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나 더 된 일이네요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공부를 했던 학원은 일주일 정도 남긴 상황이었죠
몇 달을 머물던 그 지역을 떠나기 전
주변을 구경하려고 필핀 현지인들이 사는 지역을 걸어당니며 사진을 찍으며 걷던 중이었습니다
상가 옆 구석진 곳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조금 가까이 가보니 생쥐 같이 조그만 새끼고양이가 어미도 없이 혼자서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가는 것처럼 울고 있더군요
사실 고양이를 키워 본 적도 습성도 몰라서
이게 냥줍인지 납치인지는 잘 모르지만
누가 봐도 놔두면 곧 죽기 직전인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필리피노 경찰이 옆에 있었는데 걱정하며 보는 나에게 얘 데려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들은 그 새끼고양이가 울고 있는 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고요
곧 학원도 끝나는 상황이지만 죽겠다싶어서 우선은 그냥 들고 와버렸어요
동물을 막 좋아하는 건 아니어서 더러운 것도 감수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진짜 새카맣고 더러웠거든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봉지인가?종이인가? 뭐 그런 걸로 감싸고 왔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대책도 없이 무작정 데리고 와서 보니
진짜 작은 고양이였습니다
진짜 막 태어난 고양이 같았어요
아 쓰다보니 생각이 났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영양상태때문이었는지 새끼라서 그런 것지는 모르겠으나
제대로 못 걸었다고 해야하나 걷는게 익숙치 않은 고양이라고 해야 하나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여튼 기숙호텔로 데려왔는데 (다행히도 개별룸)
2006년 당시에는 고양이정보도 동물키우는 지식도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냥 죽지 않게 뭔가 해야겠다 정도
가장 먼저는 우유를 사서 먹였던 거 같아요
애가 비쩍 꼴아서는 뭔가 먹어야 되는데 우유도 잘 못 먹더라고요
뭐 고양이용 우유를 파는지도 몰랐지만
그 당시 필핀에서 고양이를 위한 우유가 있지도 않았겠죠
혹시나 불편러가 출동할까봐 미리 쉴드칩니다
어찌어찌 먹이고 바로 씻겼어요
필핀의 어떤 기생충이 있을지
어디서 뭍은 때국물일지 알지 못하는 놈을
도저히 한 방에서 데리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새끼라서 불쌍했지만 바로 씻겼죠
물이 묻어서 그런지 정말 작은 새끼더라고요
뭐 그렇게 한 고비 넘겼다고 해야되나?
죽지는 않겠구나 싶더라고요
아직도 기억 나는게 얘를 안고 잤는데
다음 날 아침 내 얼굴을 보면서
야옹야옹거리며 자는 저를 깨우는 겁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데 나를 보고 있는
새끼고양이 눈이 딱 마주치며
심쿵
그 때부터 보호자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회복되고 살도 쪄가는 얘를 일주일 간 잘 키웠던 거 같습니다
근데 문제는 제가 일주일이 지나면 이 학원을 떠나서
8시간이었나?정도 되는 거리에 살고 있던 동생을 우선 만나고
또 거기서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던 겁니다
학원을 떠나면서
얘를 거리에 풀 수도 없고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으니
우선은 8시간의 버스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얘가 너무 작은 아이라서 과연 가능할까 싶더라고요
어쨌든 얘가 쉬고 잘만한 박스를 구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박카스 박스 같은 모양이었던 거 같아요)
거기에 얘를 넣고 푹신한 천,수건 등을 넣어줬습니다
그리고 박스에 손잡이를 만들어 달았죠
참고로 몇 개월을 지냈던 온갖 살림살이와 함께 이동하는 상황 이었죠ㅎ
그 모습이 필핀 사람들이 보기에는 황당했던 거 같아요
캐리어에, 배낭에, 온갖 짐을 들고 가는 사람이 뭔 박스를 들고 가는데 그 안에 새끼고양이가 있는 모습이 웃겼던 모양이에요
게다가 장거리 버스에 고양이를 데리고 타니
다들 아기인줄 알았다며 한마디씩 거들더군요
근데 저는 여행동지 느낌도 나고
이 세상에 너와 나 둘만 남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동생이 있던 곳에서 일주일 간 잘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네요
동생의 단골 마시지샵이 한적하고 자연이 많은 곳에 있었는데
그 사장님께 부탁드려서 잘 맡기고 왔습니다
아직도 기억 나는 것들이
기숙방에서 저만 졸래졸래 따라다니던 모습들
쇼파에 앉아있을 때면 가랑이 사이에 자세잡고 자던 기억
침대에 누우면 겨드랑이 목 배 등을 파고 들던 감촉들
배고프지는 않을까 춥지는 않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외롭지는 않을까 참 걱정많이 했네요
어미가 없으니 나를 어미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아이였거든요
지 어미를 보기나 했을까도 싶고
나중에 마사지샵에 있던 고양이들과도 친해져서 같이 놀러도 나가고 그런다는 소식까지 들었네요
한국이었다면 계속 키웠을텐데 말이죠
그래서인지 간혹 동물게에서 와서 찾아보는 글은
냥줍에 대한 글입니다
냥줍한 고양이들은 뭔가 더 짠하고 더 이쁘고
냥줍한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제 첫 고양이 베티는 잘 지내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