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옥상에는 엄마가 작은 밭을 하십니다.
고무대야에 흙을 채워 고추도 심고 상추,부추,파 등을 키우고 블루베리도 몇그루 심어서 잘 따먹고 있습니다.
옥상에는 하얀색 길냥이 한마리가 들락날락했는데 새벽에 옥상문을 열고 나가보면 후다닥 도망가고는 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눈에 익었는지 먹이를 따로주지는 않았지만 가끔와서 배를 깔고 누워있거나 했고, 야옹하면서 인사하는듯 굴고 가까이가면 도망은 갔지만 멀리 가지않고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근데 한동안 발길이 뚝 끊겼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6월달 여느때와 같이 문을 열었더니 하얀색 길냥이 녀석이 앉아서 야앙 하고 반기더군요. 근데 녀석의 뒤쪽으로 후다닥 도망가는 조그마한 흰물체들이 보였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옥상문을 반만열고 조용히 지켜보았더니 비가오면 물이 나가는 구멍 안쪽에서 흰색새끼들이 한두마리씩 기어나왔습니다.
엄마와 함께 조용히 숨죽이고 보고있자니 한마리...두마리...세마리 줄줄이 나와서 대야사이에서 뒹굴대며 놀더군요.
조그마한 놈들이 폴짝대는게 귀엽기도하고 저 어미가 언제 배가 불러서 새끼들을 옥상에 낳고 저렇게까지 키웠을까 신기했습니다. (엄마는 몇번 배가 부른채로 돌아다니는 걸 본적은 있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낳을줄은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밭일을 해야하니 슬슬 나가려고 하는데 구멍에서 꼼질꼼질하면서 한마리가 또 나오더군요. 경계심이 강한지 문쪽을 계속 움찔움찔하면서 보다가 쏙 들어가버렸습니다.
그걸보시던 어머니는 저것이 어쩌자구 우리집 옥상에 새끼를 네마리나 싸질러놨대..하시며 밭일 내내 한숨을 푹푹 쉬셨습니다.
그렇게 아침이 지나고, 저녁에 다시 옥상에 올라가보니 또 후다닥 소리가 나고 어미고양이는 제 발치로 와서 머리를 치대고 야앙 거리고 저를 딱 쳐다보고 똘망거리는 눈으로 보고있는걸 보니 딱 느껴졌습니다.
고양이 : 키워
나 : 네?
고양이 : 키우라고
나 : ...네?
고양이 : 새끼도 있어 다 키워
나 : ...
이게 진짜구나를 느꼈습니다. ㅋㅋㅋ
(근데 4마리나 애딸린 어미고양이가 다 키우라고 할줄은...)
저녁에 엄마가 집에 오시면서 고양이 사료를 사오셨고 녀석들에게 사료를 먹이면서 새끼들하고 좀더 친해지고 경계도 누그러져 도망도 잘 안가더군요. 그 마지막 녀석은 끝까지 안왔습니다 비싸게 굴더군요 (참치캔을 따도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안옴)
쉬고 있다가 기척이 나자 후다닥 구멍으로 도망가는 궁뎅이 하나
새끼 두마리는 사료를 먹고, 한마리는 잘 안보이지만 어미곁에서 촐랑촐랑 그리고 한마리는 구멍안에 숨어있습니다.
사료를 다 자시고 옆에서 주무시는 어미냥
씻기기전 추레한 모습 찍고보니 진짜 더러웠네가 절로 나왔던
어미품에서 낮잠자는 녀석.jpg
...그걸 베고 자는 어미
어미 : 아 푹신해...
새끼 : 끄윽..
어미냥은 새끼들이 어느정도 커서 그런지 동네를 다 돌아다니더군요. 그런데 녀석이 옥상에서 내려갔다가 올라오질 못하고 주위에서 계속 우는 것입니다.
사료로 꼬셔서 녀석을 들어다가 다시 옥상에 놓는 일을 두어번 하자 녀석이 옥상에서 다른 옥상으로는 다녀도 아예 내려가서 못 올라오는 행동은 안하더군요. (이때..이녀석이 왜 내려가려했는지 이것때문에 무슨일이 생길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후로 계속 밥을 줬고 어미도 새끼도 경계가 많이 누그려져 어미는 아예 옥상에서 2층으로 들어오려고 들었고, 새끼들도 밥을 먹고있을때는 만져도 도망도 잘 안갔습니다.
