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구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신문지 응원과 응원계의 후발주자 쓰레기봉투 응원. 롯데팬들에게 응원은 승패를 떠나 하나의 신성한 의식이다.
" 누가 짝대기(막대) 풍선 쓴다데예? "
사직구장에서 가장 먼저 들은 말이었다. 롯데-한화전이 열린 지난달 29일, 부산 야구 열기를 직접 느끼기 위해 위해 사직구장 관중석을 찾았다. 머리로 알고 있는 응원의 한계였을까. '응원=막대 풍선'으로 알고 있던 기자는 한 팬에게 " 막대 풍선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 " 고 물어봤다. " 누가 짝대기 풍선 쓴다데예. 우리는 전부 신문지 아입니꺼?(아닙니까) " 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한 롯데 팬과의 이런 대화는 어느새 응원소리에 녹아 사라졌다.
'부산 갈매기' 응원 체험기
< 5월29일 롯데 VS 한화전 >
1. 오후 4시30분쯤 : 입장 " 표를 왜 사노? " 교통카드로 직행한다~ 2. 오후 6시 : 먼지떨이 응원 도구 만들기 오징어 몸통 찢듯 신문지 쭉쭉 찢어 3. 오후 6시25분쯤 : 신문지 응원 시작 롯데 선수들 소개부터 흔들고 털고 4. 2회말 :'아~주라'의 진실 어른이 파울볼 잡자 '아ㆍ주ㆍ라' 외쳐 5. 5회말 : 신문지 협박 류현진에게 '마~' 외치며 강력 삿대질 6. 7회말 : 집단 최면 현상 1-8로 뒤지다 안타치자 열광의 도가니 7. 8회말 : 웬 쓰레기 봉투 쓰레기 담을 봉투로 주황색 응원 물결 8. 9회초 : 가ㆍ지ㆍ마~가ㆍ지ㆍ마 자리뜨는 관중향해 '가지마~' 외쳐 9. 경기 끝 : 쓸쓸한 퇴장 '담엔 이기겠지예, 롯데 파이팅입니더'
▶줄을 두 번 세우는 건 성질 급한 팬들을 두 번 죽이는 일
경기장에 입장하는 모습부터 눈길을 끌었다. 오후 4시 30분. 많은 사람이 매표소를 거치지 않고 곧장 야구장 출입구로 갔다. 이들의 손엔 입장권이 아닌 교통카드가 있었다. 야구장출입구 한켠엔 지하철 개찰구 같은 출입구가 있었고 관중은 충전한 교통카드를 기계에 댄 후 바를 밀고 야구장으로 들어간다. 롯데가 표를 살 필요없이 편하게 입장하도록 서비스를 마련한 것. 교통카드를 이용할 경우 10% 할인 혜택도 준다.
▶신문지 응원, 신문지 협박
1루 측 응원단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옆을 보니 팬들이 한결같이 오징어 몸통 찢듯 무언가를 찢고 있다. 스스로 만드는 응원도구, 바로 '신문지 총채(먼지떨이)'다. 도쿄돔에 '머플러 응원'이 있다면 사직엔 '신문지 응원'이 있다.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사람들은 가져온 신문지를 한 가닥씩 찢는다. 즉석에서 신문지를 손으로 찢은 후 김밥 말듯 말아 쥐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응원 고수들은 '신문지 총채'를 집에서 만들어 온다. 고수들의 것은 총채의 숱이 풍성하고 손잡이 부분이 테이프로 단단히 마무리돼 있다. 오후 6시 25분쯤, 신문지 응원은 롯데 선수소개 때부터 시작됐다.
신문지 응원뿐 아니라 '신문지 협박'도 가능하다. 5회말 롯데 공격, 2사 1루서 한화 선발 류현진이 1루에 견제를 했다. 그러자 롯데 팬들은 " 하나 둘 셋 " 이라는 구호에 이어 '마'를 외치며, 신문지 총채로 상대투수에게 강력한 삿대질을 날려댔다.
