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도검 제조 기법에 대해 조사하려 하면 가장 먼저 느끼는 아이러니함은, 현대를 제외하더라도 서양의 도검 제조의 역사가 천년하고도 기백년은 더 될텐데 그 기나긴 기간 속에 제대로 된 도검 제조 기법을 남긴 기록이 드물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도검이 실전 무기이며 중요한 사업수단이던 시대에 도검 제조의 기법은 중요한 군사 기밀이었으며 오로지 도검장의 가업, 또는 공방이나 길드, 그리고 도검 갑주 제조를 업으로 삼은 도시에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기업 비밀이었기 때문일테다. 다행히 유물의 연구 결과가 착실히 쌓인 현대에 이르러서는 취미로 도검을 제조할 수 있을 만큼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에 정보 개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검 제조 기법이 더이상 비밀은 아니게 됐다.
가장 최초로 쓰인 철검은 청동 검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철을 웍 하든(work harden, 가공 경화)한 것이었다. BC 13세기 경의 히타이트, 미케네 그리스 사람들이 초창기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일부 운좋은 사람들은 니켈 함량이 많은 운철 즉 철 성분이 많은 유성의 잔해를 가공해서 검이나 도구로 사용했는데, 운철은 그 자체로 자연적 합금이 된 쓸만한 수준의 철이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일찌기부터 합금강이 매력적임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철기의 시작은 청동의 원재료인 구리와 주석을 캐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어진 철광석의 가공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진 것으로 보는게 정확할게다. 그리고 철광석은 청동에 비해 높은 온도가 필요했으므로 청동기 시대 사람들에게 철 제련은 좀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단순히 순수한 철 만으로는 역시 무기로서는 이상적이라고 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단지 웍하든했을 뿐인 철검은 청동검과 비교해서 별 차이 없거나 아주 미세하게 좋은 수준에 지나지 않으니, 제련이 어렵고 성능 차이는 청동에 비해 좋은게 없는 철검은 처음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리와 주석에 비해 철의 산출량이 월등한만큼 청동의 대체품으로 철 제련에 도전한듯 하다. 점차 철제 검이 청동기를 압도하기 시작하는 시가가 BC 8세기 경 초기 철기 시대이며 유럽에서는 켈트 문화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할슈타트 문화(Hallstatt culture) 시대에 해당한다. 할슈타트 시대는 아직 청동기와 철기가 혼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의 검을 청동기로도 만들고 철기로도 만들었다. 청동기 시대에 이미 검신 형상은 다양한 시도를 거치고 있었는데 단순히 단검을 크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잉어 혓바닥 형, 레이피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가늘고 뾰족한 찌르는 검 형태와 더불어 후대 철검에서도 널리 사용하는 베기에 적합한 리프 블레이드(또는 와스프 블레이드) 형상까지 도달해있었고, 검신의 길이 역시 긴 것은 나중의 한손장검에 비견할만큼 길었다. 하지만 재질의 한계 상 할슈타트 시대의 철검은 청동기와 마찬가지로 전투 중에 확확 휘는 일이 다반사여서 휜 상태의 검이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할슈타트 시대 철기 검의 의의는 길이의 제약 없이(또는 길이에 개의치않고) 검을 만들었다는 점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철제 검이 널리 도입되어 주류를 이루는 것은 후기 철기 시대인 라텐느 문화(La Tène culture) 시대로, 이 시대의 도검부터 그 형상이 이전 청동기 시대 검과 확실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렌즈형이나 다이아몬드형 단면에 슬렌더하고 긴 검신, 대체로 양 날이 평행하는 편인 유물이 많고 상당수가 찌르기에 적합한 뾰죽한 팁을 갖고 있어서 찌르고 베는 용법을 모두 만족했을 것이다. 청동검에서는 부러지기 쉬워서 포기했던 폭이 좁은 탱 형상(즉 히든탱 힐트)도 라텐느 시대에 다시 등장해서 널리 쓰인다. 풀러가 있는 검도 일부 있으나 청동검이나 초창기 철검처럼 등뼈가 있는 형태는 거의 없다. 