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하늘은 곧 비가 쏟아질 듯 어두웠다. 화양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두 명의 남녀가 어색한 듯 웃고 있었다. 남자는 뛰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정장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단정해 보였다. 여자 역시 단정한 차림으로 커피를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33살의 류성수라고 합니다”
남자는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현재 무역회사에서 근무중이고 4년차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최혜인이구 현재 은행에서 근무중이고 29살이에요”
남자와 여자는 기본적인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로의 관심사와 현재 하고 있는일에 대해서 기본적인 대화를 나누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었다.
“까톡!”
남자의 스마트폰이 울렸고 그의 스마트폰의 액정에서는 엄마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남자는 한창 대화를 잘이어나가는 와중이라서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렸다.
“까톡! 까톡! 까톡!”
어색한 분위기를 겨우 풀어나가고 있는데 계속해서 울리는 그의 스마트폰이 그는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확인해보세요.”
여자는 남자의 당황한 모습에 살포시 웃음을 짓고 핸드폰을 확인해도 좋다는 듯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잠깐 급한 일이 있나보네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남자는 그의 원망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듯이 핸드폰을 꾹 쥐고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액정을 바라보자 그안에는 자신의 선 결과를 기대하는 어머니의 궁금증을 담은 문자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문득 그는 갑자기 담배 한 까치가 너무 그리워졌다. 어머니의 극성에 의해 나온 선 자리이지만 그 역시 이제 자리를 잡았고 장남으로서 결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에 긍정적으로 나온 선 자리였다. 하지만 만난지 10분 남짓에 상대방의 느낌을 묻는 어머니에게서 그는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벌써 33살이 되고 11개월이 지난 시점이고 그의 33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 역시 동감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오던 결혼과는 다르게 서로의 조건을 보고 결혼한다는 점은 역시 그의 입맛을 씁쓸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갑자기 울리는 그의 핸드폰 소리에 그는 핸드폰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어머니로부터의 수신전화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결국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 어때 성수야? 아가씨가 괜찮지 않니?”
“엄마 만난지 10분 됬어. 뭐 벌써 그런걸 물어봐?”
“느낌이란게 있잖니, 느낌! 너도 이제 빨리 결혼해야지 1개월만 있으면 34살이야!”
34살이라는 어머니의 말이 그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혔다. 하지만 그는 현실이니까 라고 자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매너가 아니잖아.”
“그래 엄마는 우리 아들 믿는다. 내년에는 꼭 결혼하자. 니 동생도 벌써 아빠인데 우리 장남도 결혼 해야지?”
결국 그가 제일 꺼리는 이야기마저 나오자 그는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고 싶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33살이나 돼서 이러한 이야기에 발끈하듯 전화를 끊는 것은 어른답지 않다고 자기 자신을 달래며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쳤다. 그는 혹여나 어머니와의 전화로 상한 기분이 자신의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나 거울을 바라보고 손을 씻은 후에 화장실을 나왔다. 화장실을 나온 그의 눈에 맞선 상대가 눈에 들어왔다. 기다리는게 무료하다는 듯이 핸드폰을 쳐다보며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에 어서 빨리 다가가야 겠다는 생각만이 앞서고 있었다.
“죄송해요. 중요한 전화라서”
멋쩍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자 핸드폰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의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어머니한테 전화온거 아니였어요?”
갑작스럽게 들어온 그녀의 돌직구에 그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하하하, 들으신거에요?”
“네 너무 커서 다들리던데요”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못 들은 척 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할뿐 그녀의 당돌한 말에 당황한 그의 입은 움직일수가 없었다.
“33살이시니까요. 저도 다 이해해요. 내일 모레 34살이시니까요.”
그녀는 다시 한번 그의 아픈 부분을 찌르고 있었다. 그가 33살이고 현재 미혼이며 진지하게 교제중인 여성이 없다는 부분은 그의 아픈 부분이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위의 시선은 그에게 불안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불안감은 전염된다는 말이 맞듯이 그도 그러한 시선에 의해 왠지 모르게 치부로 여기고 있었다.
