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미국인 남편과 살고있는 여자사람입니다.
어제 만들어먹은 크리스마스 디너 상차림입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디너는 개인적으로 비주얼이 만족스럽지 못하네요.
데코레이션을 조금 더 발전시켜야할 것 같습니다.
일본은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라 연차휴가 받아서 디너 준비했습니다.
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집 크리스마스 디너는 7가지 주요 요소로 구성됩니다.
1. 샐러드
일년에 딱 한 번쓰는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 접시입니다. 디자인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색깔의 채소를 담습니다.
2. 가지그라탕
일본어로 가지를 ‘나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먹는 가지그라탕을 ‘크리스나스’라고 부릅니다.
유치하기 짝이없죠.
자고로 그라탕의 치즈는 흘러넘쳐줘야 제맛.
피망으로 십자가를 만들려고 했는데, 설계미스로 에러가 났습니다.
남편에게는 "잘 나눠먹자는 의미로 나누기 부호를 그려보았다"라고 설명해봤는데 그런 허접한 변명은 처음들어본다고 하네요.
크림소스 - 토마토소스 - 슬라이스한 가지 이걸 켜켜이 쌓고, 맨 위에 치즈를 듬뿍 올린 후 오븐에 구었습니다.
3. 스프
스프는 해마다 바꿔서 만듭니다. 미국식칠리를 만들기도 하고 양송이스프를 만들기도 합니다.
올해의 스프는 포테이토 바질 크림 스프입니다.
올해 베란다에서 키운 바질이 엄청난 풍년이라, 씻어서 냉동시켜놨는데,
내년 봄에 이사를 해야해서 모두 소비하려고 한 번 만들어봤습니다.
생각보다 크림스프에 생바질이 잘 어울려요.
4. 고기요리
고기요리도 해마다 바꿔서 만듭니다. 데리야키 치킨인 적도 있었고 로스트 비프였던 적도 있습니다.
올해는 남편이 돈까스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일본어로 순록을 ‘도나카이’라고 하니까 ‘도나카쓰’ 만들어달라구요.
그러고는 그게 웃긴지 지 혼자 막 웃더라구요. “돈카쓰 말고 도나카쓰 ㅋㅋㅋㅋㅋ”이러면서요.
남편은 저런거 좋아해요. 남편이 한국말을 좀 더 잘하면 부장님 개그 전집이라도 살거예요.
그런걸 보면 차라리 한국말을 못하는 지금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편의 도나카쓰 요청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소스로 뿔을 그려줬어요.
우리집 돈까스는 아보카도+토마토+고다치즈를 얇은 돼지고기로 둘둘 감아 만들어요.
토마토의 상큼함과 아보카도의 부드러움과 고다치즈 덕에 아주 깊은 맛이 납니다.
5. 마늘빵
정신없이 만들다보니 좀 탄 듯하네요. 이건 이것대로 맛있습니다.
울남편 말로는 제가 만든 마늘빵이 제일 맛있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이게 칼로리가 얼만데.
요즘 제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광고멘트가 “맛있는 건 모두 지방과 탄수화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건데
그걸 대표하는 게 마늘빵인 것 같아요.
마늘빵용으로 빵은 직접 구웠어요. 바게트보다 더 묵직한 빵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미니식빵틀로 구운 빵을 썼습니다.
마늘빵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스프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죠.
와~ 이게 한입에 칼로리가 얼마야~~
버터1+간 마늘0.5+마요네즈 0.5+꿀0.5+파슬리 적당량 이렇게 섞어서 빵에 듬뿍 발라 오븐에 구워먹으면 됩니다.
마요네즈는 안넣어도 되지만, 넣으면 좀 고소한 느낌이 있어요.
6. 케이크/파이
일본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하면 후라이드 치킨과 크리스마스 케이크죠.
하지만 남편이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케이크 안먹어!! 파이먹어!! 파이!! 파이!!”라고 지랄지랄 하길래
명절의 대명사 펌킨파이를 구웠어요.
처음 구워봤는데 맛은 있지만 실패작이에요. 일단 모양부터가 너무 하잖아요.
저는 분명 단호박으로 파이를 만들었는데 맛은 고구마케이크같아요.
남편 말로는 펌킨파이는 푸딩처럼 가벼운 맛이나야 한다네요. 그럼 니가 만들어먹든가.
파이는 정말 껍질 만들기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귀찮아서 안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남편이 "괜찮아! 내년에는 더 잘 만들수 있을거야!"라고 격려를 해주는 꼴을 보니 내년에도 또 만들어야할 것 같네요.
7. 와인
저녁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셔서, 새벽까지 마시기 때문에 디너의 구성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이걸로 크리스마스 디너가 왼성됩니다.
인간들의 원죄를 사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니까, 제가 먹은 칼로리들도 모두 사하셨으리라 믿습니다.
할렐루야.
저녁먹고 나서 남편과 저의 선물 개봉이 있었습니다.
남편에게서 15개의 자질구레한 선물들을 받았는데,
그 중에 "프랑스와인 맛보기 세트(6병이 한 세트)"와 애플와인이 있네요.
남편에게 "내가 알콜중독자로 보이냐"고 물었더니 "아니, 넌 그냥 알콜을 너무너무 사랑할 뿐이잖아"라고 합니다.
뭔가, 기분이 나쁘지만 고마운 느낌이라 멱살 잡고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집에 지금 와인 12병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