물론 리프 블레이드 형상이나 그 비슷한 것이 라텐느 시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라텐느 장검이 켈트 도검의 대표격으로 후대 도검의 형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로마 시대에 이르면 철/강철검이 보편적이 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드넓은 영토와 풍부한 인력 덕택에 텅스텐, 니켈, 망간 등이 함유된 자연적 합금 상태의 우수한 품질의 철광석 산지를 가질수 있었고, 이을 제련해서 만드는 것으로 좋은 성능의 검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가끔 로마 도검의 품질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철 산지와의 시대상황적 관련성을 연관지어 봐도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지도. 제정 로마 시대 AD 1세기 동서무역로 안내서인 에리트라해 안내기(Periplus of the Erythraean Sea)에 따르면 인도의 고품질 철과 강철이 동부 지중해 지방을 거쳐 그리스와 로마로 수입되어 도검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으므로, 어쩌면 우츠 강 비슷한게 로마 도검 제조에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철만 좋았던 것은 아니며, 이미 로마 시대 이전의 도검 유물에서 패턴 웰딩 도검과 날 부분만 침탄경화한 도검의 예제가 등장하기 때문에 강철(당시에는 단단한 철 등으로 칭한것 같다)의 존재와 탄소 조절 기법에 대해서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로마로 전해졌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대 플리니우스는 그의 『박물지』에서 제조에 사용하는 광석의 품질이나 장인의 실력 보다는 담금질에 사용하는 냉매가 중요하다고 썼는데, 아무래도 당시에도 도검 제조 기법에 대해 비밀주의와 오해가 존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물, 오줌, 혹은 피나 노예의 몸에 달군 칼을 꽂아서 식혔다는 "잘못된" 전설이 고대 시대부터 유행했다는 말) 담금질 기법과 냉매에 관한 차별된 비밀(물 담금질이 아니라 기름 담금질이 좋다, 담금질 시 냉각 속도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겠다.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검인 글라디우스의 길이가 짧았기 때문에 당시 철을 다루는 기술이 낮아서 짧은 검 밖에 쓸 수 없었다는 따위의 낭설은 말 그대로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글라디우스의 길이는 전술적인 선택이었을 뿐이고, 로마 시대에도 기병용으로 스파타를 사용했으며, 로마 후기에는 잘 단련된 군단병을 운용하기 힘들어지면서 보조병을 받아들이게 되자 좀 더 느슨하게 싸우는 식으로 전술에도 변화가 생겨 보병도 스파타를 사용해서 긴 리치를 얻었다. 아니 사실 애초에 청동기시대나 초기 철기 시대의 도검 중에도 긴 한손 장검이 있는데 패턴 웰딩 도검이 흔하던 로마 시대에 기술력이 딸려서 짧은 철검을 쓴다니 말이나 되는가?
하여튼 로마는 단일 단조, 침탄, 라미네이트, 패턴 웰딩 등의 방식으로 고품질 도검을 만들어 사용했으며, 켈트 장검에 영향받은 로마 스파타가 민족 대이주 시기 도검으로 북유럽으로 전수되고 바이킹 소드를 거쳐서 유럽 도검을 형성하게 된다. 북유럽의 철기 시대는 로마 철기 문화가 전래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할슈타트 계열 도검과 비슷하게 생긴 고대 게르만 양식이 로마 스파타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듯한 스타일로, 장차 바이킹 도검으로의 가교가 된다. 역시 패턴 웰딩이 충실하게 사용된 우수한 품질의 검이고, 검신 폭이 넓고 양 날이 직선으로 칼끝에 이르기까지 거의 테이퍼가 없으며 칼끝은 뾰족하기보다는 둥그스름한 것에 가까워서 사실상 베는데 치중한 도검이었을 것이다. 단면은 민짜 렌즈형이거나 풀러가 존재했다. 힐트의 형상으로 로마 스타일에 가까운지 북유럽산에 가까운지로 대략 구분을 하는데, 약 4세기 정도 시간대가 차이나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대이주 시대 도검 유물의 힐트 형이 똑같은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그 힐트 스타일이 수세기동안 계속 애용되었다는 의미일수도 있으나, 사가(Saga)에서 도검을 자손이 물려받는 묘사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때 선조의 도검이 소중히 간직되다가 후대에 물려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 도저히 실전용으로 봐주기 어려운 보석 박힌 화려한 장식의 검이 많은 점도 대이주 시대 검을 귀하게 여겼음을 추측케 한다.
