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네 집에서 놀아도돼요?”
옆집에 새로 이사온 여섯 살난 여자아이가 열어놓은 현관문앞에 서있다.
복도에서 킥보드를 타고 놀다가 열린 현관의 방충망을 통해 집안의 내가보였나보다.
아파트에서 옆집이란
문을 열다 마주치면 목례정도만 나누는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른장소에서 마주치면 못알아보고 지나친적도 있었으리라.
예기치못한 싱그러운 방문이다. 아이는 일명 클레오파트라 앞머리를 하고있으며
흰색 오프숄더 블라우스와 통넓은 겨자색 와이드 팬츠를 입고있었다.
멋스러운 꼬마손님은 이슬아다.
슬아는 밥상머리 교육을 잘받았다 집에들어오면서
가족들이 누가있는지 물어보았다.
안방의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가 사용하는 작은방으로 왔다.
몇 년만에 집에 놀러온 꼬마손님에게 무엇을 대접해야하나 .
요쿠르트를 꺼내주었더니 빨대를 달라고한다.
슬아는 빨대를 꼽아서 할머니 먼저드리고 남은 요쿠르트를 갖고와
나이순서대로 나눠주었다.
우리집은 막내가 스물다섯살이니 집에 놀러온 아이가 너무신기하고 예뻤다.
다섯명 모두 아무말도없이 빤히 아이얼굴만 쳐다봤다.
민망한지 개나리꽃같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배시시 웃는다.
때마침 책꽂이에 방치됐던 내아이들이 보던 종이접기책이 눈에 띄었다
색연필과 색종이도 함께 꺼내주었다. 슬아는 공룡과 새를 좋아했다.
종이에 공룡을 그리고 꼼꼼히 색을 칠했다. 색종이라 까치 ,앵무새,참새등
여러종류의 새를 완성했다.
여섯 살답지 않게 손끝이 야물어 잘따라접었다.
교실뒤 솜씨자랑 환경판이 생각나 거실한쪽벽면을 슬아가 만든작품으로 장식했다.
놀러온지 두시간쯤지나니 아이아빠가 슬아를 데리러왔다.
두손을 모아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하는 너머로 아쉬운표정이 같이 인사한다.
다음날 아파트 복도의 아침이 유치원가며 인사하는 슬아의 밝은목소리로 열렸다.
슬아에겐 11월에 태어나 말로만 두 살인 여동생 이루다가 있다.
루다가 어린이집가느라 유모차 바퀴 돌돌돌 구르는 소리도 곁들여졌다.
루다는 앞이마로 약간의 애교머리를 내린 양갈래 머리를 하고있다.
낯가림이 심한지 입술을앙다물고 무심한 표정이 영락없는 새침데기다.
화단의 작은나무가 선잠을 깨 비몽사몽 몸을 흔든다.
슬아의 까르소리에잠을 깬 까치는 두리번두리번 얼떨결에 아이들과 달리기를 한다.
조용한 복도식아파트에 파릇한 유월의 동화가 시작되었다.
유치원수업을 마치고 온 슬아가 문앞에 서있다.
그렇게 아이는 유치원에 다녀오면 먼저 우리집에 놀러왔다.
매일놀러오길 일주일정도를 했던날,집에가며 말했다.
아빠가 이제일주일에 한번만 노는거라고 했단다.
아주머니도 쉬셔야하는데 매일가면 아주머니 힘드니까.
슬아는 신통하게도 약속을지켰다. 그리곤 주로 토요일에 놀러왔다.
아이와의 놀이는 어른들만 사는 우리집에 키득키득,흐흣 다양한 웃음소리를 퍼뜨렸다.
다방면에 똘똘한 슬아는 특히 그림에 소질이 있는듯하다.
아저씨를 그려준다며 포즈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우선 아빠다리를 하고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대고 손은 턱을 괴라고 일러주었다.
어린작가가 하라는 대로 다리 혹은 손모양을 바꿔가며 얘기를 다들어준다.
슬아는 남편의 불룩하게 나온 둥근배와 목뒤에 접힌 살까지 세밀하게 그렸다.
남편이 슬아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그야말로 꿀이 뚝뚝떨어진다.
슬아와의 즐거운시간을 위해 온식구가 아이디어를 낸다.요리교실을 열었다.
플라스틱 나이프로 복숭아,키위,바나나등을 잘랐다.
플레인요거트에 매실진액을 넣고 저은 다음 예쁘게 세팅한 과일위에 살짝뿌린다.
예의바른 슬아는 할머니부터 한접씨씩 나눠 주었다.
작은손으로 조물조물 완성한 맛있는 과일샐러드다.
요리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는지 한동안은 오자마자 요리를만들자고 했다.
