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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가 있습니다.
지방에 위치한 농업 관련 회사에요. 좀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당장 한 식구 먹고 살기 급급한 농민들이 아니라 연 1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대농들이 모여서 대규모로 국내와 국외에 자신들의 생산물을 유통하기 위해서 세운 유통 전문 회사입니다.
당연히 회사의 주요 주주들은 전부 농민들입니다. 회사의 사장은 월급 사장이구요. 다만 농민들과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이어진 사람이라서 파리 목숨은 아닙니다. 당장 회사내 가장 큰 힘을 행사하는 주주의 형제입니다. 나름 모든 주주들의 입장을 헤아려서 회사를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형제의 이익을 가장 크게 봐주고 있죠. 다만 너무 티나게 일을 처리하지 않고, 딱히 회사 사장 자리를 맡아서 할만한 인물이 없기에 10년 가까이 사장 자리에 있습니다. 사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은 월급받고 일하는 사원이구요. 다만 직급이 나뉠 뿐인거죠.
이 회사에선 사장을 제외한 모든 사원은 전무, 이사, 부장, 과장 할 것 없이 언제든지 주주들의 의결에 따라서 하루 아침에 실직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들보단 임원들이 자리 보존하기 힘든 구조인거죠.
이 회사에 아주 유능한 직원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아르바이트로 들어왔던 이 직원은 컴맹밖에 없던 회사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혼자서 컴퓨터 관리, 수리, 심지어 회사내에 네크워크 구성도 이뤄내고, 네트워크 보안도 만들어 줬습니다. 매번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AS 전화를 해서 해결해야만 했던 업무용 사무기기들도 어지간한 잔고장은 혼자서 다 해결하기 까지 했습니다.
대단하죠? 이런 유능한 직원을 회사 사람들도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그만두고 정직원으로 입사하라고 꼬셔서 결국 정직원으로 입사했습니다. 당시에 나름 2인분 이상 일을 하고 있던 인사과장이 파격적으로 일반사원이 아니라 대리로 채용했죠.
이 직원이 컴퓨터와 네트워크, 사무기기에 관한 어지간한 업무를 혼자서 다 해결해 버리니까 기존에 매달 나가던 AS 비용이 엄청나게 줄었습니다. 따로 직원을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원래대로라면 2명 이상을 고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2명 이상을 상시 고용하는 것보다는 그냥 매번 AS 비용을 지불하는게 낫기 때문에 따로 직원을 쓰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유능한 직원이 들어와서 한방에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리라곤 하지만 신입이라서 급여도 쌉니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직원은 단순히 컴퓨터나 사무기기 유지 보수만 잘하는게 아니였다는 겁니다. 자기 업무 다 보고도 시간이 남아서 남는 시간 틈틈이 영업과 유통쪽 업무도 도와줬는데 이 사람이 도와준 덕분에 업무 효율이 늘어나서 칼퇴근이란게 없던 회사가 어지간하면 칼퇴근을 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6시 퇴근이 기본인 회사였지만 사실상 7시 퇴근이 현실이던 회사였는데 직원 하나 잘 들인 덕분에 늦어도 6시 30분이면 퇴근할 수 있는 회사가 되었어요. 기껏해야 20명도 안되는 회사니까 그럴 수 있었던 거지만 이게 어딥니까?
어때요? 여러분이 이 회사 임직원이라면 무조건 잡아야 하는 직원 아닙니까?
이 볍신같은 회사가 비슷한 회사와 인수합병을 추진했습니다. 거의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졌고, 하는 업무도 거의 똑같은 회사인데 다만 상대쪽 회사 규모가 이 회사보다 아주 약간 더 큽니다. 대충 비교하면 20% 정도 회사 규모가 더 큰 회사입니다. 그런데 상대쪽 회사에서 큰 업무 실수를 일으켜서 회사가 휘청이는 걸 보고 기회다 싶어서 합병을 시도한 거죠. 어차피 상대쪽 회사를 만든 농민들하고도 모르고 지내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참에 회사 하나로 합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걸 제거도 하고, 하나의 회사로 덩치를 키우면 정부지원금도 훨씬 많아지니까 합병하자고 꼬신 겁니다. 다만 현재 저쪽 회사는 덩치는 커도 부실한 상태니까 합병의 주력은 이쪽 회사가 되는 걸로 말이죠.
여기까진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두 개의 회사를 하나로 합치면 보통은 중복되는 인력부터 해결하는게 보통입니다. 상대쪽 회사의 규모가 좀더 컸다고 말했죠? 이쪽 회사는 이제 겨우 달랑 한명 있는 컴퓨터, 네크워크, 사무기기 유지 보수 관련 직원이 상대쪽 회사는 아예 따로 부서가 있었습니다. 해당 부서엔 무려 3명이나 있었구요.
기껏해야 농산물 유통회사인데 컴퓨터, 네크워크, 사무기기 유지 보수 관련한 업무를 보는 직원이 3명이나 둘 이유가 있을까요? 없어요. 그런데도 3명이나 고용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주주들의 친인척을 회사에 입사시켜서 월급을 줘야 하는데 할 줄 아는게 없으니까 그나마 다룰 줄 안다는 컴퓨터 관리나 하라고 부서 하나를 만들어서 3명을 넣어놓은 거죠. 당연히 이 3명의 직원들은 컴퓨터 포맷, 컴퓨터 조립 정도가 능력의 전부였습니다. 네트워크 관리라곤 공유기 사다가 랜선 꼽는 것 정도가 전부였구요. 프린터 잉크 갈아끼우는 게 사무기기 관리의 끝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잉여같은 3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유능한 신입 대리를 쓰는게 정상이죠?
회사 합병하고 난 뒤 유능하다고 회사에 칭찬이 자자했던 대리는 잘렸습니다. 왜 잘렸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마도 회사 임직원들만 알겠죠.
그리고 대리가 회사에서 잘리고 난 뒤 1년도 안되서 합병 과정중에 문제가 일어나서 합병 취소되고 두 개의 회사는 다시 원래대로 분리되었습니다.
대리에서 잘린 그 직원은 자신이 생각보다 꽤 유능한 사람이란 걸 깨닫고 다른 회사에 입사해서 유능함을 인정받았구요.
더 웃긴게 뭔지 아십니까? 이미 다른 회사에 입사해서 일하고 있는 그 직원에게 부장이랑 과장이 전화해서 다시 재입사할 생각 없냐고 벌써 3번이나 물었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집에도 찾아왔답니다. 술이나 한잔 하자면서요.
요즘 한국 고용 시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길래 저도 여러분들 좀 웃어보시라고 글 올립니다.
혹시라도 이 글 보고 가슴 찔리는 사람 있으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네요. 그딴식으로 사람을 쓰니까 정부 보조금 지원에만 절절매고 제대로 된 영업을 할 생각을 안하지!
출처 | 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33172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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