그 대이주 시대 도검이 발전하여 8세기 경 바이킹 검으로 자리를 잡는다. 검신은 살짝 길어지고 깊고 넓은 풀러에 여전히 테이퍼는 아주 얕으며, 간혹 보석을 사용한 장식이 없지는 않으나 바이킹들은 검의 장식에 구리나 금, 은, 구리, 청동, 주석 등의 금속을 더 애용하는 편이었다. 장식 없는 수수한 검 또한 많기 때문에 대이주 시대에 비해 검의 위치가 좀 더 보편적이고 실용적인 무기로 자리매김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래도 바이킹 시대의 주무기는 도끼와 창을 비롯한 폴암이었다.) 역시 패턴 웰딩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만든 우수한 도검이었고 패턴 웰딩의 형상을 묘사하고 찬양하는 표현법이 사가 등에서 여럿 발견된다. (예를 들면 파도검이라던가, 피의 소용돌이라던가, 검 안의 뱀 같은 화려무쌍한 수식어가 있었다.) 바이킹 검이라고 하면 바이킹만 사용했을것 같지만, 사실은 바이킹 검 스타일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바이킹 시대 도검 중에서 가장 우수하게 만들어진 것은 프랑크 장인이 만들어서 수출한 것으로, 검신만 만들어서 보내면 수입한 지방에서 힐트와 마감을 해서 완성된 검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바이킹 검의 힐트는 바이킹 시대에 수없이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는데, 단순화해서 구분한 휠러 분류도 아홉가지나 된다. 퍼멀 형상은 로브드나 콕드햇 형이 대세였고 브라질넛 형도 제법 애용되며 디스크형은 드물었으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점은 바이킹 도검은 힐트 스타일이 특정 지역과 강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힐트 형상만 봐도 그 시대와 지역을 대략 맞출수 있게 된다. AD 700년에서 850년 사이까지만 해도 바이킹 도검은 이전의 로마시대 검이나 대이주 시대 검보다 약간 더 크고 약간 더 무거워져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묘하게도 900년 경부터 이전 형식에 비해 조금 더 테이퍼가 지고 칼끝도 뾰죽해져서 찌르기에 적합하며, 얇고 가벼워져서 훨씬 경쾌하고 날카롭게 다룰 수 있는 검신 스타일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 스타일의 도검은 패턴 웰딩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 단일 강철을 열처리해서 톱클래스 도검을 만든 것이다. 이 스타일의 검신에 새겨진 이름이 바로 그 유명한 바이킹 시대의 명 도검장 +ULFBERHT+다. 그는 이름과 유물, 기타 근거로 미루어볼때 현재 독일 솔링겐 지방의 프랑크인이며, 당시 바이킹 무역을 통해 아프간 지방에서 최고급 강철을 수입해서 쓴 것 같다. 그가 만든 검의 품질이 정말 대단했던지라 유럽 전 지역에서 Ulfberht가 새겨지거나 상감된 검이 발견된다. Ulfberht 검이 너무 유명하다보니 가끔 ulfberht와 관계 없는데도 이름을 새기거나 상감해넣은 짝퉁도 등장했을 정도에, 원래는 Ulfberht 검이 아닌 것으로 생각한 유물이 X-ray 검사를 해보니 검신에 희미하게 ulfberht라고 써넣은 흔적이 발견됐다는 실화도 존재한다. 그런데 진본으로 생각되는 고품질 유물들만 모아봐도 바이킹 시대 초부터 중세 전성기까지 무려 200년이 넘는 정도의 시간적 텀이 있다! ㅎㄷㄷ... 인간이라면 200년동안 살면서 계속 도검을 만들었을수는 없을테니 Ulfberht는 뱀파이어 ...는 뻥이고 사실은 도검장으로 명성을 떨친 명장의 후예가 도검 제조 사업을 계속하면서 브랜드 네임 비슷하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Ingelrii나 Leutfrit 같은 이름도 제법 자주 찾아볼 수 있으나, Ulfberht만큼 많지는 않다. 사실 바이킹들은 이름과 상징에 정말로 힘이 있다고 믿었으며 검에 다양한 상징이나 이름을 새겼으니, 바이킹 시대를 풍미한 명장 Ulfberht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소유자에게 티르의 힘이 깃든 것과 같은 안도감을 선사했을게 분명하다.
