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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16762
    작성자 : 애비28호
    추천 : 14
    조회수 : 2099
    IP : 110.70.***.121
    댓글 : 9개
    등록시간 : 2014/06/30 22:18:11
    http://todayhumor.com/?history_16762 모바일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사후(死後) 평가(주의:재미 없음)
     
    □ 정도전 1342년(고려 충혜왕) 출생 ~ 1398년(태조 7년) 사망
    자(字)는 종지(宗之), 호(號)는 삼봉(三峰)이며, 본관(本貫)은 안동(安東) 봉화(奉化)
    형부 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
    □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8월 26일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숙청되다.
    ​정도전의 아들인 정유(鄭游)와 정영(鄭泳)은 왕자의 난 당일 처형 당했고 또 다른 아들 정담(鄭湛)은 동기들의 처형 소식을 듣고
    자살함.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였던 정도전의 장남 정진(鄭津)도 아버지 정도전이 죽은날 순군옥(巡軍獄, 나중의 의금부)에 구속 수감되었
    다가 전라 수군(全羅水軍)에 충군(充軍) 됨. 그야말로 정도전 일가는 멸문지화(滅門之禍)당하는듯함.
      
    □ 1398년 9월 12일
    태조 이성계가 아들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9월 12일 이방과(정종 임금)가 즉위교서를 반포함.
    즉위교서 내용중
    ...<전략>
    “왕은 말하노라. 삼가 생각하건대, 상왕(上王)께서 천리(天理)와 인심(人心)에 순응하여 비로소 국가를 세우고 강기(綱紀)를 베풀
    어 만세(萬世)에 모범을 보였는데, 불행히도 간신(奸臣) 정도전 남은 등이 연줄을 타서 권세를 부리고 몰래 권력을 마음대로 하기를 도모하였다. 이에 어린 서자(庶子)를 세자로 세워 후사(後嗣)로 삼고서 장유(長幼)의 차례를 빼앗고 적서(嫡庶)의 구분을 문란시키고자, 우리 형제를 이간시켜 서로 선동하여 변고를 발생시켜서 화(禍)가 불측할 지경에 있었는데, 다행히 천지와 종사(宗祀)의 신령이 몰래 도와주고 충신 의사(義士)들이 마음과 힘을 다함에 힘입어, 간악한 무리들이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斬刑)을 당하고 나라의 운명이 편안하게 되었다...<중략>...
    지금 혁신(革新)하는 초기를 당하여 마땅히 새로운 교화(敎化)를 선포해야 될 것이니, 그 홍무(洪武) 31년 9월 15일 이른 새벽 이전
    에 있었던 대역(大逆)·강도(强盜)·고독(蠱毒)·염매(魘魅)와 고의로 살인(殺人)한 것과, 정도전· 남은의 당여(黨與)를 제외하고, 이미 발각되었던 것이든지 발각되지 않은 것이든지 모두 사유(赦宥) 면제하니, 감히 유지(宥旨) 전의 일로써 서로 고발해 말하는 사람은 그 고발한 죄로써 처벌하게 할 것이다...<후략>
    새임금이 즉위하면 특별하게 중요한 범죄, 예를 들어 내란이나 대역죄, 고의살인이나 부모를 죽이는 등의 중죄 이외에는 모두 사면을 하는게 일반적임.​ 위의 실록 기사처럼 "정도전, 남은의 당여는 제외" 하는 특별 단서 조항을 붙이며 사면을 선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사례임.
     
     
    □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9월 17일
    정사 공신의 등급을 정하여 내린 교지
    임금이 우리 전하(태종)와 더불어 정사 공신(定社功臣)의 등급을 논하고 도승지 이문화(李文和)에게 명하여 교지를 전하였는데, 그 교지는 이러하였다.
    “국가에서 창업(創業)한 지가 오래 되지 않으니, 진실로 근본을 바루고 시초를 바로 잡아 천명(天命)에 안정하고 국조(國祚)를 만세(萬世)에 전해야 될 것임에도, 불행히 간신(奸臣) 정도전 남은 등이 상왕(上王)께서 병환이 나서 오랫동안 낫지 않는 시기를 당하여 어린 서자(庶子)의 세력을 믿고 난을 일으켜 우리 여러 형제를 해치려 하고, 우리의 이미 이루어진 왕업(王業)을 전복(顚覆)하고자 하여 화(禍)가 불측한 지경에 있었는데...<후략>
     