“34살이라 끔찍한 소리 말아주세요. 후 저도 나름 젊다고 생각했는데”
“아저씨지요, 아저씨.”
‘이 아가씨는 내가 벌써부터 맘에 들지 않은건가?‘
그녀의 당돌한 말에 그는 표정이 찌푸려지려 했으나 억지로 눌러가며 웃는 그의 입주위는 경련이 일어나려 했다.
“죄송합니다. 나이 많아서”
하지만 그의 불편한 심기는 어쩔수 없이 한마디의 퉁명한 말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푸훗, 삐진거에요?”
“아닙니다”
“에이 누가봐도 삐졌구만 뭘”
그녀는 그를 놀려먹는데 재미가 들렸는지 계속해서 그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고 그는 아닌척하고 있었지만 삐져있었다.
“가요.”
“어딜요?”
“밥 먹으러 가야죠! 설마 커피만 먹고 들어가려는 거에요?”
‘도대체 내가 맘에 든거야 아닌거야?
여자의 당돌한 태도는 남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자리이고 어머니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가도록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맞춰줄 것을 결심했다.
“얼른 일어나요!”
“아 예이예이”
하지만 여성의 이러한 태도는 그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했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웃고 있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뛰어나가 버렸고 그는 자신이 만나고 있는 여성이 29살이 맞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며 계산대 앞에 섰다.
“계산이요.”
“안 나오고 뭐해요? 내가 했어요!”
계산대 앞에 서 있는 그에게 그녀는 웃으며 말하고는 그의 팔을 이끌었다. 그 때 처음으로 그는 선 자리라는 생각을 잊고 그녀라는 사람 자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의 머릿결과 그녀의 향수냄새 그리고 그녀의 옷차림, 그녀의 이목구비 만난지 10분이 넘어서야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타세요”
그의 중형세단의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태운 뒤 안전벨트까지 확인한 후에 알아두었던 맛집을 향해서 출발했다.
“차가 조금 오래됬네요?”
그의 집은 부유한 편이 아니였기 때문에 그는 자립적으로 차를 구매해야 했다. 그의 여유내에서 구매할수 있는 차는 경차를 새로 뽑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무역 전문인으로서 언젠가 바이어를 접대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어서 무리해서라도 중형세단을 구매했다. 단지 그차는 중고였고 세상을 살아온 기한이 조금 길 뿐이었다.
“잘 굴러가잖아요?”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차에 대해서 투덜투덜대고 있었다. 나름 그의 애마를 무시하는 그녀의 태도에 그도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그래도 차 냄새가 너무 좋네요. 은은한 커피 향이 나는 것 같아요.”
그녀는 그 한마디를 내 뱉으면서 그를 향해서 씨익 웃어볼 뿐이었다. 불평한 것이 장난이었다는 듯이 웃는 그녀의 모습에 그 역시 기분이 풀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관심사와 자신들의 주위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혜인이라는 여성이 매우 사람을 편하게 해주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점 더 그녀에 대한 호감이 깊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선 자리라는 부담감을 잊고 그 역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맛집에 도착하자 그는 차에서 그녀의 차문을 열어주었다.
“에이 이런거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아가씨 얼굴은 웃고 있는데요’
그는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고 수줍은 듯이 웃는 그녀의 모습에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웨이터는 명부를 뒤져보기 시작했고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성수와 웨이터의 얼굴 모두 당황의 빛을 띄기 시작했다.
“저기, 내일로 예약이 되어있습니다. 고객님.”
“네? 분명 오늘인데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그는 옆을 쳐다보았고 그의 옆에서 상황을 다 지켜본 그녀는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오늘 11월 4일이잖아요?”
“예약은 11월 5일로 되있는데요.”
훈훈했던 분위기에 찬물이 뿌려진 것 같았다. 당황한 그는 휴대폰을 들어 예약을 확인했고 그의 액정위에는 11월 5일로 예약이 됬다는 확인 문자가 존재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