바이킹 시대의 뒤를 이어 노르만 도검을 거쳐 10~11세기 쯤에 우리가 잘 아는 기사의 한손검인 "아밍 소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노르만 시기에는 브라질넛 형을 거쳐서 디스크 퍼멀을 애용하는 시기이며, 크로스가드가 더더욱 길어졌다. 사실 바이킹 시대 말기에 이미 긴 크로스가드가 등장했기 때문에 아밍 소드로의 변해가는 경향성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대략 11세기 경 부터 아밍 소드의 시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자연 상태로 순수한 연철이 그대로 나오는 일은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철광석을 캐서 제련을 하고 불순물을 제거해줘야 한다.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철 제련법이 괴철로(Bloomery furnace)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돌과 흙과 진흙으로 굴뚝을 만들고, 그 아랫단에 바람 넣어주는 파이프를 연결하고, 굴뚝 밑바닥에 숯을 깔아서 예열한다. 그리고 온도가 제법 올랐으면 숯과 철광석을 1대1 비율로 굴뚝 위를 통해서 넣어준다. 그러면 내부에서 온도에 의해 숯이 타기 시작하는데, 불완전 연소를 하면서 일산화탄소를 내뿜에서 철광석(산화철) 내의 산소를 빼앗아간다. 그래서 철광석을 완전히 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산화철이 차츰 순수한 철로 변해간다. 철을 완전히 녹여서 제련하려면 섭씨 1500도 가량의 상당한 고온이 필요한데 이는 고대 시절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괴철로는 화학적 반응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저온에서 철을 제련 가능하므로 고대시대에 널리 퍼진 것이다. 철광석이 연철로 변할 정도로 산소를 빼앗겼지만 숯과 함께 너무 오래 타올라서 탄소가 전이해오지는 않을 정도가 되도록 신경을 써줘야 한다. 그렇게 적절하게 철이 된 것을 꺼내보면 마치 스펀지마냥 슬래그(찌꺼기) 안에 둘러싸온 철이 나오는데, 이를 스펀지 아이언 즉 해면철이라고 한다. 해면철을 달군 채로 망치로 때려주면 슬래그 파편이 튀면서 빠져나오고 순수한 연철만 남는다. 슬래그가 빠질때까지 계속 때리고 접기를 반복하는데 이를 단조 접쇠라고 하는 것. 중세 철 제련 기법의 두가지 전기를 꼽으라면 첫번째가 인력을 대신해서 수차와 같은 동력원을 썼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괴철로에서 한단계 발전한 제련법을 개발해서 안정적으로 강철을 생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영박물관에 존재하는 5~10세기 도검의 64퍼센트는 패턴 웰딩으로 제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1세기 쯤부터 그 비율이 급감하는데 그 요인 중 하나로 카탈론 포지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 8세기 경, 스페인 지방에서 펌프로 강제과급해주는 괴철로의 개량형(카탈론 포지)이 등장하는데 그 덕분에 철의 순도도 올라가고 제철 양의 규모도 커지게 된다. 초창기 괴철로에서 꺼내는 철의 양은 굉장히 작아서 한번에 1kg 내외였지만, 차차 규모를 키워가면서 한번에 평균 15kg씩 뽑아내다가 카탈론 포지에 이르러 수차를 동력원으로 사용해서 과급해줄 정도면 150kg에서 최대 300kg까지도 뽑을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화 되었다. 