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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data_1779861
    작성자 : 흙향기
    추천 : 0
    조회수 : 1980
    IP : 210.95.***.166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8/11/05 15:03:40
    http://todayhumor.com/?humordata_1779861 모바일
    칼 가는 귀신
    옵션
    • 창작글
    정양문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연모와 태자가 함께 말을 타고 웅진에 왔다. 삼국의 가장 신성한 산인 계룡산에서 훌륭한 영감을 얻어 일월오봉도를 그리기 위해서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 안심하고 사비성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다음날 길을 떠났다. 그들은 도중에 나무그늘에 앉아 싸 온 주먹밥을 먹은 다음 천천히 굼벵이 걸음으로 잡담을 하면서 한가하게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탄천 송정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날이 어두워져서 잠자리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태자가 조금 걱정스런 얼굴로 연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밤이 되었으니 내일을 위하여 쉴 곳을 찾아야하오.” 그 말에 연모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근심스런 표정을 보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여기 시골에서 마땅한 잠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사옵니다.”
    두 사람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잠잘 곳을 찾았다. 그러나 사방은 어둠에 싸여 있어 좀처럼 여관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바로 그때 저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하나 번쩍였다. 그것을 발견한 연모가 환성을 지르며 말했다. “와아! 이제 살았습니다. 저기에 잠잘 곳이 있습니다.” 그 말에 얼굴이 밝아진 태자가 연모를 재촉했다. “어서 저기로 갑시다.”
     

    둘은 말을 몰아 조그만 창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조촐한 여관의 앞에 도착했다. 그 여관의 현판이름은 계백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연모가 힘껏 문을 두드리며 안에 주인 계시오.”하고 주인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없었다. 다시 그가 더욱 세게 문을 두드려도 역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평소 짜증을 잘 내는 태자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출입문에 달려들어 아예 문을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나는 백제의 태자요, 어서 문을 여시오.” 그러자 갑자기 허공에서 휙 하고 음산한 바람이 불어와 여관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이 안에서 소리 없이 열렸다. 기괴한 느낌이 든 두 사람이 꺼림칙함을 참고 가까이 다가가자 섬뜩한 표정의 사내가 말없이 서 있었다.
     

    연모가 용기를 내어 주인을 보고 물었다. “오늘밤 여기에서 쉬어도 되겠소?” 그 말에 주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였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자 주인이 방을 안내하였다. 연모가 여관비로 호주머니에서 양나라 동전을 서너 개 꺼내주었지만 주인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방에 들러온 두 사람이 이부자리를 펴고 막 잠이 들려고 하였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쓱쓱! 쓱쓱! 쓱쓱!”하고 칼을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하도 섬뜩하여 두 사람은 당장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칼을 뽑아들었다. 어디 자객이 들어 자신들을 죽이려고 칼이라도 갈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한 주인이 두 사람을 찌르려고 칼을 가는 것인가.
     

    둘이 숙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어디선가 진한 백합향기가 솔솔 풍겨왔다. “킁킁!” 코를 벌름거리던 태자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하하하! 이거 귀신에게 홀렸나?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잖아?” 그 말에 연모가 신중한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 “조금 더 있어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우리의 목숨이 날아갑니다.” 바로 그때 어둠속 야트막한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돌이 장승처럼 두 사람의 눈에 나타나면서 다시 음산한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쓱쓱! 쓱싹! 쓱쓱! 쓱싹!”
     

    놀란 두 사람이 칼을 비껴들고 석상 앞으로 가볍게 다가서며 외쳤다. “누구냐?” 하지만 칼 가는 소리가 뚝 그치더니 이번에는 섬뜩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흑! 흐흑!” 온몸에 소름이 끼친 연모와 태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칼을 치켜들고 나는 듯이 석상 뒤로 들어섰다.
     

    !” 혹시나 했는데 역시 조금 전에 보았던 괴이한 여관주인이 선돌 뒤에 우뚝 선 채로 선돌에다 대고 손에 단단히 쥔 단검을 섬뜩한 소리를 흘리며 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태자가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주인장! 여기서 뭐하고 있소?” 하지만 주인은 날카로운 눈길로 태자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연모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 혹시 그 칼로 우리가 잘 때 방에 들어와서 찌르려는 것 아니오?”
     

