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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17474
    작성자 : NoirCafé
    추천 : 12
    조회수 : 928
    IP : 220.84.***.158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4/07/31 21:56:20
    http://todayhumor.com/?history_17474 모바일
    최초의 공인신교 후스교의 흥망성쇠 - 興편
    현대세계의 자타공인 지배문명인 유럽문명에 있어서 종교혁명만큼 이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드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교혁명은 비단 유럽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반대편 세계에 있어서도 의의를 갖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키워드를 보거나 듣고 각 개인이 떠올릴 사람과 문물은 제각각이겠지만, 아마도 대개 루터나 칼뱅, 혹은 그들의 종교를 떠올릴테고 일부는 위클리프나 클뤼니 수도원 등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네임드'들에 가려진 그림자 속에 루터나 칼뱅에 앞서 종교개혁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가 결국 사상적인 후계자들에 의하여 새로운 종교창설운동으로까지 확장되어 결국 로마 교황청의 공식승인까지 받아내 훗날의 루터와 칼뱅의 사상과 활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저평가받는 '후스'라는 인물, 그리고 그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창시된 '후스교'라는 종교 또한 존재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인물들에 비해 후스가 저평가받는 이유는 여러가지 측면이 있을수 있겠습니다만, 그 중 하나로 후스교가 창시되어 영향을 미친 보헤미아, 즉 오늘날의 체코라는 지역이 갖는 현대세계에서의 영향력이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등을 포괄하는 이른바 '신교 블럭'이나 혹은 위클리프나 클뤼니 수도원의 활동지역이었던 잉글랜드나 프랑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음모론이 다소 섞인 가정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Czech.png

     지역명이자 이 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존속하였던 왕국의 국호이기도 한 보헤미아는 오늘날의 체코 공화국의 중심부를 점하는 노른자지대였습니다. 이 지방은 엘베강과 블타바강이 흐르는 평지로 비옥하고 풍요로운 지방이었습니다. 이 지방을 거점으로 형성된 보헤미아 왕국은 체코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카렐 4세의 치세하에 크게 번창하는데, 카렐 4세는 보헤미아 주변지역을 왕국에 편입시켜 연방제도의 기틀을 닦고 내치를 통해 국가를 중흥시키는 한편, 대성당 건축을 포함하여 기념비적인 문화업적을 이룩해내는 등의 업적을 세우며, 그가 만들어낸 보헤미아 지방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의 이름을 따 만든 성 바츨라프 왕관은 오랜기간 보헤미아의 심볼이 되었습니다.

    Karel Bridge.png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인 프라하의 카렐교 및 구시가지의 전경입니다. 오늘날의 카렐교는 카렐 4세가 완성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카렐 4세가 붕어한 후, 왕국은 쇠퇴기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 이유의 근원은 국왕과 귀족들의 대립, 왕권과 교권간 불화 및 이로 인한 통치력의 악화에 있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염병까지 돌자 민심은 흉흉해졌습니다. 반면에 카톨릭의 권위를 등에 업은 교회들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착취와 사치에 더욱 더 열을 올리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250px-Jan_Hus_2.jpg
    (얀 후스)

     후스는 유럽문명이 잉태한 위대한 도시인 프라하의 대학교수로 교양학부 및 신학부의 교수를 역임하고 있었습니다. 후스는 이러한 카톨릭의 추태를 목도하고 잉글랜드의 위클리프 사상의 영향을 받아 프라하에서 설교활동을 펼쳤는데, 그는 당시 유럽 지성계의 공용어였던 라틴어로는 물론, 보헤미아의 민족언어인 체코어로 저술활동을 했으며 동시에 현대까지 이용되는 개량된 체코어 철자법을 창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체코어 찬송가를 보급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활동등을 통하여 보헤미아 왕국사회에 교회의 위정척사를 역설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후스는 보헤미아의 왕실로부터 체코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 됩니다.
     후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위클리프보다 한술 더떠서 설교를 통하여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실행에 옮길것을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후스의 사상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는데 이는 교회의 재산권 박탈을 골자로 하는 교회의 청빈화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후스의 사상을 접하고 빡칠대로 빡친 로마 교황청은 후스에게 소환령을 내렸으나 후스는 소환령을 일축합니다. 이에 더블로 빡친 교황 요한 23세는 1411년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형벌 중 하나인 파문령(excommunicate)을 내리고 그가 살던 지역에 금령조치까지 내리는데 이러한 바티칸의 조치에 당황한 보헤미아의 국왕은 로마 교황청을 두둔할 수 밖에 없었고 후스는 프라하를 떠날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라하를 떠난 후스는 코지 흐라데크라는 성에서 지방귀족들의 보호하에 숙식하며 성서의 체코어 번역작업을 하는한편 교회의 면벌부 판매를 비난하는 등 저술활동을 왕성히 이어나가며 지속적으로 바티칸의 어그로를 끌었습니다.

     결국 로마 교황청은 1414년 신성로마제국의 도시인 콘스탄츠에서 공의회를 개최하였는데, 후스는 이 공의회에 정식초대를 받아 교회 성직자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설파하겠다는 꿈을 갖고 이에 응하여 콘스탄츠로 도착한 이후 간이숙박소에 짐을 풀고 여기서 설교활동을 계속하던 중 결국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는 후스에게 교회에 대한 그의 모든 비판을 철회하고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고 충성을 맹세하라는 협박을 하지만 후스는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그는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하고 맙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후스의 처형식을 참관하기 위해 3명의 총대주교, 23명의 추기경, 106명의 주교, 28명의 왕과 대공을 포함한 수많은 유럽의 지도층들이 모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그의 처형식은 그 의의와 파장이 큰 사건이었습니다.

