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12년차, 미국인 남편과 결혼한 지 6년차인 여자사람입니다.
일본의 연말연시 휴가를 맞아, 남편과 예전에 함께 살던 미야자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한국인인 저와 미국인인 남편이 처음으로 만나고, 연인이 되고, 결혼식을 올린 곳입니다.
지금 살고있는 곳에서 직선 거리로 750km정도 거리라, 둘이 함께 가는 건 5년만이었어요.
비행기로 가면 2시간이 안걸리는 곳이지만, 연말연시라 비행기값이 너무 비쌌고, 가기로 확정된 것도 늦어서 운전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1080km정도입니다.
갈 때는 미야자키에 점심 지나 도착해야해서 2박 3일의 일정으로 갔다가 올 때는 1박 2일동안 달려서 돌아왔어요.
제차는 배기량 660cc짜리 혼다 경차입니다. 중간에 차가 퍼져버릴까봐 가기 전에 유료 검사도 받고 부품도 갈았습니다.
남편이 일본에서 사용가능한 운전면허가 없어서, 왕복 2200km를 제가 혼자 운전했습니다.
제가 하루에 통근하는 거리가 왕복 70km이니, 31일치 통근을 한 셈이네요.
그러고보니, 일년 전 연말연시 휴가때는 남편이랑 친정가는 겸해서 한국여행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남편이 국제면허증이 없어서 그 때도 제가 운전을 했어요.
일본에서의 운전은 익숙하지만, 한국의 파이팅 넘치는 운전자들 덕분에 아주 익사이팅한 경험이었습니다.
경적을 울리시거나, 욕하시는 분들은 없었는데, 차선 변경을 아주 마리오카트급으로들 하시더라구요. 저도 잘 배워왔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갔다가 남편에게 예의삼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야?"라고 물었더니 "북한이 보고싶어"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희망사항을 내놓는 바람에 전주에서 파주까지 거의 논스톱으로 달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네요.
그래도 파주에서 먹었던 문어삼합 맛있었어요.
요리게시판에 어울리지 않게 글이 너무 기네요.
미리 죄송한게, 저희는 둘다 딱히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닙니다. 어지간하면 맛있게 먹구요.
여행가서도 그 곳의 명물 같은 걸 찾아서 먹는 타입은 아니라, 여행 중 사진이지만 내용이 좀 부실합니다.
12월 27일 오후 늦게 집에서 출발해서 340km 떨어진 오카야마의 호텔에서 1박.
도중에 휴게소에서 중국음식인 탄탄면을 먹었는데,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을 못찍었어요.
제가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던지, 남편이 말없이 자기 면발 두 젓가락을 제 그릇에 넣어주더라구요.
상냥해...
여행음식 중 첫번째 사진은 12월 28일 아침에 찍은 호텔의 조식입니다.
아주 조촐한 뷔페식인데, 아침부터 카레가 나오는 게 독특합니다.
아침 카레가 일본 호텔에서는 흔한 게 아니라, 이 호텔이 특이한거예요.
제가 양이 많은 편인가요? 저는 저정도로 딱 좋았는데, 남편은 제 음식의 70% 정도 먹더니 배부르다고 해요.
내가 돼지가 된 것 같잖아!
카레를 먹고 또다시 400km를 달려 기타큐슈의 모지항에 도착했습니다.
구경하다 배가 고파서 음식점을 둘러봤더니 이 동네는 "야끼카레(구운 카레)"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아침에도 카레를 먹어서, 다른 걸 먹고 싶었지만, 보이는 곳마다 야끼카레집만 보여서, 그냥 먹었습니다.
저는 일반 사이즈, 남편은 미니 사이즈를 시켰습니다.
이제 남편보다 더 많이 먹는 제가 익숙해요.
야키카레 가운데에는 계란이 들어가요. 반숙을 못먹는 저는 삶은 계란을 선택했습니다.
남편의 미니사이즈 카레에는 반숙이 들어가있어요.
밥위에 카레 얹고 치즈를 올린 후 오븐에 구운 음식입니다. 만들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 집에서도 만들어봐야겠어요.
이 날 밤은 기타큐슈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잤는데, 주변에 음식점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컵라면 등등 사다가 먹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전을 켰다가, 위안부 한일 합의 내용을 보고 제가 육성으로 욕을 해서 우리 남편이 많이 놀랬어요.
편의점에서 사 온 술을 다마시고도 분이 안풀려서 호텔의 자판기에서 술을 사다 퍼 마시고 쓰러져 자느라 음식 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다음 날인 12월 29일 아침, 분한 가슴과 쓰린 속을 안고 아침 식사를 한 후고 또다시 400km를 달려 드디어 미야자키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저는 유부초밥을 먹었는데, 남편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더니 생각없다며 거르더라구요.