▶'아 주라', 어린이 사랑인가, 질투심인가
2회말 롯데 선두 타자로 나온 이대호가 1루 쪽 관중석으로 파울 볼을 날렸다. 사람들은 서로 잡으려고 손을 뻗었고, 약간의 몸싸움 끝에 한 중년 남자가 공을 손에 넣었다. 그러자 롯데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 " 아주라, 아주라 " 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엄청난 위압감에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 한 '아(아이)'에게 공을 넘겼다. 5회 한화 백재호의 파울 볼을 잡은 한 어른이 " 아 주라 " 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구 쪽으로 공을 들고 도망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관중석에선 " 마 " 와 함께 " 저게 사람이가 "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사직은 사투리 응원으로 유명하다. 롯데팬들은 홈런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쎄리라(때려라)', 발 빠른 주자가 출루하면 '띠라(뛰라)'를 연호한다. < 부산=손창우 기자 [email protected] >
▶하던 욕도 멎게 하는 '부산 갈매기'
6회에 6점을 내주며 1-8로 뒤진 상황. 6회말 롯데의 3번 정보명이 삼진을 당하자 흥분한 일부 롯데 팬들은 정보명에게도 '마'를 외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여러 육두문자도 흘러나왔다. 그러던 중 7회말 롯데 이원석이 중전 안타를 때리자 사직엔 '빠바바빠바밤~'과 함께 '부산 갈매기'가 흘러나왔다. 롯데 팬들은 모두 일어나 마치 이기고 있는 양 신문지를 흔들어 대며 다시 응원을 시작했다. 육두문자를 날리던 그 팬도 어느덧 즐거운 표정으로 '부산 갈매기'를 불러댔다. 부산 팬들에게 '부산 갈매기'는 일종의 환각제(?)였다.
▶친환경 응원, 쓰레기봉투 응원
8회말 롯데 공격이 되자 관중석에 주황색 쓰레기봉투가 등장했다. 신기한 건 관중이 한 장씩 가진 후 직접 뒤로 전달한다는 것. 나눠주는 직원도, 아르바이트생도 없었지만 쓰레기봉투는 일사불란하게 전달됐다. 경기 후 쓰레기 담으라고 나눠줬던 봉투가 이색 응원도구가 됐다. 팬들은 봉투를 풍선처럼 부풀려서 흔들어댔다. 부풀린 봉투 손잡이를 양쪽 귀에 걸고 머리 위에 얹혀놓는 사람들도 많았다. 응원 후에는 쓰레기를 담았다.
▶가지마, 가지마
롯데가 3-8로 뒤진 채 8회말이 끝나자. 뒤집기 어렵다는 판단에 관중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자를 둘러싼 주위의 관중이 " 가지마, 가지마 " 라는 함성을 외쳤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고 했던가. 관중의 '끝까지 응원해보자'는 결의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 부산=손창우 기자 [email protected] >
'띠라 정수근, 쎄리라 이대호, 그리고 파울볼은 아주라'의 뜻은?
사직구장 응원용어 풀이
타지방 사람이 사직구장에 갔다면 의아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사직구장에 가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주요 응원 문구를 정리했다.
▶아주라
'아'는 아이의 부산식 줄임말이고 '주라'는 줘라의 부산 사투리다. 즉 '아이(한테) 줘라'는 뜻이다. 파울 볼이 관중석으로 넘어가 어른이 잡았을 경우 이 말을 주위의 모든 관중이 외친다. 앞으로 야구를 하고 보게 될 아이들에게 야구공을 선물해 야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하겠다는 부산 팬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가끔 공을 끝까지 주지 않으려 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그럴수록 '아주라'는 말은 더 크게 울려 퍼진다.
▶띠라
'뛰어라'의 부산 사투리. 발 빠른 주자가 나갔을 때 도루를 독려하는 응원이다. 지난 93년 롯데에서 뛰던 전준호(현재 현대)가 도루 75개로 도루왕에 오를 때 전준호가 출루하기만 하면 했던 응원으로 지금은 정수근 이승화 등이 출루하면 한다.
▶마
'임마'의 줄임말. '임마'는 '이놈아'의 줄임말인 '인마'의 부산식 표현이다. 상대편 투수가 롯데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질 때 투수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 하는 말로 롯데 선수가 도루해야 하는데 왜 견제를 하느냐는 뜻이 담겨있다. 상스러운 표현이라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해 투구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쎄리라
'때려라'라는 뜻의 부산 사투리. '때려라'보다는 더 강한 어감이 있다. 롯데 이대호가 타석에 섰을 때 홈런을 기원하는 팬들이 하는 응원 문구다. 직접적으로 '이대호 홈런'을 외칠 때가 더 많이 있다.
