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2000년 8월 25일, 곧 보아의 데뷔 13주년이 되는데요. 축하하기 위해 그동안의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1세대 아이돌이기도 하지만 아티스트이기도 한 보아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캐스팅 이야기>
1998년 당시 브레이크 댄서였던 보아 오빠는 백화점에서 하는 댄스대회에 참가하게 됩니다.
따라갔던 보아는 참가하고 싶었으나 아직 어린 나이때문에 잠깐 찬조출연 형식으로 참가하게 되었죠.
(어릴때부터 보아는 노래와 춤에 관심이 많아서 가요톱텐(현재의 뮤직뱅크) 무대를 보고 따라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TV를 보고 따라한터라 안무를 전부 반대로 외워버렸다고 하네요. ㅎㅎ)
춤에 자신있었던 보아는 영턱스클럽이 췄던 일명 '나이키춤'을 보여주었어요.
(나이키 춤을 추는 보아. 백화점때 영상은 없어서 팬미팅 무대영상으로 대체합니다.)
특별 무대가 끝난 후, 연예기획사 15군데에서 명함을 받게 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오디션을 보라고 연락을 준 곳이 SM엔터테인먼트였죠.
오디션을 보러 간날 먼저 이수만씨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오디션을 보러 왔다는 것을 듣고 보아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켰어요.
듣고 나서 "어 그래. 오디션 잘 보고 가라"라는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쨌든 본격적인 오디션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게 됩니다.
당일날 합격 전화를 받게 되었을때 알고보니 이수만씨는 노래로 캐스팅하셨고, 오디션 부에서는 춤으로 캐스팅을 했었는데 보아라는 동일인물이였던거죠.
이런 에피소드끝에 1998년도에 SM에 입사하게 됩니다.
오디션 후에도 타 기획사에서 많은 연락이 왔었는데 입사했다는 소식을 알려주니 소문이 나서 나중에는 축하전화까지 왔다고 하네요.
<연습생과 데뷔>
연습생이라는 단어가 흔하지 않고 10대 연습생은 더더욱 흔치 않았던 시절.
(지금은 보아의 성공으로 조기 트레이닝 시스템이 벤치마킹 되었어요.)
당연하게도 연습생 매니저조차 없었던 시절이였죠.
남양주시에 살던 보아는 서초동 회사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오가며 생활했어요.
학업때문에 일주일에 두세번, 주말에는 내내 레슨을 받고 프로젝트 계획대로 외국어를 배우는등 시키는게 아주 많았다고 해요.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조용히 지냈다고 하네요.
이런 연습생 생활을 2년동안 하면서 그만둘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었지만, 그때 딱 마침 곡 작업하자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데뷔 전에 SM에서는 국내를 넘어서 아시아를 겨냥한 10대 가수가 외국어, 댄스, 노래등 조기 트레이닝중에 있다고 기사를 냈어요.
SM의 비밀병기, 즉 초대형 신비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으로 발표했죠.
2000년도 보아는 1집 [ID ; PEACE B]로 데뷔하게 됩니다.
(아이디피스비 데뷔 무대.)
그러나 너무 과했던 걸까요.
나이가 어린것이 역효과로 작용하고 (10대 아이가 트레이닝속에서 커간다니 너무 불쌍하다는등)
더불어 HOT 해체설까지 나왔던 시점이라 데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보아가 안티팬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했죠.
첫 앨범을 냈지만 많은 기대와 달리 반응은 미적지근했어요.
<그후..>
1집 활동을 끝내고 계획대로 일본에서 데뷔하게 됩니다.
(보아는 1집 반응이 일본에서의 신인가수 입장에서 또 다른 시작을 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와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준것이라고 생각했다네요.)
당시 보아가 에이벡스랑 계약한다고 했을때 솔직히 다들 무시하는 분위기였어요.
한국 가수가 오리콘 차트 100위안에 드는게 힘든 시점이였고, 한국가수로써 응원했던 SES를 보면서 큰 벽을 실감했죠.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그닥 좋지 않아서 한국인이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다는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였죠.
(일본 가요 프로그램 팝잼에 나와 부른 첫 싱글 라이브. 보기에도 긴장감에 떠는 모습이 보인다.)
당시 보아는 귀여움과 방송 이미지로 먹고 사는 기존 아이돌들과 달리 파워풀한 보이스와 춤은 신선했다고 평가 받았습니다.
