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추억기록용 입니다.
서울살이 9년동안 난 총 6번의 이사를 했어. 지금은 꽤 괜찮은 전세집에 들어와 있는데 문득 감회가 새롭더라.
얼마전에 대학생들 고시원에 비싼가격으로 살고있다는 글을 보기도 하니 옛날생각이 났어.
지방에서 살다가 어쩌다보니 서울로 부랴부랴 취직이 결정되고 입사일 몇일 전 엄마함께 나의 자취집을 구하기 위해 올라왔었더랬지.
지방 대학근처에서 자취를 했었기에 나름 자신 있었는데, 서울은 방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더라.
대학 근처에서 살땐 보증금 200에 30이면 둘이서 살만한 아주 큰 베란다 딸린 2층 원룸을 구할 수 있었는데,
여기선 그돈으로 택도 없더라. 우리가 예상한 금액을 부동산에 제시하면 방도 보여주지 않고 그정도의 방은 없다거나
여자 혼자살기는 위험하다거나 뭐 이런이야기들을 했었지. 회사가 가산동이였는데, 몇블럭만 지나면 중국인들이 사는 동네이기에
그동네는 저렴해도 부동산에선 추천해주지 않았어.
애초부터 우리 엄마가 내건 조건이 "그래도 여자애가 혼자 살기에 깔끔하고 볕 잘 들어오는 방이고 안전한 방" 이였으니까.
(이조건이 얼마나 비싼조건인지를 알게된건 조금 더 서울생활을 지내온 후였지)
결국 부동산에서는 고시원을 추천해줬고, 살면서 처음으로 고시원방을 들어가봤어.
우와.. 세상에 이렇게 좁은곳에서 사람이 살수 있다는걸 처음알았어. 일반 아파트 화장실만한 사이즈에.. 아니, 그것보다 더 작은 사이즈의 방에
침대도 있고 책상도있고 옷장도있고.. 때로는 화장실이 있는방도 있었지.
이곳 저곳 알아보다가 회사 근처 고시원을 잡았어. 공용인 부엌이 여성층에 있었지만 그래도 여성층이 따로 있었고, 회사에서 가장 가깝고 샤워실도 딸렸는데 나름 저렴했어
나름 저렴했던 그 금액이 월 38만원이였으니 기절할 노릇이지. (그것도 월 42만원짜리를 깎은거였어)
게다가 나름 저렴했던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아까 회사에서 몇블럭가면 중국인 동네가 있다고 했잖아? 내가 살았던 고시원에서 꽤 큰 도로만 건너면 중국인들이 산다는 동네였어. 사람사는데야 다 똑같겠지만, 그때가 한창 중국인들 살인사건 일어나고 좀 슝슝했었던지라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많이 무서웠었지.
고시원 사장님은 굉장히 친절했어. 짐을 들어주러 내려오셨는데, 나 정말 엄청 감동받았어. 내가 들수있는데 왜 도와주시지?? 이런느낌???
지방에서 억센 사투리만 듣다가 나긋하고 친절한 서울말을 들으니 뭔가 엄청 신기했어. 아!!!! 그리고 한참 어린 나한테 존댓말을 쓰는것도 신기했지.
이 고시원에서 생활할때 좋았던점이 두가지가 있었어.
한가지는 고시원이 그렇듯 방음이 잘 되지는 않았는데 다 직장인들이라 시끄러움을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분위기였어.
아침에 드라이기를 켜는것도, 밤에 티비를 보는것도, 술먹고 늦게 쿵쿵 하고 들어오는것도 알람이 울려서 몇번이고 다시 울리기를 해도 아무도 짜증내지 않았지. 나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랬으니까.
또다른 한가지는 사장님이 거의 우리를 하숙집처럼 대해주셨어. 주방엔 라면도 종류별로 안성탕면, 신라면, 너구리, 진라면 가득 채워넣고. 공용 냉장고에는 늘 계란이 가득 있었지. 반찬도 2-3일 간격으로 교체가 되었고, 토스트기 옆에는 사과잼과 딸기잼이, 그리고 식빵이 늘 유통기한 지나기전에 바뀌어져 있었어. 밥도 늘 새밥이였어. 주방은 늘 청결했지. 이뿐만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고시원에 방세를 입금하면서 하도 나를 잘부탁한다고 신신당부 해서인지.... 내반찬은 늘 따로 반찬통에 조금씩 덜어주셨어. (나만 그랬던건지 다른사람도 그랬던건진 모르겠어) 나는 그 반찬을 내방 조그마한 냉장고에 쟁여놓았었지.