    □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9월 18일
    사헌부에서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가산 적몰을 청했으나 과전만 회수하게 하다
    사헌부에서 정도전·남은·심효생·장지화(張至和)·이근(李懃) 등의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기를 청하니, 우리 전하(殿下. 태종임금)께서 임금에게 말하여 다만 과전(科田)만 회수하게 하였다.
     
     
    □ 정종 1년(1399 기묘 / 명 건문(建文) 1년) 8월 3일
    좌정승 조준이 전을 올려 사직하기를 비니 윤허하지 않다
    신은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과 더불어 동공일체(同功一體)여서, 처음에는 털끝만한 간격도 없었습니다. 정도전이 천자에게 죄를 얻으면서부터 남은과 결탁하여 요동(遼東)을 치자고 꾀해서 한 몸의 화를 면하려 하였습니다. 신이 이때 와병(臥病)중에 있었는데, 태상께서 두 사람을 보내어 신에게 물으셨습니다. 신이 병을 무릅쓰고 기운을 내어 천문(天門)에 뵈옵고, 어리석은 충정을 분발하여 천의(天意)를 돌이키니, 간사한 꾀가 드디어 저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두 사람과 신 사이에 시기하고 틈이 생겨, 형세가 서로 용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길 가는 사람도 아는 바입니다. 태상께서 병환이 나서 오래 끄는 때를 당하여, 오직 이 두 사람만은 그 욕망을 이룩하고자 하여 어린 얼자(孽子)를 세우기를 탐하였습니다. 외간(外奸) 내궤(內軌)가 이미 이루어져서 화가 조석에 있었는데, 다행히 천지(天地) 조종(祖宗)의 몰래 돕는 힘을 입어서, 제공(諸公)과 부마(駙馬)가 먼저 의거(義擧)를 일으켜, 흉한 무리가 복주(伏誅)되고, 나라의 운수가 다시 안정되었습니다...<후략>
    - 정도전이 숙청되었던 주요 원인
    1. 이성계의 후처 소생 자식​인 이방석을 세자로 세운 것.
    2. 진법 연습을 통해 사병 혁파를 ​도모하였음.(이방원파에서는 진법 연습의 취지를 중국에 도전하기 위한 군사훈련으로 변질 시킴)
     
    □ 태종 3년(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6월 5일
    평양 부원군 조준이 병중에 있어 육선을 내려 주다
    ...<전략>조계(朝啓)하는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이씨(李氏)가 개국(開國)한 공(功)은 오로지 조준(趙浚)과 남은(南誾)에게 있다. 정도전(鄭道傳)은 언사(言辭)를 잘하여 공신(功臣)의 열(列)에 있었는데, 그가 공신(功臣)이 된 것은 또한 당연하나, 공(功)으로 논하면 마땅히 5, 6등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미 간 사람들을 오늘에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남은이 만일 살아 있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부왕(父王) 때에 양정(兩鄭)이라고 일렀으니, 하나는 몽주(夢周)이고, 하나는 도전(道傳)이었다. 몽주는 왕씨(王氏)의 말년 시중(侍中)이 되어 충성을 다하였고, 도전은 부왕(父王)의 은혜에 감격하여 힘을 다하였으니, 두 사람의 도리가 모두 옳은 것이다.”...<후략>
    - 이날은 정도전을 죽인 태종 이방원의 기분이 좋은 모양임.​
    정도전을 칭찬함. 당연하지만 조선 개국에 정도전이 많은 역활을 한것은 사실임.​

