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끝나고 주차장 내려가는 길에 폰으로 적다가 끊어서
낚시성 글이 된 것 같아 처음부터 다시 적어볼게요. 남들은 음슴체 쓰시면 귀여워서 따라 써봤는데 막상 전부 음으로 끝내려니 힘들어 그냥 적어요ㅋㅋ
오늘은 제 생일, 아 12시 지났으니 어제가 제 생일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남자 세명에게 생일 축하톡이 와서 우울하게(?) 하루를 시작했어요.
내일까지 전시회가 있고 제가 부스를 책임지고 있어서 부스에서 사람도 맞이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4달 전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끼리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 단톡방에 있던 동생이 생일축하한다고 올렸고 다들 축하메시지를 올렸어요.
개인톡으로 선물이 하나하나씩 들어오는데 그 친구도 저에게 개인톡으로 기프티콘을 보내줬어요.
커피 한 잔이지만 저는 그 친구에게 뭔가를 받았다는 그 사실이 너무 행복합니다.
얼마 전 그 친구 생일이라고 선물줬었는데 맨날 받기만 한다고 맥주라도 받으라고 줬던 참 예쁜 친굽니다.
암튼! 따뜻하게 먹으라며 기프티콘을 주면서 "오빠 오늘도 혹시 집회가요?"라고 묻더군요.
당연히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나가는 순간까지 집회는 쭉 나갈거라서 "오늘도 가야지~"했어요.
몸 상하라니까 쉬엄쉬엄 하라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전시회를 중간에 빠져나가(자체 퇴근) 광화문으로 갔어요.
예전에 중국에 있을 때 신세진 손님이 오셔서 그 분들을 끌고 현실판 브이포 벤테타 체험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톡이 왔습니다
"행진하고 있어요?"
그녀는 집이 서울이 아니라 매번 집회는 못 오지만 1차 집회 때도 참여하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마라톤도 하는 등 참 멋진 여자입니다.
아마도 궁금해서 그러리라 생각하고 "너가 준 차 마시고 힘내서 행진하고 있어"라고 보냈죠.
그랬더니 "저도 가볼까 싶어서요"라고 톡이 오더군요.
솔직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오늘은 공식 총궐기가 아닌 지역별 집회로 알고 있어서 근처 기차역같이 커다란 광장에서 많이 하니까 무리하지 말고 근처에서 참여하는게 어떨까 라고 보냈어요.
근데 굉장히 의외의 톡이 왔어요.
"부모님 집 가는 길이라서 그냥 갈려구요. 하나보단 둘이 낫죠"
그녀의 목적이 순수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저는 얄팍하게 집회를 빙자해 만나느니 그녀도 몸 조심히 집회를 다녀가길 바라는 마음에 "그래 그럼 조심해서 와~ 100만 인파 속에서 우연히 옷깃이나 스쳐보자"라고 보냈어요.(System : 철벽방어 스킬이 시전되었습니다.)
그리고선 계속 중국인 손님들과 행진을 하며 이 많은 사람들이 왜 거리로 뛰쳐나왔는지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그러다가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이라는 단어가 보이더군요.
업체에서 연락이 왔었나 하면서 황급히 열어보니 그녀가 보이스톡을 걸었다가 끊긴거였어요.
그리고 밑에 적힌 톡 한 줄에 저는 심장이 쿵쾅쿵쾅 바운쓰바운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빠 어디있어요?"
공교롭게도 중국인 손님은 숙소로 돌아가셔야 할 시간이었고 저는 그 분들을 근처 지하철 역까지 배웅하면서 톡을 보냈어요.
"같이 오신 분들 지하철역에 모셔다 드리는 중이라서 금방 연락할게"
하지만 그 분들에게 170만 촛불집회는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는지 계속 질문을 하셔서 이야기가 길어지더니 30분이 지나갔어요.
어쨌든 배웅을 마치고 종각역에서 다시 광화문을 향해 뛰며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 : 어디니?
그녀 : 광화문 광장이에요
저 : 그럼 어디쯤 서 있어? 내가 그리로 갈게.
그녀 : 그럼 세종대왕 있는데서 봐요
그 짧은 순간 집회에서 불타던 마음이 잠시 사라지고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이 머리에 가득 했습니다.
몇 분간 달려서 도착한 세종대왕 동상 앞.
세종대왕 뒤에 있다는 그녀의 톡에 한참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찾았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그녀. 정말 오글거리고 죄송하지만 그녀 자체로도 저에겐 촛불이었습니다.
"안 춥니?"라는 저의 질문에 "손만 시려워요"라고 하는 그녀.
예전에 같이 여행 갔을 때(아 잠깐만! 단 둘이 간거 아니라고!) 저는 그녀를 위한 도라에몽 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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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는 도라에몽이 되었습니다.
사실 겨울에 집회 나오시다보면 손발이 많이 추워서 핫팩들을 챙기십니다.
저는 주머니에 핫팩 2개가 있었고 따뜻한 캔커피(이건 솔직히 오면서 샀음)와 함께 건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약 1시간 정도 그녀와 박근혜 퇴진도 외치고 시민 발언에 맞아요를 외치며 보냈습니다.
제 손에는 LED 촛불이 있었지만 제 옆에 서 있는 눈부신 그녀만 계속 보게 되더군요.
어느 덧 그녀는 가야할 시간이 되었고 촛불이 반짝이는 광화문 광장을 뒤로하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세월호 노란리본 공작소를 보더니 발길을 옮기는 그녀.
늘 세월호를 기억하는 그녀는 교사이다보니 더욱 감정이 잘 이입되는 것 같았습니다.
눈 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다른 건 다 몰라도 세월호만큼은 꼭 밝혀야 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세월호 진상규명에 같이 서명을 하고선 다시 지하철역으로 갔습니다.
광화문에서 지하철을 타겠다던 그녀였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청역까지 걸어왔습니다.
저는 제 차가 종묘 공영주차장에 있어서 역까지만 바래다 주었고 조심히 들어가라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하철 역 입구 계단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빠 다음 주도 광화문에서 봐요 같이 시간 맞춰서"
종묘 공영주차장까지 걸어오면서 정말 그 어느 생일보다도 너무 행복하다고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것도 모자라 그녀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광화문에 같이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맑고 순수하고 행동하는 그녀는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사람이 제 여자친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리고 당분간은 제 마음 속에 담아두렵니다.
조금 더 가까워지고, 조금 더 서로 많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을 때 제 마음을 전하렵니다.
시덥잖은, 긴 뻘소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그리고 각자 계신 자리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치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