하루는 라면을 끓여먹으려는데 사장님께서 "아가씨 왜 라면먹어요. 지금 밥하고 있으니까 밥먹어요. 내가 문자할게요" 하고 문자도 주셨어.
하루는 맛있는 냄새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들고 줄을 서있더라고. 슬쩍 들어가보니 사장님이 웃는얼굴로 " 떡국했어요. 아가씨도 그릇들고 오세요" 하더라고. 1월1일을 혼자 고시원에서 맞이했는데, 너무 고마웠어. 그렇게 2년정도를 한 고시원에서 주인아저씨가 3번쯤 바뀌는걸 볼때까지 살았지. 주인아저씨가 바뀐 이후로는 뭐.... 라면도 한종류에 토스트기는 없어지고 언제 교체한지 모르겠는 반찬에 싱크대는 늘 음식물로 차있어서.....
나중엔 물이 안내려갈 지경이였지.... 끔찍했어...
사장님이 바뀌고 언능 이사하고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왜냐면.... 첫회사에서 돈이 잘 안나왔거든...
입사 첫달은 잘 나오는가 했는데.. 점점 밀리더니 나중에는 한달에 50을 줄때도, 30을 줄때도 아예 안나올때도 허다했어.
그 회사도 거의 2년넘게 있었는데 급여를 제대로 받아본게 손에 꼽을정도였지. 게다가 야근은 미친듯이 많아서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엔 당연히 출근날이라 "쉬어라" 고 말해줘야 쉬는날이였어. 아. 아니지 야근이 아니라 철야다... 난 나중에서야 알았지 우리가 한건 야근이 아니라 철야였단걸ㅋ..ㅋㅋ
하루는 야근하고 고시원에 가는데, 근처에 소세지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는거야. 그게 정말 너~~~~~~~~무 먹고싶었는데 내지갑에 있는 동전을 모두 털어도 1200원밖에 안되었어. 그 소세지가 1500원이였거든. 근처 ATM기에서 돈이라도 뽑아서 먹으려고 했는데 잔액도 몇천원 뿐이여서 뽑을수가 없었지. 그때 집가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
고시원에서 드디어 나오게 될 때에는 언니가 서울에 와서 하우스메이트로 살게되면서 였어. 언니네 직장은 논현동쪽이였는데, 나하고 같이살기에는 상황이 안되니 하우스메이트로 들어갔었어. 1년을 계약했는데 3개월정도가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여행을 가겠다고 하네.
집상황이 좋은편은 아니였는데 워낙 철이없고 자기멋대로인 언니는... 그렇게 훌쩍 여행을 가버리고 그 빈방에 하우스메이트로 내가 들어가게 된거야.
서울온지 2년여만에 집다운집에 들어가게 되었지.
누군가의 하우스메이트로 산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더라. 하우스메이트의 주인아이는 클럽과 술을 너무 좋아하고 같이 놀고싶어했어. 나는 매우 집순이이고 거듭되는 첫회사의 야근에 너무 지쳐있던 사람이였던지라, 여러번 거절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삐지곤 했었지.
하루는 내가 출근한사이에 친구들이 왔다고 내 노트북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서는 영화를 다운받아 봤었지. 퇴근하고 왔는데 내 노트북이 거실에 있길래 뭐냐고 물어보자 당당하게 말하더라고. "친구들이 와서 영화를 좀 다운받았어. 언니, 근데 만화같은건 좀 지우는게 좋지않아? 친구들이 막 웃으면서 놀리더라 ㅋㅋㅋㅋ" 순식간에 덕밍아웃을 해버린거지.. (야한만화가 있던건 아니고, 요리왕 비룡,코난, 원피스,구루구루 뭐 이런 고전애니들이 많았어.)
하우스 메이트로 있는동안 난 첫회사를 관두고 두번째 회사를 다녔지.두번째 회사는... 3년차 주임 직급을 단 나에게.. 6개월간 지켜보겠단 명목 하에 인턴급여를 지불했어. 거기에 응한 나도 호구지.. 하지만 첫회사가 워낙 돈을 안줬던지라 급여만 제대로 주면 좋지않을까 했어.