     
    □ 태종 6년(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년) 8월 24일
    길창군 권근이 전위의 불가함을 상서하다
    ...<전략> 우리 태상왕께서 상왕께 왕위를 전해 주실 때에는, 태상왕께서 병이 심하시었고, 또 정도전(鄭道傳)이 감히 황제의 명을 거역함이 있었으며, 또 요동을 공격하고자 하고, 어린 서얼(庶孽)을 세우려고 탐내어 총적(冢嫡)을 죽이려고 도모해서, 화변(禍變)이 급(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에서도 고제(高帝)가 돌아 가고 건문제(建文帝)께서 새로 등극(登極)하여, 여러가지 일에 겨를이 없었던 까닭에, 묻지 아니한 것뿐입니다...<후략>
     
     
    □ 태종 7년(1407 정해 / 명 영락(永樂) 5년) 10월 3일
    정도전의 아들 정진(鄭津)을 판나주목사(判羅州牧事)로 임명함.
    - 제1차 왕자의 난 당시에는 정도전 일가는 멸문지화를 당하는 듯 하나 정도전의 장남은 높은 벼슬을 받음.​

     
    □ 태종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11월 9일
    권근이 대간의 직책에 대한 사목을 상언
     일찍이 국초(國初)에 신(臣)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이 《경제문감(經濟文鑑)》을 편수(編修)할 때에 대간의 직임에 대한 역대(歷代) 연혁(沿革)과 선유(先儒)의 격언(格言)을 갖추 싣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신이 그 당시에 함께 교정(校正)을 가(加)했사온데, 직임의 중함을 말한 것은 더 이상 심오(深奧)한 뜻이 없습니다. 지금 주상의 명령을 받고 다시 《문감(文鑑)》에 실리지 않은 송나라 제도[宋制]의 연혁과 송조(宋朝) 대간(臺諫)의 어진 신하의 언행(言行)·사적(事迹) 한두 조건(條件)을 상고해 참고하고, 선사(繕寫)하여 《경제문감(經濟文鑑)》 한 질(秩)과 함께 바치오니, 맑고 조용한 여가(餘暇)에 특별히 한 번 보시면 거의 간(諫)함을 좇는 미덕(美德)에 도움이 있으실 것입니다...<후략>
    - 정도전이 만든 책을 아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임.

     
    □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3월 21일
    유용생 등을 호조 판서로 하는 등 인사이동·대호군에 임명된 전보에게 진법 훈련을 지시하다
    유용생(柳龍生)을 호조 판서로, 장사길(張思吉)을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로, 김로(金輅)를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로, 유사눌(柳思訥)을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로, 전보(田甫)를 호용시위사 대호군(虎勇侍衛司大護軍)으로 삼았다.
    임금이 전보(田甫)에게 이르기를,
    “듣건대, 정도전(鄭道傳)이 진법을 연습할 때에 네가 사마(司馬)가 되었다고 하니, 지금도 진법을 잊지 아니하였겠지?”
    하니, 전보가 대답하기를,
    “신이 스스로 능한 것이 아니고, 신은 다만 진법(陣法)에 의하여 행하였을 뿐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삼군 갑사(三軍甲士)와 응양위(鷹揚衛)·별시위(別侍衛), 그리고 좌우(左右)의 인물들에게 진법을 훈련시켜 좌작직퇴(坐作進退)의 절차를 알게 하려고 하니, 네가 그것을 가르치도록 하라.”
     - 정도전이 사병 혁파와 요동 공격을 위해 하던 진법 훈련을 정도전 생존 당시 지휘관으로 참여한 사람을 다시 불러씀.

     
    □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8월 19일
    정도전의 동생 정도복을 인녕부 사윤으로 삼다
    정도복(鄭道復)으로 인녕부 사윤(仁寧府司尹, 정3품)을 삼았다. 도복(道復)은 정도전(鄭道傳)의 아우인데, 바야흐로 정도전이 나라 일을 맡아 그 세력이 조야(朝野)를 누를 때에 도복을 불러 서울에 오게 하니, 도복이 사양하기를,
    “세력과 지위는 오래 가기 어려우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한미(寒微)한 가문(家門)인데 영화(榮華)가 이미 지극합니다. 다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마땅히 낚시질하고 밭을 갈며 내 천년(天年)을 마치겠습니다. 청컨대, 형(兄)은 번거롭게 하지 마소서.”하였다.
    뒤에 성주(星州) 유학 교수관(儒學敎授官)이 되었는데, 7년이나 오래 되었으므로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
    - 정도전의 동생도 벼슬을 받음.​

