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쌓이고 풀지도 못하고 돌아 버리겠는데 오늘 학교 제적먹은 R 이라고합니다.
고민 상담을 진지하게 받고 싶은데 상담소에서 1회에 5만원 인가 해서 그돈이면 수면제가 몇알이더라 생각하면서 나왔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이나 다른곳에 고민 상담을 요청했는데 개 쌍욕 처먹고 왜 아직도 살아있냐, 목매고 뒤져라 이런소리 듣다가
멘탈 털려서 여기에 글 남깁니다.
제 인생 어떡하면 좀 풀릴까요...
저는 초등학교때부터 생긴게 재수없다면서 욕을 먹고 자랐습니다.
네...왕따였죠..
그러다 4학년때 전학을 갔습니다.
물론 학교가 아니라 면상을 바꿔야 했지만요...
전학간 학교는 흔히말하는 금수저 학교였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닥하고 학교를 다녔고 곧 왕따가 됬습니다.
그래도 저는 운동을 했었기 때문데 초등학교 졸업할때 키는 178 몸무게는 65키로 정도로 덩치가 컸습니다.
덕분에 셔틀은 면했죠...
그리고 바로옆 중학교를 갔습니다.
당연히 저를 놀리고 괴롭히던 놈들도 같은 학교로 왔죠.
문제는 중학교 1학년 2학기였습니다.
그날도 학교가 끝나고 복싱장에 가는길 제 앞에 자기 형이라면서 고등학생 1명과 딱봐도 담배 피다가 폐암으로 곧 뒤지거나
오토바이 타다가 얼굴 갈갈이 되겠구나 하는 왠 꼴초 한마리가 있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장애인 새끼는 맞아도 않아프지? ㅇㅈㄹ을 하면서 바로 주먹을 날리더군요...
당시에 저는 학교-헬스-복싱장-조깅-헬스-집 이 순서로 학교를 다니던 헬창이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보충제와 단백질을 달고 살았다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항상 나옵니다...)
그리고 한 2시간 개 쳐맞다가 빡쳐서 고딩을 밀고 고딩을 때리면
복싱장에서 쫒겨난다라는 생각에 아무거나 손에 잡힌걸로 옆에 있던 오토바이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거의 7년간 묵혀온 빡침을 담아서 오토바이를 내리쳤는데 옆에 있던 동갑내기 쓰레기가 넘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처음 사람을 팼다라는 쾌감에 주변에 있던 모든 구경꾼, 보고만 있는 경찰새끼, 학교에서 장애인 취급하던 담임
, 이따구로 학교가 굴러가는데 사무실에 쳐 앉아서 고스톱이나 치던 학생주임, 교장, 교감, 저를 때린 2학년을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한 2학년 학생주임
, 길에서 매일 저에게 등신이라 부르던 학교앞 백수새끼, 예전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is 애들장난 ㅇㅈㄹ을 시전하던 당시 학생주임등등
다 팼습니다... 몇시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학교가 여름이라 1학년은 일찍 끝났었고 다 때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은 어두웠습니다.
이후 경찰이 저를 차에 넣고 발로차고 욕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애미 없는 장애인 고아 새끼가 미쳤나 등등)
손에있던 휴대폰으로 그 경찰의 인중과 미간 그리고 정수리를 풀스윙으로 후렸고 바로 수갑채우고 철창안에 넣더군요
그때 뭘 맥였는지 잘 기억은 않납니다만 이후에 부모님이 오실때까지 그 동네 경찰들에게 존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오시고 저를 데려가셨고 가는길에 저에게 맞은 애들 부모님, 맞은 놈들 형 누나들이 부모님 앞에서 개 쳐맞았습니다.
그리고 눈 떴을때는 병원이었죠...
턱부러지고, 목뼈 금가고, 허리 인대 터지고, 비장출혈(?)인가 그거랑, 오른쪽 팔은 으스러지고(저 넘어트리고 차로쳤다는군요)
갈비뼈 2대 나가고 양쪽 큰어금니 부러지고 한 2년 입원한거 같습니다..
퇴원했을때는 복싱장, 헬스장, 운동용품샵등등에서 저를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고 학교는 입구컷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이후 저는 운동을 그만뒀습니다.
아니 부모님이 운동기구 근처에도 못가게 하셨습니다.