일본 데뷔 1번째 싱글이 오리콘 차트 20위안에 진입했지만 프로모션에 비해 기대에 못 미쳤던 성적을 내면서 보아는 "나는 그냥 안되는건가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보아는 데뷔 초에는 가성은 되지만 고음이 많이 부족했었는데요.
라이브 공연을 하면서 한 일본 공연 관계자가 "이 친구가 앞으로 콘서트를 하려면 10년이상 기다려야 할것 같다."라고 말해 엄청난 상심을 받았죠.
지방 레코드점과 CD구매 행사같은 홍보를 직접 발로 뛰고, 라이브 스케줄까지 소화하면서 결국에는 쓰러지게 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나중에 잡지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입원하는 내내 병실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해요.
당시 SM JAPAN도 신생회사여서 남소영 이사님도 보아만 바라볼수도 없는 것이고, 매니저는 신인가수를 계속 지킬수도 없는 노릇이였죠.
3번째 싱글을 작업하면서 보아도 이게 마지막 앨범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마침 그때 일본 CF에서 쓸 노래가 필요한데 노래가 너무 없어서 신인가수꺼라도 들려달라해서 "Listen to my heart"를 들려주었고, 이게 CF에 쓰이게 되었죠.
원래 싱글 노래가 아니였던 노래라서 급히 뮤직비디오도 찍고 활동도 전혀 없이 싱글을 발매하게 되었어요.
이때 일본 활동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검정고시 준비겸 한국 2집 준비중으로 귀국했던 보아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차트 3위를 했다는 소식인것이죠.
부랴부랴 일본으로 다시 날아가서 정규앨범으로 다시 발매했는데, 결국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한일 양국을 오가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 첫 정규앨범 [Listen to my heart] 오리콘 차트 1위 달성!)
(Listen to my heart 무대.)
기대하지도 못했던 방송 섭외가 밀려 들어오고, 인기도 절정에 다다랐죠. ^^
이런 인기속에 보아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2집 준비를 하게 됩니다.
2002년도 월드컵때문에 달아올라 있었던 대한민국과 일본에서의 인기가 역수입되어 두번째 앨범 [NO.1]이 발매되었죠.
이 노래는 다들 아실거라고 생각해요. ㅎㅎ
(NO.1 무대. 날 따라오며 비춘건 퐈이널리~~)
(엠넷 뮤직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넘버원 수상)
넘버원 앨범은 2002년 한해동안만 54만장이 팔리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죠.
김영철씨가 명절때마다 따라하던 노래의 역사 또한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
한 일화로 한일 양국에서 대박이 나면서 왕복을 50번 넘게 날아다니면서 활동을 진행하는데
2003년도쯤에 공항에서 체크인할때 대한항공에서 탑승 200번 축하한다고 인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ㅎㅎㅎ
그 이후로 아직까지도 200번대에 머물러 있는데 그 몇년사이에 200번을 오갔으니 얼마나 바쁜 활동을 했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서 정규 2집 [Valenti]를 발매하게 됩니다.
(Valenti 무대.)
이 앨범 역시 발매 일주일만에 6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최종적으로 120만장을 기록하여 보아의 첫 밀리언셀러 앨범으로 장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발매 이후 첫 시티 투어를 개최하게 됩니다. 오사카, 나고야, 도쿄 등지를 돌며 콘서트를 했죠.
(시티 투어 발렌티 무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무난한 컨셉으로 새 앨범을 발매하게 됩니다. 3집 정규 [아틀란티스 소녀]
(제 생각으로는 무난한 부분도 좋지만 보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지 못하는것에 대해서 좀 아쉬웠다고 생각해요. 뒤에 가서 더 덧붙일게요.)
(아틀란티스 소녀 무대.)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앨범인데요. 귀여움 한단어로 다 설명됩니다.
반면에 보아씨는 가장 싫어하는 앨범이라고 하셨는데요.
의상과 가사 그 오글거림이 너무 싫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근데 정작 팬들은 그 부끄러워하는것을 보고싶기도 합니다. ㅋㅋㅋ
(귀염 터지는 밀키 웨이 뮤직 비디오)
보아씨 만약에 이 글 보신다면 고글쓰고 아틀란티스 소녀 춰주세요. ㅎㅎ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올초 서울 콘서트때 보아씨가 "내가 이 나이에 고글쓰고 아틀란티스 할수는 없잖아요!!" 하는 모습이 생각나네요. ^^
저녁먹고 2부에 다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