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서 풀빵장수 고등학생까지
이명박은 1941. 12. 19. 경북 영일군(現 포항시)의 한 시골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6 25때 누나와 막내 동생을 눈 앞에서 잃는 아픔을 겪었고, 초등학생 때부터 김밥을 팔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낮에는 풀빵을 구워 팔아가며, 고학으로 동지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하였다.
(알바단이 포항출생이라고 써댄거 아직도 안지우고 흔적을 흘려대는군요
네이버 보면 출생지 포항이라고 기재된거 지금은 아예 '출생지'자체를 지웠더군요.
꽤나 신빙성 있는 게 일본 혼혈에 일본어머니 인건데, 이건 워낙 문제소지가 많고
형 '이상득'과도 이름의 돌림도 없고... 이름 자체가 일본식인데도...뭐 패스)
★ 청계천 헌책방 주인의 도움으로 고려대 입학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왔다.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 거의 공짜로 준 책을 얻어 공부하여 1961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매일 새벽 이태원 시장통을 리어카로 누비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때로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막노동일을 하며 대학을 다니던 그는 3학년 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힘들고 고단했던 유년시절이라던데 그 당시 서울땅 100여평 샀다는 소리는 대체 무언가요. 누가 설명좀...)
★ 6ㆍ3 학생시위 주도로 복역
1964년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 3 시위를 주도하여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아, 반년간 복역하고 풀려났다.
(호오? 한일 국교수립을 반대하다가 별달았었군하)
★ 중소기업 말단사원에서 대기업 회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던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하였다. 40°c 를 넘나드는 태국의 밀림을 헤치고, 실눈조차 뜰 수 없는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온 몸으로 맞서며 전세계 해외건설 현장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며,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에서 8,000달러가 될 때까지 나라경제를 키우는 데 큰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결과 입사 5년 만에 이사직에 오르고, 12년 만인 서른 다섯 나이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건설의 최고 경영자(ceo)로 취임, 세상은 그를 '샐러리맨의 신화'라 불렀다.
(당시 중소규모였답니다. 제가 알기론 중소규모는 넘어서던 단계였는데, 과장과 허풍은 일단 애교로 넘어가고.
아무튼 '낙하산 인사'라고 생각될만큼 파격적인 수직인사이동은 확실히 '남다른 의식' 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정주영식 뇌물에 입각한 해외 공사는 많이 한거 같습디다])
★ 전세계를 누비며 국제경영감각을 쌓다
말레이시아에 세계에서 제일 긴(한강 다리 14.5배) 페낭브릿지(연육교)를 건설하고, 이라크 하수처리시설 수주권을 따내고, 구 소련의 레닌그라드에 알루미늄 제련소 건설, 연해주 임산업 합자회사 설립, 야쿠트 가스 개발 등 열사의 중동에서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전세계를 누비며 거대기업을 운영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경영능력을 쌓았다. 영국의 대처 수상,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 중국의 강택민 주석등과 면담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ceo로서 국제적 교류와 감각을 폭넓게 익혀왔고, 특히 구소련의 고르바쵸프 서기장과의 돈독한 관계로 한 소 수교 및 시베리아 자원개발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세계가 인정하는 경영능력 주목. 이미 오래전부터 고위급 인사와의 면담을 중요시 했군요)
★ 정치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
1992년 정계에 입문하여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 촉진법] 제정 등을 주도하면서 정치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였다.
(정치에 경영마인드, 정치에 경영마인드, 정치에 경영마인드, 정치에 경영마인드, 정치에 경영마인드...)
★ ys도 못말린 이명박의 민주주의 소신
1995년, 그는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당정치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경선제도를 관철시켜, 민주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사상 최초. 최초. 역시 문후보처럼 프로필에 화려한 수식어 붙이긴 합니다만, 넘어갑시다)
★ 소외계층을 위하는 마음
소외받는 노숙자들에게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제공하여 스스로 자립하게 만들었으며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무료로 학업에 임할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2002년 취임 초에 187대에 불과했던 장애인용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퇴임때까지 670개로 확충하였다.
(이것만 있었다면 확실히 잘 한거디. 청계천 강압정책으로 거리 내 앉은 상인 기타 등등은 어디로?)
★ 성공한 서울시장...
서울시장으로 일하면서 청계천, 뉴타운, 버스교통체제 개편등 다양한 일을 시행하였다. 그러면서도 문화와 복지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추진력있게 일을 마무리하였다. 또한 서울시장 재직동안 전체 서울시부채의 절반을 줄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는 역대 서울시장 중 관선.민선을 통틀어서 이명박시장이 최초이다.
(겉보기로만 보자면 잘하긴 잘 한거다. 그 속내가 어거지 '추진력'으로 만들어서 뒷감당 못하게 만들어서 그렇지. 서울시 부채 줄였다는 항목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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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동안 서민과 함께 일하고, 함께 땀흘리고, 함께 아품을 나누었던 이명박을 지지합니다. 그라면 분명히 대한민국을 세계속에 빛나는 선진국으로 만들어줄 것 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이명박을 적극 지지합니다.
(알바단의 사족임. 이거 흔적이 너무 역력해서, 알바 아니라고 하면 그 사람을 매도할것임. 원하시면 링크도 ... 하지만 검색하면 다 아실것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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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읽기 힘들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짓 나 왜 하는 거지. 흐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