카탈론 포지 정도 되면 사실 기술적으로도 용광로(blast furnace)와 한끝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카탈론 포지는 용광로와 구조도 비슷하고 온도도 용광로 수준으로 올릴수 있지만, 일부러 온도를 철이 녹지 않을 정도로 낮추었다. 철 생산에 수차를 사용하면서 노의 온도도 급격히 상승시킬수 있었는데, 괴철로 말기에는 일부러 온도를 그정도까지 올리진 않은 것이 노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철이 녹아버리면서 용광로 안의 탄소와 결합해서 녹은 선철, 즉 무쇠가 나와버린다. 중세 수준에서 선철에서 디카뷰라이징하는건 너무 귀찮고 지루한 작업이라서 차라리 철이 녹지 않는 수준으로만 가열하는걸 선호했다. 선철(pig iron)은 무려 탄소함유량이 4~5%나 되기 때문에 인력으로는 작업이 불가능했고, 그때는 이걸 도로 슬래그를 섞어서 불순물을 넣은 다음에 지겹게 때려 슬래그를 빼면서 탄소도 같이 빼는 식으로 단조해서 연철을 만들어야 했다. 좀 더 용광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 12세기 경 독일 스위스 스웨덴 그런 지방에 본격적인 용광로가 대규모 운용되기 시작하는데, 용광로에서 나온 선철은 정련로(Finery forge)에서 다시 녹이고 탄소를 산화시켜서 슬래그 섞인 연철로 만들어서 수차로 작동하는 해머로 때려서 슬래그를 빼주었다.
희안하게도 한국에서는 칼을 접쇠하면 강하고 날카롭고 어쨌든 졸라 짱 좋아진다는 잘못된 편견이 있는데, 반대로 물어보고 싶다. 왜 접쇠를 하면 칼이 좋아질까? 답은, 접쇠라는 것의 본질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초창기의 제철 기법인 괴철로에서는 슬래그가 잔뜩 섞인 질낮은 해면철을 생산한다. 해면철에 섞인 각종 불순물을 빼주기 위해서 쓰인 방법이 단조 접쇠인데, 철괴가 달아오른 상태로 망치로 때려주면 때릴때마다 슬래그가 떨어져나간다. 철괴가 납작해질때까지 한참 때리고 너무 얇아지면 접어서 다시 두툼하게 만들어서 또 때리고... 이 단조 접쇠는 많이 반복할수록 좋다. 슬래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복할수록 철의 순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에서 접쇠 층 따위를 강조할 이유도 없다. 단순히 순도 높은 철을 얻기 위한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패턴 웰딩의 일종인 라미네이트 방식 역시 접쇠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성질이 다른 철 두어가지를 샌드위치처럼 쌓아서 열씸히 때려주고 접고 때려주고 접기를 반복해서 얇게 펴진 서로 다른 성질의 철/강철이 단접되어서 라미네이트 층을 이루게 만들므로, 접는다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런데, 라미네이트 방식 패턴 웰딩은 분명히 성질이 서로 다른 고탄소강/저탄소강(또는 철)을 서로 붙이기 위한 과정이다. 즉 성질이 하나 뿐인 철은 애초에 라미네이트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잘 제련된 강철이 있다면 어째서 무슨 이유로 접쇠를 하겠는가? 전혀 접쇠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품질 높은 강철을 사용하는 현대에조차도 왠지모르게 접쇠가 무조건 좋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강철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유럽 도검은 단일 재질 도검이 대세가 되었다. 