     
    □ 태종 11년(1411 신묘 / 명 영락(永樂) 9년) 8월 2일
    정도전의 전민을 적몰하고 자손을 금고하도록 명하다
    임금이 남재를 불러 말하였다.
    “개국(開國)에 대한 일을 경이 모르는 것이 없는데, 이종학(李種學) 등의 일을 어째서 모르는가? 임신년 이전의 일은 내가 모두 알지마는, 그 뒤는 나를 꺼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동북면(東北面)에 출사(出使)하였었다. 그런데 경이 어째서 모른다고 하는가?”
    대답하였다.
    “임신 연간의 일은 신이 그때 대언(代言)이었으니, 어찌 모르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일은 실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만일 이 일을 알았다면 어찌 이미 죽은 아우를 위해서라도 임금을 속이겠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개국의 공은 남은(南誾)이 많았으니,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힘써 아뢴 일이 있었으나, 정도전(鄭道傳)은 개국할 때에도 일찍이 한 마디 말도 없었고, 그 뒤에 적서(嫡庶)를 분변할 때에도 한 마디 언급하지 않았고, 고 황제(高皇帝)에게 득죄(得罪)함에 이르러서는 굳이 피하고 가지 않고 사(私)를 끼고 임금을 속이었고, 흉포(凶暴)한 짓을 자행하여 그 몸의 허물을 없애고, 이숭인(李崇仁) 등을 함부로 죽이어 그 입을 멸하였으니, 죄가 공(功)보다 크다. 마땅히 전민(田民)을 적몰(籍沒)하고 자손을 금고(禁錮)하라.”

     
    □ 태종 16년(1416 병신 / 명 영락(永樂) 14년) 6월 10일
    정도전·황거정 자손의 금고를 해제하게 하다
    명하여 정도전(鄭道傳)과 황거정(黃居正)의 자손의 금고(禁錮)를 해제하게 하였다.


     
    □ 태종 16년(1416 병신 / 명 영락(永樂) 14년) 6월 26일
    정도전의 아들인 정진에게 직첩을 주라고 하다
    정진(鄭津)에서 직첩(職牒)을 주라고 명하니, 정도전(鄭道傳)의 아들이었다.
    □ 태종 17년(1417 정유 / 명 영락(永樂) 15년) 9월 17일
    정도전의 아들인 정진(鄭津)을 판안동대도호부사(判安東大都護府事)로 임명함.
    □ 세종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윤12월 8일
    공신 도감에서 죄지은 공신의 화상과 공권과 교서를 올리다
    공신 도감(功臣都監)에서 죄를 지은 세 공신(功臣)들의 화상[影子]과 공권(功券)과 교서(敎書)를 올리니, 정도전(鄭道傳)·심효생(沈孝生)·오몽을(吳蒙乙)·이근(李懃)·장지화(張志和)·손흥종(孫興宗)·이제(李濟)·이거이(李居易)·황거정(黃居正) 등의 화상은 그 자손에게 내어 주고, 장담(張湛)·조박(趙璞)·박포(朴苞)·이무(李茂)·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유기(柳沂)·조희민(趙希閔)·윤목(尹穆)·조기(趙綺)의 화상과 손흥종(孫興宗)·황거정(黃居正)의 교서(敎書)·공권(功券)과 장사정(張思靖)의 공권은 이를 모두 불사르라고 명하였다.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월 25일 정도전의 아들 정진이 공조판서에 임명 되었다가 9월 29일 개성 유후(開城留後, 개성시장)으로 임명됨.
    ​□ 세종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10월 24일
    정도전의 아들 정진이 ​형조판서(정2품)에 임명됨.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4월 17일
    명나라 사신의 접대자리에 정도전의 아들인 정진(鄭津)도 참석함.​
     
    □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3월 6일
    ​정도전의 아들인 형조 판서 정진(鄭津)이 죽다.
     
