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기] 제 1편 - 출발, 대구에서 봉하마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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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출발은 했지만, 공익근무를 마친지 일주일 정도 되던 시기...
아직은 집에서의 안정감을 더 원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나마도 한반도에 태풍이 지나가던 것과 주문해 둔 디카 배송을 기다리게 된 덕분에
조금의 안정감을 더 맛볼 수 있었다.
떠나는 그날 아침부터 부모님의 잘 다녀오라던 그리고 오래 하지 말고 한 달 정도만 하고 오라는 말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말씀이 달콤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를 오기가 발동했고,
애써 3개월 꽉꽉 채워 오겠다고 큰소리치고 나왔기에 중간에 돌아가기도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출발 직전의 모습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지금도 홍진 헬멧을 쓰고 있는데, 저 당시에도 HJC 자전거용 헬멧과
뒤에 초록색 가방 같은 것은 quechua(퀘차) 원터치 일인용 텐트이다.
개인적으로는저 텐트를 닌자 거북이 등껍질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텐트는 접으면 동그란 쟁반 모양이 되는데, 안 쓰는 가방끈을 오려내서
텐트 가방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등에 매고 다녔다.
실제로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저 등에 있는 게 뭐냐는 질문이었다.
딱히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도 아니기에 목적지도 없었지만,
봉하 마을에 먼저 가보라는 선배의 말씀이 생각나서 며칠 전부터
첫날은 봉하 마을에 가기로 결심을 했었다.
초행길이었던 나에게 의지할 수 있던 것은
내비게이션? 지역별 지도? 아니다.
나에겐 전국 지도 한 장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창까지 와서 드디어 헬멧을 쓰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은
도로에 진입하게 되었다. 자전거 여행 예행연습으로 강변을 달린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인도도 없는 차도의 갓길을 달리는 것과는 기분이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차도 진입기념으로 한 방 찍었다.
스파벨리 표지판이 보인다 ㅋ
여름에 한 번 가보고
첫 터널 통과 직후 ㅋ
사진을 도로 왼쪽에서 찍은 것을 보면 뒤를 보고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뭐랄까 터널을 올라오기까지 계속 오르막길만 계속되었는데
처음이라서 체력으로 버틴 것도 있지만,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다.
팔조령 터널을 넘어서 펼쳐지는 풍경은 꽤나 상쾌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터널까지 계속 오르막길이었던 만큼 내리막길이 꽤나 길게 펼쳐져 있고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꽤나 고지대이다.
탁 트인 전망이 마음에 든다.
여행 떠나기 일주일 전쯤 경비 마련을 위해서 용역회사를 통해서
막노동을 했는데 한참 더운 시즌에 에어컨 설비 보조를 하루 한 적이 있다.
그때 참 황당하게도 사장님 차를 타고 청도까지 왔었다.
청도의 한 들판에 있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의 에어컨이 고장 나서 출장을 왔던 것이다.
일도 쉬웠고, 소풍 온 기분이었다. (오후에 다른 현장에서의 일이 좀 힘들어서 별로였지만)
그때 청도에 한 번 더 오고 싶었는데 첫날부터 청도를 지나게 되어서 조금 기분이 묘했다.
일단 아는 곳이 나와서 한시름 놓은 것도 있고 말이다.
긴장을 너무 놓은 탓일까?
처음 타는 내리막길에 너무 방심을 했던 것일까?
이 내리막길에서 대형사고가... 난다.
도로에는 아스팔트 부분과 갓길 부분의 콘크리트 부분이 있는데...
콘크리트 부분이 지나치게 높은 단차를 이루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가다가 한마디로 새된 거다.
오른쪽 무릎엔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돌이 박혀서 잘 빼지지도 않았다.
집게손가락으로 힘을 주어서 겨우겨우 빼냈다.
오른쪽 옆구리 쪽에도 주먹만 한 멍이 들어서
다친지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멍이 조금 남아있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차량과의 충돌도 불가피했던 상황.
등 쪽에 부상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텐트 덕분이리라.
텐트 가방끈은 한쪽이 끊어진 상태 자전거 핸들 뿔 같은 녀석엔 심한 상처가 나고
뒤늦게 오싹함을 느꼈지만, 일단 반대 차선으로 굴러간 물병을 줍고
조심조심 라이딩을 다시 시작했다.
일단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좋은 경치는 눈에 들어옵디다ㅋ
호박잎이 참 푸르렀다.
처음에 가정집에 들려서 응급 상자를 요청했으나 없어서
일단 보리차 두 잔을 얻어마셨다.
근처에 보건소가 있으니 그리 가보라는 말...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덕분에 빠른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고, 반창고 및 연고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보건소는 900원만 내면 되니깐 더욱 좋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보건소에서는 소독 같은 시술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지역의 모든 보건소에서 실제로 퇴짜 맞고 나온 적이 많았다.
청도 보건소의 의사선생님 감사해요^^
벌어진 오른쪽 무릎 상처는 꿰매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일단, 보건소에서 바느질 세트 2개를 얻어서 마침ㅋㅋ 보건소 홍보용으로 나온 바느질 세트가 있었다.
기막힌 일 아닌가?
찢어진 텐트 가방끈을 꿰매고, 읍내 쪽에 좋은 외과 선생님을 추천해 주셔서
박해동 외과라는 곳을 내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3만 원 남짓 되는 돈이 전 재산이었다.
