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룰 1화의 전문부터 보겠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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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아"
드래곤중에서도 최강의 투명드래곤이 울부짓었다
투명드래곤은 졸라짱쎄서 드래곤중에서 최강이엇다
신이나 마족도 이겼따 다덤벼도 이겼따 투명드래곤은
새상에서 하나였다 어쨌든 걔가 울부짓었다
"으악 제기랄 도망가자"
발록들이 도망갔다 투명드래곤이 짱이었따
그래서 발록들은 도망간 것이다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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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의 개척자인 뒤치닥 작가의 역작, 투명드래곤입니다. 이후 이 장르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 버금갈만한 또 다른 대작, <해리와 몬스터>에 의해 발전됩니다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죠. 오늘은 이 문학에 숨겨진 철학적 고찰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순서대로 분석하겠습니다.
"크아아아아" 입니다. 작품의 첫번째 말을 장식하는 말이 "크아아아아" 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저 개인적인 해석은 이렇습니다. 저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울부짖는 드래곤의 모습입니다. 서사적인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화려한 문체로 시작하는 다른 작가와 달리 뒤치닥 작가는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바로 진정한 문장을 숨기는 것입니다. "크아아아아"는 언어가 아니라 울부짖음입니다. 저 울부짖음 안에는 수많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읽는 사람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납득하는 의미가 아닌, 개개인의 시각을 존중해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선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그는 그의 작품에 쏟아질 수많은 비판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가 시도했던 건, 독자 하나하나의 삶에 따라 달라지는 도입부일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크아아아아"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비범함 역시 돋보입니다. 왜 "하아아아"나 "크아아", "사아아아"가 아닌 "크아아아아"일까요? 기합성에 담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건 하나의 시입니다. 크라는 도입부는 아로 이어집니다. 아를 4번 넣어서 운율성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는 파괴입니다. 앙시앵 레짐에 대한 기분 좋은 살해입니다. 시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면서 동시에 너희들의 시를 시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형식을 파괴함과 동시에 형식을 지킵니다. 두렵기 짝이 없는 기술입니다.
다음 문장입니다.
드래곤중에서도 최강의 투명드래곤이 울부짓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울부짓었다"입니다. 울부짖었다가 아닙니다. 짖의 ㅈ을 ㅅ으로 바꿈을 통해 뒤치닥 작가는 불완전함과 불안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오감도에서 이미 시도되었던 방법입니다. 무엇이 불완전합니까? 투명드래곤의 위상입니다. 후반부 전개에 가면 나옵니다만 투명드래곤은 가장 강하지 않습니다. 저 작은 변경 자체가 이미 후반부의 중대한 복선인 것입니다. 그럼 이제 불안함을 봅시다. 무엇이 불안합니까. 불안함을 던지는 건 발록이나 등장인물이 아닙니다. 독자 그 자체입니다. 당신의 울부짖음도 울부짖음이 아닌 울부짓음이 아니냐, 하고 묻고 있는 겁니다. 책을 덮고 조용히 묵상해도 좋을 부분입니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같은 메세지를 후반부 마침표의 생략으로 던집니다.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네요.
그 다음에 볼 부분은 투명드래곤이 "드래곤중에서도 최강"이었다,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최강에 대한 다른 시각입니다. 인식론적인 고찰입니다. '최강'의 정의는 투명드래곤과 독자에게 있어서 다른 겁니다. 투명드래곤은 강력한 드래곤 종족 가운데 최강입니다. 하지만 그게 그를 진정한 최강으로 만들어줍니까? 아닙니다. 이 인식론의 문제는 작품 내내 변주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 다음 문장을 보겠습니다.
투명드래곤은 졸라짱쎄서 드래곤중에서 최강이엇다
새로운 화두가 많습니다. 마침표의 생략은 여전히 "드래곤중에서 최강"이 불완전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저 "이엇다"는 무엇을 나타내는지 좀 더 드러나게 됩니다. 저 부분은 고독함을 나타냅니다. "이었다"에서 ㅅ 하나를 뺐습니다. 그럼으로서 투명드래곤이 최강자로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는 맞수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보이는 건 비속어의 사용입니다. 작가는 비속어를 사용함으로서 보다 직설적으로 투명드래곤의 강함을 표현했습니다. 현실에 대한 풍자입니다. 서로 질러가지 못하고 빙 둘러 대화하는 현대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 세 문장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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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리뷰는 작가의 SAN치가 회복되면 올라옵니다.