참 재미있던게 각각 성격이 달랐는데, 새끼냥1은 머리에 검은점이 있고 가장 마마보이였습니다. (위에 사진속 새끼) 어미가 밥을 먹으면 쫄래쫄래와서 사람이 있어도 고개를박고 먹으려들었고 장난도 좋아하고 이리저리 뛰어댕겼습니다. 끈을 묶어서 막대기 끝에 매달아 낚싯대마냥 흔들어서 놀아주곤했습니다. (딴녀석들은 관심은있던데 오지는 않았습니다)
새끼냥2도 머리에 검은점이 있고, 새끼냥1이 하고있으면 쫄래쫄래와서 같이 먹고, 장난치고 했습니다. 형따라서 같이 노는 느낌이랄까요. 요녀석도 경계는 조금했지만 밥먹을때는 만져도 도망 안갔습니다.
쳐놓은 방충망 아래를 뜯고 들어온 어미냥과 새끼냥1 그리고 그걸보는 새끼냥2 새벽에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깻다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ㅋㅋㅋㅋ
어미냥 : 편하구나 닝겐
나 : ...네
새끼냥3은 참 이쁘게 생긴게 몸이 전부하얀게 어미는 눈이 노란색이었는데 눈이 하늘색에 가까운 푸른색이었고 몸집도 다른녀석들에 비해서 조금 가늘고 날렵했습니다. 그런데 경계심이 강해서 그런지 가까이 갈라치면 후다닥 도망가곤했습니다. 이뻣는데 도망가서 못찍은게 참 아쉽..
새끼냥4는 몸집도 작고, 울지도않고 조용했는데 경계심은 정말 MAX란 느낌이라 사료를 두고 몰래지켜보는게 아니면 꼬리도 못볼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여름 내내 녀석들이랑 지내면서 정이 들었고 저는 키우고 싶었지만 엄마는 한마리는 옥상에 풀어놓고 먹일수 있는데 어떻게 다섯마리나 집안에 들여놓고 먹이고 뒤치닥거리를 하냐고 반대를 하셨습니다. 더구나 녀석들이 조금 커서 사람을 본것인지 경계심이 있어 어미가 없으면 가까이 오려하지도 않았고
똥쌀곳을 따로 마련해두었지만 밭을 다 파헤치고 거기에다가 대변소변을 보고 심어놓은것도 다 파헤쳐놓았다고 고양이 키운다는 사람을 찾아서 네마리 다 주인찾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하시더군요.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엄마가 가꾸시는 밭을 다 망쳐둔다니 가만두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다섯마리를 제가 다 관리할 자신이 없었기에 참치캔으로 꼬셔 박스에 잡아 네마리 모두 입양보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녀석들을 참치캔으로 속여서 보낸다는게 미안한 마음이 크더군요. 어미냥에게서 새끼를 뺏은거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했지만, 엄마가 원래 고양이들은 새끼가 조금 크면 떠난다고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니 녀석들이 누워있는 어미 배에 젖을 물려는지 고개를 들이밀면 어미가 하악질을 하면서 앞발로 치는것을 몇번봤기에 아 이빨이나서 아픈거구나 이제 새끼를 떼려는건가? 싶었기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침에 녀석들을 상자에 잡아 보내고, 저녁에 집에오니 엄마가 생선을 삶고 계셨습니다. 뭐 만드시냐고 물었더니 사과를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시고, 냄비째 어미냥에게 먹이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니 새끼들 농장에 계시는분한테 보냈으니 도시보다는 잘 지낼거라고 걱정말라고
그리고 새끼 넷 기르느라 고생했다고 처음봤을 때 홀쭉 말라가지고 밥도 없이 어찌 저리 새끼를 키웠을까 하면서 쓰다듬으셨습니다. 저도 옆에서 앉아서 다먹을 때까지 조용히 보고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고양이를 기르는 친구네 집을 가본적이 있는데 쓰다듬으면 가만있다가 물기도하고 잘 있다싶다가도 하악질을 하던데 이녀석은 씻길때도, 들어올릴때도, 2층에 들어오지 못하게 밀어도, 만져도, 심지어 새끼들을 잡아갈때도 그런걸 하나도 안한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엄마에게 얘기를 했더니 동물들이 영특해서 자기를 좋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을 알아본다고 저 사람이 나한테 해코지를 할지 안할지 알아서 우리에게 온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끼들은 누가 밥멕인지도 모른다고 배은망덕한 놈들이라고 에이 하셨습니다. ㅋㅋ
그렇게 어미냥은 새벽에 밭에 올라가면 인사하고 방충망을 쳐두면 들어와서 깔개에 누워있고 예전으로 돌아간지 알았습니다.
..배가 불러오기 전까지는요
p.s. 글이 길어진듯하여 짜르겠습니다. 점심시간도 끝나가구요. 반응이 좋다면 어미가 배가 부른 이후도 적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