마음씨 좋은 의사가 필요했다.
아니 절실했다.
보통 꿰매는 수술이라면 족히 만원 정도는 드는 의료비가 들지 않던가?
전 재산의 3분의 1을 첫날부터 지출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일단 병원에 들어가서, 의사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했다.
병원비 좀 싸게 해달라고... 공짜까지 바라진 않았다.
두 바늘 꿰매고 나머지 다친 부위도 다시 한 번 소독했다.
꿰매긴 했지만 페달을 돌리는데 지장은 없다고 하셨다.
시술을 마치고, 의사선생님이 다음에 여행하다가 돈 벌어서 갚으라는 말씀을 하셨다ㅋ
얼레?
수납 카운터로 가니 그냥 가시라는 말씀!?
너무 감사했다.
박해동 외과 선생님 진정한 의사임 ㅋㅋ 나한테 잘해주면 항상 이런식이다 ㅎㅎ
청도에 계신 분들 많이 많이 이용해주시길 ㅋ
4개월이 지난 이 시점.
뭔가 예의를 표시하지도 못한 것이 새삼 부끄럽다.
정신이 없어서 보건소 사진과 병원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청도 소싸움으로 유명해서 그런지 역전에 청도의 힘이라는 동상까지 있었다.
뭔가 나도 멋진 분들을 만나서 그런지 힘을 얻고 가는 기분이다.
기찻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여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던 날씨, 청도의 푸르름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사진동호회 중년의 여성(아줌마) 세 분이서 중장비를 들고 촬영하고 계신 걸 보고 괜히 한 번 말도 걸어봤다.
다친 내 몸을 보고 걱정해주셨고 나의 엄청난 짐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고 하셨다.
파이팅을 외치며 다시 페달을 밟았다.
파이팅!
몇 시간 안되는 시간에 대구에서 경북 경북에서 경남까지 와버렸다.
대구가 아무래도 경북에선 밑쪽에 있다 보니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 같다ㅋ
밀양은 왠지 그냥 밀양아리랑 밖에 생각 안 난다ㅋ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이거 맞나?ㅎㅎ
나의 첫 끼는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ㅋ
여행의 로망 코펠에 라면 끓여먹기였다.
한 초등학교에서 교직원분께 허락을 받고
운동장 한켠에서 짐을 풀고 오징어짬뽕을 끓여먹었다ㅋ
맛은 냉정하게 판단하건대 맛없었다.
코펠보단 집에 있는 냄비가 훨씬 맛있게 끓여진다ㅠㅠ
이때 나에게 관심을 보이던 초딩들이 내 주위를 애워싸기 시작한다.
한입 달라던 눈치 없는 초딩들도 있었고, 코펠 뚜껑에 국물과 면을 조금 주니 맛있다고 나눠먹는 녀석들도 있었고,
고맙다고 음료수까지 주던 유성이라는 친구도 있었다ㅋ
브이 하고 있는 녀석이 유성이다.
이 친구와 연락처도 교환해서 여행 도중에 통화도 하곤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전화가 하도 시도 때도 없이 와서(미안해) 일부러 안 받다 보니 자연스레 연락은 끊어지게 되었다.
이 초등학교에서도 보건실에서 소독을 하게 되었는데
양호선생님께서 연고랑 반창고 붕대 등을 많이 챙겨주셨다.
첫날부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속도계 빼고는 다 있는 내 자전거.
속도계도 있었지만,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빗물 테러로 인해 고장 났다.
사이드미러는 여행 중반까지 내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2000원짜리 치곤 참 큰 역할을 해 주었던 것 같다.
전조등도 여러모로 참 쓸모 있게 썼던 것 같다.
길이 참 예뻤다.
지금 생각해도 라이딩 하기에 참 좋은 길인 것 같다.
앞서 썼던 세 명의 아줌마를 청도가 아닌 여기 밀양에서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좀 헷갈린다.
사진 찍은 시간을 보니 6시 반이 넘은 상황이었다.
목표로 한 봉하 마을이 있는 진영읍까지는 12킬로미터가 남은 상황
노을이 비친 강가 7시경
그리고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주변은 너무나 어두워지고,
몇 개의 읍내와 마을들을 지나면서 봉하 마을까지의 길은 너무 복잡했다.
그것보다 처음 맞는 어두움과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의 라이딩, 오랫동안 참은 화장실
허기진 배는 정신적으로 너무 가혹했다.
하지만, 중간에 한 노점상에서 찹쌀 도넛을 떨이로 비교적 싸게 구입해서는 허겁지겁 먹고, 한참을 생각한 끝에
봉하까지 가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렇게 페달을 밟고 밟아서 힘겹게 도착한 봉하 마을.
노무현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를 한 경찰청장 조현오에게 단식 시위하던 막사 뒤에 텐트를 치는 것을 허락을 받고,
화장실에서 호스를 이용해 샤워도 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지원이 잘 되고 있어서인지, 한여름에도 온수가 콸콸 나오다 못해 뜨거워 죽는 줄 알았다.
다친 곳에는 물이 들어가선 안되었기에 샤워하는데도 너무 불편했지만, 안 씻고 자면 찝찝해 죽을 것 같아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히 샤워를 하고 빨래도 했다.
나의 퀘차 원터치 일인용 텐트에서의 첫날밤 기념촬영도 어김없이 했다.
다이소에서 산 2000원짜리 자전거 천막
열대야와 집회단의 담소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제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