그 제조 과정은 형 잡기, 열처리, 마감으로 대략 단계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형 잡기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크게 두가지 방법으로 귀착되어지는데 바로 단조(forge)와 스톡 리무벌(stock removal)이다. 제발 주조(cast) 얘기는 하지 말라... 양판소나 무협지를 보면 옛날에는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서 검을 주조해서 대량생산해 만들었다는 식의 표현이 간혹 나오는데, 청동검과 철검의 재료적 성질의 차이와 야금학의 발달, 도검 형성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대충 써갈긴듯 하다. 구리의 용융점은 섭씨 1084도 정도, 철의 용융점은 섭씨 1538도 정도로 구리 계열의 합금은 철에 비해 용융점이 훨씬 낮기 때문에 제조의 간편함으로 널리 쓰였던 것으로 형틀에 부어서 검을 주조하던 것은 청동기에 해당한다. 철을 녹여서 쇳물을 만들 정도의 온도는 고대에는 도달하기 힘들었고, 중세에도 초기에는 힘들기도 했거니와 야금학이 발달하여 용광로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온도를 높힐수 있어도 일부러 온도를 높이지 않았다. 용광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철을 녹이기보다는 그냥 물러지는 온도로 가열해서 불순물을 빼고 형을 잡아주는 것이 훨씬 편리하게 도검을 제조하는 방식이다. 용광로가 개발되고 철을 녹일 만큼 고온의 노를 운용할 수준이 되면 철을 녹여 쇳물을 만들고 탄소를 가해 주철을 만들수 있게 되면서 주철을 주조용으로 사용하는데, 주철은 너무 단단해서 단조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녹여서 주조를 하면 제법 단단한 철제 부품을 만들수 있었다. 하지만 얇으면서도 탄성있으며 동시에 엣지를 유지할만큼 단단해야 하는 검에 지나치게 단단해서 깨지기 쉬운 주철은 어울리지 않는 금속이다. 때문에 적절히 탄소량을 조절한 강철을 사용해야 하며, 여전히 단조가 사용되었다.
이 문서에서 말하는 단조(forge)란 열간 단조를 말하는데 가열로(같은 스펠링, forge)에서 웍 가능한 온도까지 철괴를 가열해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 망치로 때려서 펴고 늘려서 모양을 잡아주는 과정을 말한다. 저품질 철의 불순물을 빼주기 위한 공정인 단조 접쇠하고 헷깔리지 말자. 옛날 사람들은 숯이나 석탄을 때는 가열로를 썼는데, 요즘에는 더 깨끗하고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가스 포지를 쓴다. 그래도 그 본질 자체는 예나 지름이나 다를바 없어서 가열로에 쇳덩이를 푹 쑤셔넣어서 적절한 온도까지 가열한다. 가스 포지에는 써모메타 달아서 온도 잴 수도 있으나 옛 장인들은 달아오른 철의 색깔로 구분했는데 강철은 화씨 1200~1500도 정도에서 붉게 달아오르고 화씨 1800도 쯤에서 오렌지 색으로 달아오른다. 단조는 이 온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데 너무 식으면 망치질에 깨질 위험이 있고, 오렌지 색을 넘어서도 너무 녹아 성질이 변하려 들어서 대략 좋지 않다. 적절한 온도가 됐으면 모루에 올려서 매우 친다. 봉이나 괴 형태의 철괴를 때려서 두께를 얇게 얇게 펴면서 검 비슷하게 긴 막대 모양으로 만드는 드로잉 아웃 단계다. 탱(tang) 부터 만들고 점차 늘려나간다. 자꾸 뒤집으면서 망치질을 해주는데 되도록이면 단조 도중에도 제모양을 갖추어 뻗어나가도록 직선을 유지해줄 필요가 있다. 탱은 한번 모양을 잡고나면 열처리를 하지 않거나 검신 열처리와는 다르게 처리한다. 탱은 검을 휘두를때마다 충격과 울림을 전부 받아내는 부위라서, 검신과는 달리 더 유연하고 깨지지 않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 탱은 심하게 다루면 휘는 수가 있다... 