    □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4월 16일
    - 여러 공을 세운 높은 벼슬아치가 죽고 나면 나라에서 비석을 세워 주는데 ​정도전의 아들인 정진(鄭津)에게도 비석을 세워줌.
    단종 1년(1453년)
    - 그때까지도 궁궐의 큰 행사때 연주하던 음악 중의 하나인 정동방곡(靖東方曲)은 정도전이 만든것임.
    □ 성종 23년(1492 임자 / 명 홍치(弘治) 5년) 2월 23일
    역대 제왕의 일에 대해 정도전이 편집한 책을 인출하게 하다
    우찬성(右贊成) 정문형(鄭文炯)이 그의 조부(祖父) 정도전(鄭道傳)이 찬정(撰定)한 책 1질(帙)을 가지고 와서 아뢰기를,
    “신이 빈객(賓客)으로서 일찍이 시강원(侍講院)에 이르니, 서연관(書筵官)이 신에게 이르기를, ‘역대 제왕(帝王)의 치란(治亂)과 득실(得失), 향년(享年)의 많고 적은 것을 대략 엮어서 강독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는가?’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선조(先祖)가 일찍이 역대 제왕의 일을 편집(編集)하여 한 책을 만들어서, 우리 집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였는데, 뒤에 들으니 서연관이 이것을 세자(世子)께 아뢰었다고 하므로 신이 지금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의 취사(取捨)는 성상의 재결(裁決)에 달려 있습니다.”하니, 전교하기를,
    “세자(世子)뿐만 아니라 나도 보고자 하니, 그것을 인출(印出)하도록 하라." 하였다.​
    - 우리의 공부덕후 성종 임금은 체면이고 뭐고 좋은 책이 있으면 무조건 읽어야함.​
     
    중종 11년(1516 병자 / 명 정덕(正德) 11년) 10월 15일
    ​- 태조 6년 정도전(鄭道傳)·하윤(河崙)·조준(趙浚) 등이 육전의 형식을 갖추어 만든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이 중종때까지도 경국대전과 함께 국가의 법률적인 판결에 중요하게 활용 되고 있었음.
    ​□ 명종 9년(1554 갑인 / 명 가정(嘉靖) 33년) 11월 24일
    공조 판서 홍섬이 아뢰기를,
    “선수 도감이 신을 시켜 경복궁을 중수한 일에 대해 시말(始末)을 기록하도록 청했습니다. 신이 선조 때부터 문한(文翰)을 담당하는 직책을 맡기는 했어도 제술에는 부족하여 한갓 허명(虛名)만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항상 마음에 부끄러웠습니다. 법궁(法宮)의 기록은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니 반드시 문장에 노련한 사람이라야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 태조께서 당초에 이 궁을 창건하시고서 전각(殿閣)의 명칭과 창건한 시말을 모두 정도전(鄭道傳)을 시켜 기록하게 하였는데 지금까지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실리어 후세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개 정도전의 문장이 전아(典雅)하면서도 정밀하고 고와 그 당시에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신과 같은 사람이 어찌 공졸(工拙)을 헤아려보지도 않고서 뻔뻔스럽게 흉내를 내겠습니까. 보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을 뿐 아니라 또한 국가의 체통을 손상하게 될 것입니다. ...<후략>
    ​□ 선조수정 23년(1590 경인 / 명 만력(萬曆) 18년) 6월 1일
    전 지평 최영경(崔永慶)을 하옥하였다. 정여립의 난이 일어난 초기에 적의 무리가 길삼봉(吉三峯)이 상장(上將), 정팔룡(鄭八龍)·정여립이 차장(次將)이라고 천명하였었다. 그래서 국청이 드디어 길삼봉의 행방을 심문하여 용의자가 많이 체포되었으나 다들 신원이 증명되어 석방되었다....<중략>... 최영경이 공초하기를,
    삼봉이란 본디 저의 별호가 아닙니다. 정도전(鄭道傳)의 호가 삼봉이니 이것이 어찌 답습할 호이겠습니까. 서울에 있을 때 역적과 지면 관계가 있었지만 어느 해 이후론 서찰도 통하지 않았는데 어찌 상종할 리가 있겠습니까.”...<후략>
     
