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버라이어티 쇼 안에서 ‘2인자’라는 말은 더 이상 패배자의 열등감을 연상시키지 않게 되었다. 시작은 박명수가 1인자 유재석 곁에서 공공연히 자신이 2인자임을 내세우고, 그 곁의 정준하, 노홍철과 같은 이들이 1인자도 아닌 2인자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다툼을 벌이면서였다. 지금은 바야흐로 2인자 전성시대. 이들은 때로는 수위를 넘나드는 막말로, 백치미로, 평균 이상의 외모로, 혹은 안하무인격 호통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 버라이어티 쇼를 종횡무진하는 전직도, 생존방식도, 지향점도 각기 다른 2인자 15인의 면면을 여기에 소개한다.
김구라 생존전략: 김구라가 출연하면 그 프로그램은 독하고 세진다. 인터넷에서 할 말 안 할 말 안 가리고 했던 캐릭터를 바탕으로 오락 프로그램에서 남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것이 그의 역할. 오락 프로그램에서 다들 적당히 띄워주고 놀려주는 걸 넘어 ‘막장’으로 가고 싶다면 김구라의 캐릭터는 필수다. 대신 그 캐릭터를 만들어준 과거의 화려한 전력으로 인해 안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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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생존전략: 속없어 보이는 웃음으로 무마하기. 그는 사실 큰 관심을 받는 연예인이다. 시청자들로부터는 ‘원래 똑똑하다’와 ‘원래 그렇다’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고, 여성 연예인들로부터는 ‘좋은 남자’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보통 ‘원래 그렇다’쪽으로 기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천진한 웃음 속에서 가끔 ‘똑똑한’ 출연자들을 한 방 먹이는 발언으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뒤집는다. 그야말로 고도의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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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철 생존전략: 개그맨 평균 이상의 신장과 평균 이상의 외모와 평균 이상의 똘끼와 패션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평균 이상의 분당 어휘 소화량의 소유자.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38년 만에 다시 만난 형님에게 하듯 대하는 친화력이 주특기. 어찌 보면 대단히 웃기지는 않은 것 같은데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종횡무진 한다. 비결은 역시 소녀 떼를 사로잡는 평균 이상의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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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생존전략: 최대한 쪼잔해지기. ‘거성’ 박명수는 항상 근엄한 아버지처럼, 어르신처럼 호통을 치지만 줄곧 무시당하고 조롱받는다. 그런데 그는 그때마다 쪼잔하게 삐진다. 거기가 바로 ‘제 8의 전성기’를 맞은 그가 차지한 자리. 흥미롭게도 그는 IMF이후 무너진 가부장의 권위로부터 자신의 생존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가 없는 시대에 아버지를 연기하는 것은 코미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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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 생존전략: (잘 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도 앨범을 낸 댄스 가수에 훤칠한 인상,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동하며 생긴 유쾌한 이미지도 가졌다. 하지만 문제는 험난한 버라이어티의 세계에서 바보 캐릭터를 하기엔 너무 멀쩡하고, 남들을 공격하기에는 순해 보인다는 것. 그래서 역으로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유행어를 외치며 뜨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비와 세븐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등 부담스럽지 않은 자기 비하로 웃음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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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비 생존전략: 백치미와 막말의 이중주. 강수정에게 ‘쟤’라고 말하기도 하고, 신봉선에게 “무섭게 생겼다”고 하거나, 추상미에게 손을 까딱거리며 “안녕, 언니”라고 말해 순식간에 비호감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선배를 막론하고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면서 출연자들을 황당하게 웃기기도 하니 그의 막나가는 화법은 양날의 칼 역할을 하는 듯. 현영이 MC 활동을 하며 공백이 생긴 ‘비호감 여성 패널’의 대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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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선 생존전략: 본토 발음의 구성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입담 좋고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 한다. “웃기려고 개그맨 됐지 예쁜 척 하려고 개그맨 된 건 아니다”며 웃음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는 법이 없는 그녀는 과거 시대를 풍미한 여자 엔터테이너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영자, 조혜련, 박경림의 뒤를 잇는 오버 캐릭터이자 메인MC와의 능숙한 치고받기로 프로그램의 전체 분위기에 기여하는 타고난 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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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환 생존전략: 임기응변에 능하다. 컨츄리꼬꼬 시절부터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패널이던 신정환은 <황금어장>과 함께 빛을 발했다. 