    그러자 주인이 칼 가는 것을 멈추고 빙긋이 웃었다. 그것을 본 태자가 화가 나서 칼을 겨누면서 외쳤다. “내 말이 우습게 들리나? 어서 말을 해. 우리를 죽이려 했지?” 그러자 주인이 태자를 섬뜩하게 노려보며 단검을 석상에 던졌다. 그 순간 주변에 가득하던 칠흑 같은 어둠이 갑자기 시뻘건 핏빛으로 변하면서 석상이 크게 흔들리고 양쪽으로 쪼개지더니 그 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거대한 산만큼 자란 석상의 갈라진 곳에서 창칼을 든 수천 명의 병사들이 우렁찬 함성을 지르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와아! ! !” 그 병사들은 하나같이 시퍼렇도록 창백한 얼굴에 모두 검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 신병(神兵)이다.” 놀라 뒤로 나자빠진 연모와 태자가 주인 쪽을 바라보니 그도 역시 검은 미늘갑옷을 위엄 있게 잘 차려입고 병사들 앞에 서서 장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주인이, 아니 정체모를 장군이 연모와 태자를 칼끝으로 가리키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백제의 용맹한 병사들이여! 나 계백이 명령하노니 수상한 저자들을 사로잡아라.”
     

    그러자 두 사람을 지켜보고만 있던 이상한 모습의 신병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와아!” 너무나 놀란 연모와 태자가 칼을 휘둘러 적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정신없이 마구 칼을 휘두르자 가까이 접근했던 신병들이 섬뜩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으악!” “!” “!” 하지만 쓰러진 병사들은 죽어가지 않고 조금 있다 다시 벌떡 일어나서 계속 두 사람을 공격했다. 점점 지쳐가는 연모와 태자는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가다간 두 사람 모두 신병들에게 결국 목숨을 잃을 것이다.
     

    바로 그때 태자의 머리에 어릴 적부터 몸에 지니던 귀신 쫓는 부적이 생각났다. 그는 재빨리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 연모에게 건네주면서 급히 말했다. “연모! 신병들은 무술에 능한 내가 맡을 것이니 어서 부싯돌로 이 부적을 불사르시오.” “, 알았습니다.” 태자가 시키는 대로 연모는 호주머니에 있던 부싯돌을 쳐서 부적에 불을 붙였다. “!” 부적이 불에 타오르자 악착같이 몰려들어 창칼을 휘두르던 신병들이 갑자기 무기를 놓치고 오싹한 비명을 지르면서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아!” 멀리서 새까맣게 몰려들던 신병들도 모두 비명을 지르면서 얼굴을 가리고 바람처럼 도망쳤다.
     

    연모가 아직도 숨을 헐떡이며 태자에게 말했다. “! ! , 부적이 아니었으면 오늘 정말 죽었을 것입니다.” 그 말에 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것들은 모두 신병이라 우리가 싸워서 도저히 이길 수 없소.” 두 사람은 겨우 한숨을 돌리고 얼른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신병들을 헤치고 어둠 속을 무작정 달렸다. 비록 부적이 타오른 덕분에 신병들이 감히 달려들지는 못했지만 사방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저 앞에 선돌이 나타나면서 그 너머로 밝은 빛이 조금 스며들어왔다. 그것을 본 연모가 태자에게 황급히 말했다. “바로 저 선돌부근으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빛이 보이지를 않습니까?” 그 말에 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귀신과 빛은 상극이니 그곳밖에는 길이 없소.”
     

    두 사람이 선돌을 향하여 힘껏 달려가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변에는 계백과 수백의 신병들이 희미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데 갑자기 신병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까보였다. “! 왜 이러지?” 연모와 태자가 하도 어이가 없어 멍하니 있자 신병들은 엉덩이에 힘을 주고 한꺼번에 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쁘애~~ 뜨애~~ 쯔애~~”
    방귀소리는 이상하게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비파소리처럼 사방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당연 썩은 똥냄새가 진동할 것이라고 생각한 두 사람은 코를 힘껏 쥐어 막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역겨운 구린내가 아닌 상긋한 백합향내가 콧속에 스며들어 와 그들은 정신이 온통 황홀하고 몽롱해졌다.
     