비록 인턴 급여 일지라도 140만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받는거잖아.
상대적으로 엄청 큰돈이였어. 첫회사는 예상대로 밀린 급여를 한달에 10만원, 30만원 뭐 이런형식으로 지급해줬고 신고하겠다는 엄포끝에
8개월 만에 남은 600만원정도를 다 받아냈지. (나올땐 밀린급여+퇴직금이 1200만원 이였으니 얼마나 찔끔찔끔씩 지불해줬는지 감이 와?
아!!! 그리고 급여계산법도 이상했어 퇴직금 포함급여라고 내 전체 급여에 나누기 13을 해야했어. 그러니까 내 급여에서 퇴직금 만큼을 미리 뺀거지)
여담이지만, 그회사 초기멤버였던 실장님과 팀장님 퇴직하시고나서 받아야할돈이 7천만원~팔천정도 되었다더라. 고소하고 난리도 아니였다고.
아무튼 그렇게 여행갔다온 언니가 돌아오고 조금 더 연장해서 함께 살다가 우리는 방한칸에 둘이 살 수 없으니, 함께살만한 집을 구하러 다녔어.
내 퇴직금도 나왔겠다 보증금도 이제는 될수 있겠다.. 서울살이 3년만에 처음으로 내돈이 생긴거야. 아, 물론 학자금 대출은 한푼도 못갚았으니 엄연히 말하면 빚이 더 많지만.
500에 66짜리 사당역 근처의 옥탑방을 구했어. 원룸치고는 꽤 넓은 평수에 둘이살기에도 나쁘지는 않았지.
곰팡이가 엄청 피었고, 겨울에는 북극에 온것만 같았어. 한두번정도 바퀴벌레가 나오기도 했지만 위협할만한 크기는 아니였어. 하지만 가장 문제였던건
언니와의 동거였어. 성격이 너무 안맞았지. 언니는 생활비나 방세를 한번도 보태지 않았어. 게다가 내가 월급받고 남는돈으로 사먹는 치킨, 피자에 엄청 예민하게 굴었어. 돼지같은 년이라는 폭언도 멈추지 않았지. 자랑은 아니지만 나... 초등학교 이후로 살쪄본적이 한번도 없어.
많이 먹으면 체하고 토하거든. 내가 밥한공기 다 먹으면 엄마는 엄청엄청 좋아하셔서 이제 잘먹는다고 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눈물까지 지으실 정도야.
근데 내돈으로 치킨, 피자 사먹는다고 난리를 쳐댔어 언니는... 난 옷에 관심없는데 그거 살바엔 옷사라고..
그리고 내가 집순이라고 했잖아??? 집에서 만화보고 게임하면 오타쿠라고 욕하고 때리기 일쑤였어. 책을 보더라도 카페같은데 가서 여성스럽게 보라나 뭐라나. 나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해서, 약속있어서 나갔는데 6시 이후에 내가 없으면 전화로 빨리 안오냐고 욕하고 난리였어.
한번은 회사에서 회의하고 있는데 전화가 너무 많이온다고 00씨 언니 전화 아니냐고 내 책상에있던 폰을 회의에 참석안한 동료직원이 가져다 주더라고.
별일 아닌거 같은데 하고 받고나서 바로 "회의중이니까 끊어" 랬지. 근데 그뒤로 또 바로 전화가 오는거야.
씹었더니 카톡이 엄청 울려댔어. 결국 회의 중간에 나와서 카톡내용 확인해봤더니 "내동생^^ 티라미슈 좋아해~~? 나 지금 남친이랑 티라미수 먹고있는데 짱맜있어!!!!!!!!!!! 너도 엄청 좋아할듯~~~~~~~♥" 뭐 이딴 쓰잘데기 없는 내용에 사진들을 보내놨더라고 아오-_-
아 넘나 길다... 여기까지가 두번째의 이사네.
집 이야기만 하려고 했는데 넋두리까지 포함하게 되었어 정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서울사는동안 너무 힘들어서.....
다들 장난처럼 삼재 삼재 하는데 난 삼재가 도대체 언제 끝냐나는 이야기도 했었지. 3년만 재수 없었으면 좋겠다. 매년 힘들고 고달프로 지치니까.
뭐 이런말도 했던거 같아 ㅎㅎㅎㅎ
나중에 다시 생각나면 다시 글쓰러 올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