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33285 ============================
메가박스에서 <디-워>의 기자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모 인터넷언론의 기자 자격이 있는지라 갈 수 있었죠. 자리가 부족해서 맨앞에서 봤습니다.
보도자료를 보니 자그마치 8년이 걸린 영화였습니다. 1999년 8월에 기획을 시작했고, 2001년 11월의 국내에서의 테스트 촬영을 시작으로 드디어 2007년까지 오게 된겁니다. 개봉은 8월 1일입니다.
무대인사하러 온 심형래 감독을 보니 표정이 꽤 밝았습니다. "남들은 <용가리>를 실패라고들 하지만, 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자신감을 피력하더군요. 길어진 제작기간이나, 이런저런 뒷이야기 등, 심형래 감독으로서도 어려웠던 시간들이 많았을텐데, 감회가 새로웠겠죠.
사실, 저 역시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아무리 컴퓨터그래픽 중심의 SF영화라 해도, 영화는 '이야기'인 이상, 각본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디-워>에 거론되던 약점 중 하나는 바로 시나리오였습니다.
어쨌든, <디-워>는 8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우리의 눈에 선보여집니다. 먼저 본 사람으로서, 제 감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 이상'입니다.
완벽한 그래픽,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참고로 <디-워>의 런닝타임은 90분에 불과합니다. 시나리오 상의 약점이 대두되던지라 불안요소로 보이였습니다만, 오히려 이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쓸데없는 부분을 줄이고, 보여줄 것만 간결하면서도 힘있게 보여준다는 효과를 유발했기 때문입니다. 엉차피 볼거리 중심의 SF 영화에요. 천재적인 시나리오 작가가 가담해, 혁명적인 각본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면 '보여줘야 할 것'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게 낫습니다.
그런데, 그 '보여줘야 할 것'들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일단 기대를 모았던 길이 200m, 높이 9m에 달하는 이무기 '부라퀴'부터가 장관입니다. 다들 <고질라>를 많이 거론들 하셨는데, 그에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부라퀴'는 나중에 클라이맥스에서 '용'과 최후의 결전을 갖는데, 클라이맥스다운 압도적인 스케일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지금까지 공개됐던 그 어떤 한국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박진감을 느끼실 듯합니다.
심형래 감독이 추구했던 것은 "스타마케팅에 의존하는 것보다, 괴수 캐릭터를 창작하는 것이 더욱 부가가치가 높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괴수 마케팅'이 선보일 수 있는 장점은, 스크린을 통해 느껴보는 압도적인 스케일, 그리고 그로부터 느껴지는 '짜릿한 즐거움'입니다.
스케일을 통한 '짜릿한 즐거움'을 선택했을 때, 중요한 것은 관객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워>는 정말로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무기 '부라퀴'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동영상에서나 봐왔던 압도적인 기사 집단의 행군과 액션 등도 충분한 볼거리가 될만 합니다.
비유하자면, 맛있는 메뉴들이 정말 풍성하게, 끊임없이 나온다는거죠. 먹는 사람의 혼을 빼놓을 수 있는 메뉴라는겁니다. 게다가, 외국인 스탭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컴퓨터그래픽은 영구무비아트 주도로 구성됐지만, 음악, 음향, 편집, 색보정 등의 기술은 모두 할리우드의 기술입니다.
주로 마이클 베이와 함께 작업했던 <트랜스포머>의 음악감독 스티브 자브론스키, <제5원소>와 <라이온킹>의 음향을 맡았던 마크 맨지니, <콘에어>의 편집을 맡았던 팀 앨버슨, <스파이더맨>과 <다빈치 코드>, <반지의 제왕> 등의 색 보정을 맡았던 '이필름(EFILM)' 등, 할리우드의 핵심적인 기술진들입니다.
심형래 감독의 가장 확실한 영향력은, 자부심도 강할법한 이 스탭들을 조화롭게 움직이면서 <디-워> 전체의 조화를 유도했다는 것일 듯합니다. 특히나, 작품의 핵심인 '컴퓨터그래픽'은 영구아트무비의 기술력이 세계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정말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즐거운 향연이었습니다.
