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지만원
Subject
아프칸의 딜레마
분당의 샘물교회가 청년회의 젊은 신도 23명을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화동하라고 보낸 모양이다. 이들이 탈레반 무장 폭도들에 의해 납치되어 국가정책과 맞바꾸자는 협상을 하고 있다. 이 무장단체들에 요구는 아프카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의 즉각적인 철수라 한다. 철수를 시키지 않으면 이들을 모두 사살하겠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들의 가족들은 외교통상부를 방문하여 즉시 아프간 주둔군의 철수를 끈질기게 주장하는 모양이다.
가족들에겐 피랍된 식구들의 목숨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아프카니스탄에 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쯤은 얼마 전 윤하사의 죽음과 2004년의 김선일 사건으로 충분히 경고돼 있는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교회단위에서 왜 그 귀한 청년부 교인들을 대거 위험지역으로 보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가 노무현이라 해도 이상태에서는 답을 내기기 어려울 것이다.
답을 내기 전에 우선 생각나는 과거의 사레가 있다.
2004년 6.14일 이탈리아 청년 '콰트로키'는 무장테러범 앞에서 “이탈리아인이 어떻게 죽는지 보여주겠다”며 괴한들에 온 몸으로 돌진하다가 놀란 괴한들의 총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의 용감한 기상에 지금 이탈리아인들은 폭발적인 긍지를 느끼고 있으며 파병을 반대하던 야당 세력들도 정부의 방침에 동조하여 국론을 일치시켰다고 한다.
일본인 3명이 테러범들에 납치됐다가 풀려났다. 그들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에 저항하기 위해 이라크로 갔다. 정부가 '그 곳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그들은 용감하게 떠났고, 곧 납치됐다. 괴한들 앞에서 살려달라며 공포에 떠는 모습이 비디오에 담겨 방송됐다. 일본 정부는 화가 났지만 일단 뒷돈을 주고 빼내왔다. 그 3인의 일본인들은 그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들 3인의 비열한 모습들을 본 일본인들은 사무라이 정신에 먹칠을 했다며 이들의 집들을 에워쌌다. 이들은 문밖을 나와 본 적이 없다. 일본시민들은 이렇게 외친다.
"뒷돈이 얼마냐, 모두 밝혀라, 3인을 데려온 비행기 표 값도 물어내라, 국가가 언제 너희들을 이라크로 보냈느냐, 네가 좋아서 갔는데 어째서 국민이 낸 세금을 네게 쓸 수 있느냐. 네놈들 때문에 일본의 자존심이 창피하게 구겨졌다".
반면 대한민국은 어떠했는가? 김선일씨는 미군을 상대로 돈을 벌러 이라크에 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라크 여성과 결혼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가 좋아서 간 것이다. 국가가 그를 보냈는가? 그가 한국인을 위해서 갔는가? 그의 죽음은 이탈리아의 '콰트로키' 처럼 국민에게 승리감을 안겨준 게 아니라 3인의 일본인들처럼 비참한 패배감을 안겨주었고 국론을 분열시켰다.
더구나 그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요 설교자였다. 35세의 나이도 적지 않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연약한 인간의 심리적 절규는 김선일씨에게나 이탈리아인에게나 똑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청년은 "이탈리아인이 어떻게 죽는지 보여주겠다"고 했고, 김선일씨는 살려달라 애걸하다가 참혹하게 죽었다. 이탈리아인은 정신적인 승리자가 되었고, 김선일시는 정신적인 패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을 보자. 일본 국민은 정신적인 패자가 되어 돌아온 3인의 일본인을 인격살인하고 있다. 비겁하게 살아 돌아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고 있다. 3인은 일본의 자존심에 먹칠을 했지만 2억 일본인들은 아직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을 보자. 김선일씨에게도 이태리 청년이 보여준 것과 같은 자존심이 보이지 않았고, 그를 옹호하는 다수의 국민에게도 모두 자존심이 없었다. 우리는 김선일씨의 죽음에 명복을 빈다. 그 분의 죽음을 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 초연하기 어려운 것도 안다.
하지만 필자는 지적하고 싶다. 김선일이 죽었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요란했던가를, 반면 2002년6.29에 국가를 지키다가 명예롭고 장렬하게 죽은 우리 해군 장병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냉담했던가를!
모든 국민이 이번 인질들의 무사한 귀국을 하늘에 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참으로 어려운 사건이다.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분당의 샘물교회다. 이 시점에서 만일 대한민국이 알카에다 무장 폭도들의 협박에 무릎을 꿇는다면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샘물교회는 참으로 대한민국에 엄청난 폐를 끼치고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전 세계인들의 앞에서 구기게 할지도 모르는 경거망동을 한 것이다.
의사결정은 자기들이 해놓고, 그 책임을 국가더러 지라 하고, 국민더러 지라 하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선택은 3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한국 김선일의 운명을 따를 것이냐, 3인의 일본 김선일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이탈리아 청년을 따를 것이냐!
당사자들의 마음은 참으로 처절하겠지만 정부의 의사결정과 국민들의 각오는 냉정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가족들이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행동의 가닥을 잡는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어느 사회에나 공이 따로 있고 사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명확할 때에 그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서해교전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사한 장병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들도 그들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는 똑같이 귀하고 귀여운 식구들이다. 이들이 그들의 목숨을 국가보더 더 귀하게 생각했다면 그들 역시 국가를 버리고 그들의 목숨을 선택했을 것이다. 애국은 군인들만 하는 게 아니다.
이들 전사한 6명의 장병은 국가가 책임진다고 보내달라 해서 군에 입대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가는 이들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국가가 그들의 전사를 명예롭게 칭송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라는 자는 빨간 넥타이 매고 일본으로 공놀이 구경을 갔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다며 영혼마저 싸가지고 외국으로 가버렸다.
반면 이번 교인들이 아프칸에 가는 데 대해 국가는 책임진다 한 일 없다. 그런데 어째서 국가더러 책임지라 하고, 국민더러 자존심 좀 죽여달라 강요하는가!
2007.7.21
개념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