    신병들의 엉덩이에서 계속 뿜어 나오는 백합의 지독한 향기는 두 사람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온몸 구석구석에 파고드는 그윽한 향기에 매혹되어 눈알이 핑 돌아가고 입이 떡 벌어진 그들은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천지를 진동하는 향기를 따라 하늘에서도 감미로운 음악이 하늘하늘 내려오는 것 같았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단단히 도취해버린 그들은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바지를 추스르고 다가온 신병들이 그들을 손쉽게 밧줄로 꽁꽁 묶어 계백장군 앞에 끌고 갔다.
     

    장군이 선돌 앞에 끌려온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누가 백제의 태자라고 하였는가?” 그 말에 아직도 지독한 향기에 취한 태자가 해롱해롱한 표정으로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내가 태자요. 왜 그걸 묻는 거요?” 그러자 주변의 신병들이 창칼을 태자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이 정신 나간 놈은 태자를 사칭하고 다니는 사기꾼이니 죽여 없애야 합니다.” “그만!” 장군이 손사래를 치자 신병들이 멈칫하며 창칼을 거두었다.
    장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태자에게 물었다. “그대가 백제의 태자라면 부왕은 누구요?” 그 물음에 연모가 옆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대왕께선 성왕이라고 하십니다.” 그 말에 계백의 눈이 커지며 갑자기 그가 태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태자마마! 몰라 뵈어서 정말 송구하옵니다. 소신이 궁궐에 자주 출입하면서 역대 임금의 초상화를 본 일이 있는데 태자께선 분명 성왕의 후대 왕이신 위덕왕이십니다.”
     

    놀란 쪽은 태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내가 왕이 된 후의 명칭을 벌써 알고 있단 말이오? 확실히 그대는 귀신이구려.” 그 말에 계백은 태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귀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이렇게 불편하게 하여 드려서 정말 황송합니다.” 그는 당장 두 사람의 결박을 풀어준 다음 선돌 앞에 앉히고 자신은 여전히 태자 앞에 무릎을 꿇고 말을 계속했다. “소신은 태자마마가 즉위하신 후 백년 이후에 오천 결사대와 함께 황산벌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세상을 떠난 계백입니다. 몸은 죽었어도 소신의 원혼은 황산벌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궁금해진 연모가 따져 물었다. “헌데 장군께선 황산벌에 아니 계시고 이곳에 나타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계백이 멋쩍은 듯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이곳은 소신이 황산벌에 출전하기 전에 결사항전의 마음을 다지며 칼을 갈고 갔던 곳입니다. 그전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으려고 가족들을 모두 처단하였죠.”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얼른 태자가 다가와 얼음처럼 차가운 계백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의 말을 하였다. “장군! 장군의 충성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내가 알고 있소. 이제는 원한을 풀고 하늘로 올라가야지 않겠소?” 그 말에 계백이 아직도 훌쩍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운 말씀이오나 소신은 오천신병과 함께 황산벌에서 신령으로서 지내고 있어 혼자 쉽게 떠날 수 없사옵니다. 이곳은 보름달이 떴을 때에만 찾아와 우리 백성들의 소망을 성취시켜 주는 일을 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 말에 역시 호기심이 많은 연모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어떤 일입니까?” 그러자 계백이 입가에 잔잔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소신이 하늘에 올라가 삼신할미에게 부탁을 드려 아이를 못 낳는 부모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특히 아들이온데 소신과 죽음을 함께 한 이 땅의 충성스러운 사내들을 위한 보은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태자가 무릎을 치면서 감탄을 하였다. “장군의 충성은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구려. 염치없지만 나도 한두 가지 물어보아도 되겠소?” 그 말에 계백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위덕대왕.”
    태자가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조금 쑥스러운 말이지만 아까 신병들의 엉덩이에서 뿜어져 나온 방귀가 구린내는 안 나고 백합향기만 가득한 건 무슨 까닭이오?”
     

