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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2월. 서적수입 금지가 풀리면서, 최대 백과사전 중 하나인 <고금도서집성>이 조선에 들어왔다. 정조 임금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우문지치(右文之治, 학문을 드높이는 정치이념)을 표방했고, 이에 부응하듯이 보여준 첫 성과가 바로 <도서집성>의 구입이었다.
영조 말년이던 1771년(영조 47)부터 조선에는 서적 수입이 금지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주린이 지은 <명기집략>은 청나라에서 가져온 책인데, 여기엔 태조 이성계가 고려 권신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정통성 문제에 민감했던 영조 임금을 자극했다. 영조는 이와 관련된 인물들을 처벌하고 차후로, 중국으로부터 신서를 사오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린다. 책을 들여올 경우, 현직 관료는 종신금고에 처하고, 벼슬 없는 선비는 유생명부인 청금록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정조 이산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반전한다. 최신 학술 동향에 관심이 많았던 이 젊은 군주는, 세계 최대의 백과사전인 사고전서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행단으로 하여금 이를 구입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고전서는 아직 간행중이라 구입하지 못하고, 대신에 도서집성을 구입한다. 이런 사정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
도서집성의 제목을 5022번이나 쓴 송하 조윤형
원교 이광사의 제자인 송하 조윤형은 글씨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의 아버지인 조명교도 글씨를 잘 썼다. 조윤형의 사위는 조선 말기 대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자하 신위였다.
당시, 왕실에서는 원나라의 조맹부체(안평대군이 조맹부체를 잘 썼다고 한다)를 전수받고, 대대로 익혀 왔다. 하지만, 정조 임금은 조맹부체보다는 당나라 시대 유공권체와 안진경체를 좋아했다고 한다. 조윤형이 안진경체와 유공권체를 잘 써서, 정조의 총애를 받은 것이다.
도서집성이 들어오자, 조윤형은 5022권이나 되는 책의 제목을 하나하나, 사자(寫字: 글자를 적음)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40일을 꼬박 매달리고서, 조윤형은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덕무의 절친이었던 유득공의 저서 <고운당 필기>에 전하는 내용이다. (참고 문헌: 18세기 동아시아의 백과전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노대환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도서집성>을 완독한 유일한 인물, 이덕무
다산 정약용, <기기도설>을 토대로 거중기를 만들다.
수원화성에서 사용된 <거중기>, <녹로>, <유형거>를 재현한 디오라마(diorama)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해보면, <기기도설>의 주인공 테렌츠(Johann Terrenz Schreck, 鄧玉函, 1576~1630)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친구이자 동료라는 사실이다. 1603년 이탈리아 Padua 대학의 학생이 된 테렌츠는 그곳에서 갈릴레이를 만난 것이다. 테렌츠는 의학을 전공했지만, 갈릴레이를 만나 천문학에도 정통할 수 있었다. 또, 테렌츠는 유명 천문학자 케플러와도 친분이 있었다. 천문학에 의문이 생길때마다, 그는 케플러에게 편지를 보내 의문점을 해소하기도 했다.
테렌츠는 어학에도 매우 뛰어났는데 라틴어, 독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고대 아람어까지 구사할 수 있는 멀티링구얼이었다. 예수회 신부가 된 테렌츠는 마테오 리치의 부름을 받아, 마카오로 가서 중국어를 배웠다.
중국 본토로 들어간 후엔 본격적으로 그는 중국인들에게 천문학을 전수하기도 하며, 서양의 여러 과학 기술들을 중국어로 번역하며 책을 만들기도 했다. <기기도설>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천주교 신부 테렌츠의 설계이론을 정약용이 직접 조선에서 구현했으니, 다산 정약용이 한때, 천주교 신앙에 관심을 지녔던 인물이었던 점을 상기해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 역사만화가님 http://gall.dcinside.com/cartoon/4248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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