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독신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플랫(flat)에서 rent를 하고 있다.
Rent라는 말은 옛날에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생소했을 것이나, 이제는 뮤지컬 렌트(rent)의 인기 덕분에 한국인들도 많이 이해하고 있듯이 한국의 월셋방과 비슷한 개념이다.
내가 기거하고 있는 flat은 방 세 개짜리인데, 공교롭게도 현재 같이 살고 있는 나의 share mate들은 모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다.
Share mate는 미국에서는 room mate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집을 방 하나씩 차지하고 같이 사용하니까, 집을 같이 share 하는 mate인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 동안 중국인, 호주인, 인도인, 일본인 등등 수많은 국가, 인종의 share mate들과 함께 살아 보았지만, 이번처럼 모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과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한 명은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이고, 또 한 명은 인도네시아 출신인데, 이들은 늘 겸손하고 정중하며 대단히 종교적인 인격자들이다.
이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술은 단 한 모금도 입에 대어 본적이 없고, 돼지고기는 그 냄새도 맡기 싫어한다.
술자리를 꽤나 좋아하는 나는 소주와 삼겹살을 꽤 즐기는 편이었는데, 이들과 같이 살다 보니 건강 때문에 매일 저녁 한잔씩 즐기는 와인은 계속 마시고 있지만, 돼지고기는 나도 모르게 삼가게 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나에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강요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냄새를 못 견뎌 하지만 타 문화권에서 먹는 것은 존중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이들은 또한 대단히 종교적이어서 하루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는 종교적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탈레반이나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리즘을 자행하는 과격 이슬람 단체들을 신의 뜻을 거스르는 옳지 못한 자들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슬람은 일부 한국인들이나 서구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지하드를 부르짖으며 테러리즘을 자행하는 정신병자들과 너무나도 거리가 먼, 상당히 존경 받을 교리를 갖춘 훌륭한 종교임을 알게 된다.
호주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0여명이 납치된 사실은 매일 같이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다.
물론 요즘 호주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는 테러리스트들을 도왔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애매모호한 혐의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악하고 불충분한 증거만으로 체포되어 많은 호주인들로부터 동정을 사고 있는 인도출신 의사와 호주 총선 정국이지만, 그래도 기독교인 의료봉사자들이 단체로 납치된 것은 자그마하게나마 매일 뉴스화 되고 있다.
자연히 뉴스를 같이 시청하다가 이들 납치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Share mate들과 마침 찾아온 그들의 무슬림 친구들은 우선 왜 한국인 기독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는지 그 자체부터 대단히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같은 이슬람 사회 내에서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완전 꼴통 이슬람 중에서도 최고 꼴통 취급 받는 국가들이라고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share mate는 사우디 아라비아도 대단히 보수 이슬람 국가에 속하는 편이지만, 그런 사우디 아라비아도 꼴통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라가 바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라고 한다.
그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무슬림 친구는 그동안 수 많은 서구인들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기독교 선교 목적으로 들어갔다가 1년도 안돼 오히려 자신들이 무슬림으로 개종되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하면서 이것은 절대로 농담이 아니라고 하자 모두들 그 말에 수긍하며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Share mate는 이슬람 사회에서는 절대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이슬람 사회 내에서 타인에게 이슬람을 강요하는 것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한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친구가 일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저런 꼴통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 선교를 감히 꿈꾸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며 웃는다.