제가 또 빡돌아서 집에있던 골프채, 야구빠따, 볼링공, 가스토치, 플라스틱 표창, 부탄가스 등등을 들고 학교를 엎어버렸거든요...
아마 당시 시세로 학교에 제가 지랄해서 피해본 금액이 거의 2천은 가볍게 넘지 않았을까...
다행이 방학이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만...
중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죠...
그이후 제가살던 동네에서도 저를 두려워 하기 시작 하더라고요...
근데 그럴만도 했던게 부탄가스, 쇠구슬, 엔진오일, 아빠 라이터 기름등등으로 사제 크레모아를 만들어서 자살폭탄 테러를 시도했으니...
ㅎ... 지금보면...네....저 ㅁㅊㄴ 맞는듯 합니다...
그 이후 재활치료, 정신과 상담 등을 통해서 저는 기숙학교에 보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게 나을것 같다면서 부모님은 저를 집에서 차로 약 3시간 떨어져있는 산속 대안학교에 버리고 가셨습니다
추후에 들어보니 가시면서 우실줄 알았는데 에버랜드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 저는 180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운동도 접었지, 공부는 갖다버렸지, 하루에도 몇번씩 자살시도를 하지, 학교에서 고아취급에, 선생들도 정식 선생이 아닌 일반인에,
교장이란 놈은 학생들한테 농사를 시키지 않나, 등산을 시키지 않나...하....
그렇게 놀다가 검정고시를 공부 하나도 않하고 바로 패스해버리고 부모님과 손절후 미국으로 그냥 갔습니다.
그냥 가보고 싶더라고요... 자유롭고 무기앞에 평등한 현실gta 같은 곳이라길래
아 저곳이 지옥이구나 하면서 일단 갔습니다.
돈은 대안학교에서 대충 알바하면서 꿍쳐놓은 돈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공항에서 입구컷 당하려던 찰나에 어떤 외국인 아재가 오더니
자기가 사업차 미국에 약 3개월간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길래 따라갔습니다.(제가 이때 미친게 틀림없습니다)
다행이 진짜 사업차 가셨던 분이셨고 나중에 알았지만 전직 군인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 분과 함께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한 공과 대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또래들이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울었습니다.
진짜 펑펑울었습니다... 다 필요없고 가족들이 저를 버렸다는 생각에 펑펑울었습니다.
그후 그 아저씨가 저를 데리고 한 식당에서 제가 왜 혼자 미국에 가려했고.
지금까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듣더니 자기가 저의 부모님과 말을 해보겠다고 하셨고 한국으로 돌아와 저의 부모님과 만났습니다.
그 후에 저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밝았던 순간이 왔습니다.
그분은 현재 교사셨고 미국의 한 군사학교에서 근무중이셨던 분이셨습니다.
그후 저희 부모님은 저를 미국에 보내게 되었고 저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괴로웠죠...
영어는 간단한 대화밖에 할줄 모르던 저에게 미국 유학이라뇨....
처음 1년은 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친구가 생기고 영어를 한국어보다 더 편하게 말할정도가 되니까 어느정도 편해지더군요..
기숙사에 살면서 않하던 운동도하고 군사학교라 제가 배우고 싶던 운동도 실컷하고 행복했습니다.
졸업반이 되자 대학이 문제였습니다.
학교성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평균 b+ 였고 대학교도 충분히 갈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번 졸업식에도 우리 부모님의 얼굴은 없구나 라는 마음으로 졸업을 했죠..
그후 감정을 숨기고 대학에붙고 졸업을한 저는 보스턴에 있는 이름 들으면 아 거기!? 하는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생활은 네 다들 아시죠..?
낭만과 행복? 그딴거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학원에서 좀비가 되어갈때쯤 저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있었고 미국에서 rotc를 통해 군대도 패스를 했죠
그후 제 인생은 최고의 날을 매일매일 찍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추락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부모님의 오랜만의 메세지 한통이 휴대폰에 와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문자였고 내용은 어머니가 아프시다고 하시더군요...
그후 저는 대학원 마지막 레포트를 던지고 바로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무조건 간다 라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뇌암이시더라고요..
저는 한달뒤에 비자문제로 떠나야 했고 어머니는 제가 떠나는 당일날 수술을 하셨습니다.
미국에 도착하고 들려온 소식은 수술이 잘 않됬다는 아버지의 문자 한통이 메세지로 와있었습니다.
