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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맨슨은 1934년 매춘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맨슨이 아기일 때 무장강도로 5년형을 선고받았고, 맨슨은 이모와 이모부 밑에서 자라오며 학대와 조우울증,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맨슨은 어린시절 고아원과 소년원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러한 환경 탓인지 9살때부터 소년원에 수용되는것을 시작으로 13살때는 이미 무장강도가 되어 있었다. 맨슨은 1954년 로자리라는 웨이트레스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지만 1958년 이들은 이혼했다. (아들은 1993년 38세의 나이로 자살.) 그리고 이어지는 범죄로 끊임없이 교도소를 드나들면서 (비틀즈를 흠모하던) 그는 교도소에서 기타를 배웠고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교도소 생활은 그리 순탄치가 않았는데, 교도소에서 맨슨은 다른 재소자들에 의해 성적 노리개가 되었고 그도 마찬가지로 양성애자로 변함으로써 다른 재소자들을 성적으로 공격했다.) 1967년, 교도소에서 출소했을때 그는 이미 자신의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뒤였다. (당시 그의 나이 33세)
맨슨은 출소한 뒤에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는데 그는 그곳에서 자신들을 추종하는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해서 훗날 미국 전역을 경악으로 몰고 간 '맨슨 패밀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맨슨 패밀리
맨슨은 머리와 수염을 길러 마치 예수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했고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사랑과 선에 대한 얘기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으며 자신보다 젊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맨슨 패밀리는 수가 점점 늘어나 4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 맨슨은 난잡한 섹스와 약제의 마력을 이용하여, 그가 명령하면 모두가 주저않고 살인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지배력과 카리스마를 쌓아올렸다. 패밀리 최초의 플라워 파워가 어느덧 살인 의식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맨슨은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를 돌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에게는 예능적인 재능이 있어 레코드와 영화도 제작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68년경, 맨슨은 팝뮤직의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려고 발버둥 쳤다. 한때 패밀리 전원이 비치 보이스의 호화저택에서 살기도 했지만 맨슨은 뮤지션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불어난 패밀리로 인하여 결국 조지 스판이라는 노인이 소유한 목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부터 맨슨의 강력한 지배력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망상, 그리고 폭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대전에 대비해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총과 나이프를 구입하도록 하였고, '운명의 날'을 위한 히트리스트도 작성하였다. (맨슨 패밀리는 운명의 날의 작전명을 비틀즈의 노래에서 따와 '헬터 스켈터'라고 이름지었다.)
그리고 1969년 8월 6일 첫번째 살인이 시작됐다. 맨슨 패밀리의 첫번째 희생자는 게리 힌맨으로 마약을 판매하여 돈을 벌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에게로 찾아간 맨슨 패밀리는 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그의 귀를 자르고 살해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8월 8일, 맨슨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살인 명령을 내린다. 맨슨의 명령을 받은 그의 추종자 패트리샤 크렌빈켈, 찰리 왓슨, 수잔 앳킨스, 린다 카사비앙 은 비버리 힐즈의 한 저택으로 침입했다. (맨슨이 살인명령을 내린 이유: 찰스 맨슨은 왕년의 명가수 '도리스 데이'의 아들 '텔리 멜커'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음악 프로듀서였던 그가 자신의 음악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맨슨은 텔리 멜커가 살고있던 집으로 맨슨패밀리를 보냈지만, 이미 그 집의 주인은 바뀌어 있었다.)