    그 물음에 계백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송구하오나 삼신할미에게 부탁을 드릴 때에 그 향기를 잘 써 먹었습니다. 삼신할미도 신령이고 신령들도 그윽한 백합향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또한 소신이 아까 단검을 선돌에 갈고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그 말에 궁금해진 태자가 물었다. “선돌에 칼을 갈면 향기가 솟아나오는 거요?”
    그러자 계백의 신령이 조용히 대답했다. “이 선돌 전체가 백합향기가 뭉쳐진 신비한 돌입니다. 소신이 황산벌에 출전할 때는 비장한 마음으로 향기를 들이마시며 장검을 갈았지만 죽은 뒤엔 이곳에 와서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게 돕는 일을 하느라 향기를 피우며 단검을 갈았던 것입니다. 부하병사들도 마찬가지로 선돌의 향기로 칼을 갈다 보니 항상 온몸이 백합향기에 묻혀 있어 방귀도 악취 대신 향기가 진동하게 되었사옵니다.”
     

    그 말에 옆에서 연모가 역시 물음을 던졌다. “아니 장군이 산모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주기라도 하였단 말입니까?”
    그러자 계백이 부드러운 표정을 연모에게 보내면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귀신들은 표시 안 나게 사람의 몸속에 들어갈 수도 있고 몸을 통과할 수도 있습니다. 소신과 부하들이 향기가 듬뿍 담긴 칼을 잘 갈아 두고 아기가 거꾸로 뒤집혀 나오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경우 향기로 산모를 마취시킨 다음 전혀 아프지 않고 보이지 않게 칼을 대어 아기를 꺼내줍니다.”
    그 말에 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이 마르도록 계백을 칭찬하였다. “칼의 달인인 장군이 적을 죽이는 것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도 잘 하시는구려.”
    성은이 망극합니다.”
     

    흐뭇한 얼굴로 계백을 바라보던 태자가 연모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도 나라를 위하여 일월오봉도를 그리러 가야 하는데 오늘 푹 자야 되지 않겠소?” 그 말에 연모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분들과 헤어져야 한다니 정말 섭섭합니다.”
    그러자 계백이 두 사람을 다정히 바라보며 말했다. “떠나고 만남은 우주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소신이 황산벌과 이곳에서 이 나라 백제의 무궁한 발전을 항상 도와드릴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일이시라면 절대 서운해 하시지 말고 제가 길을 안내하여 드릴 터이니 내일 일찍 출발하소서.”
     

    말을 마친 그는 밝은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면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들이 선돌을 지나 다시 계백장이라는 현판이 보이는 숙소에 도착하였을 때 계백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인사를 하였다. “대왕마마. 안녕히 가시옵소서.” 그 말에 태자가 시리도록 차가운 귀신 계백의 손을 부여잡고 얼굴에 가득 웃음꽃을 피우며 말했다. “고맙소. 내 오늘 일을 잊지 않겠소. 후세 사람들에게 일러 장군의 제사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겠소.”
     

    성은이 망극합니다.” 말을 마친 계백은 다른 신병들과 함께 선돌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하염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연모가 먼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금 잠 안자고 무엇을 한 거죠?”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든 태자가 ! 내일을 위하여 잠을 자야 하는데.”하고 무릎을 쳤다.
     

    두 사람이 계백장이라는 숙소를 찾아 돌아오는데 그것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고 사방에 불빛 한 점 없이 온통 어둠만 가득할 뿐이다. 조금 있으려니 멀리 동편에서 희끄무레한 여명이 비치며 새벽닭 우는 소리와 함께 날이 밝아왔다. 연모가 그것을 바라보다 태자에게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벌써 날이 밝았습니다. 이제 출발하여도 되겠습니다.” 그 말에 태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럽시다.” 그들은 나무에 매어놓았던 말고삐를 풀고 말을 타고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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