현대의 도검사 조차도 탱의 디자인과 탄성에서 수준의 차이가 많이 드러난다.) 그래서 좀 더 무른 상태로 남아있도록 열처리를 하지 않거나, 요즘처럼 고탄소강 판재를 가져다 그냥 쓰는 경우에는 약간 질겨지도록 열처리를 하거나, 옛날에는 검신은 강철로 만들고 탱 부분은 철을 사용해서 scalf welding으로 접붙이는 경우도 있다. 검신 길이가 대략 완성되면 테이퍼를 넣어주는데, 검신은 양 날이 평행하느냐 점차 좁아지느냐의 프로파일 테이퍼만 있는게 아니라 검의 단면도 포르테에서 포이블로 갈수록 얇아지는 디스탈 테이퍼가 존재한다. 균형감이 좋은 잘 만든 검과 그냥 대충 만든 검은 디스탈 테이퍼만 봐도 구분이 된다. 테이퍼 작업이 끝나면 (필요하다면) 풀러를 파고, 풀러가 끝나면 엣지 베벨을 대략 모양만 잡아준다.
열처리. 열처리는 강철의 성질을 강하고도 탄성있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인데, 형 잡기 다음으로 열처리를 하게 되지만 사실 형 잡는 와중에도 필요에 따라 열처리의 일종을 하기도 한다. 바로 노멀라이즈(normalize)란 것으로 작업 도중에 금속 내부에 쌓인 피로를 제거하고 그레인(강철의 결정 구조)를 고르게 해주기 위한 것이다. 오스테나이트화(철과 탄소 분자가 서로 섞이기 시작) 하는 온도까지 가열해줬다가 그냥 건드리지 않고 식히는 방식이다. 모양이 다 잡혔으면 아닐링(anealing)을 하는데, 최종 응력을 제거하고 그라인딩 작업을 할 수 있게 검을 부드럽고 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멀라이즈와 비슷하게 가열하지만 천천히 온도를 낮추어가는데 몇시간에서 하루가 걸릴 수도 있다. 아닐링을 마치고 나면 그라인딩을 해서 엣지와 팁(칼끝)의 형상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날이 유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른 상태이기 때문에 단단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해주는 열처리가 하든(harden)이다. 검신을 달구어서 오스테나이트 상태까지 가열한다. 그냥 가열로를 쓰는 장인도 있지만 솔트 배쓰(소금을 가열해서 녹여 펄펄 끓는 상태로 만든 통)에 담그는 경우도 있다. (동영상에서 얼핏 보니 알비온 아머리도 솔트 배쓰를 하는것 같던데...) 소금은 하드닝 처리에 필요한 온도가 되기 전에 녹아서 액화하지만, 열처리 온도를 넘겨도 계속 고열의 액화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검신 전체의 온도를 고르게 가열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가열한 검신을 빼내서 즉시 냉매 속에 담그는데 이를 퀜칭(quenching)이라고 한다. 냉매는 보통 열의 전달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기름 류를 사용하지만 강재에 따라, 또는 경험이 풍부한 경우 물로 냉각하기도 하고 다른 다양한 냉매를 쓰기도 한다. 이 과정은 아주 단단한 강철 상태인 마르텐자이트 상태로 만들기 위함인데, 덜 식혀도 안되지만 너무 식혀도 안되는지라 냉매의 종류 뿐만 아니라 냉매에 담그는 속도와 입수 각도조차 영향을 미치며 강재와 검신의 두께에 따라 타이밍이 다르기 때문에 도검장의 경험과 감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다. 퀜칭을 통해 검을 아주 단단하게 만드는 하드닝 과정이 끝나면, 검신은 유리처럼 단단하지만 너무 단단해서 깨지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제 검을 질기고 유연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것이 템퍼링(tempering)이다. 