했던 옛 추억들, 친구들, 가족들 생각이 가슴속에서 마구 넘친다.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온몸을 휘돈다. 눈물이 나오려고한다.
하루..이틀...머릿속에 혜영이라는 사람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나를 느낄수 있었다.
입대전에 혜영이에 대한 마음이 지금은 걷잡을수 없이 커져 버렸다.
너무 아쉽다..너무 그립다..보고싶다..너무 좋다..
무너져 버릴듯한 가슴을 혜영이라는 이름으로수천번 수만번 되새겨 가슴을 채운다.
아......혜영이 생각이 이렇게 간절할줄 몰랐다.
금요일이면 집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당장 달려나가서 혜영이한테 전화하고 싶다.
혜영이 생각을 할때마다 나가고 싶은 욕망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또 쌓인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한심한 놈이 되기는 싫었다.
금요일.
100여명 이상의 동기들이 집에 돌아갔다. 이젠 돌이킬수 없다.
이 천년의 세월에 첫발을 디뎠다.
혜영이를 보고싶은 마음,앞으로 생활의 두려움...막연하게 가슴에서 느껴진다.
토요일..
새내무실.. 처음보는 동기들.. 짐을 챙기느라 모두들 분주하지만 어색함속에
분위기는 적막하기만하다.
적막한분위기 속에 모두들 생각에 잠긴것 같다.
나는 혜영이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이상하다..
이틀동안의 대기기간중 48시간을 혜영이 생각으로 메웠다. 내가 언제까지 이럴까....
괴롭다..이런기분은 처음이다.너무많이 생각해서 머리가 멍해지고 진절머리가 난다.
더이상 생각하기가 싫지만 계속 머리속에 떠오른다..이런 내마음을 혜영이는 알까....
아..보고싶다..괴롭다...괴롭다....
월요일..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은 특별내무실교육 기간이다.
'동기부여'라는 이름으로 온몸을 혹독하게 한다.
'뜀뛰기' '팔굽혀펴기' '투명의자' 등등....힘들다..힘들다..쓰러지고 싶다..
'동기부여'를 받는동안, 나스스로 '의지'라는 이름으로 '포기'라는 단어가 뇌리에 전달되는 것을 막는다.
이과정을 반복하는동안 혜영이 생각을 잊을수 있었다.
차라리 육체가 힘들고 혜영이를 잠시나마 잊을수 있는게 낫다.
오히려 동기부여를 받는것이 나에겐 좋았다.
더이상 혜영이를 생각하는건 괴롭다...
편지가 왔다. 내가 혜영이를 생각하는 만큼 혜영이는 나를 몰라준다.
답장을 썼다. 내마음을 담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진정 내마음을 모두 표현 하지 못한거 같다.
후회된다. 완전히 내마음을 전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마음을 담지 않을걸 그랬다.
휴...보고싶다..
구보를 했다.
힘들었다. 구보를 마치고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봤다.
진주하늘은 정말 아름답다. 가슴이 벅차다..
아무생각이 나질 않고 그저 멍하지만....도저히 알 수 없는 눈물이 맺힌다.
힘든 훈련속에 또 편지가 왔다. 음...내용이 좀 이상하다.
아니.....아니다! 내가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냉정함을 찾으려고 편지를 읽고 또읽었다. 계속 읽었다.
아무리 냉정함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나의 욕심은 어쩔수 없었다.
기분이 안좋다. 슬픔, 실망....
다음날 새벽..안개자욱한 회색빛 하늘을 뚫고 동쪽 산뒤로 오렌지색 태양이 일출한다.
태양이 힘들어보인다. 안개가 너무 짙다. 광경이 너무 슬프게 보인다..
동병상련....
답장을 썼다.
냉정해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또 후회 된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내가 아직 너무 어리다는 것을 느꼈다.
혜영이 마음을 좀더 편하게 해줄걸 그랬다. 너무미안하다.
혜영이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이 생활이 벌써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아...보고싶다.
혜영이랑 많은 추억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알게된지 오래 된것도 아닌데..
혜영이가 왜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나자신을 이해 할 수 없다.
그냥 너무 좋다.
힘든 훈련소 생활을 마쳤다.
그동안 정들었던 동기들과 헤어져야 한다.
정말 슬프다. 정말 좋은 기억들로 남을것 같다. 정말 좋은 친구들이었다.
새벽에 각자 자기들이 받은 특기에 따라서 모두 흩어졌다.
이날 새벽 하늘은 지금까지 어디서든 보지 못한 대단한 장관이었다.
모두가 하늘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동쪽에 해가 뜨면서 서쪽에 있는 엄청 커다란 구름덩어리를 비추며 구름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그커다란 구름덩어리 밑에는 은빛깔의 넓은 구름들이 아주 멋지게 받치고 있었다.
도저히 구름의 색깔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 그림같은 화폭의 배경은 솜털처럼 야들한 구름들이 군데 군데 예쁘게 장식하고 있었다.
동기들과의 마지막을 멋있게 배려해주려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헌병특기를 받은 나는 헌병교육대에 왔다.
혜영이한테 당장 편지를 썼다. 한시라도 빨리 쓰고 싶었다.
혜영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최대한 편하게 대하면서 좋은 말들을 써주었다.
혜영이가 편지를 보고 마음이 포근해 질수 있는 그런 글을 썼다.
스스로 조금은 만족한다.
답장을 기다리며 잠못 이루는 나의 밤은 또 길어진다.
식당앞 대기소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250여명이 열중쉬어 자세에서 대기하고 있다.
