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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겨 오유게시판을 빌려봅니다.
빙그레가 진행한 '처음 입는 광복'이란 이벤트가 광복절 전후로 유투브나 광고로 전해졌는데
저는 솔직히 온 국민이 알만한 유명한 분들만 대상이겠거니 했어요.
저의 외증조부는 해방이 되기도 훨씬 전에 출신지인 부산경남 지역을 거점으로 사회주의계열 계몽운동을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6.10만세운동 이후로 독립운동가 색출에 혈안이 되어있던 일본경찰에게 사상범으로 잡혀서 종로경찰서에서 고문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셨어요.
고문 후유증으로 잡혀들어가신지 1년만에 병으로 석방되었고, 석방 두달 만에 부산 동래의 친구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여러사람이 지금으로 말하면 시민장을 지내자고 계획했는데 일제가 허락하지 않아 그마저도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록이 없어 제가 인터넷에 옛날 신문이며 남의 블로그들 검색하며 얻은 정보입니다.
그때가 증조할아버지는 서른 서너살 정도였고, 아들인 외할아버지는 열 여섯이었대요.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외할아버지도 겨우 살아남아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병으로 어머니가 네 살 때 돌아가셨어요.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아무 기록도, 하다못해 사진도 한 장 없이 뿌리도 모른 채 살아온 어머니에게
증조할아버지와 같이 독립운동 했다던 분이 수소문 끝에 어머니를 찾아와 이런 사실들을 알려주었고,
복잡한 증명과 절차를 거쳐서 독립유공자 유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니 50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그런데 얼마전 친정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외증조부 사진으로 이런걸 만들어서 광복절에 보냈더라며 보자기를 풀어 보여주시더라구요.
세상에!! 종로경찰서인지 서대문형무소인지 모르지만 남아있던 사진이 있었나봐요.
어머니에게 전화와서 이것 저것 물어보시고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대요.
어머니는 이런 사진이 올 줄 몰랐다고 합니다. 수의 입은 사진을 보내주겠거니 했나봐요.
이렇게 정성스럽게 손보고 액자까지 만들어 보내주실 줄 몰랐어요.
너무 멋있는 커다란 나무함에 넣어 보자기까지 싸서 아주 정성스럽게 보내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너무 젊어서, 너무 잘생기셔서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아까운... 저보다 훨씬 젊은 할아버지...
자랑하고픈 마음에 저와 마음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오유분들께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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