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첫 환자를 확진하는 데 하루 반을 허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본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병원 측이 “메르스가 의심된다”고 보건 당국에 보고했으나 환자가 다녀온 바레인이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메르스 장악에 가장 중요한 초기에 하루 반을 그냥 보내는 바람에 잠복기 접촉자 추적 개시 시간이 늦어졌고, 그 이후 모든 대책이 그만큼 순차적으로 지연됐다. 메르스 확산 방지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첫 메르스 환자(68)는 지난달 12~17일 병원 세 군데를 돌다가 17일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 측은 환자가 고열·기침 등의 메르스 증세를 보이는 데다 중동의 바레인을 방문한 사실을 알아내 18일 오전 질병관리본부에 감염 여부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바레인은 메르스 발생 국가가 아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12가지 다른 호흡기질환이 아닌지 검사하라고 지시했다. 병원 조사에서 그중 어느 질환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질병본부는 19일 오후 8시쯤 그의 검체를 가져갔고 다음날 오전 6~7시에 확진 판정을 내렸다. 익명을 원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난달 27~28일 병원감염관리학회에서 전문가들이 질병본부의 늑장 대응을 성토했다”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달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바레인에서 환자가 한 명도 없어 먼저 이것(12가지 검사)부터 하는 게 우리의 권고사항”이라고 했다. 이 기관의 다른 관계자는 “병원 측이 환자 진료를 제대로 해 사우디아라비아 여행 사실을 알아내 우리에게 보고했다면 즉시 달려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첫 환자가 두 번째로 간 병원에서 환자가 잇따르자 28일 그 병원의 모든 환자와 가족 등을 대상으로 전면 재추적에 들어갔다. 하루 이틀만 이 작업을 빨리 시작했다면 27일부터 발생한 감염자(11명)를 일찍 찾아냈을 수도 있었다.
메르스 환자는 31일 2명이 추가돼 총 15명으로 불어났다. 한 명은 최초 환자와 같은 병원에 입원했고, 다른 한 명은 그 병원에 입원 중인 어머니를 간병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둘 다 35세 남성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첫 환자 발생 이후에 발병한 14명은 모두 첫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2차 감염 환자라고 밝혔다. 그중 여섯 번째 환자(71)는 병세가 악화돼 위독한 상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메르스의 전파력에 대한 판단 착오, 최초 환자 접촉자 일부 누락 등으로 심려와 불안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