니가 그러면, 내가 뭐가되니... 돼지가 되잖니...
예전에 남편과 제가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만나서 이자카야에서 술한잔 하며, 옛날 얘기하다보니 음식 사진은 한 장도...
화기애애하게 얘기하는데 사진 찍기 뻘쭘해서요.
아니 사실, 처음엔 너무 배가 고픈 상태라 먹기 바빠 못찍었고, 허기를 면한 후에는 술이 어지간히 된 상태라 생각도 못한 것 같습니다.
12월 30일, 이제부터 좀 음식사진다운 음식사진을 보여드리겠네요.
둘이 같이 미야자키에 온 게 오랜만이라, 추억의 음식들을 먹어보자는 생각에 자주 갔던 초밥집에 갔어요.
스시토라라는 가게입니다. 예전부터 인기가 있던 집인데, 다시 가도 북적북적하네요.30분 정도 기다려서야 자리에 앉았어요.
회전초밥집이지만, 카운터 너머에 요리사들이 있어서, 직접 주문도 할 수 있습니다.
스시토라의 마스코트, 소금을 얹은 연어 초밥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게살과 내장이 담긴 초밥
참치 뼈 근처의 살들을 긁어서 만든 초밥입니다. 저는 대뱃살보다 이게 더 좋아요.
성게알이 아주 살짝 얹어진 롤초밥. 전 성게알을 별로 안좋아하지만, 이렇게 살짝 얹어서 구워놓으니 먹을만 합니다.
남편의 "뭐 그런걸 고르냐"는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은 새우머리 튀김. 좀 짰음.
튀긴 가지 위에 일본 된장(미소) 소스가 얹혀진 초밥
이건... 꼴뚜기??
마지막 입가심은 항상 한 접시 500엔짜리 장어초밥입니다.
둘이서 총 15접시를 먹었는데 4000엔이 채 안나왔으니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닙니다.
우리가 둘다 혀가 거지들이라, 비싼 초밥(성게알 같은 거)을 별로 안먹어서 그런 것이긴 합니다. 하하하
일본에 산 지 12년차라 해도, 평상시 저녁식사는 직접 만들어먹다보니 한식을 꼭 챙겨먹는데,
여행을 와서 계속 일본 음식만 먹다보니, 속이 많이 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20대 때는 한 달, 두 달 김치 한조각 안먹어도 전혀 문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서른 넘어가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몇년 전, 3주 정도 미국시댁에 머물면서 시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외식으로만 밥을 먹다가 열흘 뒤에 속이 탈이 난 적이 있습니다.
정말 다른 거 아무 것도 못먹겠고, 밥하고 김치만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입덧이 이런걸까 싶었습니다.
시댁주변에는 동양인이 아무도 살지 않아, 아시안 마켓도 없어서, 남편이 왕복 4시간 걸리는 곳에 가서 쌀과 김치를 사다줬습니다.
그 후 3일 동안 저는 딱 밥하고 김치만 먹고 지냈어요.
그 때 이후 장기로 해외 여행을 갈 때는 반드시 튜브 고추장이나 깻잎장아찌 통조림 같은 걸 챙겨갑니다.
촌스러워서 미안해요.
어쨌거나, 슬슬 혈중 캡사이신 농도가 위험치에 다다른 것 같아,
저녁에는 미야자키의 명물인 "매운면(辛麺 - 신라면 아닙니다)"을 먹으러 갔습니다.
스시토라 맞은편에 위치한 마스모토라는 가게입니다. 김치맨을 떠올리게하는 마스코트네요.
여기는 고춧가루 들어가는 수(아마 티스푼 기준인 듯)에 따라 0, 3, 5, ..., 15, 25 이렇게 매운 정도를 정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먹던 게 어느정도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15를 시켰습니다.
매워보이죠? 안매워요. 신라면보다 안맵습니다. 캡사이신 한 방울만 추가하고 싶습니다.
면은 약간 쫄면같은 느낌입니다.
성에 찰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 음식치고는 마늘도 듬뿍 들어가있고, 적당히 칼칼해서 스트레스 해소는 어느정도 되었습니다.
인스턴트 면으로도 만들어서 팔고있길래 살까 했는데, 1인분에 590엔이네요. 미쳤나봐요.
2015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미야자키에서 5년 넘게 살았지만 못가본 게 아쉬웠던 "도이미사키"라는 곳에 갔습니다.