<디-워>의 각본이 D급? 'B-'는 될 것
물론 <디-워>의 구도는 간단합니다. 500년 전에 용으로 승천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이무기 '발퀴르'가 다시 나타나 미국을 뒤집어놓는다는겁니다. 주인공 '이든(제이슨 베어)'와 '세라(아만다 브룩스)'는 그 해결의 열쇠를 거머쥔 환생 캐릭터구요.
중요한 것은 이 500년 전의 설정을, 조선시대로 자리잡으면서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알듯 모를듯한 즐거움이 배가된다는거죠. '부라퀴'의 부하 기사집단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 때 묘사되는 조선의 풍경도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광활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란 산업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문화입니다. 그동안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폐지를 반대하면서 내건 명분 중 하나가 "우리 영화는 우리 문화"라는 것이기도 했죠. 영화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때 누릴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화적 효과는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린다는 것"이구요.
<디-워>는 조선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세계에 알린다'는 장점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영화로 거듭납니다. <디-워>는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을 노리는 영화죠. 지금은 1500개 가량의 스크린을 잡았다고 하는데, 심형래 감독의 말로는 1700개 이상으로 늘릴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디-워>가 미국시장에서 호평을 얻어낼 수 있다는거면, 가장 큰 문화적 파급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거죠. 게다가 <디-워>의 주역이던 '이무기'와 '용'도 한국인의 정서와 친숙한 동양의 신화적 캐릭터구요.
그동안 <디-워>에 거론되던 약점인 '시나리오 문제'에는 늘 D급의 시나리오라는 평이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저 역시 한국인이라 이런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B- 정도의 평은 받을 수 있어 보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차피 SF 영화입니다. 볼거리가 중요한 영화라는거죠. 그렇다면, 기본적인 구도만 충실하게 잡아놓고, 볼거리는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만 해도 충분하다는겁니다.
물론, '이든'이나 '세라' 등의 주인공 캐릭터가 생각보다 미약하게 등장하고, 군데군데 개연성이 떨어지는 구성도 있습니다만, 큰 흠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디-워>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배우 로버트 포스터도 적절하게 중심을 잡아주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도 있겠구요.
그렇듯 <디-워>는 자기 자신의 구도에 충실하고, 볼거리 역시 무리없이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시나리오가 D급이라는 평은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심형래, 그의 다음 행보는?
조심스럽게 예상하자면, <디-워>의 국내흥행은 걱정할 요소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심형래 감독 개인을 주목하는 관객들도 많죠.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심형래의 영화만큼은 꼭 보겠다"는 관객이 많습니다.
거기에, 애초의 기대보다 더 괜찮은 작품의 수준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그 정도의 영화가 총제작비 700억원이라면, 할리우드의 풍토를 생각해볼때 비교적 저렴하게 찍은 것이라는 점에서 또다시 놀라움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뭐겠습니까? 심형래 감독의 장담대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미국판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국내판에서는 엔딩 크레딧에서 심형래 감독의 각오와 제작 소감이 '영구 사진'을 배경으로 보여진다는겁니다. 어느 정도는 '자화자찬'으로 보일 소지도 있어 웃음이 났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심형래 감독의 도전 의지와 야심이 잘 드러납니다. <용가리>의 실패에 대한 변명의 요소도 물론 약간은 있죠.
도전 의지와 야심, 핵심은 그겁니다. 특히 남자란, 야심을 먹고 사는 동물이죠. 자신의 야심을 뚝심있게 밀어붙어 성취하는 남자의 모습처럼 멋있는게 또 있을까요? 그래서 그 '약간의 자화자찬'도 이해할 여지가 있어보이고,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심형래 감독, 분명히 <디-워>로 끝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나이 오십, 아직 한창 더 뭔가를 추구할 수 있는 작품이구요. 그 자신의 야심이 세계적인 장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SF영화 전문감독이라면, 걸어야 할 길이 아직 한참은 더 남았다는 이야깁니다.
즐겁습니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그 이후를 기대하는 일은 진정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심형래 감독이 이 즐거움을 늘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뒤에는, 과거 그가 연기했던 '영구'를 사랑했고, 늘 함께 있던 '땡칠이'를 사랑했던, 그리고 <우뢰매>를 보면서 감동을 느꼈던 어린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해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일관적인 길을 뚝심있게 보여준다면, 그 사랑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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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 나왔나보군요! 아 보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