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몽골 3일째(6월 26일),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몽골.
전날 고생을 많이 했는데도 아침에는 생각보다 개운하게 일찍 일어났다. 텐트 걷어서 짐싸고 출발 준비하니 7시다.
평지를 달리다가 긴 오르막을 오르니 정상에 저런 돌무더기가 있었다. 몽골식 서낭당인 '오보'였다.
큰 오르막 끝이라 힘들어서 좀 쉬면서 오보 구경을 했다. 몽골 관련해서 텔레비젼에 뭐 하면 거의 나오는 것을 봐서 기념으로 사진 찍었다.
사람들이 여기서 소원을 많이 비는지 돌무더기에 버린건지 가져다 놓은건지 뭐가 많이 있었다. 사탕도 있고 과자, 빵도 있고 차(tea),
낡은 운전석 커버, 액수가 작은 지폐가 있었다.
요거는 태양열로 충전하는 거 같은데 가운데 둥그런 부분이 빙글 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마니차'라고 하는데 저 안에 불경이 들어 있어서 돌아가면서
그 불경이 세상에 퍼진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꽤 여러개가 있었는데 주먹만한 것들이 지잉 지잉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게 귀여웠다.
구름이 많아서 어제보다 덥지는 않은데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는 역시 힘들다.
갑자기 갈림길에서 포장 도로가 나왔다. 처음에는 좋아라 했는데 스마트폰 나침반으로 보니 내가 가야하는 서북쪽이 아니라
완전 동쪽 방향이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했다. 방향도 틀린데 도로라고 좋다고 무작정 따라 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물어 보기로 하고 차를 기다렸다.
위 사진은... 저 기둥에 자전거를 기대 세워 놨는데 바람이 불어 자빠졌다. 가방들이 뭐거워서 그런지 저렇게 자빠진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방향은 아닌것 같았지만 포장 도로를 쉽게 포기할 수 없어 한 30분 기다렸는데 차는 오지를 않는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어 결국 포장 도로는 포기하고 서북쪽 비포장 길을 따라 다시 출발했다. 쉽게 가려다 골로 갈수는 없었다.
길 옆에 많은 염소인지 양인지 다리들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몸통은 다 먹고 못먹는 다리만 갖다 버린거 같았다. 역시 신기해서 사진찍으며 좀 살펴봤다.
점점 더워져서 힘들고 배도 고프고.. 실빵구도 나서 타이어 바람이 빠지는데 밥 먹으면서 때울 생각으로 펌프로 바람만 넣고 달리고
넣고 달리고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 사진의 저 간판이 보였다. 와서 보니 간판 옆쪽에 도로가 있었다.
정말 제대로 차선까지 그려진 넓은 도로였다. 이제 지겨운 비포장 길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신이 났다.
길 없이 여기 저기 달리던 차들도 이곳으로 모여들어 도로를 타고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며 가고 있었다.
도로 뒷쪽으로 아직 도로 포장이 안된 길은 저렇게 흙을 쌓아 막아 놨다.
신나서 혼자 사진찍고 룰루랄라 하고 있는데 저쪽 멀리 큰 트럭이 두대 서 있는 곳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를 보고 팔을 크게 흔들며
뭐라 뭐라 크게 소리쳤다. '야~ 저리가 저리가!' 하는거 같기도 하고 '야~ 여기로 와바!' 하는 거 같기도 했다. 확실히 알 수 없어
혹시 하는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트럭 가까이 가 보았다.
우선 내가 아저씨 말을 못 알아 듣는,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솔롱고스 솔롱고스'(한국사람) 했다.
아저씨는 나에게 사발면을 보여주며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사발면이 너무 먹고 싶어 좋아라 하며 고객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나는 사양은 미덕이라는 생각으로 두세번 사양을 기본으로 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여기서 괜히 어설프게 사양했다간 사발면 날아갈것 같아서 무조건 좋다고 했다.
아저씨가 차안으로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가니 다른 사람들도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마시라고 뜨거운 물도 주고 새로 가스렌지로 물도 끓여 주었다.
나는 사발면이 익는 동안 아저씨에게 앞으로 울란바트로까지 가는 길이 어떤지 포장된 도로, 그냥 흙길을 손짓 손짓해가며 물어봤다.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 주는데 포장, 비포장길이 반반 정도란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하더니 금방 출발 하려고 했다. 내가 고맙기도 하고 아쉬워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한장 찍었다.
저 운전석에 있는 아저씨가 나 불러준 아저씨. 다른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게 대해 줬다.