식당안에서 김범수의 '보고싶다'노래가 흘러 나온다...
군대 오기전에 혜영이랑 채팅하면서, 전화하면서 듣던노래...
가슴이 메어진다..아..옛날 생각...
그립다..벅차다..아니..말로 표현 할수가 없다.
심장에서 눈물이 흐른다.
너무 그립다. 슬프다. 그립다...혜영이가 보고싶다.
큰 한숨이 세어나온다.
계속해서 답장은 오질 않는다.
담배보급품이 나왔다. 한달만에 처음 피어본다.
담배연기 한모금에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밤.....
어둠이 시야를 가리고 적막함이 귀를 막는다.
이순간만은 지금의 현실이 뇌에 입력되지 않는다.
혜영이 생각이 머릿속에 마구 소용돌이치며 활개를 친다.
더이상 생각할것도 없으면서 그냥 혜영이라는 존재가 머리속을 계속 맴돈다.
계속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있다. 괴롭다....
몰래 화장실로 나와서 담배를 피면서 독한 연기 한모금에 나를 위로하며 겨우 잠에 들곤 한다.
요즘은 밥먹는 양도 많이 줄었다.
몸이 많이 무거워진 느낌이다.
잠도 잘 못자고 밥도 못먹는 나를 보며 동기들이 많이 걱정한다.
아차! 지금 내상태가 동기들이 걱정할만큼 심각한가...나를 돌이켜 보았다.
너무 한심하다.
아무리 그리워하고 생각해도 다음날 아무것도 변화시킬수 없다.
나의 기도와 바램은 그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너무나 무력하다. 괴롭다.
그만두자..혜영이 생각은 이제 그만하자.
제발...그만...앞만보고 살자.현실에 충실하면서...
사람이란 불확실한 미래보다 좋았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하는게 본능인가보다.
혜영이를 잊을수가 없다. 매순간순간 떠오른다.
밥먹을때도 학과수업 받을때도 잘때도..
그냥 혜영이라는 사람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것 같다.
헌병교육 수료하기 하루전날 배속지가 발표났다. 부산으로 오게 됐다.
모든 동기들이 축하해준다.
하지만 별로 기쁘지가 않다. 오늘이 편지오는 마지막날이기 때문이다.
결국 편지는 오지 않았다.
버스를타고 진주역으로 갔다. 두달만에 구경해보는 세상이다.
부산. 신병대기소....
보직을 받고 자대로 가기전에 신병이 이곳에 적응할수 있는 시간을 주는곳이다.
전화를 할 수 있었다.
혜영이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말할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무작정 번호를 눌렀다.
목소리가 잘 듣기지 않는다. 듣고싶다. 목소리....
수화기를 귀가아플정도로 팔이 아플정도로 귀에 밀착시켰다.
하지만 잘듣기지 않았다. 무슨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허무하다.
다시 전화했다. 아까와 똑같다. 후회된다.
내가 하고싶은말도 못했다.너무 무뚝뚝하게 대했다.
후회.......! 아.........
괜히 마음만 들떴다.
혜영이와 육성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설레이게 한다.
이상하게 두근거린다...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잠이 올리가 없다.
다음날 또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다. 계속했다. 받지않는다.
나를 부담스러워 하는거 같다. 내가 전화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싫은 모양이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벌써 두달이 지났으니...그럴만도 하겠다.
삶이란 사람과 사람들이 부딛히며 여러가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두달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처음 나를 향한 감정이 이젠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을수도 있겠다.
'나'라는 존재는 혜영이 기억뒤편으로 넘어가고 있는중 일지도 모른다.
흠...그래............냉정하게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혜영이가 너무 좋다.........
보직을 받고 자대로 왔다.
친구와 면회를 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반갑고 또 반갑다.
친구의 휴대폰으로 혜영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군대에 있어서 그럴거야' '난그냥 니가 편했으면 좋겠다' '재밌게 잘보내'...
정말 편하고 흔한 답변들....내기분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채....혜영이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문자를 막 보낸다.
음..이런게 아닌데..뭔가 이상하다. 하하...
눈물이 나와야 할것이 웃음으로 나온다..
입대후 지금까지.. 나만의 절대적 공간, 머릿속에서....나혼자 헤엄치고 있었던것 같다.
더이상 용기를 잃었다. 난 그렇게 소심한놈이 아닌데..겨우 문자몇개로 모든 자신감을 잃었다.
혜영이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컸다. 그 크기만큼 절망감을 느꼈다.
고참이 집, 애인, 친구 등...눈치보지 말고 맘껏 전화하라고 한다.
처음으로 혜영이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집에 먼저 전화를 했다.
그후 011 527 을 눌렀지만 바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용기가 나질 않는다.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또 혜영이가 무슨말을 할지 두렵다. 차라리 하지말자.
그냥 여기서 그만두고싶다.그만...그만...혜영이 생각 잊자...
휴가나가서 혜영이와 얼굴 맞대고 대화를 하고싶다. 그때까지만 잊고 있자.
보고싶다...!!
100일휴가를 나왔다.
혜영이한테 전화를 했다.
혜영이를 보지 못한다.
바쁘단다....
수요일 새벽 세시..
군대에 있을때 종이에 적던것을 지금 컴퓨터로 옮겨적고 있다.
이것을 혜영이한테 보내려고 한다.
이것을 보면 내마음을 가장 쉽게 알수 있을것같다.
그냥 그것 하나만 바란다.
그리고 이것을 마지막 연락으로 하고싶다.
내눈에 눈물이 나는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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