여기에는 야생 말들이 초원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따로 여행 게시판에 글을 올릴지도 모르지만, 이해를 돕기위해 사진을 올립니다.
우리 남편은 겁이나는지 그렇게 가까이에는 못가더라구요.
말들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서인지 가까이가서 만져도 신경도 안씁니다.
시설 내에 식당이 몇군데 있는 모양인데, 저희가 본 건 한 곳밖에 없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튀김정식, 회정식 등 정식이 주 메뉴였는데 바닷가 근처라 회정식이 유명하다고 해서 시켜봤습니다.
1700엔입니다. 비싼 것 같다고 하면, 제가 너무 짠돌이인가요.
사실, 점심 먹기 직전에 남편이랑 말다툼을 해서 분위기가 싸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남편이 자기 새우 한마리를 제 그릇에 둔 걸 보고 풀렸습니다.
이 맛난 새우를 주다니... 너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회 한 점을 남편에게 줬어요. 제가 등푸른 생선 회를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우리 남편이 신을 곱게 벗어놓고 화장실에 간 게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일본에서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 슬리퍼로 갈아신는 경우가 많긴하지만, 복도에 벗어놓는 경우는 잘없는데...
화장실 앞에는 "밥 안먹고 화장실만 쓰는 사람은 이용료 100엔"이라는 표지판이 있고, 이용료 넣는 통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17번 쓰면 회정식이 공짜인 셈이네요. 조금씩 나눠서 여러번 갈 걸 그랬나...
2015년 마지막 식사로는 시내의 이자카야에서 맥주 한잔 하며 안주를 먹었습니다.
"자 이타미"라는 저렴한 이자카야 체인점입니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체인점이지만, 저희가 미야자키 살 때 자주 가던 곳이라 또 갔습니다.
기본반찬처럼 보이는 다코와사비(고추냉이로 맛을 낸 문어)지만, 돈 내고 사먹는 겁니다. 이깟게 300엔.
아보카도 치즈 철판구이. 덜어낸 거 아닙니다. 한접시에 600엔. 맛은 있지만, 양이 너무 적잖아!
소내장이 들어간 모쓰나베입니다. 1000엔. 비린내 나지 않고, 국물도 맛있었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청양고추 3개만 썰어 넣었으면... 다데기 한 숟가락만 넣었으면...
2016년 1월 1일. 병신년 첫끼니는 조이풀이라는 저렴한 패밀리레스토랑의 짬뽕입니다.
며칠간의 외식과 여행으로 알거지가 되었기도 하고, 남편은 입맛이 없다고 해서 여러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정했습니다.
아침을 못먹어서 배가 잔뜩 곯아 미친 듯 면을 흡입하는 제 앞에서 남편은 우아하게 커피 한잔과 치즈케이크 한조각을 먹었습니다.
남편에게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느낀 건데, 내가 너보다 많이 먹는 거 같아"라고 했더니
남편이 "그걸 지금 알았니... 난 전기자전거고 넌 헬리콥터같아. 동일 거리를 간다고 치면 내가 연비가 높지.
그리고 난 배터리가 나가도 여전히 수동으로라도 움직일 수 있지만 넌 연료가 다 떨어지는 순간 추락하는 거지.
그래서 넌 배가 고프면 그렇게 사나워지는 거야"라고 비유를 했습니다.
자네, 그건 욕인가?
배를 채운 후, 600km를 달려 히로시마에 도착했습니다.
주변에 음식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호텔이라,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다 방에서 먹었습니다.
김치와 비빔밥은 저혼자 먹고, 오뎅은 남편과 나눠먹었습니다.
남편에게 비빔밥도 먹어보라고 했는데 "니가 너무 전투적으로 먹고 있어서, 그걸 나눠먹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들척지근한 일본식 김치와 일본식 비빔밥이지만, 한식에 목말랐던 저에게는 오아시스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거 사진찍고 앉아있는 제 모습에 남편 표정이 "하다하다 별 사진을 다 찍는다"라는 표정입니다.
어제였던 1월 2일, 왕복 2100km의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와, 엄마가 보내주신 맛김치를 쭉쭉 찢어서 흰쌀밥 위에 얹어 먹었습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촌스러워" 질 줄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입맛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추가로, 일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찍은 엄청 비싼우유 사진 한 장 올립니다.
일본 휴게소 가면, 그 지역 목장에서 나온 우유들이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긴 한데, 1리터도 안되는 우유 한 병에 1080엔은 처음 봤네요.
하루에 1리터씩 우유를 마시는 울 남편, 보너스 나온날 750ml에 280엔짜리 우유 한 병 사 주면 감격의 비명을 지르는데
저거 사 주면 까무러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