    ​□ 광해 9년(1617 정사 / 명 만력(萬曆) 45년) 12월 24일
    예조 좌랑 기준격(奇俊格)이 비밀리에 상소하기를...<중략>..."허균은 한평생 정도전(鄭道傳)을 흠모하여 항상 ‘현인(賢人)’이라고 칭찬하였으며, 《동인시문(東人詩文)》을 뽑을 때에도 정도전의 시를 가장 먼저 썼고 우영의 시도 그 안에 뽑아 넣었습니다."
    ...<후략>​
    - 아직까지는 정도전을 흠모하거나 정도전의 시(詩)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탄핵을 받을 만한 죄임.​
    ​□ 현종 10년(1669 기유 / 청 강희(康熙) 8년) 1월 4일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소대(召對)하고 《심경》을 강하였다. 부제학 이민적(李敏迪)이 음석(音釋)을 읽으며 글의 뜻을 강하였고, 판부사 송시열, 좌참찬 송준길이 번갈아가며 나머지 뜻을 강하였다. 시열이 나아가 아뢰기를,...<중략>... 태조께서 개국하신 후
    간신 정도전(鄭道傳) 태종 성조(聖祖)께 무함하여 끝내 신덕 왕후 소생인 소도공(昭悼公)이 비명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태종이 즉위하신 후 신덕 왕후의 능은 사한리(沙閑里)로 옮겨 묻고 여전히 태묘에 배향되지 않았습니다. 사체가 중대하니 대신과 유신들에게 널리 의논하여 태묘에 배향하고 능도 여러 능들과 똑같이 만들어야 합니다.”...<후략>
    □ 숙종 7년(1681 신유 / 청 강희(康熙) 20년) 9월 14일
    공정 대왕 묘호 추가에 대한 송시열의 대답
    사관(史官)이 공정 대왕(恭靖大王)의 묘호(廟號)를 추가하여 올리는 일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송시열(宋時烈)에게 가서 물으니, 송시열이 대답하기를,
    “국가를 처음 세우던 초기에 불행하게도 간신(奸臣) 정도전(鄭道傳)의 변란(變亂)이 있었고, 인해서 태조 대왕(太祖大王)이 한(漢)나라 고조[上皇]가 그의 고향인 풍패(豐沛)를 그리워했던 그런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잠시동안 북쪽에 있는 고향인 함흥(咸興)에 거둥하였으며, 마침내 보위(寶位)를 공정 대왕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후략>
    □ 영조 8년(1732 임자 / 청 옹정(雍正) 10년) 1월 11일
    임금이 소대(召對)에 나아가 《당감(唐鑑)》을 강독하였다. 시강관(侍講官) 이종성(李宗城)이 아뢰기를,
    당(唐)나라 고조(高祖) 수(隋)나라 왕실의 자손을 죽이지 않고 또 녹용(錄用)하였으니, 이는 성덕(盛德)의 일입니다. 국초(國初)에 왕씨(王氏)의 자손을 배에다 싣고 바다에 빠뜨린 일은 바로 정도전(鄭道傳) 무리의 계책이며, 성조(聖祖)의 뜻은 아니었습니다.”...<후략>
    고종 2권, 2년(1865 을축 / 청 동치(同治) 4년) 9월 10일
    대왕대비(大王大妃, 신정왕후 조씨)가 전교하기를,
    “법궁(法宮)의 전각(殿閣)들이 차례로 완성되었다. 정도전(鄭道傳)이 전각의 이름을 정하고 송축한 문구를 생각해보니 천 년의 뛰어난 문장으로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학 국사(無學國師)가 그 당시 수고를 한 사실에 대해서는 국사(國史)나 야승(野乘)에 자주 보이는데, 나의 성의를 표시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다. 봉화백(奉化伯) 정도전에게는 특별히 훈봉(勳封)을 회복시키고 시호(諡號)를 내리도록 하라. 그리고 해조로 하여금 봉사손(奉祀孫)의 이름을 물어서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으로 의망하여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 ​고종 8년(1871 신미 / 청 동치(同治) 10년) 3월 16일
    ​- 드디어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 문헌공(文憲公)이라는 시호를 받고 완전히 복권됨.
    사면 복권 되는데 거의 오백년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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