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느타리, 표고, 새송이버섯에 미나리 잔뜩 넣고 끓여 야채육수를 만들고, 거기다 소고기를 살짝 데쳐 건져먹어요. 고기만 먹다가 엄마 타박 들으면 그제사 미나리 조금 버섯 조금 먹는 티만 냈지요.
야채는 대부분 엄마가, 고기는 대부분 내가 없애가며 건더기가 좀 줄었다 싶으면 칼국수를 넣었죠. 다대기 넣어 발갛게 끓어오르면, 일단 국수 한 가닥을 익었나 후루룩 먹어봐요. 물론 조금 덜익었다 싶어도 못참고 후후 불어가며 밀가루맛 폴폴나는데도 마냥 삼켜댔죠.
국수까지 다 먹어갈때 쯤이면 야채맛 소고기맛 잔뜩 빨아들인 육수가 칼국수 밀가루까지 먹고 걸쭉하게 쫄아들어요. 그럼 그 국물을 큰 대접에 약간만 남기고 따라놓죠. 그리고 날계란 노른자가 하나 얹힌 야채볶음밥을 냄비에 붓습니다. 아래쪽에 살짝 누룽지가 생길 때까지 볶고 나서, 크게 한숟갈 푹 떠서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하는 도중에 방금 따로 빼놨던 육수를 후룩 마시면..
아, 이 순간을 위해 고기먹고 국수먹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려요. 미안해 고기야. 국수들아.
사실 맛도 맛이지만 항상 근황 물어가며 밥을 볶아주시던 아주머니덕에 그 집을 잊을수가 없어요.
어릴때 집안 사정으로 집에서 혼자 밥을 챙겨먹어야 할 때가 많았어요. 샤브칼국수는 주말 저와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번 함께 먹는 가족간의 식사였던 셈이죠.
항상 어머니와 아들 둘만 와서 먹으니 아주머니께서 신경이 쓰이셨나봐요. 유독 우리 테이블을 더 잘해주시더라구요. 나중엔 굳이 아주머니께서 볶아주시지 않아도 알아서 우리끼리 볶고 넣고 할 정도로 기술있는 단골이 됐지만, 그럴 때도 괜히 옆에 앉아서 귤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더라구요.
한번은 어머니께서 출장 탓에 며칠간 집을 비우셔야 했어요. 저는 방학이라 급식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구요. 평소처럼 한솥도시락 먹어도 되고, 혼자 얼마든지 만들어먹을 수 있으니 걱정마시라 해도..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그렇게 찾아간 샤브칼국수 집에서도 어머니 얼굴이 좋지 않으니 아주머니가 이유를 물어보시더라구요.
애 밥때문에 그런다 하니 무지 서운해하시며 ' 아니 집앞에 내가 있는데 왜 애 밥걱정을 하냐'하시더라구요. 매일이라도 애가 좋아하는 밥 볶아줄테니 얼마든지 오라면서요. ㅎㅎ 어머니는 워낙 폐끼치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잠시 옥신각신 따뜻한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어느정도의 돈을 내고(아주머니는 끝까지 받지않으려 하셨습니다만) 미리 밥을 볶아주면 집 냉동실에 넣어놓고 데워먹기 였죠. 그날 우리가 밥을 먹는동안 아주머니가 옆자리에서 제가 며칠간 먹을 밥을 볶으시던 기억이 나네요.
아! 발렌타인데이엔 아주머니께 초코렛도 받았어요. ㅋㅋ 이게 10대때 받은 유일한 초코렛이라는게 유우머죠.. 남중남고라 그럴..거예요..ㅠㅠ..
그러다 전 스무살이 되어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었어요. 자취하는 상경인이 그렇듯 집에 반년을 안내려갔죠. ㅋㅋ 그러다 문득 그 샤브칼국수가.. 정확히는 그 맛의 집약체인 볶음밥이 너무 먹고싶어져서 엄마 보고싶다는 핑계 대고 집에 내려갔지요.
엄마 손잡고 룰루랄라 그 집에 갔더니.. 글쎄, 그 아주머니가 안계시지 뭐예요. 샤브칼국수집인건 맞는데 외관도 좀 바뀌었구요. 바뀐 주인에게 아주머니의 행적을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부푼 기대가 시무룩으로 바뀐 탓인지 그날따라 몇년을 먹어도 물리지 않던 볶음밥도 맛이 없었어요. 분명히 재료도 과정도 다 똑같았거든요. 어차피 볶는건 원래 제가 했었으니 기술 탓도 아니었을테고..
옆자리에 괜히 한자리 차지하고 앉은 그 웃음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 첫 맛집은 그 한달 후 아주머니의 부재와 함께 귀신같이 손님이 줄어 망하고 말더군요. 지금도 무척 아쉽습니다만.. 분명 아주머니라면 또 어딘가에서 다른 꼬맹이들의 밥맛을 한껏 부풀려주고 계실거라 믿고 마음을 달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