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었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한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분이 냉탕과 열탕을 분주히 오간다.
난 열탕에서 느긋하게 몸을 지지고 있는데 5분이 멀다하고 첨벙 첨벙 물결을 일으키신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열탕에 뛰어 드신 이분이 조금 이상하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꼼짝안하시더니 서서히 물에 가라앉는다.
악... 심장마비????
난 그분이 잠수하기 0.1초전에 몸을 붙잡았다.
이미 몸은 굳어져 있었다.
사람살려!! 크게 한번 외쳐 줬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다른 분들과 함께 이 분을 끌어내어
바닥에 눕혔다.
다행히 가슴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호흡은 문제가 없지만 몸이 마비가 되었다.
119신고하라니까 목욕탕 주인분이 괜찮을 거 같다고 놔두면 차차 안정이 될거라고 하길래
안된다고 지금 환자상태가 좋지 않다고 연락해야 된다고 했다.
근데 연락을 하면 뭐 목욕탕에서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 지 계속 전화를 안한다.
전에도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조금 쉬니까 괜찮아 지더라고.
하지만 이건 아닌데...
"할아버지.. 지금 상태 안좋으면 눈을 한번 깜빡여 보세요."
깜빡이지는 않았지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할어버지의 눈빛이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난 순간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이건 (119응급차를) 타야 해.......
목욕탕 주인의 만류에도 직접 119에 신고해 버렸다. 나를 막 말린다.
숨을 쉰다고 다 괜찮을 건지는 모르지 않냐고 막 따졌다.
가족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발목에 찬 그분 열쇠를 빼내 옷장에서 핸드폰을 찾아
최근 통화기록을 뒤졌다. 다행히 집이라고 되어 있는 게 보이길래 눌러 이 사실을 알리고
큰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여긴 어디라고 말해줬다. 그때 119가 도착했다.
119가 와서 응급처치를 하고 어느 병원으로 가느냐고 물어 봐서 집에도 알려드렸다.
그리고 나도 걱정이 되어 옷을 입고 119가 가는 걸 지켜 봤다.
그때 다른 약속이 있었기에 나는 약속장소로 이동했고 별 문제 없으시길 바랬다.
그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 입는데 주머니에 열쇠가 하나 있었다.
목욕탕 열쇠였다.
아차.. 그 할아버지 열쇠를 가지고 왔었구나..
그래서 다음날 다시 목욕탕에 갔다.
어제 열쇠를 가져 갔었다고 돌려 드렸더니 카운터에서 번호를 하나 준다.
꼭 환자분이 연락을 해 달라고 했다고 전하면서.
살짝 걱정이 되었다. 도둑으로 몰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열쇠를 가지고 있고 안에 물건이 사라졌다면....
다 내가 뒤집어 쓰는 거????
"그 분 괜찮아요?"
"그런가봐요. 꼭 연락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전화하세요."
그래서 나와서 전화를 했다.
뚜... 뚜.... 찰칵.
"여보세요?"
난 전화통화했던 대로 그날 저녁 약속장소로 갔다.
지하철 역 1번 출구에서 기다리는데 어떤 젊은 분이 인사를 하며 차를 타라고 했다. 좀 더 가야한다고.
무슨 차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척 좋은 차라는 느낌을 받았다.
언덕을 올라 집앞에 내리자 차고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정원이 꽤 넓은 집이구나...
서울에도 이런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이 있다니...
들어가니 온 식구가 다 모였는지 사람들이 10여명 되었다.
딱 보니 그 할아버지가 보였다. 살짝 대머리....
"아... 이 분...."
그 분도 나를 한참 보더니 씽긋 웃는다.
나를 기억하시나...
"바쁘신데 오라가라 해서 미안해. 젊은 양반."
상황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건 나만 이사람들을 모른다는 거.
자기들끼리는 너무 잘 아는 사이겠지만.
어쨋든 온 식구가 다 모였나보다.
부인, 아들, 딸, 사위 등등...
왜 이런 자리에 날 부른거지?
"괜찮으셔서 다행입니다."
"괜찮지는 않아. 건강에는 자신있었는데 정밀진단을 받아보니 문제가 좀 많았더라구."
"아.. 예..."
어쨋든 함께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그때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날뻔 했다고 의사가 그랬나보다. 몸은 마비가 되었는데 귀로는 다 들리고.
자기는 죽을 것처럼 힘든데 몸은 굳어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고 귀로는 다들리는 상황.
그래서 내가 빨리 응급차를 부르지 않았다면 자기는 아마 심각한 장애를 입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렇게 됐었구나.... 그때 순간적인 판단이었지만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뭐 하는 양반이신가?"
"예??"
"직업이.....?"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좀 쉬고 있습니다............"
난 실직자다... 까발리고 싶은 내용은 아니지만 뭐 숨길 내용도 아니고...
"결혼은?"
"아직......."
그날 온가족은 내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고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고 그 할아버지도 자신의 두번째 인생을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삶의 방향을 잃고 해매던 나에게 그날...
난 누군가에게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기분, 그 멋진 느낌만으로도 나 또한 의미있는 밤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난 다음날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오라는.
난 뭔가 당황스러웠지만 저장된 자료를 출력해서 그날 바로 방문을 했고 그날 바로 경력자 채용형식으로 바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당황스러운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핸드폰을 여니까 모르는 번호 하나가 세통이나 찍혀 있다.
"누구시죠?"
"그 날 아버님과 같이 뵈었는데 기억하세요? 맨 끝에 앉아 있던...... "
난 약속한 장소로 갔다.
커피숍에 들어서자 마자 아... 그 때 다른 분들은 서로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혼자 끝에 앉아 계셨던 그분이구나.
"설마 이런 자리 부담 되시는 건 아니죠?ㅋ 의무적으로 세번은 만나야 된다는 아버지 명령이에요.ㅋ 우리 아버지 엄청 무서워요.ㅋ"라며 웃는다.
막내딸...
미혼인...
난 10여년간 안해 본 머랄까 일종의 소개팅을 하고 있는 중인 셈이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막내라 그런지 애교 작렬이다.
첫 만남이지만 너무 친숙하고 편한 느낌.
흔한 소개팅이었다면
"이건.... 잡아야돼." 라고 생각할 만큼 마음에 드는.
하지만 아버지의 의무로 나오게 된 강제적인 만남이었기에 게다가 직장도 없이 무의도식.....
아참 나 조금전에 취직했지.. 맞다 최소한 실직자는 아니구나.
어쨋든 뭐랄까 마음에는 들지만 느낌상 넘사벽 뭐 그런 걸 감지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다음번에 또 만날 수 있냐고 했다. 진지했다.
내가 너무 재미있다는 거다. 생각하는 것도 자기랑 비슷하고. 종교도 같고.
난 참고로 종교는 무교다.
내가 그랬나...
내가 그렇게 재미있었나..
아참 나 오유한지 오래되었지....
고마워. 오유. ㅠㅠ
너땜에 나 유머 많이 늘었나봐. 고마워.
는 건 유머만이 아니겠지.
구라도 심하게 늘어 버렸어. ㅠ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실화에서 픽션으로 자연스럽게 "이건 갈아타야 되" 라고 느껴버렸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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