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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몇몇은 개인적이다. 삶은 가끔 우리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기도 하니까.
그 중 몇몇은 야심에서 비롯된다. 마을 건너편에 지금 직업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일이 있다. 더 많은 기회, 더 많이 배울 기회, 꿈꾸던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는 길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
또 다른 이유는 실용적이기도 하다. 인정하기에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배가 침몰하고 있다면 뛰어내려 수영을 해서 해안가에 닿긴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가끔, 이 세 가지 중 어떤 이유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잘 나가는 회사에서, 배울 기회도 많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은데도 떠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미친 짓 같지만,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
누군가 당신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고 치자. 아름다운 그림, 걸작, 매우 중요한 빌딩의 로비에 걸릴 그런 그림 말이다.
당신은 “좋네요” 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미 어느 수준에 이른 작가이고, 이건 꽤 흥분되는 프로젝트이다. 이어서 당신은 이 그림이 어떤 종류여야 할 지 물어본다.
“물론 니가 잘하는, 평화로운 풍경이지.”
아아, 이렇게 감미로운 말이라니. 잠잠한 바다, 언덕, 나비가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들판의 스냅샷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할게 너무 많다. 다음날, 당신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스케치해본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좋은 소식이야! 그림 공개할 때 중요한 행사를 같이 하기로 했어! 중요한 사람이 엄청 올거야! 근데… 이 행사가 가능한 날이 오늘부터 한 달 뒤네.. 그 때까지 끝낼 수 있겠어?”
눈썹을 찌푸리고 고민해 본다. 30일은 타이트해, 엄청 타이트하지. 보통은 3개월 정도 걸릴텐데.. 하지만 행사라니.. 중요한 사람들도 오고… 에라, 그러겠다고 한다. 냉장고에 가서 레드불 한 팩을 꺼낸다. 긴 한 달이 될 것이다.
15일째 되는 날, 두 번째 전화가 온다. “끝내주는 소식이야! 그림이 너무 좋아서 더 잘 보이는 장소에 놓으려고 해. 리셉션 근처에 있는 로비 뒤쪽 장소 알지? 사람들이 오자마자 네 그림을 보게 될거야! 끝내주지?! 하지만 사소한 이슈가 하나 있는데… 새 벽에 그림을 걸려면 그림이 좀 더 작아야 한대. 지금보다 25% 정도 줄여야 해. 할 수 있겠어?”
당신은 이를 악물고 “즈금 스애 그름을 그를 스근은 읍는드요” “므금을 늦츠즈스든그…”라고 말한다(마감을 늦추지 않는 이상, 새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고).
“아, 그럼 안되는데! 행사는 이미 다 준비됐다고. 그림을 조금 잘라내면 안돼?”
당신은 이미 반쯤 다된 그림을 본다. 새로운 제약조건에 맞추려면, 들판을 둘러싼 산을 없애야 한다. 기술적으로야 할 수 있긴 한데… 다른 그림이 될 것이다. 더 좋지 않은 그림.
당신은 하겠다고 한다. 약간의 고통을 느끼면서, 당신은 산을 걷어낸다.
25일째 되는 날. 세 번째 전화가 온다. “엄청난 소식이야! 지난번에 작업 진행중인거 보내주고 모두 너무 좋아해. 빌딩 오너한테도 보여줬는데, 너무너무 좋아하더라고. 실은 너한테 그림을 10장 더 주문하고 싶어해, 어마어마한 돈을 준대! 근데 아주 사소한 요구사항이 있는데… ‘카피바라’가 건물주의 영적인 동물인데 말이야, 지금 니 그림에 그 동물을 넣으면 너무너무 좋겠다네.”
당신은 당황한다. 아니 대체 카피바라가 뭔데?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당신은 구글 이미지 검색을 미친듯이 실행한다.
“물론 한다고 하겠지! 그림을 확 살릴거야. 카피바라 한 가족이 그림 안에 살아 숨쉬는 걸 상상해봐”
결과가 뜨고, 당신 속은 뒤집어져 버렸다.
어떤 미친놈이 카피바라따위를 영적인 동물이라고 하는거야? 일단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겼잖아! 얘네들이 해질녘 들판에 왜 나와있냐고! 이게 뭔 미친 소리야!
당신은 이 새 요구사항에 대해 맹렬히 반박했다. 하지만 전화기 건너편의 중요한 사람들은 설득을 잘한다. 이게 그들이 원하는 거고, 카피바라가 최근 예술세계에서 새로운 핫 아이템이라 모두 좋아할거라고 했다. 중요한 빌딩에 중요한 그림을 완성하는 영예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원하지 않으면 다른 아티스트를 찾아보겠다고까지.
결국, 당신이 “아니오”를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당신은 손을 떨며 그 고요한 캔버스 위에 뚱뚱보 기니피그를 그리기 시작한다.
30일이 지나고, 그림은 완성되었다. 입구 근처에 아주 좋은 장소에 걸렸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공개 행사는 영적으로 충만하고, 생동감 있었다. 중요한 사람들은 샴페인을 손에 들고 당신과 당신 작품에 건배를 한다. 그날 밤에 보이스메일에는 의뢰 요청이 넘쳐나게 되었다. 바깥에서의 잣대로는, 당신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진실을 알고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당신은 진실을 안다. 매 순간 결정이 당시에는 논리적이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카피바라 선셋’을 바라볼 때 마다, 컨셉은 너무 성급했고, 구도는 어긋났으며, 주제는 말도 안된다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
이 작품은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작품은 당신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일하는 누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포부가 있다. 그들의 취향이 극대화 된,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만약 환경이 그들의 내적 나침반을 따라가는 일을 계속 막게 된다면, 결국 그들은 떠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환경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의하시라.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시라.
그러고 나면, 디자이너가 왜 떠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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