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영화평론가들이 상반기에 개봉된 최고 영화 목록을 뽑는 시기다. 수많은 영화가 후보로 뜨지만 ‘진짜‘로 최고의 2018년 작품은 그 누구의 목록에도 포함돼 있지 않는 한 단편이다. 단편이지만 ‘미션 임파서블’ 느낌이 살짝 풍기는, 70년대 마피아 영화를 무성 영화법으로 촬영한 듯한 엄청난 야심작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야심작’은 캐나다 앨버타에서 최근에 있었던 편의점 강도 사건 동영상을 의미한다. CTV가 지난 주말에 공유한 이 동영상은 일반 액션 영화가 2시간 걸려서도 자아내지 못하는 흥미와 흥분감을 3분 만에 달성했다. 동영상 주인공들의 - 훔친 신용카드로 탄산음료를 산 후 자신들을 잡으러 온 경찰을 따돌릴 수 있다고 믿은 브리트니 버크(29)와 리처드 파리소(28) - 기발함은 그 유명한 범죄 커플 보니 앤 클라이드를 연상케 한다. 체포를 면하고자 몸부림치는, 없는 비밀통로까지 만들어 탈출하려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동영상이 특별한 이유는 주인공들의 황당한 무모함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유순한 민족으로 알려진 캐나다인들이지만, 그들도 다급하면 경찰을 피하기 위해 별의별 수법을 다 동원한다. 이 동영상이 정말로 대단한 이유는 그 탁월한 편집기법 때문이다. 공포영화 감독 히치콕이 무덤에서 깰 정도로 완성도가 놀랍다.
그런 이 작품을 차례차례 분석해 보겠다.
범행이 이미 발각된 범인들을 경찰과 편의점 주인이 매장 입구에서 가로막고 있다(주인은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경찰을 돕고자 나선 일반 시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하 ‘일반 시민’으로 명칭 하겠다). 그러나 브리트니와 리처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다. 매장 출입구를 통해 탈출을 시도한다. 경찰과 한바탕 뒹군다. 리처드의 셔츠가 찢어진다. 계산대 뒤에 서 있는 매장 직원은 너무나 태연하게 이 장면을 바라본다.
몸싸움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묘사되지는 않지만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는 그런 일이 전개될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영상의 다음 장면은 셔츠를 잃은 채 달아나는 리처드를 묘사한다.
액션 영화의 전형적인 편집기법이 이 부분에서 돋보인다.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옮기는 리처드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는 도망갈 곳을 찾아 창고로 향한다.
그런데 탈출구가 없다.
그다음 장면은 다시 편의점 내부다. 브리트니가 화면 왼쪽에서 소동을 부리고 있는 사이, 리처드는 텅 빈 매장 가운데에 무슨 액션 히어로처럼 갑자기 나타난다.
카메라는 매장 통로 사이를 달리는 리처드의 모습을 포착한다. 경찰은 브리트니에서 리처드로 시선을 돌린다. 리처드는 사탕 봉지를 집어 들고 경찰에게 던질 듯 위협한다. 그 와중에 일반 시민에게 제지를 받는 듯 보이던 브리트니가 화면에서 사라진다(일반 시민은 집에 가세요!).
상태가 훨씬 더 심각해졌다는 건 냉장고 앞 장면에서 볼 수 있다. 테이저건을 꺼낸 경찰을 보고 리처드는 사탕 봉지를 내려놓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그림만 봐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리처드는 (아마 더러운) 바닥에 엎드린다. 긴장감이 팽팽하다. 경찰님, 테이저건은 쏘지 마세요!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엎드려 있던 리처드가 갑자기 일어서며 경찰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리고 화면은 리처드에게 다가오는 브리트니의 클로즈업으로 바뀐다. 그 배경에는 매장문을 여는 일반 시민도 보인다. 경찰은 브리트니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을 흔든다. 무릎을 꿇고 있던 리처드, 일어서려다 경찰의 테이저건에 맞고 허무하게 쓰러진다.
재미있는 영화일수록 조연들의 연기가 더 돋보인다. 그래서인지 다음 동영상 장면은 리처드와 경찰 대신 일반 시민에게 뭐라고 하는 브리트니에 집중한다. 얼마 후 브리트니는 리처드가 출구를 찾는 데 실패한 창고로 향한다. 대단한 사람들은 생각도 같다?
동영상은 다시 매장 한 가운데를 보인다. 일반 시민은 아직도 전화를 들고 있고 경찰은 아직도 리처드와 씨름하고 있다. 브리트니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뭔가 작전을 구상한 것 같긴 한데... 보이질 않으니 긴장감은 더 높아진다.
그 사이 어떻게 어떻게 경찰로부터 벗어난 리처드는 계산대 방향으로 뛴다. 출입구에 닿지만 일반 시민과 새로 도착한 경찰에 의해 다시 제압된다. 정말로 재수가 없는 날인가 보다. 세 사람은 몸싸움하고 점원은 그 장면을 태연히 바라본다.
그런데 진짜 재미는 여기서부터다.
동영상에서 브리트니가 사라진 지 21초가 됐다. 그 21초 동안 그녀는 무엇을 했을까? 화장실에서 나오는 브리트니가 동영상에 보인다. 리처드와 달리 열리지 않는 뒷문을 열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대신 사다리를 타고 천장으로 향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된다. 창고 어딘가에 숨으려는 걸까? 아니다. 천장 안으로 기어들어 간다.
히치콕에 의하면 테이블 아래서 폭탄이 터지는 건 놀라운 사건이지만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는 테이블 아래 폭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브리트니의 실종은 바로 이와 같다. 우리는 경찰의 초점이 반항하는 리처드에게 더 오래 머물수록 여주인공의 탈출 성공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잘 안다. 브리트니의 행방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동영상은 리처드와 경찰에서 빈 매장으로 다시 옮긴다. 서부극에 나오는 총격전 바로 전 순간의 적막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사람이 기다려온 멋진 피날레. 뭔가 천장에서 매장 바닥을 향해 사정없이 곤두박질친다. 여주인공 브리트니다. 그녀는 놀랍게도 금세 일어나는 데 잘 보면 한쪽 신발을 잃은 상태다. 여주인공의 멋진 낙하를 목격한 경찰들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영화 끝.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 마틴 스코세이지도 훌륭한 편집이라고 인정할 거다.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증명됐지만) 범죄 커플은 자기 딴의 계략을 장면마다 한 가지씩 연출했다. 버릴 순간이 없다. 동영상에서 잘린 부분을 시청자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편집된 작품이다. 슈퍼히어로를 주제로 하는 영화 편집자라면 꼭 참고할 만한 훌륭한 견본이다.
CTV에 의하면 리처드는 체포 방해와 신용카드 절도를 포함한 11가지 혐의를 받고 있으며 브리트니는 경찰 방해 등 3가지 경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올해의 최고 작품을 아래서 다시 한 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