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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정한 오유의 글들을 읽거나 같이 응원하는 댓글을 달곤 하다가 오늘 밤은 비도 내리고 답답하고, 그래서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네요.
정말로 지금은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배신을 당하거나 큰 비극을 만나거나, 괜히 그런 일을 두려워할 만큼이요.
그냥, 얼마 전에 갑자기 예전에 썼던 일기들을 읽어 봤어요.
10대 때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심하게 겪으면서 엄마, 아빠의 갈등도 심했고,
외모적으로 솔직히 튈 만큼 별로였고, 그걸 시작으로 내성적인 성격까지 겹치면서 왕따도 참 오래 당했어요.
초등학교 때 너무 심하게 왕따를 당해서 이렇게 살면 인생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때 아주 조금 적극적으로 성격이 바뀌며 하나 둘 친구들도 사귀고, 고등학교 때 한 번 더 바뀌고, 대학교 떄는 훨씬 더 밝아져서 애인도 만들고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하고 잠시의 백수생활을 거쳐 취업도 했고, 연애도 잘 하고, 결혼도 잘 해서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겉으로는 정말 잘 성장한 스토리처럼 느껴져요. 저도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많이 칭찬도 해 주곤 해요.
그런데, 가끔 예전의 기억들이 떠오르면 참 괴롭습니다.
20살 이후로 정말 겉으로는 언제나 밝고 행복하고 잘 지내는 걸로만 보였을 거예요, 사람들 눈에는.
하지만 사실 오랜 시간 대학교에서 연애하던 애인은 처음에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나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더니 몇 달 후부터는 바람을 피우고, 성매매 업소를 다니고, 시험기간에 화장하지 않은 저를 대놓고 무시하고, 너의 말은 다 앞뒤가 안 맞고 재미가 없어, 널 왜 만나는 지를 모르겠어 등의 말을 듣고 있었네요.
이걸 알면 정말 다른 사람들은 놀랄 거예요.
저 그 당시에 여기저기서 대외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 당시에는 저 좋다는 다른 사람들도 많았는데 다 마다하면서 이 사람과 장수 커플로 참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무슨 짓을 하는 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더 잘 하면 연애 초반에 헌신적이었던 그 모습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었던 것 같아요.
게임을 하느라 약속을 바람 맞추는 것도, 바람을 피우는 것도, 그냥 다 묵묵히 내가 참으면 정말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면서 내게 이전처럼 돌아오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다시 시작하는 게 맞았는데, 그 때의 저는 처음 연애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에 놀라웠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 때의 저는 자존감이 정말 바닥이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호감을 보여도 그 사람만큼은 아닐 거라고 어째서 그렇게 믿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싸우면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도 빌고, 그러고 나면 잠시 분위기가 좋아지지만 사실 제가 더 맞춰주는 상황으로 넘어가는 것 뿐이었어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괴롭히고 또 괴롭히다가 끝났네요.
그런데도 그걸 제가 붙잡고 매달렸던 기억이 참, 떠올리면 괴롭습니다.
사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서 거의 떠올리지 않아요.
가끔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가끔 근황을 듣곤 하는데 몇 년동안 게임하고 살다가 나중엔 친척 인맥으로 부정 등록한 국가유공자로 공기업 취업도 하고, 1년도 안 되어 관두기도 하고, 또 가점으로 취업도 하고, 다시 관뒀다가 취업했다가, 학교 동기랑 연애하다가 밖에서 만난 다른 여자와 또 바람이 났고, 서로 바람피는 거 알면서도 결혼을 했고, 애까지 낳았다네요.
정말 아무 소식도 안 듣고 싶은데 자꾸 이렇게 소식이 들릴 때마다 제가 과거의 기억들에 분노하며 평화로운 지금의 일상에 오물이 묻는 기분이 듭니다.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라고, 굳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참 이 사람을 생각하면 자꾸만 저주하게 되는 제가 있어요.
진짜 큰 사고가 났으면, 큰 병에 걸렸으면, 오래오래 고생했으면, 바람핀 걸 알면서도 결혼한 그 여자가 이번엔 새로운 남자와 또 바람이 났으면, 심지어는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에게라도 뭔가 문제가 있어서 아주아주 오래오래 그 사람을 괴롭게 했으면, 하는 생각까지 이어지다보면, 이런 끔찍한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질리는 기분이 들어요.
