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의 결과물이라며 떠들썩했던 ‘이란 52조원 잭팟’이 빈깡통 ‘쪽박’ 멍에를 쓰게 됐다.
박 대통령이 이란을 국빈 방문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여태 제대로 된 수주 한 건 없기 때문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가 대부분인 데다, 오랜 경제제재로 이란 정부뿐 아니라 기업들도 재정 상황이 나빠져 본계약 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박근혜 정부의 ‘세일즈 외교’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투자 실패와 비리로 얼룩진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朴 대통령 이란 방문 6개월 지났지만 수주 사실상 ‘제로’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9일 현재 이란 수주액은 68만달러(약 7억77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이란 수주는 지난 2009년 24억9200만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후 2013년 1935만달러, 2014년 969만달러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수주액은 ‘제로’였다.
올해 이란에서 수주한 내용을 보면 해양수산부의 ‘샤히드라자이항 항만개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검토 용역’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2016 테헤란 한국우수상품전 부스 설치’ 공사 등 2건으로 제대로 된 건설 수주와는 거리가 멀다.
올해 5월 초 정부는 박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을 계기로 이란에서 ‘총 371억달러(약 42조원) 규모, 30개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수주 가능성’을 성과로 내세웠다. MOU 등이 체결되지 않아 제외된 일부 프로젝트를 포함할 경우 참여 가능성이 열려있는 사업 규모는 456억달러(약 52조원)까지 늘어난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이 ‘세일즈 외교’ 성과로는 역대 최대 규모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이란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지난 5월 2일 테헤란 사드아바드 좀후리궁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이란 정상회담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면 철도·공항·수자원관리 등 인프라 건설사업과 관련해 총 8건의 MOU가 체결됐다. 116억달러 규모다. 석유·가스·전력 등 에너지 재건 사업 분야에서도 10건의 가계약과 MOU가 체결돼 236억달러에 달하는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이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본계약까지 성사된 수주는 단 한 건도 없다. 그나마 계약 성사 단계에 들어간 사업도 이란 정부의 후속 대응이 늦어지면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림산업(000210)은 이란 이스파한과 아와즈를 이을 49억달러 규모의 철도공사와 19억달러 규모의 박티아리 댐·수력발전 공사 가계약을 맺었지만 더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사우스파 12단계 확장 사업의 기본계약을 체결한 뒤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법적 효력을 갖는 본계약으로 이어지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수주 난항 예견된 일…52조원 실제보다 부풀려져
박근혜 정부 세일즈 외교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이란 수주는 이미 난항이 예견됐다.
이란은 오랜 경제제재로 재정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이란 발주처 대부분은 재원 부족으로 시공사가 설계, 조달, 시공에 재원까지 조달하는 ‘시공자 금융주선 방식’을 택하고 있어 본계약 성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을 통해 총 250억달러 규모의 수출·수주지원용 금융패키지를 이란 측에 제시했다. 하지만 금융제공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이란 경제제재를 부활할 경우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지원한 금융 회수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패키지 지원은 사업비까지 제공하게 될 경우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사업성을 세심하게 파악해 안전하게 재무모델을 짜는 후속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세우는 수주가 대부분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 등의 수준이어서 실제 계약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수주 내용을 보면 MOU가 13건, 거래조건 협정(MOA)이 4건, 주요 계약조건 협상이 3건이다. MOU와 MOA, 거래조건 협상 등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낮은 단계의 합의다.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악재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올해 1월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해제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핵을 보유한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부활할 경우 국내 건설사가 이란과 맺은 가계약이나 MOU는 물거품이 되거나 백지화될 수 있다. 이란 특수가 오히려 이란 리스크로 돌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찬열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동안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를 통해 맺은 MOU는 모두 96건이었지만 이 가운데 본계약으로 발전한 사업은 16건에 불과했다”며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과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막연한 수치를 부풀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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