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라는 것이 늘 그렇듯...
그 순간 당사자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사실 온전히 그 기분을 느껴보기란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기에, 이런식으로 잔뜩 뜸을 들인 소위 흔하디 흔한 괴담들이, 정작 귀신을 만나고 가위에 눌리고 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맥이 풀릴 수 밖에 없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나름의 체험담을 주절 주절 늘어놓는 것은
그래도 제 이야기를 사실로 믿으시거나, 적어도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어느정도선까지의 공감의 바탕을 가진 분들이 계실 듯 해서 입니다.
기진맥진해서, 잠이 든 그날 밤... 기묘한 꿈을 이틀간 꾸게 되고 맙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형태였는데요...
저는 1인칭 시점으로 한 가족의 모습(정확하게는 엄마와 아빠)을 보고 있고, 그들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보았을때
저는 그 집의 어린 아들, 엄마는 몸에 장애를 가진 분인듯 했고, 아빠는 늘상 술에 취해 우리 두 모자를 심하게
학대하고 두들켜팼습니다.
소위 가정폭력이 매우 심한 문제가정의 모습인데, 제가 말은 이렇게 담담하게 하지만
꿈속에서 아이의 시각으로 그 상황에 놓여있다보면, 마치 나 자신이 아이가 된 듯한
단순한 감정이입 이상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며, 어린 아이처럼 바들바들 떨고 눈물을 흘리고 경기를 일으키며
잠에서 깨어나곤 했더랬습니다.
아빠의 폭력은 단순한 폭행이 아니라, 고문과 학대 수준이었는데
- 엄마에 대해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욕을 저(꿈속의 아이)에게 가르치고 훈련을 시키면서, 똑같이 따라 외우게 하고
말을 듣지 않거나 잘 따라하지 않을때는 강제로 깍지낀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워넣은 다음 손가락들을 한꺼번에
악수하듯 쥐어버리는 고문,
- 쇠톱을 가지고 와서, 늘 거짓말을 하고 밖에 돌아다닌다며, 다리에 대고 1-2초간 빠르게 톱질을 하는 고문
(정말이지 그때의 기억은 꿈속의 기억이 아닐 정도로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톱을 가지고 정강이 부분을 빠르게 톱질하니, 그 어린 살갗이 마치 지퍼 열리듯 양쪽으로 찟어지며 벌어지고
피가 뚝뚝 세어나오는 그 장면..... 그리고 어마어마한 고통...
- 아이를 방안에 가두어놓고, 벌겋게 달구어진 헤어고데기로 토끼몰이 하듯 구석으로 몰아세운뒤
즐거운 장난이라도 치듯, 살짝 살짝 몸 여기저기를 뜨거운 고데기로 지져대던, 그 광기어린 아빠의 흰자위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꿈속의 1인칭 시점이지만, 순간 순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슬퍼서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도 깨어날 수 없는,
그러다 다행이 잠에서 깨어났지만, 가슴 가득 먹먹한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이 가득 차 있어
침대에서 멍하니 앉은채로, 꿈인지 생시인지 나의 경험인지도 분간 못할 정도로 내가 아닌듯한 시간속에서
시계를 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이틀이 지나버렸더군요.
즉, 월요일 오후 5시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제 애니콜 휴대전화는 이미 충전이 되지 않아 꺼져있었고, 자취집에 유선 전화는 없었으니
회사에서는 신입주제에 간 크게 무단 결근한 저에게 무지하게 화가 나 있었을 상황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집을 나와 가까운 공중전화로 가서
회사에 전화를 해, 주말동안 몸살 감기가 너무 심해 감기약을 먹고 잤더니, 그만 지금 일어나 버렸다고
간신히 둘러대며, 지금이라도 출근을 하겠다며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도 그 기묘한 꿈의 여운이 남아 있어, 기분이 너무 우울했지만
상식적으로 토요일 초저녁부터 월요일 오후까지 잠을 자버렸다는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처한 입장이라
그 모든것이 장롱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만 이틀을 잠자느라 굶은 신세였지만, 일단 회사에 얼굴을 비추고 할 일은 해야 했었기에
없는 돈에 택시를 타고 아주 늦은 출근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진짜 아파보였는지(이틀을 자면서, 눈물을 흘렸더니 거울속의 제 모습은 얼굴도 붓고 눈도 퉁퉁 부어있더군요)
큰 잔소리는 듣지 않고 그럭저럭 그날을 마무리 했더랬습니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끓여먹고 잠자리에 누웠는데(물론 그때는 간밤에 꾼 꿈을 까마득히 잊은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실컷 잤음에도 여전히 몸이 피곤하더군요.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는데,
세로로 덮어야 할 이불을 가로로 덮고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더니
이불 아래로 발목이 삐져나가더군요. 다들 이런 경험 있을겁니다.
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날 따라 웬지 이불밖으로 나온 다리가 신경쓰이더군요.
하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약간 불길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떴는데, 침대가 보이고 누가 누워있더군요.
한마디로 제 침대에 제가 누워있는게 제 눈에 보였던겁니다. 그걸 보고 있는 저는 둥실둥실떠서 천장에 닿을듯한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구요.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 신묘한 상황이었습니다. 가위눌림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그리고 원룸 한쪽에 놓아두었던 장롱문이 살짝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슬그머니 장롱에서 나오는 게 보이더군요.
흔히 심장이 멎어버릴것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여러분은 그때 제 심정이 상상이나 가실런지요...
나는 공중에 떠서 또 다른 내가 자고 있는걸 보고 있고,
어두운 저편에 놓여있는 장롱에선 검은 그림자(사람보다는 조금 작은듯한)가 살며시 기어나와
침대위에 있는 저에게도 살금살금 다가가는 그 광경을 말입니다...
그리고는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제 다리쪽으로 다가가, 이불위에 자라잡더니
그 시커먼 존재가 몸을 들썩이기 시작하더군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와중에도 저게 무슨 행동을 하나, 곰곰히 내려바봤더니
다름아닌, 이불 밖으로 나온 제 발목에 톱질을 하고 있는게 아닙니까...
저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는데, 목구멍이 막힌듯 소리가 나질 않고
가위에 눌린듯 꼼짝달싹하지 못한 상태에서 천장에 둥둥 떠 있었고
갑자기 톱질을 하던 그 검은 형체가 고개를 드는듯한 모습을 취하며 저를 바라보는데
아... 저와 눈이 마주친 그것은 사람의 웃고 있는 얼굴이더군요.
큭큭과 킥킥의 중간 정도의 소리도 들렸는데, 마치 저를 비웃는것처럼 느껴졌고
사사삭하는 움직임과 함께 천장에 떠 있는 저에게 다가오기위해
벽을 타기 시작하더군요...
ㅎㅎㅎ 참 웃긴 일이죠. 제가 어차피 체험담이라고 주장해도, 너무나 황당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보니
사실 저라도 이런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진지하게 겪은 일을 글로 올리는 입장인데 말이죠...
[출처 -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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