역시 중국하고는 틀리고, 몽골 사람들이 생김새도 그렇지만 생각하는게 예전 한국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잘 가요 아저씨.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세요~
짭짤하게 국물있는 사발면도 잘 얻어 먹고 포장 도로도 만났겠다 기분좋게 간판 그늘 밑에서 빵구를 때웠다.
빵구를 때우면서 자전거를 보니 알류미늄으로 된 앞 짐받이가 조금 깨져 있어서 가지고 있던 케이블 타이 몇개로 꽉 묶어놨다.
내팽겨 치듯이 몇번 심하게 넘어지면서 받은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것 같았다.
도로를 따라 달리니 역시 좋았다. 힘들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풍경이 다시 제대로 눈에 들어 오는 것 같았다.
한 가족인지 길 옆으로 울타리 설치하려고 열심히 땅파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불러 세운다.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나보고 사진 찍어 달랜다.
여행 다니면서 나도 사람들 사진 많이 찍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어 사진을 찍었다. 근데 저 키큰 아저씨가 어디서 봤는지 나보고
사진 뽑아 달라고 했다. '없어요 없어요'하니 많이 아쉬워 한다.
지평선, 파란 하늘에 동동 구름. 내가 여행 오기전 꿈꾸던 한 장면이다.
멋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고..
여유롭게 놀고 있는 낙타도 줌으로 땡겨 찍고..
울란바트로가 고도가 높다고 하더니 심하지는 않아도 전체적으로 오르막 길이 많았다.
끌바 해야하는 곳도 가끔 있었다. 한곳에서 좀 길게 끌바를 하고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나라 구형 그랜져가 한대 서 있고 우리나라 부산 건달처럼
생긴 아저씨가 운전석에 앉아 나를 쳐다 봤다. 내가 먼저 살짝 고개 인사를 하니 뭐라고 한다. 나는 또 '솔롱고스'하고..
근데 이 아저씨가 어설프지만 한국말을 한다. 차 기름이 떨어져서 몇시간째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나도 자밍우드부터 왔다고 내 설명하고..
좀 얘기하다가 아저씨가 물 있냐고 물어 본다. 자기 물은 다 먹었다며 빈 페트병을 보여줬다. 그러고 보니 더위에 많이 지친 얼굴이었다.
내가 먹던 물은 중국에서 수돗물을 받아온거라 냄새가 난다고 하고 가방에서 500짜리 다른 생수를 꺼내 주었다.
지나온 길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해도 많이 기울고 지치기도 했지만 길이 좋으니 별 걱정이 없었다. 어제만 해도 고생길에 사진 찍을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사진 찍을려고 자주 멈춰섰다. 이시간이 되니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었다. 30분에 한두대 정도..
자전거도 한장..
해는 지평선으로 넘어 갔지만 어둡지는 않아서 조금 더 가려고 계속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뒷쪽에서 차들이 오더니 내 옆에 섰다.
아까 그 아저씨 그랜저도 있었다. 나는 기다린다는 친구가 기름을 가지고 오면 기름 넣고 다시 운전해서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 있는 차들을 보니 좀 웃기게도 맨 앞에 트럭이 와이어로 묶어 그랜저하고 다른 승용차 두대를 끌고 가고 있었다.
그랜저 아저씨가 차에 타라고 하고 트럭에서 내린 다른 아저씨는 같이 자전거를 실어 주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이제는 길도 괜찮고 물도 어느정도 있고 내일 정도 샤인샨트라는 마을에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막을 고생해서 온게 아까워서라도 그냥 계속 자전거를 타고 가고 싶었다.
몇번 더 차에 타라고 하던 아저씨도 계속 사양하니 '이상한 놈일세' 하는 표정이었다.
좀더 가다가 어두워져 길 옆에 배수관 물 나오는 부분이 평펑하게 시멘트로 되어 있길래 그곳에 텐트를 쳤다.
라면을 끓여 먹는데 액체 연료 버너를 처음 써보니 처음에 끄을음 나고 불이 안 붙어 고생했지만 금방 익숙해 져서 한개 더 끓여 먹었다.
물티슈로 대충 몸에 소금기 닦아내고 마지막으로 자기전에 오줌 누고 자려고 텐트를 나왔다가 별들을 보고 놀랐다.
한꺼번에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별들, 황홀한 은하수.. 내가 꿈꾸던 밤하늘이 거기 있었다.
이 큰 공간을 별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 것도 놀랍고 날아가는 위성이 보이는 것도, 내가 지금 여기에 서서 별을 보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 동안의 고생을 한번에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
이동거리 7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