'한복남 ' 때문에 응원의 전설이 시작됐다.
비공식응원단장 '살살이' 백인호씨 … 신문지 - 라이터 응원 등 창시자
사직구장 응원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났다.
사직구장의 비공식 응원단장, '살살이'였다. 본명은 백인호씨(44).
이름보다 '살살이'가 더 익숙하다는 백씨는 바로 롯데 응원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신문지 응원의 창시자다. 또 라이터, 파도응원 등도 가장 먼저 시작한 인물이었다. 사직의 트레이드 마크가 모두 '살살이'의 머리에서 나온 셈.
백씨는 89년에 당시 롯데 응원단장 유 퉁씨를 따라 사직구장 응원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구단의 공식 응원단장이 아닌 자원 응원단장이었다. 백씨는 " 그때는 롯데에 공식 응원단이 없었어예. 95년에 구단에서 응원단을 운영하기 시작했지예 " 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95년까지 응원단상에서 응원을 했던 백씨는 구단 응원단이 들어온 후에는 단상에 설 수 없었다. 이젠 장내의 '떠돌이 응원단장'으로 팬들의 응원을 독려한다.
90년 4월 26일 빙그레전. 백씨는 사직에서 파도응원을 시작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파도응원이 응원계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부산의 모 일간지에 실렸기 때문.
어떻게 파도응원을 시작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 70~80년대에 차붐(차범근)이 뛰던 분데스리가 경기를 마이(많이) 봤는데 거기서 파도응원을 하더라고예. 꼭 야구장에서 해보고 싶었심니더 " 라고 말했다. 백씨는 이어 " 신문지 응원, 라이터 응원도 제가 만든 겁니다 " 라고 말했다. 주변의 많은 롯데 팬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 응원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백씨는 그저 " 그림이 될 거 같았심더 " 라며 "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신문지와 라이터 응원을 시작한 것은 93년 " 이라고 덧붙였다.
신문지 총채(먼지떨이)의 비밀
'신문지 총채' 만드는 법
① 신문 1부를 준비한다. 그 중 8장을 분리해 낸 후 신문을 반 면 크기로 접는다. ② 한 가닥 너비가 2~3㎝가 되게 세로로 찢어 내린다. ③ 끝까지 찢지 않는 게 유의사항. 막힌 쪽의 5㎝ 정도 남기고 찢는다. ④ 김밥 말듯 말아준다. 둥그렇게 말린 막힌 쪽이 손잡이가 된다. ⑤ 먼지떨이처럼 되면 완성. 이제 신나게 흔들면 된다.
요즘 사직구장의 팬들이 너나없이 경기 내내 흔들어대는 신문지. 무턱대고 찢어서 만들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 안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바로 신문지 '8장'만 가지고 만든다는 것이다. 롯데 팬들은 신문지 총채를 만들 때 두꺼운 신문을 모두 찢지 않는다. 28페이지(14장)짜리 신문의 경우 속에서 12페이지(6장)를 빼내 의자 바닥에 깔고 나머지를 찢는다. 8장으로 만들어야 숱도 적절하고 흔들 때 가장 예쁘다고 한다. 또한 손에 쥐기에도 가장 적절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
완성된 응원도구의 가닥 가닥을 손으로 헝클어뜨려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이유는 파마머리처럼 풍성한 볼륨감을 위해서다. 10년 넘게 이어온 응원이다 보니 경험이 쌓여 팬들로부터 팬들로 이어지고 있는 일종의 전통이다.
또 다른 비밀도 있다. 신문지 총채는 '원(One)사이즈'가 아니다. 마음대로 길이를 정할 수 있다.
찢는 방법에 따라 신문지 총채의 길이가 달라진다. 반으로 접은 신문을 뚫려 있는 위에서부터 찢으면 표준 사이즈, 막힌 아래서부터 찢으면 두 배 길이의 '신문지 총채'가 된다. 이런 비밀들을 모르고 무턱대고 신문지를 찢었다간 신문을 다시 사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한 번도 안 찢어봤다면 옆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 부산=손창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