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사, 십팔, 삼십이, 삼십사, 사십..."
나는 휴대폰을 집어들고 복권에 하나씩 동그라미를 그리다 펜을 멈췄다. 아미는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 미간을 찌푸렸다. 아미는 내가 복권에 동그라미를 다 그려 넣고서야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진짜 돈이 아깝다 아까워. 맨날 꽝인거 뭐하러 매번 오천원 씩 날리는거야?"
나는 복권을 구겨 자켓 안 주머니에 넣은 뒤 아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냥 재미로 하는거야 재미로. 이거 한 장 사면 일주일 동안 행복한 상상 속에서 살 수 있다잖아?"
아미는 이런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커피잔에 각설탕 한 개를 떨어뜨렸다.
"그래도. 그런다고 해서 복권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 돈을 모았으면 벌써 오빠 갖고 싶다는 렌즈 한개 샀겠다."
"야. 그 정도로 복권을 사진 않았어. 그리고 복권이 되면 그 렌즈만 살 수 있겠냐? 카메라 바디도 바꾸고 렌즈도 빵빵한 놈으로다가..."
아미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몸을 쇼윈도 쪽으로 돌렸다.
"복권만 되면 진짜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자."
아미는 내 말을 들은체도 않고 창밖만 무심히 바라보았다. 햇살이 쇼윈도를 투과해 테이블 위를 따뜻하게 데웠고, 아미는 그런 테이블에 얼굴을 데고 엎드렸다. 그런 아미의 모습이 마치 화창한 날 담벼락에 앉아있는 고양이 같았다.
나는 얼른 카메라를 꺼내어 셔터를 눌렀다. 팔과 테이블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손사레를 치는 아미의 모습이 뷰파인더에 가득 담겼다. 아미는 연신 찍지말라며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피했고 나는 그런 모습이 재밌어서 자꾸 렌즈를 아미의 얼굴에 들이댔다.
플래시가 번쩍였고, 커피숍 안은 햇살로 가득했다.
"오빠. 이제 그만 가자. 나 알바 하러 가야돼."
아미는 재빨리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카메라를 끄기 전 방금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아미를 따라나섰다. 사진 속 아미의 모습은 봄 햇살만큼 따사로워 보였다.
아미를 지하철 역까지 바래다 주고 손까지 흔들어 보인 뒤 나는 자켓 안주머니에 있던 복권을 꺼냈다. 오등. 만원어치 복권을 사서 오등이면 본전치기는 커녕 반토막이 나버렸기 때문에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주식이 반토막났다며 울상을 지었던 친구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투자 대비 손실율로 따진다면 나는 일주일 간의 행복감을 느낀 것으로 족했기에 그것으로 위안 삼아야 했다.
오피스텔로 향하는 길. 어느덧 내 나이도 서른줄에 접어들었고 이제는 큰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이 안되어 아르바이트와 토익 학원을 전전하는 아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아미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오피스텔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한강 둔치로 향했다. 나는 지난 시간 동안 무엇을 해왔던 것일까? 전문 사진작가의 꿈을 품으며 쉼없이 셔터를 눌러온 시간들. 사진에 담긴 시공들이 나의 지난 시절들을 증명해 줄 뿐 정작 내가 꿈꿔왔던 것들, 내 가치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강 둔치에는 주말을 맞아 가족단위 외출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행복하게 웃는 가족들. 테이크 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라이더들. 하늘 위 부유하는 연 무리들이 모두 나의 피사체가 되었다.
'행복을 담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글거리는 저 꿈을 꿨던 지난 날들이 후회스러웠다. 나는 지금 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일까. 내 사진 속 가족들과 연인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맹목적인 사진찍기, 사진찍기를 위한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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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소설을 주특기(?)가 아니라서...하지만 다방면으로 글을 써보고 싶어서 소설도 써보았습니다.
좋은 소설을 행갈이 연갈이 해두면 시가 된다고 한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더라구요.
일단 글이 상당히 짧아서 말할 건덕지는 없으시겠지만 묘사라던지 전개방식 등 좋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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