첫 연애에서 상대의 성매매 이야기까지 듣게 될 지 참, 누가 알았겠어요.
20대 초반의 일기들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돌아설 기회가 너무나 많았는데 계속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던 어린 저.
그렇게 6년을 만나고도 끝까지 시원하게 한 마디 못하고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제가 참 어리석고 안타까워서 지금도 분합니다.
이후로도 연애사는 사실 순탄치 않았어요.
좋은 연애로 일단 시작해 보았어야 했던 건지 항상 이런 종류의 사람들과 엮이다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두통약도 많이 먹었어요.
연애 중에 가스라이팅도 많이 당하고, 그런데 늘 또 그 상대들에게 매달리고 또 매달리고.
그 와중에도 겉으로는 언제나 건강하고 적극적인 사람이었고, 그래서 직장에서는 늘 잘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참 젊은 나이에 암까지 걸렸지요.
어쩌면 잘못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두려운 건 오히려 두번째였습니다.
지금까지 온전하고 건강하고 뭐든 할 수 있었는데 그 시간을 그렇게 스스로 옥죄어져 살았다는 게 너무 분하더라고요.
이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나의 소중한 젊은 시간을 왜 그렇게밖에 못 보냈지.
왜 건강한 연애를 하지 못했지.
친구들이나 직장에서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언제나 즐거웠는데, 어째서 연애에서는 이랬을까.
겨우 그게 뭐라고 나는 상대에게 빌고 빌어가면서까지 연애를 했을까.
나는 연애를 하지 않을 때 더 건강하고 행복했어. 난 이제 연애를 하지 않을 거야.
라고, 수술을 들어가기 전에 그런 다짐을 했었습니다.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나고, 아무런 후유증도 남기지 않았어요.
다행히 항암도 없었구요. 물론 추적 관찰은 해야 하지만.
연애 없이 그 이후로 몇 년을 지냈어요.
중간에 서로 호감을 표시하는 상황은 가끔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저는 그 사람들에게서도 이전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본 것 같았어요.
너무나 잘해주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에는 변할 것 같다는 저의 공포심도 있었구요.
그냥, 뭔가 결이 비슷한 느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물론 비슷했기에 저는 엄청 흔들렸지만, 암수술이라는 게 또 크긴 해서 그 때 먹은 다짐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지금의 신랑을 만났고, 엄청 다정하지만 완전히 다른 결을 느꼈어요.
이게 잘 되든, 안 되든 마지막이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연애는 몇 개월만에 결혼을 약속하고, 다음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잘 지내요, 지금은.
시부모님도 너무나 좋으신 분들이고, 계획에 없던 아기도 갑자기 건강하게 찾아와주어 잘 낳아서 예쁘게 키우고 있어요.
언제나처럼 겉으로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고, 이번엔 내면도 충만해요.
살면서 이렇게 충만하게 만족스럽게 살았던 적이 있나 싶을 만큼요.
그냥 너무나 잘 지내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일기장을 열어보아서 그 떄의 제가 이렇게나 지금의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까요.
아니, 오히려 그 때 제가 더 자주 일기를 복기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그렇게 오래 고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고생을 했으니 그만큼 제가 성장을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올 수 있던 거라고 많이도 위로해주는데도, 그냥 지금은 쉽지 않네요.
자꾸만 그들을 저주하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고, 자꾸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서요.
참, 못난 생각에 며칠 째 스스로 괴롭게 하고 있네요.
잘 살아라, 까지는 말하는 건 아니라도 완전히 무관심해질 정도로 마음 속 거리를 두고 싶은데 정말 이젠 한참 지난 일이 지금도 이렇게 기분을 망칠 수 있는 게 참 놀랍네요.
며칠이 지나고 나면 또 잊고 잘 지내겠지만, 또다시 이 기억들이 언젠가 찾아오는 날엔 다시 또 불편하고 힘들까요?
기억을 완벽히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다 지워달라는 기도를 하고 싶어지네요.
신랑에게 말하고 싶지 않고, 갑자기 친구를 잡고 이 모든 이야기를 하기도 힘든 밤에 늘 편안했던 오유에 글을 써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모두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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