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장에서부터 “마음”을 “자신과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목적과 수단을 구분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형태의 내면”으로 좁게 한정해서 정의하였다. 극악 범죄자에게는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범죄자에게는 자신처럼 인간이라는 대상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구분해서 존엄하게 대하는 형태의 내면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와 같은 의미이며, 극악 범죄자는 자신에서처럼 자신이나 타인을 존엄하게 여기며 목적으로 대할 것으로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렇게 존엄성이 느껴지지 않는 껍데기만 인간인 이들을 우리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이라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한다.
‘마음’이라는 용어는 이것 이외에 다양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도 있기 때문에 이들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이 좋다.’, ‘내 마음은 호수다.’, ‘마음에 담아두다.’에서의 마음은 “내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려는 마음을 가지다.’, ‘그러려는 마음이 없다.’, ‘그러려는 마음이 강하다.’, ‘그러려는 마음을 먹다.’ 에서의 마음은 “의도”(또는 의지, 의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반면, ‘마음 가는 데로 한다.’, ‘그럴 마음이 생긴다.’, ‘마음이 끌린다.’ 에서의 마음이라면 “감정”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호에서 정의할 수 있는 “있다 없다”나 정보에서 정의할 수 있는 “맞다 틀리다” 같은 사실명제나, 또는 능동체가 정의할 수 있는 “좋다 나쁘다”같은 가치명제가 아닌, 독존체에게서 정의할 수 있는 “옳다 그르다”같은 당위명제에 대한 관념은 이 존엄성에서부터 파생된다. 있는 것은 할 수 있음의 대상이고 (나에게는 독존성이 “있다”. = 나는 나를 추구할 수 있다.), 좋은 것은 하고 싶음의 대상이고 (나의 독존성을 추구하면 “좋다”. = 나의 독존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옳은 것은 해야함의 대상이 된다 (나와 같은 독존성이 느껴지는 다른 존재를 존엄하게 여기는 것은 “옳다”. = 나와 같은 독존성이 느껴지는 다른 존재를 존엄하게 여겨야 한다.).
즉,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가정하지 않고는 옳고 그름이나 해야함 안해야 함을 규정할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이 하늘이 아닌 개인의 존엄성 인식 상태에 의해 결정 되어 진다며, “해야함”, “안해야함” 에 대한 내용은 존엄성을 인식하는 무리들의 공동체적 조직활동을 통해 암묵적인 약속 형태로 규정된다. 여기서의 “해야함” 사항에 대한 대상은 “자신을 불리하게 하더라도 다른 존엄체를 이롭게 하는 어떤 것”들이다. 홀로 외딴 섬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자신 이외의 다른 존엄체가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존엄체를 이롭게 하는” 해야함 같은 것은 없다. 또한, 외딴 섬에 누군가와 같이 살고 있더라도 그 누군가에 대한 존엄성 인식이 없다면 “존엄체를 이롭게 하는” 해야함 같은 것도 없다. “해야함”은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고, 그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와 서로가 존엄성을 느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규정된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보편적인 인간은 타인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아는 존재이다. 공동체 구성원은 서로가 그것을 가정하고 있으며 약속하고 있다. 그런 약속을 전제한 상태로 공동체 조직은 작동하고 있다. 만약 그런 것이 전제 되지 않으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공동체 생활로부터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 세상은 공동체 생활이 아닌 뿔뿔이 각자도생을 살아가는 인류로 구성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또한 설사 동질의식이 없어서 스스로가 타인에 대한 존엄의식이 없는 존재더라도 공동체 생활에서의 이로움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위의 가정이나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공동체는 그런 가정이나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만을 구성원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만약 공동체적 질서나 약속을 거부한다면 그 개인은 외딴 섬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따로 떠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인간을 존엄하게 여겨야 한다는 규칙은 거부할 수 없으며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지 않는 개인은 공동체 에서는 용납되지 않으며 처벌 받든지 억압받든지 해서 도태된다.
공동체는 구성원들 간에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라는 약속을 전재하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발전해온 인간에게서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들 역시 자신처럼 자신을 포함한 타인들에게 스스로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존재이다. 인간이 타인의 내면 상태를 그런 식으로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생활을 원만히 할 수가 있고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 도덕은 이러한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라는 공동체 구성원간의 가정이나 믿음으로 부터의 타인을 대하는 행동이나 생각의 원리를 뜻하며, 양심은 이러한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라는 공동체적 가정이나 믿음, 또는 도덕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겠다는 의도나 의지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옳음 또는 선은 이런 공동체적 가정이나 믿음에 부합함을 뜻한다.
그러나 말했듯이 능동성이나 독존성이 동질감 자체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도덕이나 양심은 어디까지나 지켜지기를 바라는 약속일 뿐이지 필연적인 귀결이나 진리는 아니다. 수 많은 인간들 중에는 자신의 진정한 존엄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또는 자기 존엄성은 알지만 다른 존재에게서 자신과의 동질감을 통한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래서 타인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인정할 생각이 없는 인간도 있다. 이들 공감 무능력자는 인간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 보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간을 활용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름 또는 악은 이렇게 자신 스스로 만을 존엄하게 여기고 타인은 적극적인 활용 수단으로 여기면서 위에서 언급한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라는 공동체적 가정이나 믿음이냐 약속에 반함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악이 능동적인 행위로 옮겨진 결과물이 죄이다.
도덕(상식, 정의):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라는 공동체적 가정이나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타인을 대하는 행동이나 생각의 보편 원리
동질감: 자신과 내면이 같음에 대한 인식
동질체: 동질감이 느껴지는 존재
선(옳음, 바람직함):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라는 공동체적 가정이나 믿음에 부합함
악(그름):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라는 공동체적 가정이나 믿음에 반함
약속: 상호 합의에 따른 당위 규정
양심: “동질체를 존엄하게 여긴다” 라는 공동체적 가정이나 믿음에 부합하는 행위를 하겠다는 의도나 의지, 내가 존엄한 대우를 받고 싶은 대상에게 존엄하게 대해주고자 하는 의도나 의지
인간a: 우리와 외관과 작동이 같은 존재
인간b: 양심이 있는 인간a
인간성: 동질체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자 하는 인간b의 성질
존엄: 엄숙할 정도로 높고 귀함
죄: 능동적인 행위로 옮겨진 악의 결과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