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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사람다 2024년의 가치를 가지고 이야기하기엔 예전의 사람이다.
오리혀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에리히 프롬의 견해는 훨씬 전에 살았던 베르그손의 철학보다 더 고전적 관념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왜나면 프롬은 남-녀의 관념을 클래식한 사회구조적 관념에서 정의를 했어야 그 다음을 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베르그손은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은 현상을 분리해서 보는 것 자체를 배격하는 입장에서 많이 논의했다는 것이다.
존재와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고 "관계"의 전체성을 볼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리히 프롬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 자체를 주체적 의식으로 놓고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혹은 사랑, 신앙 등등의 여러 요소는 수단으로써 해석했고,
베르그손 역시 물질과 기억에서, 칸트와 뉴턴 등 기존의 사조가 모두,
현상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한 시간, 속도 등의 사람이 경험하는 요소들로 이 세상의 존재나 현상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에
유물론 등의 한계성 짙은 사조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고 그때까지의 철학 한계를 언급했다.
어쩌면 근대까지의 서양철학이 비판받는 지점인, 세상을 구분짓고 요소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견지이다.
(동양의 철학은, 유학만 본다면, 정신적인 세계 자체를 통합하여 탐구했기 때문에 발전되어온 체계가 있으나
나중에 주자 이후의 성리학으로 오히려 서양철학과 같이 개념을 나누어 체계화 시켜버려 한계적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은 노자를 깊이 해석하고 거기서 이야기한 "존재"를 더욱 발전시켜 이야기함으로써 그의 사상을 단단히 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면, 많은 사상적 발전이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음 세대인 들뢰즈와 푸코 등의 현대철학은 이러한 바탕위에서 활발히 다양한 현상의 관계를 이야기 했다.
이러한 사유의 시대에서 과학분야 역시,
고전 물리학의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현대 물리학도 구성 요소만 분석하는 차원을 넘은,
전체적 관점에서의 우주론으로 접근되어야하지 않을까 한다.
(암흑물질을 쫒던 한계성에서 수정 역학으로 시도되고 있다고 한다.)
물질과 물질이 부딪히던 시대는 자본과 생산성으로부터의 생명경시와 핵 무기라는 큰 비극을 낳았다.
물질과 물질, 정신과 현상과 물질이 존재로써 연결되는 시대를 이미 철학자들은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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