다시 인도네시아 출신의 share mate는 이슬람에서는 이슬람을 믿다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하는 종교적인 죄악이기 때문에, 이슬람인에게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종교적 죄악을 저지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슬람 사회내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들 이슬람교인들이 보았을 때 한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떻게든 교회를 개척해 보겠다는 시도는 그 자체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계란으로 바위만 계속 치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그간 다수의 한국 목사님들이나 개신교 계통 언론들의 칼럼들을 통해 내가 받은 인상은 최근 한국 개신교회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와 같은 이슬람 국가들, 즉 개신교회가 없는 미개척지들을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에 빠진 우리나라와 혼동하는 착각에 빠진 것 같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당장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했던 한국인들에게 교회에 나오는 대가로 나누어준 먹을 것과 옷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이들 공짜 물품들은 사실 미국 구호단체들이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한국인들에게 고루 나누어주라는 의미로 정성껏 모아온 물품들이었는데, 당시 이승만 박사와 그 주변 인물들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집중하려는 의도로 그나마 모든 교회도 아니고 친 이승만적인 교회만 골라 그들에게만 나누어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전쟁 직후 개신교회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최근 개신교 계통 언론들의 칼럼들을 보면 이 같은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직후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도 공짜로 먹을 것과 의료혜택 등 편의를 제공해주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 한국에서의 성공처럼 비슷하게 어떻게 되지 않을까라는 극히 얄팍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너도 나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몰려가 - 물론 이들 선교사들 모두가 다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 한국식 교회 개척을 시도하는 모양인데,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과 이미 이슬람 세계 안에서도 꼴통 이슬람으로 유명한 아프가니스탄은 이야기가 달라도 너무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이해하고 제발 더 이상 불필요한 희생이 나오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무슬림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차라리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으면 죽었지, 몇 끼 식사와 옷 몇 벌에 개신교로 개종할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점을 제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몇몇 개신교 신자들의 글들을 읽어보면 이번 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을 모두 '반개신교적'이거나 개신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귀 기울일 가치조차 없는 이성 잃은 안티 세력들의 글들쯤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선교 봉사단의 납치를 두고 비판하는 것은 대부분 그들 선교단의 무모함과 타 문화나 종교에 대한 존중이 티끌만큼도 없이 어떻게든 한국식으로 계속 끈질기게 뭉개면 언젠가는 자신이 선호하는 종교와 믿음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고, 그것이 절대 옳은 행위라고 믿는 유아적 착각이 문제이기에 그것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보통의 경우, 한나라당을 비판하면 무조건 노빠로 몰아가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면 무조건 수구 꼴통으로 몰고 가는 식의 흑백논리에만 익숙해 있어서 이번 사태에 대한 비난을 개신교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개신교 신자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순전히 오해다.
대부분의 글들을 읽어보면 개신교 자체에 대한 비난이라기 보다는, 싫다는데도 무조건 "에이, 좋으면서.." 식으로 계속 선교 활동을 하며 제 무덤을 파고 있는 악질 스토커형 선교사들의 무모함과 무식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옛 이야기 한 토막을 하면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어느 마을에 큰 홍수가 났다.
평소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던 한 남자는 집이 전부 물에 잠기자 지붕위로 올라가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 보트 하나가 그 옆을 지나가면서 어서 옮겨 타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 남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실 것이라며 그냥 가라고 했다.
한참 뒤 군인들이 그 옆을 지나가면서 그에게 자신들의 배로 옮겨 타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면서 그냥 보내버렸다.
물은 점점 차 올랐지만 남자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여 자신을 구해 줄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으므로 겁을 먹지 않았다.
한참 뒤 구조 헬기가 지붕위로 날아와 그에게 빨리 옮겨 타라고 소리쳤다.
그래도 남자는 하나님의 기적을 기다리며 지붕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지붕 위까지 물이 차올라 그 남자는 익사하고 말았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간 그는 원망에 찬 목소리로 하나님께 따졌다.
"주여, 어째서 저를 구해주지 않으셨나이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구하기 위해 보트를 보내고, 군인들을 보내고, 심지어 구조 헬기까지 보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랬더란 말이냐?"
아마 어릴 적 탈무드에서 읽은 한 토막의 이야기라고 기억하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이야기였다.
이 남자는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 내려와 자신을 끌어올리는 어떤 기적을 바랐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을 스스로 거부해버렸던 것이다.
이번 선교사 납치 사태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만일 이들 선교사들의 아프가니스탄 교회 개척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들이 이번처럼 납치당하고 곤경에 처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행위인데 이렇게 목숨이 위협을 받고, 또한 그토록 구해달라고 기도를 하는데도 결국 정부의 외교력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다니, 앞뒤가 안 맞잖아?
이번의 납치를 아프가니스탄이나 기타 개신교 개종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서 억지로 개신교를 권하거나 선교활동 하는데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그 열정과 돈으로 다른 형태의 좋은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더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까?
하나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는데 굳이 아프가니스탄에 억지로 들어가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여 이런 사태를 스스로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가 잘 해결 되고 난 다음, 한국 개신교회 안에서도 이슬람 위험지역에서의 무모하고 공격적인 선교활동에 대해 다시 한번 차분하게 생각해 주기 바란다.
이 모든 것은 일단 현재 납치 된 한국인 선교 봉사단원들이 모두 무사히 풀려 나온 다음에 따져볼 문제들이다. 납치된 한국인 전원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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