집에있는 재료를 이용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토스터에 식빵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한쪽에는 딸기잼을 다른쪽에는 땅콩잼을 골고루 발랐다.
그리곤 손바닥보다도 큰식빵두장을 붙여 “완성”하며 접시에 올려놓았다.
슬아는 가끔 퀴즈를 내면서 맞추라고 한다.
상품도 있다며 과자나 요쿠르트를 보여준다.
하지만 슬아는 좋아하는 아저씨가 맞추지 못하면 다른사람은 아무리 손을들어도 지목하지 않는다.
아저씨에겐 귀엣말로 정답을 알려주기까지 한다.
하긴 남편사진을 보며. “내 아저씨네” 두손을 모으며 감탄을하는 슬아다.
어쩌다 새침데기 루다가 놀러올때도 있다.
현관앞에 앉아 신발을 벗느라 끙끙대며 한참을 뱅글뱅글 맴을돈다.
그리곤 힘겹게 벗은 신발을 휙 던지고 들어온다. 의외로 시원시원한 면도 있다.
텔레비전의 만화영화를 보느라 신나게 춤을추면서 알아들을수없는 노래를 한다.
보고있노라면 입을 다물 수가없다.
루다가 흥이나면 날수록 기저귀가 엉덩이 아래 무릎으로 내려간다.
소변을 잔뜩머금은 기저귀의 무게를 고무줄바지는 버티지못했다.
소변이 배어나와 방바닥이 젖었다.
이제 집에가자고하니까 슬아는 못들은척한다.
그래도 루다의 기저귀가 신경쓰였는지 나보고 기저귀를 갖고오라며 미안한표정을 짓는다.
아이의 부모가 처음에는 한시간만 놀라고 하며 보냈지만 어울려 놀다보면 한시간은 훌쩍지난다.
그러면 아이아빠가 데리러온다.
“슬아,이제 옆집가자”
아이아빠는 재치있는말을 건네며 슬아를 데리러온다.
일주일에 하루 아이와 놀이시간이 생기면서 우리의 생활도 상쾌해졌다.
주말에 외출할일이 생기면 슬아네 집에먼저 우리의 일정을알려줬다.
두해정도의 시간을 격의없이 지냈다.
겨울이 한창무르익은 12월에 슬아는 슬픈 얘기가 있다고 했다.
학교갈때는 멀리이사간다는.
아, 이런 소리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구나.
서울보다는 좀더 자연과 가까운곳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고 했다.
사교육은 가능하면 늦게시키고 싶다는 부모의 결정이었다.
슬아는 유치원만 다닐뿐 한글이나 수교육을 위한 학습지도 하지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기의 마음을 시로 표현할줄알고 노래도 지어서불렀다.
슬아의 다재다능은 부모의 열린교육덕분이라는 생각이든다.
“아저씨,영원히 사랑해요.아줌마 영원히 안잊을께요.”
그렇게 초등학교입학을 앞둔 슬아는 자동차로 이동해도 족히 1시간30분정도 걸리는
김포신도시로 이사갔다. 아이는 자동차 뒷좌석 창문을 열고 눈물방울을 대롱대롱 매단 채
앙증맞은 손을 흔들었다.
벌써 슬아가 이사를 간지 두계절이 훌쩍지나고있다.
우리집 책장에는 슬아키와 몸무게를 표시한 색연필의 색깔이 아직도 선명하다.
시나브로 이렇게 많은 추억을 우리집안 곳곳에 물들여놓았다.
슬아 자매의 매혹에 빠진 내아이들이 결혼하고 싶다며,슬아엄마의 카카오톡에서
사진을 넘겨보고 있다.
사진속 슬아의 배경은 1학년11반 교실이다.
요즈음은 아이하나 기르기도 육체적,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는지라 아이가 없거나
하나만 기른다고 한다.
하지만 내욕심에 나의 세아이들은 최소한 두명의 자녀를 두었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은 아니지만 슬아의 예쁜모습이
내마음을 시도때도없이 톡톡 건드린다.
옆집아이 중강새가 보고싶다.
*중강새 - 중간에 이가없어 샌다라는 뜻.
옆집작가님께서 저희 아이를 주인공으로한 수필이 의정부시 공모전에 당선되어 책으로 출간되었네요
저희가 키운것보다 너무 많은것을 받아서 참 감사드리고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있습니다.
저희가 이사오고나서 그동안의 있었던것을 책으로도 만들어주셔서
와이프펑펑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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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발랄하고 귀여운 꼬마숙녀들과 따뜻한 이웃주민분들의
소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도 어릴적에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던 기억이 있던지라
흐뭇하면서 옛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그립네요..XX아파트 210동 7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