패트리샤 크렌빈켈, 찰리 왓슨, 수잔 앳킨스, 린다 카사비앙 그 집은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 부부(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의 집이었고, 당시 맨슨 패밀리 4인조가 들이닥쳤을때는 폴란스키는 없었다. 그 곳에는 그의 아내 샤론과 그녀의 옛 애인 제이 세브링, 헤어 디자이너이자 갑부의 딸 아비게일 폴거, 그리고 폴거의 남자친구 워지시에치 프라이코스키가 있었다.(그들은 그곳에서 환각제에 취해있었다고 한다.)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이었던 샤론 테이트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의 다정한 모습
시중들던 18살의 소년 스티븐이 그들을 발견하고 도망치다 총에 맞고 죽었다. 맨슨 패밀리는 집으로 들어가 그들의 돈을 빼앗고 모두 죽였다. (살인에는 남녀 모두 가담했다.) 샤론은 당시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수잔 앳킨스는 이렇게 외치며 칼로 16번을 찔러 그녀를 죽인다. "개X, 난 니 년을 동정하지 않아. 넌 죽어서 더 쓸모 있을테니까!"
제이 세브링은 총에 한번 맞고, 칼에 7번 찔려서 죽었으며 폴거는 28번의 칼질을 당했고, 워지시에치 프라이코스키는 두발의 총에 맞고 머리에 13번의 칼질을 당했으며 온몸에 51차례의 칼에 찔린 뒤 뒷뜰에 버려졌다.(샤론과 제이 스프링은 죽은 뒤에도 목에 줄을 매여 천장에 매달렸다고 한다.)
사건 현장의 모습
맨슨 패밀리가 돌아오고 뉴스에서 그들의 만행이 전파를 타자 맨슨은 혼란스러운 이 시기야 말로 자신이 나설 때라고 생각하고 마약에 취한 패밀리들과 함께 LA의 고급 주택가로 향한다. 그리하여 1969년 8월 9일, 샤론 일행이 살해된 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살인을 하는데 피해자들은 슈퍼마켓을 경영하던 레노와 로즈마리 레비앵커 부부의 집 침실로 뛰어 들어간 맨슨은 부부를 결박한다. 따라 들어온 맨슨 패밀리는 들고 있던 칼로 그들을 찌르기 시작했다. 레노는 온몸에 칼과 포크에 찔려 엉망이었고 부인은 칼로 41곳이나 찔려 사망했다. (당시 부인의 남편의 배에는 WAR이라고 씌여있었다. 또한 방의 벽에는 '돼지들에게 죽음을, 일어서라, 헬터 스켈터' 등의 글자가 피로 적혀 있었다.) 맨슨 패밀리는 그들 가족을 죽인 후 그 집에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마친 다음, 세 마리의 개에게 먹이를 주고 집을 떠났다.
경찰들은 이 두 가지 사건이 동일범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상당히 오랫동안 헤매게 되는데, 맨슨이 산림청 불도저에 방화를 했다가 그 일로 맨슨을 포함한 맨슨 패밀리들 모두 교도소에 수감 되었다. 구류기간 중, 수잔 앳킨스가 다른 수감자들에게 자신의 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다 결국 그들의 만행이 모두 들통나고 말았다.
찰스 맨슨은 재판을 받게 되고 재판 도중에 사람을 8명씩이나 살해한 것이 중요한일이라 생각치 않냐는 질문에 수잔 앳킨스는 이렇게 반박하였다. "네이팜탄으로 수천 명을 죽인 일은 중요했나요?"
그후 길고 긴 재판 과정 속에서 보인 맨슨과 맨슨 패밀리들의 행동은 반성하는 모습이 없었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찰스 맨슨은 변호사를 바꿔가며 10년 동안 재판을 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형판결이 내려졌으나 사형판결 11개월 후 캘리포니아에서 사형 제도가 폐지되면서 아직 그는 살아있다.
-------------------------------------------------------------------------------------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을 한 적은 없다. 너희들의 아이가 자신들의 나이프로 해치운 것이다. 그런 교육을 한 것은 내가 아니고 바로 너희들이다.' '경멸하는 눈길로 바라보면 내가 바보로 보일 것이고 존경하는 눈길로 바라보면 내가 신으로 보일 것이며 대등한 눈길로 바라보면 내게서 너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 찰스 맨슨 -------------------------------------------------------------------------------------
헐!!..그 유명한 세계의 살인마 찰스 맨슨이로군요..ㅎㄷ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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