퀜칭 탱크에서 꺼내서 완전히 식은 검신을 냉매를 닦아주고 검신을 다시 불에 넣어서 가열하는데, 다만 오스테나이트화 하지 않는 온도에서만 가열을 해준다. 템퍼링 온도에 도달하면 꺼내서 다시 냉매에 박아서 퀜칭하고, 다시 템퍼링 해서 퀜칭하고... 템퍼링을 세번 정도 반복하면 대략 필요한 탄성과 질김, 엣지를 유지할만한 단단함 모두를 얻는 정도가 된다. 템퍼링 온도와 횟수가 검신의 탄성을 결정짓기 때문에 레이피어나 페더슈베르트 같이 탄성이 중요한 검신은 템퍼링 세부가 약간 다르다. 중세 초 도검에는 이미 부분 별로 다르게 열처리 하는 기법이 존재했고, 시대가 흐르면서 검신의 두께나 디자인과 풀러 유무 등에 따라 차등 열처리나 단일 열처리지만 자연스럽게 강도가 달라지게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서양 도검장들은 대체로 부분 별로 강도가 달라지도록 열처리하지는 않는데, 일부러 하지 않아도 일부러 부분 열처리를 하지 않더라도 검신 바깥쪽이 냉매에 더빨리 영향받으므로 날 쪽이 몸 쪽 보다 약간이나마 빨리 식어서 좀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라인딩을 해서 날을 세운다. 최종적으로 날세우는 것이니 숫돌로 날 세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블런트 도검은 이 단계가 생략하거나 날 세우지 않고 엣지 형상만 다듬는 정도로만 한다.) 필요하면 광도 낸다. 거기에 전체 밸런스를 고려해서 크로스가드나 폼멜, 그립을 달아주는 마감을 하면 검이 완성된다.
단조와 열처리의 대중을 짚었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도검 제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스톡 리무벌(stock removal)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갈아내서 만드는 것이다. 많은 부분을 갈아내야 하기 때문에 재료 낭비가 심하며 강재가 귀하던 옛날에는 감히 사용할 엄두를 못냈지만, 강재의 대량생산이 용이해진 19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해서 원하는 성분과 열처리 상태의 강재가 판재 형태로 공급되는 현대에 이르면 손도 덜가고 기술도 덜 요구하기 때문에 도검 제조업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그냥 적절한 두께의 판재를 검신 모양으로 따서 그라인더로 갈아내서 검신 모양을 잡고 날을 세운다. 검신 모양이 다 잡히면 하드닝과 템퍼링의 열처리를 거쳐서 강성과 탄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끝이다. 즉 위 과정에서 가열로를 사용해서 망치질 하는 과정이 생략되므로, 아예 포지 없이(하드닝과 템퍼링에는 솔트배쓰나 클린 등을 써서) 작업할 수 있다.
사실 패턴 웰딩을 하거나 검신 형태에 만곡이 심하지 않는 한 스톡 리무벌이 효율적이다. 이론적으로는 장인의 망치질이 매번 정확한 힘과 각도로 도검의 모든 면적에 자로 잰듯 균등하게 타점 간격을 맞추어 때려 검을 만든다면 강철의 미세 결정 구조에서 꿇릴 일이 없겠으나,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때문에 아주 우수하고 균질한 품질의 강재를 보급받는 현대에는 그냥 평범한 검이라면 스톡 리무벌을 하는게 훨씬 낫다. CNC 머신 등으로 강재 모양 따는 것도 자유자재가 됐으니 스톡 리무벌 할때도 테이퍼 각도 따는 것도 아주 정밀하게 할 수 있다. 그 대표가 바로 알비온 아머리인데, CNC 머신으로 스톡 리무벌을 하기 때문에 무려 동일 라벨이 붙은 제품은 제품 간 규격 차이가 거의 없다. 이렇게 규격이 일정하다보니 알비온 제품의 애프터마켓 칼집을 만드는 업체에서는 제품명만 알면 도검을 보내서 사이즈를 재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