온갖 코스튬 플레이로 강호동과 경쟁하던 그는 ‘라디오 스타’에서는 김구라와 함께 독한 표현을 경쟁하고 있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잡기에 서툰 그가 구사하는 생존전략은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적응이 빠르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 프로그램이 생길 때마다 그를 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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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이즈 밴드 생존전략: 눈치껏 거침없이. 그를 궁금하게 만든 것은 MBC FM <윤종신의 2시의 데이트>에 삽입된 ‘간식송’이었고,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MBC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였다. 첫 등장부터 거침없는 언변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올라이즈 밴드는 신해철, 이승환, 주영훈, 박진영, 이경규 편을 거치며 안정된 자리를 찾았지만, 다른 프로그램에 등장한 그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무릎 팍! 도사’의 강호동처럼 그의 캐릭터를 살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나는 것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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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윤 생존전략: KBS <개그 콘서트>‘봉숭아 학당’의 복학생과 ‘사랑의 카운슬러’로 인기몰이를 한 뒤 MBC <황금어장>‘무릎 팍! 도사’의 건방진 도사로 화려하게 MC계에 입성. 그러나 뜻밖에 ‘올뺀’에 밀리고 <개그 콘서트> 사태까지 겹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타고난 순발력으로 건방진 프로필을 읊으며 ‘욕심쟁이 우후훗!’를 히트시키면서 자기 자리를 지켰고, <상상플러스>로도 진출했지만 두 프로그램의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기가 쉽진 않은 듯. 아직은 버라어이티 적응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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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생존전략: 끼어들기의 달인. 오랜 연예계 활동과 DJ 활동을 통해 쌓은 ‘구력’으로 프로그램의 모든 상황마다 재치있는 코멘트를 남긴다. 아직 주말 버라이어티 쇼의 메인 MC는 아니지만 메인 MC의 언저리에서 계속 존재감을 남기는 스타일. 그러나 이런 모습이 괜한 참견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과거 히트곡마저 개그의 소재로 쓰며 거침없이 망가지는 ‘생활형 방송인’으로 변신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 가끔 그게 지나쳐 자기 방송에 ‘회를 치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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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하 생존전략: 의외의 모습 보여주기. MBC <무한도전>에서 동생들에게 구박받는 ‘뚱뚱보’지만 그는 연기자로서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고, 자기 사업도 있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자에게 꽤나 인기도 있다. 어리숙한 듯한 모습에 은근히 생각있고 실력있는 의외의 모습이 정준하의 매력. 특히 ‘로비’에 능한 ‘알콜 CEO’ 캐릭터는 <무한도전>에 보다 현실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물론,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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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 생존전략: 있는 듯 없는 듯 묻혀있기. 사실 정형돈은 굉장히 웃기기까지 했던 개그맨이었지만, KBS <상상플러스>의 ‘손가락 사건’과 함께 위축되고 존재감 약한 캐릭터로 급락할 뻔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MBC <무한도전>은 그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콘셉트화 시켰고, 이제는 있으면 심심하고 없으면 섭섭한 존재로 자리 잡으며 출연자들과 독특한 기생/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어색하다고, 웃기지 못한다고 구박받는 와중에도 알고보면 똑똑하고, 웃기는 것 빼고는 못하는 것 없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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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렬 생존전략: ‘안구에 습기 찬다’, ‘왜 남의 인생에 깜박이를 켜고 들어와’와 같은 독특한 정신세계에 바탕을 둔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반한 자신만의 조어를 구사한다. 거성 박명수에게 “너네 닭가게 쑥대밭 만든다”고 호통치고 강호동을 강MC라 부르며 맞먹는다. 이는 ‘열심히는 살되 아등바등 살지는 말자’가 삶의 모토라고 하니 굳이 1인자가 되지 않아도 좋다는 여유에서 오는 배짱일지도. 머리까지 산발해 ‘막나가는 폭탄’같지만 할 말 다 하면서 나름의 인생철학을 풀어놓고, 라디오 DJ와 연기까지 넘나들며 실속까지 챙기니, 알고 보면 정말 똑똑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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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생존전략: 끝없는 자기애를 바탕으로 한 ‘꼬꼬마’의 성장드라마. 작은 키에 가수로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MBC <무한도전>에서 ‘잘생긴 하하’의 콘셉트로 나온 뒤 무슨 일에든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으로 뭘 하든 귀엽고 해맑은 캐릭터로 안착했다. 박명수와는 ‘거성체조’를 , 유재석과는 ‘무한재석교’ 상황극을 연출하며, 노홍철과는 무엇이든 가능한 친구 캐릭터가 되는 등 다른 출연자들을 받쳐주는 콤비 플레이에도 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