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여자입니다.
현재 히키코모리 생활에 접어든 지 4개월 가량이 되어 갑니다.
해외에 2년 정도 나갔다가 26에 대학을 졸업을 했고 27부터 시작한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직종은 예술계통으로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어느 곳에서도 1년을 버티지 못한 채 직장을 세 번이나 옮겼습니다.
월급 체납, 열정페이, 주말없음, 성희롱, 소송 등의 직장생활이 계속되었고 건강도 많이 해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곳에도 경력으로 이력서를 쓸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저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너가 끈기가 부족해서" "부당해도 참아 다 그러고 살아"
"누가 그런 일 하래?" "회사를 잘 보고 들어가지 못한 너탓" "현실을 직시해" 뿐이었고습니다.
정말 내 끈기가 이뿐이었는지, 이것조차 감당해 내면 정말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인지, 내가 현실감각이 없는 것인지,
이미 많은 걸 희생하신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으려고 없는 돈에 자취해가며 돈도 갚고 살아 오고 있는데, 난 정말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점점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주변에 일상을 즐기며 사는 친구들 보며 밑 빠진 독에 물만 부어온 것 같은 그간의 일상에 삶의 의지도 다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당장 방세라도 내야 하는데, 알바라도 해야 하는데, 정말 아무런 의욕이 들지 않아 비어가는 통장만 보며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렸네요.
부모님은 고집부리지 말고 일반 회사나 들어가라고 하시는데, 좋아하지 않는 업종에서 1년 이상 버틸 자신이 없습니다.
못난 고집인 건지, 그렇게 현실에 타협해버리자니 분하고 억울해서 화가 납니다.
방세를 내야 하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어가도
2년 남짓에 험한 꼴들을 겪다보니 어느 회사 공고를 보아도 꼬락서니가 어떨지 예측이 갑니다..
그러다보니 뭐라도 잡아야 하는데 잡기가 겁이 납니다. 내가 잡은 동앗줄에 가시가 박혀 있을 게 너무나 뻔히 보여서..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가, 두려움만 앞서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쓸데없는 이상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사실 사는 건 먹고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도 들고 ..
내가 대단한 지식인이라도 되는 양 스스로 착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정말 어리석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인간이 쓸모없어지는 거 한순간이구나 싶습니다.
반년 돈 바짝 벌어서 커리어에 대한 생각은 다 내려놓고 워킹이나 다녀올까 싶기도 한데
이런 도피성으로 다녀온다고 한들 귀국하면 다시 똑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누군가는 1-2년만 더 고생하다가 커리어 쌓아서 가라고, 여자는 나이먹고 경력 없으면 서류 광탈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지금 당장 준비해서 얼른 갔다가 맘잡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고..
선택은 제 몫이겠지만
그 선택을 내리는 것이 이젠 너무 두렵습니다.
최근 2년 간 들은 소리들이라곤 "끈기부족" 혹은 "너는 참 운도 없다"로 대표되다보니
나는 끈기가 없고 운이 없는 20대 후반녀. 모아둔 돈도 없는 20대 후반녀. 앞길이 걱정되는 20대 후반녀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20대 후반이든 여자든 그게 무슨상관이냐며 콧방귀를 끼곤 했는데,
정말 현실 앞에서 이렇게 되네요..
넋두리할 곳이 없어 이 새벽에 여기다 주저리주저리 써봅니다
부모님한텐 죄송해서.
친구들한텐 창피해서.
에휴, 인터넷에 글올리는 데도 저는 또 이런 저런 핑계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