    180px-Jan_Hus_at_the_Stake.jpg
    (화형당하는 얀 후스)

     후스가 처형됬다는 소식을 접한 보헤미아인들은 격노하였으며 프라하 일대에는 일종의 혁명적인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을 정도였습니다.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가 보헤미아 지방을 이단지역으로 선포하자 이에 보헤미아의 귀족들이 프라하에 모여 공의회의 결정을 보이콧하였으며 후스의 가르침에 따라 보헤미아 지방에서 하느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끝까지 수호하겠다는 선언문을 채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카톨릭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었던 보헤미아 국왕인 바츨라프 4세는 후스교 성직자들을 프라하에서 강제로 추방하는 한편, 자신의 명령에 불복하는 후스교 성직자들을 강제로 체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화가 치민 강경파 후스주의자들이 프라하의 법원에서 동료 후스주의자들의 석방을 요구하여 시위를 펼치다 그것을 거절하는 시의회 배심원들을 시청의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린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제1차 창문 밖 투척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이 여러 회 일어나는 창문 밖 투척사건들은 체코의 역사에 있어서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인데 여튼 이 사건으로 인하여 후스주의 혁명이 프라하에서 발발하게 됩니다.

     때맞춰 보헤미아의 국왕인 바츨라프 4세가 당해에 서거하자 이를 저지할 세력은 보헤미아 왕국내에서 소멸되었고 이에 힘입어 후스파는 단기간에 보헤미아 지방 전역을 제패하고 인접지방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보헤미아에서 후스주의 혁명의 기운이 만연하자 이에 이를 이단으로 여기던 바티칸과 유럽국가들은 즉각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를 짓밟기 위해 출정시켰습니다. 십자군의 선두에는 전 국왕인 바츨라프 4세의 동생이라는 혈연적인 관계를 앞세워 보헤미아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 국왕이었던 지크문트가 앞장섰습니다. 십자군 전쟁 이전 이러한 혈연배경을 내세워 보헤미아의 왕위를 주장했으나 현지귀족들에 의하여 KIN크리를 먹은 지크문트는 십자군을 통해 이들을 짓밟고 보헤미아 왕위를 획득하려고 하였으나 놀랍게도 다섯차례에 걸친 십자군은 모두 후스주의 군대에 의하여 패배하였습니다.

    1420년에 프라하로 향해 진격한 유럽각지의 용병들로 구성된 10만에 달하는 1차 반후스파 십자군의 대부대는 후스군의 외눈박이 명장인 얀 지슈카가 이끄는 1/10 규모의 후스군에게 비트코프 언덕에서 참패를 당합니다. 비트코프 언덕에서 거하게 깨진 이후에도 십자군은 계속 파견됬으나 그때마다 수적열세 하에 있던 후스군에게 차례차례 격파당하고 맙니다.

    얀 지슈카.png
    (프라하의 얀 지슈카 동상)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똥줄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지크문트는 제국도시인 바젤에서 후스군 측과 종전협상을 펼치지만 후스군 강경파의 교회재산 박탈 조항삽입 요구로 협상이 난항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협상교착상태는 곧 해소되는데, 오랜 전쟁으로 지친 대다수의 후스군 온건파들이 결국 강경파들을 축출한 것이 그 발단이 되었습니다.

     결국 체코 남부의 이흘라바라는 도시에서 바젤종교회의 대표들과 후스군 대표들과의 이흘라바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보헤미아의 후스파들은 비록 승리하였다고는 하지만 오랜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또한 체구가 작은 보헤미아로서는 장기간 신성로마제국과 그의 빽을 받쳐주는 교회세력과 대치하는 것이 사실상 무리였기 때문에 부분적인 승리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투쟁의 댓가로 매우 값진것을 얻었는데, 바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공인된 것이었습니다. 보헤미아 왕국령의 주민들은 이제 후스교와 카톨릭 중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며 후스교 또한 로마교회의 한 부분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명시되었습니다. 또한 후스주의에 따라 교회재산이 몰수되었습니다.
     이는 교황이 협약승인을 거부한 불완전한 권리였으나 이 협약을 통하여 보헤미아 왕국은 유럽 기독교권에서 후스교와 카톨릭이 공존하는 사실상 최초의 신교국가가 되었으며 교회가 비세속화됨에 따라 이 왕국은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혁신적인 국가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차지했던 빈 자리는 귀족들과 도시의 대표들이 꿰어차게 되었으며 이는 귀족정치의 등장을 암시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귀족과 시민의 권익이 향상되었고 교회몰수 재산이 풀림에 따라 도시경제가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보헤미아 도시사회의 부흥의 이면에는 전쟁에 큰 공헌을 하고도 폐허가 된 농토를 재건해야하는 부담을 진채 농토에 더욱 예속된 농민사회도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

     보헤미아 밖으로도 이가 미친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스주의운동은 중세 봉건사회 몰락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도시 계층의 부상의 스타트를 끊었다는 점에서 새 사회의 도래를 예고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의 가장 큰 의의는 유럽의 정신사에 남긴 자유에 대한 불굴의 신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스주의의 이러한 유산은 훗날 그의 관점을 추종한 루터와 칼뱅에 의해 완성되어 종교의 지배를 무너뜨리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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