그후 저는 다니던 회사 때려치고 바로 입대했습니다.
군사 학교 출신에 rotc 까지 마치고 입대를 지원했기때문에 바로 입대를 할수있었죠.
당시생각은 군대에가면 거지같은 사회에서 도망치고 부모님 병원비를 보낼수 있겠다라는 현실 도피를 선택한것이었고
입소한 첫날 도피 장소를 잘못 선택했음을 느꼈지만 이미 늦었죠...
사람이길 포기하고 미친듯이 욕먹고 훈련하고 욕먹고 훈련하고를 반복하다보니
1lt 를 달고 저는 30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 급여의 10% 빼고는 전부 한국으로 보냈고 어머니의 소식은 나중에 들었습니다.
수술이 잘됬지만 한쪽 귀가 않들리고 공황장애와 지속적인 두통이 있을거라고..
그후에 미친듯이 일하다보니 진짜 곧 30이더라고요...
그리고 전역을 했죠...
전역하고 저의 꼴을 보니 처참했습니다...
오른쪽 무릎은 인공 관절에
왼팔에는 자해 흉터에 등에는 총상부터 이것저것 찔린 흉터에 시력은 최악까지 떨어져서 두꺼운 네모안경을 끼고
이빨은 임플란트가 8개 등등 이쯤되면 인조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자살시도? 많이 해봤습니다 위세척만 3번 응급실행만 20번이 넘었죠...
이 글에는 다 못적었지만 진짜 별에별일이 다 있었습니다.
그렇게 전역을 한저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부모님과 연락도 않하고
주변친구들은 자신의 짝과 함께 떠나고 혼자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한국의 대학교에 가고싶어졌고 대학교 시험을 봐서 서울의 한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자세한건....잘모르겠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것도 공허함, 술기운에 미쳤었나봅니다....)
그렇게 미국에 갈때와 같이 무작정 왔습니다...
한국에 도착을하자마자 대학교 mt 에 가게되었습니다...(캐리어끌고 학교 갔습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대학을 입학한 늙다리가 되었고 투명인간이 됬죠...
사실 투명인간이라 편했습니다.....1학기는
2학기부터 조져짐을 느꼈습니다.
한국에 왜왔냐는 부모님의 끊임없는 잔소리, 싸가지는 밥말아 쳐먹은 바로밑 동생,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학교에서는 양놈, 코쟁이, 군바리, 매국노 등등 으로 교수들이 개무시를 했죠...
그러다 학교 신문사에 있는 한 학생이 이러더군요.
사기꾼, 인생 거의 베어그릴스, 생긴거 신박하네, 한국말 못하는 한국인등등 이 소리가 제 페이스북, 인스타, 트위터, 제 개인 사이트
, 제가 운영중인 카페, 블로그, 유튜브, 애타 등에서 ㅈㄹ을 했고 한국인 특유의 물타기 덕에 학교를 못나가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인생 한심한 벌래새끼, 왜사냐, 나가 죽어라, 돈이나 벌어오지 뭔 학교를 다니겠다고 ㅈㄹ이냐 등등
ㅎ... 그렇게 한국을 떠나려던 찰나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이 제가 학교에서 잘렸으면 좋겠다고 신고를 했답니다...
그리고 오늘 잘렸죠...
그리고 covid-19 때문에 미국 돌아가면 한국에 다시 올수 있을까 하고요...
그리고 저와 부모님은 그저 돈 바치는 노예정도로 유지 될것 같고요...
여자친구...있습니다...아마도요....
네.....주위사람들은 제가 사회악이고 ㅁㅊㄴ이라고 자살하라는데 도데체 뭐가 문제이고 뭐때문에 저는 항상 ㅁㅊㄴ 이었을까요....
제 짧은 한국어 실력으로 읽으시다가 뒷목 잡고 맞춤법 ㅅㅂㄹㅁ 라고 생각하시는 모든분께 죄송합니다...
han gook auh sibal john na gae ga ta sibal
제가 지금 사용하는 한국어의 90%는 콰뚜릅, 가브리엘, 한국 군가로 배웠습니다.
아 그리고 주작이다, 소설이다, 네 잘봤고 그래서 이소설 이름이 뭐죠?, 허언증 말기네 ㅉ 이딴글 적지 마세요
내가 찾아가진 못하지만 경찰이 찾아간다 쒸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