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네팔,
안나푸르나와 히말라야가 있는 나라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관문인 포카라라는 도시죠. 네팔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인 '페와 호수'가 있는 곳.
그리고 많은 트래커들이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휴양을 즐기는 곳이자, 다녀 와서는 뿌듯함과 다시 찾아온 한가로움을
즐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이곳에서는 줄여서 'ABC트래킹(annapurna basecamp trekking)'이라고 합니다. ABC트래킹을 하다보면
2일차 즈음해서 '촘롱'이라는 곳을 거치게 되는데 이곳은 대부분 트래커들이 ABC트래킹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유명한 마을이죠.
'나인(NINE)'이라는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죽은 형의 흔적을 따라, 향을 찾기 위해 눈길을 오르던 안나푸르나 자락, 그곳이
바로 '촘롱'입니다.
그 촘롱이 원산지인 네팔의 토종개가 있습니다. 용맹하기로는 어떠한 맹수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싸운다는 그 개의 종 이름은 '봇데' 이해를 돕자면 한국의 진돗개와 비슷한 위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네팔의 봇데는 몸 전체가 검은색이 특징이고 덩치가 크죠.
그리고 평소엔 너무나 순하고 게을러서(?) 거의 하루를 어슬렁 거리거나, 아니면 그늘진 곳을 찾아 잠을 잡니다. 그러나 주인이 위험에 처했거나, 자기 영역에 다른 동물이 침범했을 땐 무섭게 몰아세워 단숨에 제압해 버리죠.
이웃집 한국식당 사장님댁의 개 '촘롱'이 바로 그 '봇데'종입니다.
촘롱이 원산지인 네팔 봇데종인데 이름도 '촘롱'인 것이죠. 촘롱은 어렸을 때 촘롱에서 살다가 포카라로 왔다고 합니다. 식당 사장님이 이모님이라 부르던 분의 집에서 오래전부터 기르던 개였는데 근 10년이 훨씬 넘었다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촘롱'은 어느날 홀연히 자기 주인을 버리고 지금의 사장님댁으로 걸어와 사장님을 주인삼아 버렸다고 합니다.(?) 거리가 걸어서 20~30분 거리에다 차와 오토바이들이 교통신호따위는 없는 셈치는 도로를 홀로 유유히 걸어와서 말이죠. (
http://todayhumor.com/?humorbest_1065463 ) (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06582 )
말하자면 주군을 스스로 바꾼 개 되시겠습니다.
지금은 가게에서 나루랑 생활하지만, 사장님 안채 2층에서 지냈던 터라 나루와 촘롱과 당시 새끼 강아지랑 왔다 갔다하는 네팔 고양이등등 마치 작은 동물원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나루는 동물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터라 - 사회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촘롱을 먼 발치에서만 봐도 벌벌 떨었는데....촘롱은 그런 나루를 조금씩 조금씩 말려 죽이려는 듯, 1층과 2층사이의 계단 통로에 자리를 잡고 아예 길목을 봉쇄해 버렸다는.
하지만, 촘롱은 절대 나루가 있는 2층 방안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해꼬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네팔 고양이가 마당에 나타나 어슬렁 거렸는데요...그걸 지켜보던 촘롱이 정말 번개처럼 달려가서 집밖으로 멀리 머얼리 쫓아버리는 걸 보고는....아 이녀석이 나루를 해칠 생각은 없구나하고 안심했습니다. 촘롱이 자기를 괴롭힐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소심한 나루도 어느날부터는 마음놓고 마당에서 햇볕쬐기를 하더라구요. 촘롱은 멀거니 지켜보고만 있구요.
여튼 촘롱은 상남자였습니다. 나이는 사람들마다 하는 말들이 달랐습니다. 10살에서 많게는 15, 16살까지 다양했죠.
그후 잠시 토끼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고, 깜보라고 봇데 주니어가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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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토끼는 어느 날 토끼장 아래에 땅굴을 파고 탈출을 했고, 깜보는 어느 날 집앞 도로에 놀러갔다가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똘똘한 강아지임을 안 사람이 데려가 버린 거라고 다들 생각합니다.
저는 그 사장님댁과 가까운 '할란촉'이라는 사거리에서 빙수와 치킨을 팔고 있는데요, 매일 닭을 4~5마리씩 손질하다 보면 살이 꽤 붙은 닭뼈가 쌓이거든요. 전 그럼 그것을 따로 비닐봉지에 보관해서 냉동실에 넣습니다. 그리고 2~3일에 한 번씩 사장님댁에 들러
촘롱에게 주죠. 촘롱은 닭뼈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물론 삶거나 튀기지 않은 생 닭뼈입니다. 녀석이 닭뼈를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면
역시 '봇데'구나 싶습니다. 우두둑 우두두두둑!
오늘 아침에도 닭뼈를 한 봉지들고 찾아갔습니다. 부엌에 가서 네팔 스텝들에게 '촘롱'주라고 건넸더니 그러더군요.
"chomrong is dead. he's gone 2days before. he is more than 15years old..."
아, 녀석이 세상을 떠났군요. 뭔가 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은 한 달여 전이었습니다. 움직임이 더 둔해졌고, 평소엔 올라오지 않던 식당까지 올라와서 사장님 앞에서 가만히 앉아 먹는 걸 지켜보곤 하더군요. 사장님이 그랬었습니다.
"얘...얼마전에 동네개랑 싸웠는데 졌어요. 그리고 많이 기가 죽은 것 같습니다."
"녀석이 이틀전 아침에 보니 마당에서 가만히 누워 죽었더라구요.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이....죽은 줄 알았는데..녀석이 꿈틀 꿈틀 일어나더니 평소 지가 가서 쉬던 길가쪽에 가서 눕더니...죽더라구요..."
뒷뜰 한 켠에 녀석을 묻어주었다고 가르쳐 주더군요. 녀석의 무덤...그 앞에서 가만히 있다가 사진 한 장을 담습니다. 풀없이 흙만
있는 곳이 촘롱이 묻혀 있는 곳이랍니다. 너무 쓸쓸한 무덤, 다음에 가면 나무로 팻말이라도 하나 해 주려구요.
마당에 소들이 들어오거나, 동네 개들이 들어오면 하루 종일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쫓아내던 촘롱,
동네 고양이들 등쌀에 스트레스 받던 나루를 듬직하게 지켜주던 경호견 촘롱,
사장님댁 아이들이 아무리 만지고 장난쳐도 꿈쩍도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던 촘롱.
오늘 촘롱의 죽음을 보며 평화롭고 행복한 끝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촘롱, 그동안 참 고마웠어. 그곳에서도 항상 듬직하고 누군가를 지켜주는 자랑스러운 '봇데'가 되길.
굿바이 촘롱.
굿바이.
<촘롱이 자주 나가서 길목을 지키던 식당앞... 촘롱은 사진 왼쪽의 인도에서 조용히 끝을 맞았습니다.>
- 멀리 네팔에서 아카스_네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