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생명체의 특성의 특성은 무엇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도구나 물질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였다. 이제 초반에 재기되었던 근원적인 의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럼 생명체는 물질들의 자연원리 작용만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인가? 물질로부터 생명체를 발생시키게 하는 자연원리가 있는가? “이유”의 끝이 그러하였듯이 “목적”의 끝도 결국에는 자연원리와 만나게 될 것인가? 생명체를 자기 정보를 보존하고 존속시키려는 존재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런 지향성이 물질에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물질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그런, 물질에는 없는 성질을 가지게 되었을까? 어떻게 지향성이 없는 물질로부터 지향성이 있는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게 되었을까? 물질에서 생명체가 자연 발생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생명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도대체 물질로부터 생명체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이 의문은 결국 초월적 절대자, 즉 신(神)을 도입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생명체의 목적을 이해하고 생명체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대단히 거대한 질문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생명체에게서의 지향성을 어쩌면 설명할 수도 있는 자연원리에 대한 가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엔트로피 극대화 가설”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이 가설은 어쩌면 물질로부터 생명체의 발생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는 대단히 중대한 숨은 자연원리인지도 모르겠다.
엔트로피 극대화 가설을 소개하기 전에 엔트로피 법칙에 대한 내용부터 먼저 언급을 하면, 엔트로피 법칙은 열역학 제 2 법칙으로 우주의 엔트로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항상 증가함을 명시하는 법칙이다. 여기서의 엔트로피는 유용 불가능한 에너지, 또는 무작위도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연 법칙들 중에 가장 확고하고 가장 폭넓게 적용되고, 그러면서도 가장 단순한 이론을 말하라면 아마도 이 엔트로피 법칙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자연현상에서 이 엔트로피 법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례는 단 한 건도 관찰되거나 보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법칙을 통해서 물체와 에너지와 심지어 시간에 대한 문제까지 설명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감히 이 법칙을 사실로 받아 들여도 안전하며, 우리 인간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주의 에너지는 항상 쓸모 없는 상태로 변화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주의 모든 입자는 거시적으로 봤을 때 항상 무질서하게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쓸모가 없어진 에너지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 질 수가 없고, 어질러진 물체가 다시 정렬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절대로 시간이 거꾸로 흐리지 않는 이상 에너지나 입자 흐름의 방향이 그것과 반대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절대로 영구기관을 만들 수가 없고, 엎지른 양동이의 물을 역시 주워 담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영구기관이 아닌 영구적으로 움직이는 장치는 만들 수가 있고, 엎지른 물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주워 담을 수가 있다. 장치가 완전히 견고한 것이라면, 그리고 전원을 계속 공급되기만 한다면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는 성립이 된다. 또한 물을 엎질러 놓고 양수기를 돌리면 거의 원 상태로 복구 할 수 있다. 이처럼 계(界)를 국소적으로 한정한다면 엔트로피의 법칙에서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개방된 계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이런 상황은 엔트로피 법칙과 상충되지 않는다. 즉,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구적으로 움직이는 장치는 없는 것이 있을 때 보다 쓸모 없는 에너지를 덜 증가 시킨다. 그리고 양수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작동할 때보다 전체 입자를 덜 무질서 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물체를 계속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가 그 물체가 움직임에 따라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 보다 크며, 엎지른 물을 제자리로 복구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보다 더 많은 무질서가 동반해야 한다. 정리하면, 우주의 전체 에너지는 항상 쓸모 없는 상태로 변화하지만, 한정된 닫힌 계에서는 그 주위의 엔트로피를 통제하는 특정한 “외부자극”이 주어진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에너지가 쓸모 있는 상태로 변화할 수도 있다.
이는 생명체에서 관찰되는 모순적인 질서화 작용을 설명할 수도 있다. 실로 엔트로피 법칙 관점에서 보면 생명체는 모순적이다. 무질서한 물질 입자들로부터 질서를 갖춘 생명체가 나타나고, 또한 그 생명체가 활동을 통해 길이나 집 같은 세상에 없던 환경적인 질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의 설명 방식을 통해서 생명체에게 관찰되는, 엔트로피 법칙이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어렵지 않게 설명될 수 있다. 즉, 생명체가 발생되는 과정에서 국소적으로 질서 있게 정렬되는 입자의 양 보다는, 생명체의 발생으로 인해 거시적으로 무질서 해지는 입자가 많을 것이다. 또한 생명체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소적인 질서는 그로 인해 어지럽혀 지는 거시적인 질서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생명체에서 작용하는 엔트로피의 국소적인 예외 현상은 엔트로피의 법칙을 위배하지는 않는, 그래서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설명이다. 어떤가? 명쾌하지 않은가?
생명체에 작용하는 엔트로피의 국소적인 예외 현상에 대한 이런 그럴 법한 설명에는 그러나 사실 중대한 맹점이 있다. 그것은 “외부자극”에 대한 문제이다. 위 설명에 따라 엔트로피의 국소적 예외 현상에 대한 문제는 외부 자극만 있으면 쉽게 해결 되기는 하지만, 대신에 그 외부 자극은 반드시 설명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기만인지 외면인지 무지인지 모르겠지만 위의 설명에는 생명체에게 가정해야만 하고 설명해야만 하는 이 외부자극에 대한 내용이 엉뚱하게도 과감히 생략되었다. 사실 위 설명에서는 도구를 닫힌 계의 예로 듦으로써 외부자극에 대한 문제를 쉬운 것처럼 사소한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도구에 작용하는 외부 자극은 물론 인간에 의한 것이다. 무질서한 물체가 질서를 가지는 도구로 바뀌거나, 그 도구가 작동하는 것은 모두 인간이라는 외부 자극이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 때에만 그렇게 될 수 있다. 반면에 만약 인간의 활동없이, 또는 특정한 외부자극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도구가 만들어지거나 작동한다면 그것은 설명될 수 없는 미스테리한 현상이 된다. 이렇듯 우리는 도구라는 닫힌 계에 작용하는 외부 자극의 실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작용을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도구가 왜 발생했고,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도 역시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체는 어떠한가? 도구에서의 경우처럼 생명체에도 여기에 작용하는 외부자극의 실체를 알아야지 만이 생명체에 작용하는 엔트로피의 국소적인 예외 현상은 완전히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질서한 물질들에서 질서 있는 도구가 되어 작동하는 과정이 설명되기 위해서 인간이라는 외부자극이 필요 하였듯이, 무질서한 물질들에서 질서 있는 생명체가 되어 활동하는 과정이 설명되기 위해서는 어떤 외부자극이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생명체에게 작용하는 외부작용은 그럼 무엇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위 논증에는 이 정작 생명체 작용에서의 그 “외부자극”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리고 필자는 다음 장에서 엔트로피 극대화 가설과 DNA를 통해서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엔트로피의 국소적인 예외현상 문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복잡할 수도 있는 이 장의 내용을 몇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1. 목적체에서는 엔트로피의 국소적인 예외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2. 이런 예외적인 현상은 특정한 “외부자극”을 도입하면 쉽게 설명이 된다. 3. 수동적인 목적체인 도구에서의 그 특정한 외부자극은 인간이다. 4. 마찬가지로, 주체적인 목적체인 생명체에서 발생되는 엔트로피의 국소적인 예외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특정한 “외부자극”이 정의되어야만 한다. 5. 1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3번까지이며, 4번에 대한 문제는 외면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6. 엔트로피 극대화 가설을 통해서 4번의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엔트로피: 정보 물질계의 열적 에너지 상태를 나타내는 무질서 량, 낭비되어 사용할 수가 없는 열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